위대한 물리학자를 추모하며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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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열심히 교회를 다니던 나의 의문점은, 물리학자라는 사람들이 어째서 별들을 연구하는지에 대해서였다. 그건 천문학자들이 아닌지, 물리학과 천문학이 대체 무슨 상관이기에 물리학자들이 별이 어쩌구 우주가 저쩌구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지구상에 일어나는 일이 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과도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는 것에까지 생각이 확장되어서야 물리학자들이 왜 그리 우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빛이 있으라’ 이 한마디에 우주가 만들어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이 저 먼 우주에서도 똑같은 법칙에 의해 일어난다고, 저 하늘에는 신들이 사는 세계가 아닌 우리가 사는 지구와 똑같은 물리적 법칙에 지배를 받는 다른 공간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구 상에 신이 없다면 저 하늘나라에도 신은 없다. 내가 더 이상 성경을 믿지 않게 된 것이 그 때 부터였을 것이다.

그런 나의 생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중학교 때 도서관에서 봤던 ‘시간의 역사’라는 책이었다. 천만부가 넘게 팔렸으나 읽은 사람은 얼마 없다던 그 책을 나는 다 읽었다. 물론 읽으면서도 이해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서 읽었다.

나는 수학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물리학에 대한 책을 좋아한다. 양자역학 책도 좋아하고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하는 것들도 좋아한다. 그것은 아마도 단순히 종교에 의존하며 이 우주에 대해 궁금해 하던 나에게 좀 더 진리에 근접한 답을 해 준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종교는 기적을 빼면 성립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를 빼고도 존재할 수 없다. 고작 100년도 살지 못하는 단 한 번의 삶으로 이후에 영생이 결정된다는 사고방식은 나에게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지구상 그 어디에서도 기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영혼이나 귀신도 증명된 적이 없다. 그런 게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정말로 단 1의 증명도 없었다. 0.000000000001의 오차조차도 존재하지 않고 물리 법칙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 이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전지전능한 존재의 말 한마디에 물질이 창조된다거나, 영혼의 세계가 있다거나 하는 것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물리학은 위대하다. 이 세상은 물질이 전부이며 그 물질에 대한 탐구만이 우주의 진리에 다다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후로 나는 인간의 성격을 지닌 신의 존재를 버리고 이 우주 자체의 법칙으로 그 신의 자리를 대신 채웠다. 신이 있다면 아마 물리학일 것이다. 그 외의 어떤 신성도 그보다 더 위에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성직자들은 물리학자들인지도 모른다. 성경에 쓰인,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짓만 골라가며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된 거짓성직자들 보다는, 객관적으로 이 세상을 담담히 탐구해나가는 그들이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성식자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이야 말로 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하며 그 어떤 신성에 대한 왜곡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젊어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으나, 정상으로 살아온 날보다 2배는 더 많은 기간을 부자유스럽게 살아온 그는 오늘 세상을 떠났다. 외계인은 존재하지만 인간에게 위험한 존재일 것이라는 말도 했고, 인공지능이 인류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말도 했으나 그는 자신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과연 내 생전에 그의 말이 옳았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나 역시 살아생전에 그가 품었던 의문을 계속 이어갈 것이고, 언젠가는 그 의문이 풀어지리라 기대한다. 아마 그 때 얻는 답은 내가 종교에서 얻었던 답보다는 좀 더 명쾌하고 진리에 근접한 것이 될 것이다.

우주의 원소에서 태어나 다시 우주의 원소로 돌아간 그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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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발언일 수 있지만 인문학은 자연과학에 열 수는 접고 들어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연법칙 자체가 그저 학자가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말장난의 향연들보다, 삶을 사는 이치에도 훨씬 부합하죠.

저랑 비슷한 경험을 하셨네요. 저 같은 경우는 시간의 역사 같은 물리학이 아니라 통섭이란 책을 읽으며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진화론이었습니다만... 그 전까지 교회와 나의 관계가 애증이었다면 어느 시점부터 무관심이 되어버렸네요. 자연과학의 법칙들을 읽게 되면 성경에 적힌 신화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으니까요.

뭐 따지고 올라가면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둘이 아니었다고 하죠.
고대 철학자들은 모두 수학도 잘했고.
애초에 수학이라는게 논리를 통해 우주를 파악하는 거였죠.
한국에서나 문과 이과 따지지, 외국에서는 그래서 Ph.d라고 하죠.
지금 읽고 있는 유니버스의 저자 맥스 테그마크도 경제학 전공한 후에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었고....

dakfn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안녕하세요! admljy19님의 말씀에 대체적으로 동의하지만, ' 인문학' 없이는 인간의 삶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므로 '인문학'에 대하여 지금 강하게 하신 말씀을 차후에도 계속 견지하실지는 의문입니다. 자연과학은 인문학에서 탄생하여, 최고 정점에 이르면, 다시금 인문학으로 돌아간다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 내용은 호킹박사께서 하신 말씀인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물리학과 수학은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말해 줄 수는 있지만 인간의 행위를 예측하는 데는 별 쓸모가 없다. 왜냐면 (인간 행위 예측에는, 즉 인문학에는 ) 풀어야 할 방정식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이 사람들의 행동동기를, 특히 여성들의 활동 동기를 유발시키는지를 이해하는 데에서는 문외한이나 다를 바가 없다. (While physics and mathematics may tell us how the universe began, they are not much use in predicting human behavior because there are far too many equations to solve. I’m no better than anyone else at understanding what makes people tick, particularly women.)
자연과학자가 제 아무리 자연을 잘 이해하더라도, 인간과 사회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 자연과학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고맙습니다. 감기 유념하시고 평안하시길!

학계의 정설은 원래 자연과학과 철학은 구분되지 않았고 이게 점차로 세분화되었지만 이제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취지는 알겠습니다만.. (저도 인문학도 출신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학계'가 뭘 말씀하시는지 명확하지 않고 그 '학계'의 정설을 수용해야 한다는 그 어떤 '인문학'적 근거는 더더욱 없습니다.

인문학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건 작금의 폐쇄적인 언어 놀음이 아닌 보다 자연과학에 근접한 순수한 형태의 인문학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 점에서 패거리 학문을 이끄는 인문학 교수들보다는 호킹 같은 자연과학자 쪽이 앞으로도 더 위대한 인문학적 결과물을 내놓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학 배운 사람은 뒤늦게 철학에 접근하는게 상대적으로 쉽지만, 철학만 배운 사람은 수학에 접근하기 어려우니까요.

admljy19님~~ 다시 지적하신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원래 서양 철학의 탄생 자체가 순수선험논리인 수학과 불가분의 관계였으니까요! ( 별론입니다만, 영국의 대학에서는 수학을 문과에 편성하기도 하더라고요!) 특히 다시 올려주신, "자연과학에 근접한 순수한 형태의 인문학"이라는 말씀 취지에 대해서는 알겠습니다만,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받아들이는 데는, 연구대상과 연구방법이 현격하게 다른, 인문학으로서는 자명한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회과학조차도 자연과학적 방법론(특히 수학과 물리학의 방법론)을 받아들이면서 엄밀한 학문으로 탄생하는데 그토록 애를 먹은 것을 고려해볼 때 말이죠). 자연과학이 자연과학일 수 있는 핵심성립요건은 '자연과학 이론에 대한 오류 검증 가능성 또는 그 반증 가능성'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인문학에서는 이러한 오류 실험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자연과학을 닮은 순수인문학'은 요원한 과제처럼 느껴집니다. 좌우지간 말씀을 통해 많이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자주 찾아뵙고 좋은 말씀 경청하겠습니다!

스티븐 호킹이란 분은 단순한 물리학자가 아니라 희망을 주는... 그런 물리학자였던것 같아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의지의 표상이기도 했지요.
저런 몸상태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사셨으니...

스티븐 호킹이 오늘 타계했군요... 제게는 위대한 물리학자라기 보다는 희망의 아이콘이었는데... 별의 세계로 돌아가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오늘 지인의 발인식에 갔다올라오는 길인데 이곳에도 안타까운 소식이 있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스티븐호킹의 죽음은 이상하게 비현실적으로 와닿네요.. 자유로운 몸으로 편하게 쉬시길..

현실에서 만난 적이 없어서 그렇겠지요.
저 역시 살아 있을 때도 역사속 인물처럼 느껴지긴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되고 나니 조금은 이상하네요.

스티븐 호킹이 돌아가셨군요. 몇 안되는 물리학자중의 한명인데...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처음 나온 '시간의 역사'에서는 '신'의 공간을 인정하는 듯 했는데, 두번째 '시간의 역사2'에서는 '우주에는 신이 존재할 공간이 없다'라는 말을 했던 것 같네요. 저도 읽은지 상당히 오래돼서... 교황이 호킹박사를 불러 신이 없다는 얘기는 좀 하지마라고 했다고 했던 것 같은데...명복을 빕니다

신이 있다 없다의 문제보다도,
인격신이란 존재하는가의 문제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짜 신이 있다면 아마도 그런 논쟁보다는 더 고차원적인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초등학교때 장래희망이 천문학자였는데, 그래서인지 평생 종교는 불신하면서 살아왔네요. 어쩌면 종교가 말하는 영혼의 힘도 물리학의 한 부분일지 모르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논리와 합리성에 대해 알면 알 수록 종교는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너무 말이 안 되는게 많으니까요.

동시대에 살고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던 일인 것 같습니다.

호킹에겐 죽음조차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것 같네요. 블랙홀 너머를 지금쯤 구경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부디 현세에서 몰랐던 것을 모두 알게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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