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참여] 엄마의 꿈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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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꿈




조용필.

엄마는 여느 아주머니들 처럼 조용필을 참 좋아하신다. 기억은 안나지만, 집에서 얼마나 자주 조용필노래가 흘러 나왔으면 내가 말도 잘 못할때 이미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라는 노래를 곧잘 따라 불렀을까. 아버지가 녹음해 놓으신 카세트 테이프에는 아직도 나의 방정맞은 노랫소리가 담겨있다.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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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아나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께서 전축앞에 앉으셔서 그때의 녹음 테이프들을 하나둘 재생 하실때면, 창피하고 민망해서 투덜대며 쪼르르 내방으로 도망가곤 했다.

용필오빠 한번 만나보면 소원이 없겠네~

엄마는 용필 아저씨의 열열한 팬이셨다. 기도하는! 하면 꺄악! 하시던게 바로 우리 엄마다. 엄마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가수지만 사실 나는 관심도 없었고,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시고 듣고싶으셔도 조용필 테이프나 씨디도 하나 없으셔서, 그냥 라디에오서 흘러나올때 듣는거로 만족하시던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가 생각없이 놀고, 부모님한테 서운해하고, 용돈을 헛된데 쓸때, 엄마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 한장 사지 못하시고 그렇게 가족을 위해 절약 하시며 살으셨다.

대학을 휴학하고 정식으로 일해서 받은 첫 월급은 내 옷, 당구장, 피씨방, 술값으로 펑펑 썼다. 그 흔한 빨간 내복도, 그렇게 좋아하시는 조용필 음반 한장도 사드리지 못했다. 만원짜리 한두장이면 되는 거였는데. 그렇게 쉬운거였는데, 그때의 나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쉬운거라는 것 조차.

스무살 중반이 넘어갈 무렵, 나는 인생에 대한 여러가지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록 자식으로써의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한동안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던 적이 있다. 평생을 장님으로 살다가 갑자기 눈을 뜬 것 처럼, 부모님이 나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것들과 생각없이 받기만 했던 기억들이 머릭속으로 쏟아져 들어와, 견딜수 없이 죄송스럽고 괴로웠다. 육체적으로는 성인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자기밖에 모르는 어린애 수준이었던 나. 껍질을 깨고 나왔을 때의 격한 쓰라림 이후, 나는 많이 성장했다.

표현이 서툰 내가, 소극적으로 나마 엄마에게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애용한 방법은 "조용필" 이었다. 조용필 노래 모음집을 만들어 드린다거나, 조용필이 나온 티비 방송을 다운받아서 보여드리거나 하는 일이었다. 조용필 콘서트를 보내드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는데, 영국에 온 후 뒤늦게나마 조용필 콘서트 티켓을 좋은 자리로 예매하여 보내드렸다. 정말 별것 아닌 종이 쪼가리 두장에, 부모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던것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풍운의 꿈을 안고 온 머나먼 타국에서 하루 하루 외로움, 낮설음과 씨름하며 살다가, 하드디스크에서 예전에 엄마에게 보여드렸던 조용필 콘서트 동영상을 우연히 발견했다. 무심코 재생한 동영상은 '꿈' 이라는 노래로 시작했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곳
여기저기 헤메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

어른들만의 노래라고 생각했던 조용필의 '꿈'은, 놀랍게도 어느새 나의 삶 나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지친날에 받은 갑작스런 위로에, 고구마를 먹은것 같이 목이 메였다. 그 옜날 젊고 아름답고 꿈많으시던 엄마는, 고향을 떠나 정착한 낮선 도시 서울에서 이 노래를 들으시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이 노래가 나의 마음을 울린 것처럼, 그옛날 엄마의 마음도 울렸을까. 엄마는 꿈을 이루셨을까.

그시절의 엄마가 되어 고향의 향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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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용필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맨 초입부에 '고추잠자리'란 곡을 보고 음악을 찾아 재생시켜 놓고 글을 읽었죠. 생각보다 슬프고 먹먹한 노래와 따뜻한 글을 보고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은 서울에 올라오셔서 홀로 많이 힘드셨겠네요. 나는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나는 왜 헤메이나. 왜 엄마가 보고싶나. 외로운 생활을 달래주던 노래가 많은 위안이 되었었겠죠.

그렇게 조용필을 좋아하면서도 돈 아끼시느라 음반 하나 제대로 못 사시던 어머님과 그걸 이해하지 못했던 애즈베어님, 그리고 스무살 중반의 후회까지. 마치 절 보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화끈거리네요. 그래도 조용필 티켓을 사서 보내드렸다는 걸 보며 박수를 막 쳤습니다. 나도 효도해야지 - 이런 생각도 마구마구 들고요.

그리고 지금은 타국 생활을 하고 계시는군요. 조용필의 노래를 들으며 위안을 받는 애즈베어님의 울림이 제게도 전해집니다. 너무나 힘들고 아무도 여기가 어딘지 이야기해주지 않는 세상... 제가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그리고 새삼 저도 생각하게 되네요. 어머니의 꿈은 무엇이셨을까. 어머니는 지금 무얼 하고 계실까. 힘들진 않으셨을까.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음악까지 틀고 들어 주셨군요. ^^ 맞습니다. 제 글에서 '고추잠자리' 는 인트로 '꿈'은 에필로그 이지요.
레캉님은 분명 효자이실겁니다. 글을 읽고 어머니 생각이 나셨다니 분명합니다. 효자가 뭐 별거 있습니까, 맛있는거 보면 부모님 생각나고, 좋은곳 가면 부모님 모시고 가고싶고 그럼 효자 아닐까요.. ^^

좋은 이벤트를 해주셔서 저도 글이란 것도 한번 써보고 칭찬과 격려도 받고 있네요.
너무 감사드립니다!

자식의 마음은 다 똑같은것 같습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쉽게 잊혀지는..

부모님이란...
가깝지만 먼 당신.

부모님께 마음껏 표현할수있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한때는 한몸이었던 세상에 유일무이한 그분들께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눈마주치며 이야기하고 꼭 안아드리는게 왜그렇게 어려운지.. ^^ 더 노력해봐야할것 같아요. 당장은 출세와 용돈으로 대신... -_ㅜ

글도 노래도 너무 좋네요.. ㅜㅜ

감사합니다! 괜히 가왕이 되신게 아닌가봅니다^^

@asbear 님의 눈에 비친 진솔한 삶의 모습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soyo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께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항상 아쉽습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대신, 나중에 제 자식이 표현에 인색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

제 눈물을 쏙 빼려고 하신건 아니죠?

'조용필 오빠부대'이고 싶으셨던 어머님의 감성을 @asbear님만의 글로 이렇게 풀어내시다니..

역시 마음이 담긴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것이 확실한듯 합니다.
또 울컥해지네요 저는 얼른 사라지렵니다.

@sochul 님도 감성이 충만하신가 봅니다. 딸이 있으셨으면 지구 최강 딸바보가 되셨을것 같습니다...
저는 조용필선생님이 노래하시다가 울먹이시는 것을 보고 감동 했습니다. 그냥 타인의 울먹임일 뿐인데 왜 감동을 하는걸까요. 누구든 자신의 가슴먹먹한 순간을 대입하여 공감하기 때문이겠죠?

안녕하세요 정말 마음에 뜨거워지는 글이네요.. 어머니란 단어자체의
그리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따라 백일장 글들을 보면서 그리운
어머니를 깊게 생가하는 하루가 아닌가 싶네요.. 조용필 안좋아하셨던
어머니는 아마 없지 않을까 싶네요.. 노래 잘 듣고 가네요..
뜨거운 감정을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kimsungmin님도 먼 타국에서 부모님생각 많이 나실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연로하시면 곁에 있어드려야 하는데 언제까지 떨어져서 있어야 할지.. 응급상황이라도 오면 어떻게할지 항상 마음한켠이 무겁습니다. 타국 생활 힘내시고, 응원합니다 ^^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참 마음이 무겁네요...

저희 엄마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며칠전 갑자기 내가 다시 태어나도 이렇게 살고 있을까 하시던 엄마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노래가 가슴을 울립니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 ^^

엄마도 한때는 꿈많은 소녀이셨을텐데, 우리가 누린것들 하나도 못누리시고 사시고 키워주시느라 모든걸 희생하신 어머니에게 사소한것들로 투정부리는 자식이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생각합니다. 부모가 되었을때야 비로소 이해한다는 그마음 저도 언젠간 이해하게 되겠죠.. ^^ 연락이라도 자주 드려야겠습니다..

맞아요~ 전화 한통으로도 행복해하시더라구요~ 부모님 들은요 ^^

감사히 보았습니다. tip! 1.0

@leesunmoo님 제 글 좋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tip 서비스는 이전의 글로 알게 되었는데 실제로 사용하시는것을 보니 와닿습니다. 저도 항상 포스팅 잘 보고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정말 대단하세요.

님의 글을 생각하며 노래를 끝까지 다 들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고맙습니다.

저의 소소한 이야기에 공감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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