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돋보기] 박 대통령, '셀프 내란죄 수괴'라 불러야 옳다

in #kr-writing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파이리의 칼럼돋보기입니다.
주요신문 칼럼을 함께 읽으며 이래저래 뜯어보는 코너입니다. 칼럼은 반드시 비판적으로 읽어야하는 글입니다. 독자를 특정 주장으로 설득하려는 의도를 품고있기 때문입니다. 주장에 필요한 사실을 생략하거나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진 않은가, 사실과 다르진 않은가, 주장과 상관 없이 글 자체로는 훌륭한가 등 여러 의문을 품어봐야 합니다. 매일 신문을 읽으며 분석해볼만한 칼럼들을 스크랩하고 있는데, 스팀 이웃 여러분과 공유해봅니다. 글쓰기에 관심 많은 스팀 유저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연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처음 읽으시는 분들은 지난 게시물을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주요 목표

  • 사실과 의견을 구분한다
  • 사실은 참/거짓을, 의견은 논증과정을 따져본다
  • 하나의 글로써 본받을 점을 찾는다

오늘의 칼럼 제목이 꽤나 자극적입니다. <박 대통령, '셀프 내란죄 수괴'라 불러야 옳다> 라니.....후덜덜합니다.
제목을 보곤 이 자극적인 제목을 어떤 논리로 설득해나갈지 궁금했습니다. 칼럼이 게재된 17년 1월 24일 까지만 해도 엄연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셀프 내란죄 수괴'로 설득력 있게 몰아갈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당시 이 글을 읽고 어떤 정치적 판단을 내렸을까요?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7. 1. 24.(화) 한겨레

박 대통령, '셀프 내란죄 수괴'라 불러야 옳다

권력형 비리의 배후를 흔히 몸통이라 부른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최종 몸통은 두말할 나위 없이 박근혜 대통령일 것이다. 구속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언젠가 말한 바 있다. 자신은 단지 “윗분의 뜻을 받들어서” 일하는 “승지”에 불과하다고. 그러니 블랙리스트 역시 ‘윗분의 뜻을 받들어’ 모신 결과일 것이다.

그렇지만 몸통이라는 단어는 상황의 본질을 설명하기에는 왠지 미흡하게 여겨진다. 그 말은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 비위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나는 바람 불면 날리는 깃털에 불과하다”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이른바 몸통-깃털론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블랙리스트 몸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깃털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그들이 저지른 죄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그래서 떠오르는 말이 ‘수괴’(首魁)다. 못된 짓을 하는 무리의 우두머리. 이 말이야말로 박 대통령의 역할과 죄상, 그리고 범죄 행각을 벌여온 수하들과의 관계를 잘 표현해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수괴는 단순히 인물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법률 용어이기도 하다. 형법 제87조 내란죄에서는 주범을 수괴라 부른다. 사실 블랙리스트 사건은 최순실씨 등 비선 실세들이 대통령의 위세를 등에 업고 저지른 국정농단, 부정비리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청와대 비서실장, 문체부 장관 등 국가의 공조직이 합심해 저지른 심각한 헌법 위반 사건이다. 이 중대 범죄에 직권남용 혐의 정도를 적용하는 것은 부족하다. 그것은 ‘내란죄’라고 불러도 지나침이 없다.

내란죄를 구성하는 요건의 하나가 ‘국헌 문란’이다.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이 국헌 문란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의 핵심들은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을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등을 깡그리 침해했다. 통상 내란죄는 권력의 바깥 사람들이 헌정 질서를 유린하려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지칭하는데 이번 경우는 반대다. 헌법과 법률을 지키라고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헌법과 법률을 무너뜨리고 국민을 탄압하는 데 사용했다. 그러니 ‘셀프 내란죄’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내란죄는 혐의 대상자를 수괴, 중요임무 종사자(범죄 모의 참여·지휘 등), 부화수행자, 단순관여자 등으로 나누어 처벌한다.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박 대통령은 수괴,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 등은 중요임무 종사자다. 그리고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문화예술인들을 솎아내고 탄압하는 데 일조한 수많은 부화수행자와 단순관여자들이 있다. 이들 역시 앞으로 상응한 법률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무너진 헌정 질서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김 전 실장 등 중요임무 종사자들이 구속된 마당에 수괴를 어떻게 처벌해야 옳을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고 본다. 박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사건 하나만으로도 탄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 정도로 끝내도 좋은가. 특검이 내란죄를 적용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겠지만, 그 정신은 온전히 구현돼야 한다. 이제 ‘박근혜 구속’이라는 촛불 시민들의 구호는 단지 구호만으로 그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것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이라고 한다. 배가 침몰하는데도 자기만 살겠다고 배에서 탈출한 세월호 선장이 그랬던 것처럼, 박 대통령은 그 참담한 상황에서도 대통령의 인기와 지지, 지방선거 승리라는 ‘젖은 돈’ 말리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세월호 선장은 수많은 젊은 목숨을 바닷속에 수장시켰고, 대한민국호 선장은 이 땅의 정의와 헌법을 검은 바닷속에 수장시켰다.

블랙리스트의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박 대통령의 끊임없은 편 가르기와 마주친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포용과 배려, 아량과 관용의 정신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 자기편 사람은 어떤 도덕적 흠결이 있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챙기고, 눈엣가시 같은 존재는 어떻게든 없애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편협한 모습만을 보여왔다. 그 증오와 배척이 바로 블랙리스트의 온상이었다. 블랙리스트 수괴에 대한 엄정한 법의 심판은, 이 땅에 다시는 그런 옹졸하고 치사한 국가 최고지도자가 출현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의 엄중한 경고장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9925.html#csidx595711e01ffccffa1a1ed357ec7e2ce


개요

  • 서론
    (1단락) 블랙리스트 사건의 몸통은 박근혜 대통령

  • 본론
    (2단락) 몸통보다는 '수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3단락) 법률 용어로서의 수괴 : 내란죄의 주범
    (4단락) '셀프 내란죄'라 불러야 하는 이유
    (5단락) 내란죄를 통해 본 혐의 대상자 구분

  • 결론
    (6단락) 대통령 구속 촉구
    (7단락) 세월호 선장과 박근혜 대통령 비교
    (8단락) 대통령의 편협성 비판


논증 과정

서론

  • (1단락)은 블랙리스트 사건의 '몸통'이 박근혜 대통령임을 지적합니다.

본론

  • (2단락)에서 바로 본론으로 넘어갑니다. '몸통'이란 표현만으로 부족하다는 겁니다.
    여기서 '수괴'라는 표현을 제시합니다. (2단락)은 서론과 본론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3단락)부터 본격적인 논증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수괴'라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 그럴까요? 우리를 설득할 수 있을까요?
    일단 수괴를 법률적으로 풀어냅니다. 수괴의 법률적 의미는 '내란죄의 주범'이라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수괴라 지칭하기 위해선 내란죄의 주범임을 증명해야 겠네요.
  • (4단락)은 내란죄를 구성하는 요건으로 '국헌 문란'을 제시합니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헌법을 무너뜨렸으니 국헌 문란에 해당하며, 요건을 만족했으니 내란죄라는 논리입니다. 여기다가 '셀프 내란죄'라는 이름을 붙여주네요.
  • (5단락)은 내란죄에서 다루는 혐의 대상자를 분류합니다. 여러 종류가 있는데,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자들에게 '수괴' '중요임무 종사자' 등의 명칭을 붙여줍니다. 마지막엔 이들을 모두 처벌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을 제시했습니다. 초반에 던진 '박근혜 대통령=수괴' 주장을 마무리했으니(라고 판단했으니)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모습입니다.

결론

  • (6단락)은 처벌은 '박근혜 구속' 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내란죄의 '중요임무 종사자'들과 마찬가지로 '수괴' 역시 구속되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 (7단락)은 세월호 선장과 박근혜 대통령을 비교합니다.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가 세월호 사건 직후였음을 언급하며 비판합니다.
  • (8단락)은 블랙리스트에서 나타나는 대통령의 편협성을 들며 다시 한번 엄정한 법의 심판을 촉구합니다.

논증 분석

어떠셨나요? 논설위원의 이야기에 설득되셨나요?
논증 과정의 큰 흐름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블랙리스트 몸통 = 박근혜)

(주장 : 몸통보단 수괴라 부르자)

(왜? 수괴=내란죄 주범이니까!)

(왜? 내란죄=국헌문란, 국헌문란=블랙리스트니까!)

(주장 : 구속도 하자)

(왜? 부하들이 구속됐으니 수괴도 구속해야지)

(왜? 세월호 사건 직후에 블랙리스트 지시했대)

(왜? 편가르기 하는 편협한 모습을 봐)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임에도 구성은 잘 짜여있습니다. 자세히 평가해볼까요?

  • 첫 번째 주장

상황을 제시하고 첫 번째 주장(수괴라 부르자)을 뒷받침할 논지를 이어갑니다.
수괴는 내란죄 주범을 부르는 말이다.
내란죄 요건은 국헌문란이다. 블랙리스트는 국헌문란이다.
따라서 블랙리스트는 내란죄고 박근혜는 수괴다!

꼬리에 꼬리를 이어 따라가다 보면 어라? 그렇네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마음 한켠이 불편합니다. 본능적으로 논리적 허점을 느끼기 때문 아닐까요. 저는 두 가지 허점을 느꼈습니다. 1) 글 전체적으로 '수괴'란 단어에서 풍기는 이미지를 적극활용하고 있으면서도 논리적으로는 법률 용어로 취급한다. 2) 내란죄를 구성하는 요건 중 하나가 성립하면 내란죄가 된다? 의문이 듭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헌법정신을 훼손한 모든 사건이 내란죄가 되겠죠.
의아해서 찾아보니 내란죄 요건엔 '다수인이 집합하여 폭동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과 의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행위 규정에서도 '한 지방을 해할 정도의' 폭동임을 언급합니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내란죄'와는 또 다른 성격의 범죄였던 겁니다.

즉, 첫번째 주장은 자극적인 워딩을 위해 법률적 요건을 이용했고, 그 과정도 비약이 많아 잘못된 논증이었습니다.

  • 두 번째 주장

구속도 하자
부하들도 구속됐으니까 수괴도 구속해야 한다.
세월호 직후에 블랙리스트 사건을 지시했다.
편협한 사람이다.

구속하자는 주장을 뒷받침했던 세가지 논증. 사실인지 아닌지는 따지지 않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비판이었다 생각합니다. 세월호 사건 직후에 블랙리스트 사건을 지시했다는 걸 알고나서 큰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논증이 '구속도 하자'는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구속 요건은 이렇다고 합니다.

구속시키려면 블랙리스트 사건과 박근혜 대통령이 위와 같은 요건을 만족시킨다 주장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월호나 편협성에 대한 이야기는 구속 여부와는 관계없는 단순 비판입니다. 이 얘기를 듣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순 있어도 구속해야 한단 생각을 결정해선 안됩니다. 구속은 복수의 수단이 아니라 수사 방식입니다. 차라리 '이런 사람이니 증거 조작하는 것 쯤은 문제도 아닐 것이다'란 말을 덧붙였다면 설득력이 높아졌을 것 같네요.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이 구속됐다는 논증은 설득력 있습니다. 같은 사건에 연루되었으니 비슷한 이유로 구속될 수 있을테니까요.

두 번째 주장은 일견 설득력 있는 논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속과 관계 없는 사실도 적시하며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총평

  • 자극적인 제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해서 읽게 됩니다.
  • 논리적으로 무리한 부분들이 눈에 띕니다.
  • 구조의 짜임새는 좋았습니다.

표현

  • 말한 바 있다, 여겨진다..... 등의 표현 저도 잘 써봐야겠습니다. 역시 자주 읽으면서도 잘 안 쓰던 표현들.
  • 부화 : 자기 주견이 없이 경솔하게 남에게 찬성함
  • 온전히 :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하다. 잘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다. 이 말도 자주 써야겠네요. '멀쩡하게' '완전히' 보다 적확한 상황에 쓸 수 있을 듯 합니다.
  • 온상 : 어떤 사물 또는 사상 따위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 이번 기회에 뜻 정확히 알았습니다.

후기 아닌 후기
글을 쓰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서면으로 분석해놓은 칼럼인데도 다른 분들께 알기 쉽게 설명드리려니 처음부터 다시 쓰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저보다 훨씬 심도높은 이야기를 알찬 분량으로 풀어내시는 다른 유저분께 존경심이 드는 아침입니다.

칼럼 분석 글 컨셉이 워낙 '읽고 싶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다 보니 더 노력하게 됩니다. 오늘도 30분~1시간 목표로 완성하려 했는데 2시간을 훌쩍 넘겼네요. 평소엔 논리 분석 위주 였는데, 오늘은 의문이 가는 팩트들을 검증하다보니 더 오래 걸린듯 합니다.

내가 좋아 쓰는 글이지만, 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실 때까지 보다 좋은 글 써나가야겠습니다.

읽어주신 스팀 이웃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또봐용~

Sort:  

와, 챠맨더님의 정성과 노력에 감탄이 나옵니다. 전 이렇게 분석하는 걸 잘 못하거든요. 논리적/비판적으로 읽고 분석까지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칼럼을 이렇게 분석하고 나면 필력이 엄청나게 향상될 것 같은데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칼럼을 쓰는 논설위원들 모두 글쓰기의 어떤 반열에 오른 분들이다보니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논설을 읽을 때는 '음, 그렇군. 이렇게 쓰면 되겠어'라고 생각하고는 하는데 막상 쓰려면 제 주장이 쉽게 정리되지 않더라고요.
저도 한 번 이렇게 분석하면서 읽어봐야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

칼럼 분석이 글쓰기에 여러모로 도움되더라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읽고픈 글 되도록 열심히 쓰겠습니다!

쓰기 쉽지 않았을 칼럼분석 글이네요 ㅎ

노력에 잘보고 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7
TRX 0.15
JST 0.028
BTC 58140.33
ETH 2348.86
USDT 1.00
SBD 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