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돋보기] 몽롱한 말, 집요한 말

in #kr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파이리의 칼럼돋보기입니다.


(먼저 대문 선물해주신 @cubo님께 감사를...그림판으로 직접 그려주셨습니다 ㅠㅠ 이 시대의 그림판 피카소)

주요 목표

  • 사실과 의견을 구분한다
  • 사실은 참/거짓을, 의견은 논증과정을 따져본다
  • 하나의 글로써 본받을 점을 찾는다

저번엔 보수언론의 칼럼을 살펴봤습니다. 납득하기 힘든 점이 많았던 글이어서 이래저래 할 말이 많았습니다. 오늘은 진보언론 한겨레의 칼럼입니다. 비판적으로, 하지만 편견은 없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7.6.28.(수) 한겨레

몽롱한 말, 집요한 말 - 고명섭 논설위원

김훈 소설 <남한산성>의 ‘작가의 말’에 이런 말이 나온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작가의 ‘말에 대한 불신’은 깊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다.” 병자호란이라는 절체절명의 국난 앞에서 조정은 척화파와 주화파로 나뉘어 싸웠다. 작가는 쓴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말과 글, 그리고 말과 글을 주무르는 사람들에 대한 지독한 불신은 소설 전편에 넘실거린다. 작가는 말과 글의 맞은편에 ‘고통받는 자들’, 곧 민중의 삶을 놓는다. 그러나 말과 글이 민중의 고통받는 삶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일까.

10년이 지나 작가는 <남한산성> 100쇄 기념판에 장문의 ‘못다 한 말’을 실었다. 거기서 작가는 퇴임한 전임 대통령 김대중을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나 주고받은 이야기를 복기해 놓았다. “김 작가는 김상헌과 최명길, 둘 중에서 어느 편이시오?” “작가는 아무 편도 아닙니다.” “나는 최명길을 긍정하오. 이건 김상헌을 부정한다는 말이 아니오.” 작가는 김대중이 최명길을 조선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정치인 중의 한명이라고 말했다고 전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불굴의 민주투사 김대중이 주화파 최명길에 대해서 그토록 긍정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작가가 이 일화를 굳이 상세히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말이라고 해서 다 같은 말이 아니고, 말마다 값어치가 다르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작가의 ‘못다 한 말’은 10년 뒤에 쓰는 이 소설에 대한 사후 교정 혹은 보충으로 들린다.

삼전도의 굴욕 이후로 380년이 흘렀지만 척화파와 주화파의 싸움은 일그러진 형태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한다면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에 대해 미국과 논의할 수 있다.” “사드 때문에 동맹이 깨진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 대통령 특별보좌관이 한 발언을 놓고 수구보수 세력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수구언론은 “대통령 외교특보의 ‘워싱턴 발언’ 파문”이라고 쓰고 ‘경솔한 입’을 ‘경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구정당의 대표는 “대통령 특보가 국민 세금을 받아 워싱턴에 가서는 한·미 간에 이간질에 가까운 위험한 말을 쏟아냈다”고 했다. 이 당 대표의 그다음 말은 이 소동의 본질을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좌파세력과 북에 경도된 자주파들의 논리에 잘못 이끌려 지난 60년간 구축한 한미동맹에 균열을 일으키는 실책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북한과 화해하려는 일체의 움직임에 쐐기를 박겠다는 것이 수구세력의 본심이다.

김훈은 <남한산성> 100쇄 출간 인터뷰에서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 따위를 묻는 말을 ‘몽롱하고 관념적인 말’이라고 했는데, 수구세력의 문정인 성토야말로 그런 말의 전형이다. 그러나 ‘몽롱한 말’은 몽롱한 말로 그치지 않는다. 몽롱한 말은 뒤집어보면 집요한 말이고 탐욕에 찬 말이다. 남과 북의 대치 위에 구축한 수구 기득권 체제는 북한이 남한에 주적으로, 위협으로, 공포로 남아 있어야만 유지될 수 있다. 외부의 공포를 이용해 내부를 잡도리하고 현재의 지위와 권세를 영생토록 누리는 것, 그것이 수구세력의 말이 노리는 목표다. 이 말의 위력에 짓눌려 남북 민중의 고통은 늘어지고 깊어졌다. 지금 벌어지는 말들의 싸움은 한반도 구성원 전체가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가는 말과, 허리가 끊어진 반도의 고통 위에서 기득권의 성을 쌓고 지키는 말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다. 말은 삶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0495.html#csidx48eca3eea4a0ebda94c02202860e133


어떠셨나요? 저는 저번에 분석한 보수언론의 칼럼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개요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개요

1단락 : 소설 <남한산성> 속, 민중의 삶과 어긋나는 말과 글

2단락 : 김훈 작가와 김대중 대통령의 일화
- 말이라고 해서 다 같은 말이 니고, 말마다 값어치가 다르다

3단락 : 대통령 특보의 말을 문제삼는 수구세력
- 북한과 화해하려는 일체의 움직임에 쐐기를 박으려 함

4단락 : 몽롱한 말, 집요한 말
- 김훈 작가의 인터뷰
- 현재 한국은 민중을 위한 말 vs 기득권을 위한 말


논증

(1단락)은 <남한산성> '작가의 말'로 시작합니다. 민중의 삶을 외면한 당시 '말과 글'에 대한 김훈 작가의 반감을 읽어냅니다. 하지만 논설위원은 '말과 글이 민중의 고통받는 삶과 따로 떨어져 있는 걸까.'라며 의문을 제기합니다. 본론에선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 이어질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도입부에서 인용된 문장이 아주 인상적이어서 좋았습니다. 독자의 시선을 끄는데 성공한 셈입니다.

(2단락)은 <남한산성> 100쇄 기념판 속 작가의 '못다 한 말'을 인용합니다. 작가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화가 담겨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주화파인 최명길을 긍정하는 모습에 놀랐다는 이야긴데, 논설위원은 여기서 작가가 이 일화를 상세히 기록한 이유를 추측합니다. '말이라고 해서 다 같은 말이 아니고, 말마다 값어치가 다르다는 것을 말하려'했다는 것입니다.
비약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불굴'의 민주투사가 외세와 '타협'하려한 주화파를 긍정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란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이야기가 10년 전 소설에 대한 사후 교정 또는 보충까지 의도했을지 의문입니다. 이후의 글 전개를 보면 이 '말'에 대한 평가는 꼭 필요했습니다. '말이라고 해서 다 같은말이 아니'여야 대통령 특보와 '수구보수세력'의 말을 구분할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이 퍼즐조각을 마련하기 위해 조금 무리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전인수로 작가의 말을 활용했습니다. 심지어 이 일화가 글 전체의 1/4을 차지할만 했는지도 의문입니다.

(3단락) 논설위원이 1,2단락에서 깔아놓은 배경들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는 장입니다. 오늘날도 척화파의 주화파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며 자연스럽게 화두를 옮겨옵니다. 주 내용은 문정인 특보의 발언에 대한 '수구보수 세력'의 비판입니다. 이들의 비판 내용을 소개한 뒤, 그들의 '본심'을 읽어냅니다.
이 '본심'을 단정 짓는 부분이 잘 납득되지 않습니다. 이 칼럼에 소개된 문 특보의 발언만 해도 북한보다는 미국과의 동맹 및 논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당시 언론도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 속 한국의 정책 방향에 혼선을 준 경솔함을 주로 비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만약 잘못된 비판이었다면 그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해야 합니다. '학자로서의 개인적 신념을 말했을 뿐이다' 혹은 '보수세력이 선명성을 획득하기 위해 사태의 심각성을 과장하고 있다' 같은 논지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북한과 화해하려는 움직임에 쐐기를 박을 생각을 갖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문 특보의 발언이 그런 움직임의 일환이었는지, 보수세력이 북한과의 화해를 방해하기 위해 그 발언을 비판한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추가적인 논증이 필요해보입니다.
더불어, 비판적인 보수세력을 모든 문장에서 '수구보수' 혹은 '수구세력'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가치판단이 듬뿍 들어간 워딩입니다. 칼럼을 쓴 사람이 어떤 편견 혹은 정해진 정답을 갖고 주장하는 듯해 글의 설득력을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보수세력이 '수구' 혹은 '기득권'이란 말이 어울리는가 아닌가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물론 신문 구독층 성향을 고려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을 당연한 듯 '수구' '종북'이라 지칭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합니다.

(4단락)은 칼럼 제목 '몽롱한 말, 집요한 말'에 대해 다룹니다. <남한산성> 작가의 발언이 다시 인용됩니다.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 따위를 묻는 말을 '모호하고 몽롱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좋은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수구세력의 문정인 성토'가 바로 이런 말이라고 합니다. 부가적인 설명은 없습니다. 문 특보 논란이 '북한의 주적 여부'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논증이 가능했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직접 논증하지 않은 가정과 추측들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이후에 나오는 신랄한 비판도 다 자연스러운 내용들입니다. 수구세력의 몽롱한 말은 결국 북을 주적으로 삼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집요한 말일 것입니다. 1단락에서 던졌던 의문에 대한 해답도 제시됩니다. 말과 글은 민중의 고통받는 삶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득권의 말과 싸워야하기 때문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왜 문정인 특보이 발언이 '한반도 구성원 전체가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가는 말'로 승격되는지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햇볕정책=최선 '이라는 논설위원의 가치관이 별도 설명없이 반영된 듯 합니다...)

총평

  • 특정 가치관에 의해 단정지어진 부분이 많았습니다. 보수세력은 '수구세력'이고 비판은 '기득권을 위한 집요한 말'이고, 그들에게 비판당했던 말은 '민중의 고통받는 삶'을 구해줄 말로 여겨집니다. 글의 주요 논지에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습니다. 이런 식의 논증은 남을 설득할 수 없다 생각합니다. 논설위원과 이미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이 누락된 설명들을 채워가며 스스로 납득해야 하는 글입니다.
  • 김훈 작가의 표현들엔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 하지만 <남한산성>과 글 전반의 논지가 밀접하게 맞닿아 있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인용되는 작품과 작가의 표현들이 글의 설득력을 높이지 못했다 봅니다. 그 분량을 투자해 더 차분하게 논증할 수 있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표현

  •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 멋진 문장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분위기가 밀도 있게 담겨있습니다. 운율감도 살아있어 입에 착착 달라 붙습니다. 특히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란 표현이 마음에 듭니다. 저 같으면 성안의 백성들은 식량이 없어 끼니를 이어가지 못하는데 대신들은 말로 싸우기 바빴다는 식으로 구구절절 설명했을텐데.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한 문장으로 내용과 운율감과 분위기를 모두 담아냅니다. 이런 문장을 읽을 때마다 머릿속 말의 지평선이 넓어지는 기분입니다.

  • 말과 글, 그리고 말과 글을 주무르는 사람들에 대한 지독한 불신은 소설 전편에 넘실거린다.
    → '넘실거린다'는 표현이 좋았습니다. 어떤 부정적 감정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이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한 밤중의 바다에서 어두운 물들이 불안하고 고요하게 움직이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불신으로 가득차있다' 같은 평범한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Sort:  

wow and I love Pokemon

Congratulations @charmander2! You have completed some achievement on Steemit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Award for the number of upvotes

Click on any badge to view your own Board of Honor on SteemitBoard.
For more information about SteemitBoard, click here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By upvoting this notification, you can help all Steemit users. Learn how here!

오오 대문으로 사용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ㅎㅎㅎ
확실히 어려운 내용인 것 같은데... 잘 정리해 주시고 의문점도 제기해
주셔서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

읽어주신 것 만으로도 넘나 감사드립니다 ㅠㅠ
누군가 읽고 싶은 글을 쓰는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용
그런점에서 갓-쿠보 리스펙

Coin Marketplace

STEEM 0.16
TRX 0.16
JST 0.031
BTC 59077.53
ETH 2518.13
USDT 1.00
SBD 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