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04 연습 일지] Part IIc

in #kr6 years ago (edited)

어제는 다행히 레슨 전에 잠깐 손을 풀 수 있었다. 집중이 안 돼 손 풀기를 포기하고, 리얼북을 꺼내 이곡저곡 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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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은 키스 쟈렛(Keith Jarrett) 곡인데, 몇 년 전 리얼북을 뒤적이다 알게 되었다. 처음 보는 제목이 궁금해 쳐봤는데, 치다보니 쾰른 콘서트(The Köln Concert)에 수록된 곡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쾰른 콘서트는 총 4개의 트랙으로 구성된 키스 쟈렛 콘서트 실황 앨범인데, 이 곡은 마지막 트랙인 Part IIc다.


재즈 얘기가 많지 않은 스팀잇인데도, 이곳에서 몇 번 쾰른 콘서트 이야기를 이웃들과 나눈 기억이 난다. 쾰른 콘서트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명반이라는 말조차 붙일 필요 없는 대단한 앨범이다. 개인적으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재즈 앨범인데, 특히 피아노 연주자라면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 없는, 들을 때마다 새로운 연주다.

앨범은 네 개의 트랙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네 트랙이라기보다는 앨범 자체가 하나의 곡이라는 생각으로 듣는다. 무조건 1번 트랙(Part I)을 시작으로 들어야 하는 앨범이지만, 굳이 트랙별로 나눈다면 나는 Part IIc만 따로 듣는다. 그렇게 된 것은, 아마도 리얼북에 'Memories of tomorrow'라고 명명된, Part IIc의 곡이 따로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가 올 듯 말 듯 한 축축한 어제 날씨와 잘 어울렸다. 가볍게 치기에 너무 느리지 않은 적당히 빠른 템포도 재밌었고, 안 그래도 며칠 전 저 곡이 생각나 건반을 더듬었던 적도 있었다. 레슨 시간까지 열심히 친 후에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Part IIc를 반복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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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북에 있는 악보는 코드도, 멜로디도 틀린 것투성이다. 심지어 내가 이 곡에서 가장 좋아하는 화성인 Em7의 9음인 F#음도 빠져있는데(순식간에 Dorian으로 만들어주는!), 그래서 오늘은 더 정확한 쾰른 콘서트 악보를 보고 싶었다.

축복스럽게도 쾰른 콘서트는 처음부터 끝까지(Part I부터 Part IIc까지) 2단으로 제작된, 꽤 정확한 피아노 악보가 있다. 오랜만에 그 파일을 꺼내 Part IIc를 뽑아 짧게 연습했다.

리얼북을 보고 칠 때는 들어서 알고 있는 멜로디와 코드를 적당한 보이싱과 리듬으로 쳤지만, 2단 악보를 뽑아 연습하는 것은 간단한 리드싯을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 된다.

무리 없이 쳤던 곡인데도, 첫 마디도 치기 어려울 만큼 어지럽다. 2단 악보를 처음 익히는 날은 내가 돌대가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진도를 나갈 수 없다. 신기한 것은 연습하지 않아도, 며칠만 지나면 능숙하게 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역시 네 마디를 넘어가지 못하고 뱅뱅 돌았지만, 며칠 연습하면 금세 나아질 거라는 확신이 들어 즐거웠다.


< Keith Jarrett - Part IIc >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아름다운 곡, 아름다운 연주.

곡 자체도 덧붙일 말이 없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연주가 끝나고 마지막에 페달로 이어지는 E음이다. 페달을 떼기 전에 박수가 나온 게 아쉽지만, 그 박수마저도 숨죽이는 게 느껴져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박수 소리와 함께 들리는 페달 떼는 소리와 급기야는 군대 박수(?)처럼 변하는, 1분 이상 이어지는 박수 세례도 인상 깊다. 이 박수까지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역시나 1번 트랙부터 차례대로 들어야 한다. 그럼 나도 청중과 함께 박수치게 된다.


드뷔시(Claude Debussy)의 렌토보다 느리게(La plus que lente)도 짧게 연습했다. 이 곡은 올해 겨울 짧게 2~3주 연습했던 곡인데, 음악을 접하자마자 바로 연습을 시작하게 돼 진도가 더뎠다.

어느 정도 연습하다 그만뒀던 곡인데, 오랜만에 다시 치게 되었다. 몇 달 만에 처음 보는 악보인데도 신기할 정도로 능숙하게 음을 누르는 걸 보면서, 연습은 정말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손을 움직이는 연습도 중요하겠지만, 무작정 손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많이 들으면서 곡과 친해지는 작업이 더 큰 연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일정도 다 미루고 연습만 했지만, 정작 어제 받은 레슨 과제는 손도 대지 않았다.


어제 서인석(@seoinseock)님이 쓰신 [음악챙김] 피아니스트의 근육을 읽었다.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를 치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건 근육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4시간씩 피아노를 친다고 할 때, 피아니스트의 손은 490km를 간다고 합니다. 일년에 10번의 마라톤 운동을 손으로 하는 셈입니다. 그 정도로 근육을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특히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이 문단인데, 내 손이 건반 위를, 음 위를 걷는다 생각하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얼른 일상이 자리를 잡고, 간소해지고, 또 단단해져 오래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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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직 근무 중인데 퇴근할 때 차에서 이 앨범을 들어보겠습니다. 좋은 글이고 특히 마지막 문단이 좋은데 보팅력이 낮아서 아쉽네요, 슬슬 나도 스파업이나 해야겠다....

퇴직(?)하신 거 아니었나요? 퇴근이 무척 늦네요. 조심히 들어가시고, 잘 들어주세요:) 감상평이 궁금합니다.

퇴직 + 개업
자기 사업이 더 바쁜 거 같네요 ㅋㅋㅋㅋ 개고생
감상평은 내일 남기겠습니다

금세 사무실을 차리셨군요? 축하드립니다! 화환이라도 보내드려야 할 텐데...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으시겠죠. 번성하길 바랄게요:)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ㅎㅎ

어제 퇴근 길에 들은 노래는 좋았답니다, 제 감성은 아니긴 하지만 정말 좋은 노래에는 취향이라는 것이 없으므로

  1. 퀼른 콘서트와 키스 쟈릇, 득템! 다행히 올레 뮤직에도 있군요.
  2. Pt.2c를 들으며... 역시 재즈란 음악에 몸을 맡기지 않으면 제대로 들을 수가 없는 것 같군요. 마음이 아니라, 몸인거죠. 마음이나 의식의 집중 같은게 아닌 몸을 기대는 듯한 물리적 의존성. 고정된 표정과 자세로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것이 재즈입니다. 재즈를 제대로 듣는 모든 이들은 사실 재즈 연주자인 셈이죠.
  3. 영화 "위플래시" 음악도 재즈였나? 하는 의문...
  4. 리얼북 오빠. 이거 사랑인걸까?

PS)
아, 에잇플랫세븐플랫서틴님은 전문가라고 생각했는데... 전문가도 레슨을 받으시는군요?

그리고, 퀼른 콘서트 죽이네요 ㅠㅠ

  1. ECM 레이블에서 나온 음반들이 유통되는 경우가 많지 않던데, 올레 뮤직에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2. 엄청난 감상평을 남겨주셨네요. 저도 실은 쾰른 콘서트를 들으면 손을 가만둘 수가 없어요. 저도 모르게 손으로 연주+지휘 그사이의 무언가를 하게 돼요. 제대로 듣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집중해 들으면 또 그 안의 새로움을 느끼게 되죠.

  3. 위플래시도 재즈입니다! 그것도 다른 의미로(?) 몸을 들썩이게 하는데요:)

  4. 리얼북 오빠라면 저번 글에 나왔던 그 오빠인가요? 아쉽게도 사랑은 아니네요....

PS) 저는 '에이'플랫세븐플랫서틴이지만, '에잇'플랫세븐플랫서틴도 마음에 드는데요? '에잇 피아노 따위!!' 이런 마음이 들어요. ㅎㅎ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음반의 박수소리도 하나의 역할을 갖죠. 클래식에서는 미켈란젤리 것이 떠오르는데 아마도 그리그 피협? 장르 특성상 중간에 박수가 나오진 않지만 그래도 그 공기가 있고 터져나오는 순간의 느낌이 다 달라서 재미있죠. ㅎㅎ

미켈란젤로는 화가(그것도 언제적...)인데 왜 나옴...

피아니스트 미켈란젤리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글삭튀라니!

삭튀 댓글이 궁금하지만, 궁금해하지 않을게요 ㅋㅋ

궁금하지 않으신 이유는 제 대댓글만 보고도 알 수 있으니...ㅋㅋ

달아주신 댓글을 보고 바로 들어보고 있어요. 얼마 듣지 않았는데도 벌써 피아노 톤부터 다르네요. 넘... 좋아요....

말씀해주신, '공기'와 '터져나오는 순간의 느낌' 다 너무 공감돼요. 더욱 실황답게 해주는? 저도 그곳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달까요.

정말 톤이 넘 좋아서... 아찔해요! 오늘 내내 잘 듣겠습니다. 감사해요!

오랜만에 글 남겨요. 키스 자렛 영상은 재생이 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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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선 영상이 재생되지 않더라고요. PC로 뭔가를 하실 때, 문득 떠오르면 틀어놓아 주세요:) 정말 오랜만에 봬요! 다시 올려주시는 글들 잘 보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노래만 내내 듣다가 댓글을 잊을까봐 먼저 남겨요.
좋은 음악 소개해주셔서 듣는 내내 좋을 듯 하여 고맙다고 미리.. ㅋㅋㅋ
전 이만 노래들으러 15_갑니다가요~.gif

축하합니다.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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