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의 기록│좋은 사람되기, 멀고도 험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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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되기, 멀고도 험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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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 금요일 오후 네 시의 기록│by @chaelinj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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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elinjane, 2018





천둥과 폭풍우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간혹 천둥도 발을 굴렀다. 알람 덕분에 현실 세계로 감각이 잠시 돌아온 듯했으나 척추에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한국에서부터 아팠던 부위였는데, 좀 괜찮다가 요즘 들어 다시 심해졌다. 예민한 기간이 시작되면 꼼짝을 못해서 아마도 그때부터 심해진 듯하다. 일어나야 하는데‥, 하다가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뜬 건 원래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서 1시간 30분이 지난 때였다.


 아침잠이 많은 두두는 내가 일어나 이리저리 움직이는 기척에 잠을 깨는데 오늘 아침에는 내가 죽은 듯이 누워 있어서 결국 똑같이 늦잠을 자고 말았다. 요즘은 피로 누적이 더해져, 두두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2층 부엌을 사용할 시간은 이미 지나버렸다. 과일 칼만 겨우 들고 내려와서 방에서 과일과 치즈를 잘라 아침과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다.


  이때까지는 별 일이 없었다. 그런데 도시락을 싸다보니 며칠 동안 자기 먹을 걸 안 챙겨오고 두두의 샌드위치를 뺏어먹는 동료가 생각나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올랐다. 자기 손으로 싸오면 될 것이지 회사 밖에서 외근을 하면 와이프가 가져다 주지 못해 그냥 그대로 나온다는 것. 요즘 시대에 부엌에 손도 안 대는 걸 자랑스레 말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돈 아깝다고 점심을 자기 돈 주고는 절대 사 먹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평소에 두두와 잘 지내는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회사에서 법인장 다음으로 두두를 괴롭게 만드는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열이 받았다.


 도시락을 싸면서 투덜투덜, 시간이 늦었다는 압박도 느끼고 있었고, 계속 그 사람 이야기를 꺼내다가 결국 핀트가 나가버렸다. 그 감정이 그대로 이어져 두두의 장난에 내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고, 두두의 감정이 상해버린 것이다. 왜 그 사람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아침부터 싸워야하냐고, 둘 다 날이 서고 말았다.


 천둥 번개가 쳐대고 폭우는 계속 쏟아졌다. 이번 주만 이런 식으로 세 번을 다투었다. 예민한 기간이 시작되고 통증이 오래 가서 짜증이 나지 않은 일상 대화에도 내 목소리에 짜증에 섞여 있었고, 짜증이 날 때도 짜증을 내다보니 두두도 한계를 느낀 것이다 . 호르몬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짜증내는 건 결국 네 선택이니 짜증내지 말아달라고, 두두가 진심을 다해 부탁을 했는데도 감정 조절에 실패했다. 나도 안 그러고 싶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해서 아침을 먹다가 밖에 나가 조금 울다가 들어왔다. 폭풍우를 마주하니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주중의 마지막 날, 진이 다 빠지는 금요일 아침이었다.








햇살과 바람




 불현듯 강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소나기가 쏟아졌다. 또다시 햇빛이 나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설거지를 하고 내려오니 일주일 동안 엉망이 되어버린 방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트 위의 먼지는 청소기로 이틀에 한 번씩 빨아들였는데 방 안 곳곳이 정말로 '정리'가 안 되어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지냈기에 무의식적으로 우리 컨디션이 더욱 나빠지지 않았을까. 청소 후 LUSH 스프레이를 곳곳에 뿌리고 빨래를 돌렸다. 두두가 '나 퇴근하고 주말에 세탁기 돌리지'라고 말할 게 뻔했지만 이미 쌓인 빨랫감만으로도 세탁기가 꽉 찬 상태였다.


 적당한 햇살, 그리고 바람. 빨래가 마르는 데에 최적의 조건이다. 세탁기 사수하느라 눈치 싸움하고, 건조대 자리 확보하느라 고군분투했던 옛날 집이 생각났다. 그때 집주인은 습기 찬다고 방에 빨래도 못 가져가게 했는데, 지금은 너른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과 바람으로 빨래를 말리고도 여유 공간이 충분하다. 이것은 확실한 축복이다.


 그래, 모르는 사람도 돕는데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도시락을 나눠 먹는 게 그렇게 큰 일은 아니었다. 그를 온전한 어른의 기준에 놓고 보니 실망과 분노가 차올랐던 모양이다. 그동안 우리가 만나왔던 멋진 인생 선배들에 비해 너무 못났고 모자란 존재인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게 우물 안 개구리 같아 보여서 답답하고 싫었나보다. '그냥 그런 사람이구나' 하면 될 일이었다. 거기에 미운 감정까지 더 얹는 건, 필요하지 않은 감정 소모였다. 그냥 원래 그런 사람. 누군가에게 내가 참 별난 사람이듯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더 키워내지 말았어야 했다. 참 어리석었다.


 어제 편지에는 너무 나중의 불행을 생각했다. 「감정 조절에 실패하는 것」을 최악의 불행으로, 조금 더 내 삶 가까이로 가져와야겠다. 더군다나 이런 상태로 엄마가 되는 것은 너무 끔찍할 것 같으니까, 더욱 필사적으로 마음을 넓히는 연습을 해야겠다. 우선, 그보다 먼저 '쉴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파트너'가 되어야겠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내 스스로에게 햇살과 바람 같은 사람에 좀 더 가까워진 내 모습을 선물하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말. 마음 챙김은 평생의 과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by @chaelinj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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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자연스러운 우리네 표현방식일뿐, 감정이 내 마음도, 내 가슴 속 진짜 나도 아니니 ... 감정의 소용돌이를 벗어나는 시간을 조금씩 줄이다보면, 언젠간 감정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도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요?! ^^

근데, 그 사람이야 말로 어리석네요. 아주 매운 청양고추 넣은 참치 마요 샌드위치 만들어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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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에 아정님, 프로필 사진을 함께 놓고 보니 마치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요 ㅎㅎㅎㅎ 맞아요, 그런 안 좋은 감정이 찾아올 때 제 마음을 제3자의 눈으로 지켜볼 수 있는 지혜를 길러야겠어요 ㅎㅎㅎㅎㅎ

p.s 그 동료가 매운 걸 무지 좋아한대요 ㅠㅠㅠㅠㅠㅠ 뉴질랜드는 청양고추도 비싸답니닿ㅎㅎㅎ 아마 더 맛있다고 잘 드실 것 같습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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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어쩌지요 ㅎㅎ

예전 뉴질랜드 장기 여행 중, 저는 한국 식료품점을 찾은 적이 없는데, 청양고추가 비싸군요. 그러면 ... 냄새나는 한국 발효식품 뭐 없을까나요. 저도 고민 좀 해볼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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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핳ㅎㅎㅎㅎㅎ 아정님 덕분에 이제 미운 감정 대신 유쾌한 감정이 그 자리를 꿰찰 것 같네요 ;-D 너무 감사합니다ㅎㅎㅎㅎㅎㅎ! 그냥 맛있게 잘 먹는 걸로 하겠습니다! 히히

햇살과 바람에 잘 건조된 감정, 어떨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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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불안에 사로잡힌 상태보다는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머네요 ㅎㅎㅎ 인석님의 마음챙김 도움이 절실합니다ㅎㅎㅎㅎㅎㅎ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 언젠가, 그 감정을 인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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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리 됩니다.

감정 싸움 ㅠㅠ 늘 안 그래야지 하지만 또 금방 싸우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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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ㅎ자아, 만두님도 합류해요. 끊임 없는 수양이 필요합니다!! :)) 언젠가는 가능하리라 봅니다. 정말루요!

예상치 못한 기쁨은 반송해야겠는데요. 헤헤.
먼저 누리시고 다시 보내주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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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헣ㅎㅎㅎㅎㅎㅎㅎ 저는 오늘 누렸으니 이 멀리까지 반송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
기쁜 주말 보내셔요 마셸린님 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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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안좋은쪽으로 생각하다보면 끊임없이 빠져드는것 같아요. 그러다가 주변사람에게 잘못해서 표출하게 되면 .. ㄷㄷ 상황은...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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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요님 정말루... ㅠ 그 험한 감정의 고리는 중간에서 딱 절단해야 할 것 같아요 ;-))
애꿎은 타인에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잡아야겠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극복하시기를 바라봅니다.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나
거기에 엉겨있는
'내 것이라는 소유욕과 내게 맞춰줄 것을 기대하는 집착'
그것을 쏙 빼냈을때에만
그나마 행복에 이르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오늘 아침 산책하며 했던 생각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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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라흐님 산책 중의 생각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금껏 살면서 싫은 사람들이 정말 별로 없었는데
(운이 좋게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거든요ㅠ)
해외 생활이 쉽지 않아서인지,
나이가 들면서 제 안에 아집이 생겨서 그러는지,
강렬한 감정도 덩달아 만들어지네요.
에잇 -! 오늘부터 정말 다 가볍게 생각하고 털어버릴 작정입니다. ㅎㅎㅎ
미워하는 마음은 그저 독일 뿐인 것 같아요.
목표는 크리스마스 날이 될 때, 감지할 수 있는 마음의 성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글은 스팀잇에 박제가 될 테니, 두고두고 열어보면서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ㅎㅎ

채린님 이 글에 정말 진지하게 감정 이입해서 밖에 나가서 조금 울고 들어왔다는 부분에서 저도 눈물이 찔끔... 스스로 감정 컨트롤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작정하고 감정의 파도로 스스로를 몰아갈 때는 그동안 애껴둔(?) 것까지 다 끌어모아서 슬퍼하고, 분노하고 진짜 파괴적으로 그러거든요. 그 끝엔 찌꺼기가 남지 않아서 나름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과정에서는 나도, 주변사람도 마음을 많이 다치게 되니까 그러지 말자고 생각은 해요. 아주 많이 화가 나거나 슬플 때는 채린님이 한 것처럼 설거지를... 파워워킹을...

우리 소중한 감정들 애껴놓고 소중한 곳에, 소중한 사람에게 써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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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앙, 동글님... ㅠ 휴 저번에 동글님 속 쓰린 이야기 쓰신 글이 생각났어요. ㅠㅠ ㅎㅎㅎ
마음 속 그늘진 구석을 서로 꺼내놓고 쓰다듬어줄 수 있어 정말 다행이고 좋아요..! ㅎㅎㅎㅎ
이제는 감정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연습을 해보려구요 :))
소중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아끼자는 말, 참 와닿아요!!
어둠은 빛은 이길 수 없죠 헤헤 :))
행복한 주말 보내셔요!!!

진짜 좋은 사람이 되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우선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누구에는 좋은 사람이 누구에게는 나쁜 사람으로 되고.. 글이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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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wnee님 반가워요..! :)) 제가 이 글에서 쓴 '좋은 사람'은,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과 비슷한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는 불가능하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요. :))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에게는 감정적 한계를 뛰어넘는 연습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ㅎㅎㅎㅎ 헤헤 따뜻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미운 원인이 분명하고 내 기준에서 미워할만 하면 미워하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미움의 대상이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혹시나 퍼지더라도 상대에게 잘 이야기 하는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어요. 미운 걸 미워하지 말자는 건 너무 어렵습니다. 뭔가 터지고 해갈이 되야하는데 눌러놓고 참는 건 나중에 더 크게 터져서 않좋더라구요. 미안해 하고 속상해서 눈물이 나는 그 걸로 이미 좋은 사람이십니다. 기준을 너무 높이지 마셨으면 해요. 힘들지 않을 정도로만 좋은 사람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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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캣님, 으아_
'힘들지 않을 정도로만 좋은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맞아요, 무작정 참는 게 더 큰 비극을 부르는 압력이 될 수도 있겠네요! ㅎㅎㅎ
엉뚱한 이에게 짜증과 분노로 표출되지 않게,
좋은 쪽으로 잘 해소하는 방향으로 마음 훈련을 계속 해볼게요. :))
진심 어린 댓글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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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정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좋은사람 두 분이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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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 너무나 감사합니다! ^^ 저도 와이즈캣님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나를 미화하는 포장말고 진짜 당장 가장 최악일 것 같은 불행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누구의 일도 아닌 저 자신이 죽을병 걸렸다면, 그걸 가장 피하고 싶을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건강한 음식 먹으며 조금씩 운동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도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은근히 효과가 있던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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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죽을 병에 걸리는 것', 그렇네요, 어쩌면 죽음으로 삶이 단판에 끝장나는 것보다 어찌 손 쓸 수 없이 흘러가는 인생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한다는 사실이 더욱 참혹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최악을 기점으로 현실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다보면 걸어야 할 길이 오히려 잘 보이나봐요 ㅎㅎㅎ 으아- 마음을 다스리려 이런 저런 연구를 해보고 있는 중인데, 이것도 어쩌면 '살롱 실험 파견 연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납니다 ㅎㅎㅎㅎㅎㅎ오늘도 응원 듬뿍이에요! :))

마음 챙김의 하나로 mindful eating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부터 내 안의 소리를 들으려 노력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럼 주변의 소리도 들릴 것 같거든요. 아무도 대신 챙겨주지 않는 마음, 스스로 잘 챙겨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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쏭블리님의 마음 챙김도 깊이 응원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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