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추억하다 #2-14. [뉴질랜드] 아름다운 길 Arthur's Pass에서 맞이했던 2016년 새해

in #kr-travel6 years ago (edited)

빙하 헬기 투어를 다녀온 후에는 다 함께 점심을 먹고 Arthur's Pass로 이동했다. 아서스 패스는 뉴질랜드 남섬의 동-서를 잇는 길이고, 이곳을 다니는 트랜즈알파인 기차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우리도 기차를 타고 싶었으나 차를 반납할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차량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지금은 서편의 그레이마우스에 Hertz가 생겼으므로 기차 여행을 원할 경우 그곳에 차를 반납하고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다시 대여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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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운전 시간은 4시간 정도로 잡았기 때문에, 이날은 아서스 패스에 위치한 유스호스텔을 예약해 두었다. 폭스 빙하 마을에서 숙소인 The Mountain House YHA까지는 256km로 약 3시간 반 정도 소요될 예정이었으나, 중간중간 정차해서 쉬고 마지막에 다른 차량의 사고로 길이 통제되어 실제로는 5시간가량 소요되었다.


뉴질랜드는 캠퍼밴이나 캠핑족을 위한 장소가 군데군데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도로에서 캠퍼밴을 보는 일이 흔하다. 우리도 캠퍼밴 여행을 원했지만 아쉽게도 여름에는 2주 이상 이용하는 고객에게만 대여해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다.


6번 고속도로(고속도로라고 해봤자 1차선이다. 추월할 차도 없지만, 추월을 위해서는 반대쪽 차선을 이용해야 한다.)를 달리다가 길옆에서 하늘이 비치는 호수, Lake Mapourika가 보였다. 그곳에 잠시 주차하고 내려가서 한참 물수제비 놀이를 했는데 다들 어찌나 못하던지.


이곳도 역시 6번 고속도로 어딘가로 강물 색이 예뻐서 잠시 정차한 곳으로 푸카키 호수같이 석회질의 빙하가 녹아서 밀키 블루 색을 띠는 것 같다.


자동차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차창 밖 풍경을 즐기는 데 있다. 이날도 흥겨운 음악을 틀어놓고 대화를 나누다가 창밖 사진을 찍곤 했다. 기차의 경우 유리창이 더러운 경우가 종종 있는데 자동차는 직접 닦으면 그만이라 참 좋다.


아서스 패스로 진입하기 전 주유도 하고 화장실도 이용할 겸 잠시 정차한 마을 길바닥에서 지의류를 발견했다. 한라산 1100고지는 공기가 맑아서 지의류가 바위에 붙어산다고 읽은 기억이 있는데 마을 아스팔트에서도 자랄 줄은 몰랐다.


아서스 패스의 산지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경찰이 차를 세웠다. 사고가 발생해서 구조 작업을 하느라 길이 막혀 있다고 알려주었지만 우리는 숙소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별도리가 없었다. 실제로 길이 많이 막혔는데, 버스가 골짜기로 떨어진 사고여서 대형 크레인이 버스를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뉴질랜드는 한국처럼 터널을 뚫지 않고 대부분 산 위에 구불구불한 도로를 내어 운전이 위험한 편이다. 특히 늦가을부터는 얼음이 생기는 길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저녁에야 드디어 숙소인 Arthur's Pass YHA, The Mountain House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도 4인 혼성 도미토리(1일 인당 29,000원)를 사용했는데 나무로 만든 별채로 구성되어 있고 마침 산속이라 친구들끼리 엠티 온 기분이었다. 다만 욕실과 화장실은 본채에 딸린 공용 시설을 사용해야 한다. 동전 세탁기도 있어서 여행 8일 만에 드디어 빨래도 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내가 이 숙소에서 제일 좋았던 점은 바로 이 허브 밭이었다. 금광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오레가노랑 세이지는 양고기 구울 때, 민트는 숙소에 있던 발사믹 식초, 설탕과 함께 끓여 양고기 찍어 먹는 소스로, 차이브는 다음 날 아침 오일 파스타에 사용했다.

즐거운 12월 31일의 만찬을 끝내고 2층에 있는 라운지로 자리를 옮겨 간단하게 와인을 즐기는 도중 몇 번이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어디 불이라도 난 것이 아닌가 걱정돼서 모두가 창밖을 내다봤는데, 알고 보니 근처에서 또다시 자동차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길이 구불구불한 이곳에서 밤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할 경우 병원도 그 무엇도 너무 멀기 때문에, 사고 발생한 것을 누군가가 발견하면 온 동네에 사이렌을 울려서 주민들이 돕고, 인근 병원, 경찰 등에 신고한다.


1월 1일. 휴대폰의 시계가 00:00으로 변할 때 "새해 복 많이 받아."라는 인사만 남기고 나와 남편은 밖으로 나왔다. 새해 첫 사진으로 까만 밤하늘의 별을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사진을 찍던 때라 셔터 스피드를 90초로 두고 찍은 사진이다. 그래서 어두운 건물도 밝게 나왔다. 광해 지도를 보며 뉴질랜드에 또다시 가고 싶어졌지만, 이제는 고양이를 두고 장기간 함께 여행 갈 마음이 없으므로 아마도 10년은 지나야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때에도 뉴질랜드는 지금처럼 남아있길 기대해 본다.


새해 첫 식사는 치킨 스톡으로 파스타 수프를 만들었는데 장난삼아 김이 들어간 후리가케 까지 뿌렸더니 떡국 먹는 기분이었다.

아침을 먹으며 근처에 꽂혀 있는 여행 책자를 읽어 봤는데, 래프팅 등 근처에서 즐길만한 액티비티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러나 모두 크라이스트처치나 그레이마우스에서 오전 9시 정도에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라 우리가 가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이 날의 원 계획은 Lake Tekapo와 Lake Pukaki를 둘러보고 Mt. Cook 근처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호수랑 산을 너무 많이 봤다는 점, 그리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는 것에 다들 동의해 우리는 새로운 목적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블루 펭귄을 보러 오아마루에 가기로 결정하고 Mt. Cook에 예약했던 숙소는 아깝지만 취소했다. Mt. Cook의 도미토리는 남는 방이 없어 각자 8인용 혼성 도미토리에 따로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차라리 잘 된 것도 같다.


나무가 우거졌던 남부의 밀퍼드 트랙과는 다르게 낮은 덤불이 자라는 산이 보였다. 지금 보니 파란 하늘도, 웅장한 산도 다 멋있는데 사실 여행할 땐 질리도록 본 풍경이라 별 감흥이 없었다.


차를 타고 달려가던 도중에 신기한 지형이 눈에 띄었다. "저 돌덩이는 뭐지?" 게다가 멀리서 봐도 많은 차량이 주차되어 있어 점심 샌드위치도 먹을 겸 우리도 그곳으로 향했다. 주차를 하고 보니 물에 젖은 사람이 많았다. 대체 뭐가 있길래 그런 건가 싶어 돌아다니다가 표지판을 하나 발견했다.

Cave Stream Scenic Reserve. 그리고 작게 쓰인 Cave access track. 뭔가 동굴 안을 걷을 수 있는 곳 같았다. 이 안내판만 있고 인포메이션이나 요금을 받는 곳이 없어서 의아해했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자연 그대로인 곳으로 무료이며 준비물은 따뜻한 옷, 갈아입을 옷, 등산화, 헤드랜턴이었다. 밀퍼드 트레킹 때문에 마침 우리도 가지고 있는 물품이었기에 넷이서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이런 곳을 발견한 것도, 마침 우리에게 모든 장비가 있는 것도 운명이라며 들어가 보기로 했다.



태양권

사람들이 젖어 있어도 동굴의 어느 지점에 물이 있는 것일 줄 알았는데 실제 우리가 만난 동굴은 처음부터 끝까지 빙하수가 흐르는 곳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본 외국인 남성들은 허리까지만 젖어 있어 물 높이가 높지 않은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그들은 190cm는 되는 것 같았다. 170cm 기준으로 가슴까지 젖는다고 보면 된다.


이곳은 석회암으로 구성된 지형인데 빙하가 녹은 물이 흐르면서 이 동굴이 생겼다고 한다. 처음엔 들어가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물이 차갑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내부에 조명이 없어 헤드랜턴 없이는 걷기 힘들다. 또한 45분간 동굴을 탐험해야 하는데 길다고 느껴졌지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어쩔 수 없었다. 좋은 점은 긴 동굴임에도 갑갑한 느낌, 곰팡이 냄새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걸어가는 내내 물이 흐르는 방향을 거슬러 올라가므로 가끔 누군가가 밀어주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만큼 물살이 세고 바위가 높은 곳도 있었지만 정말 재밌는 곳이었다. 다만 같은 이유로 혼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우린 마지막에 길을 못 찾아서 조금 헤맸다. 센 물살을 헤치고 다른 바위로 올라가도 길이 없어서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지나 왔던 곳에 외부로 탈출하는 사다리가 있었다. 하마터면 동굴 내 폭포를 기어오를 뻔했다. 이곳은 고프로와 함께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어두워서 잘 찍힐지는 의문이지만.

어쩌다 보니 아침에 그토록 바랬던 익스트림 스포츠를 공짜로 즐긴 셈이었다. 새해부터 이런 행운이 오다니. 왠지 한 해가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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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구름과 별이 저리도 아름다울 수 있군요^^

오염되지 않은 곳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오. 밀키블루색 강을 보고 정말 감탄했어요.
대자연 뉴질랜드네요.

푸카키 호수라고 저런 빛깔의 호수도 있어요. 뉴질랜드 남섬은 아름답고 또 아름다워서 다시 가고 싶어요.

뉴질랜드는 아직 가보지못했는데.. 사진으로 보니 평화롭고 자연적인 느낌이 많네요~ 가보고싶네요~

전 뉴질랜드 정말 좋았어요. 한적하고, 공기 좋고, 원래의 자연도 멋있지만 보존도 잘 되어있거든요.

Nice read. I leave an upvote for this article thumbsup

Thanks a lot!

은하수 멋집니다 ...ㅡ저런 사진 한방 내 손으로 남기면 진심 뿌듯할거 같아요 언젠가 저도 시도해봐야겠습니다.

물론 카메라를 잘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눈으로도 얼마나 잘 보이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뉴질랜드의 Lake Tekapo에 또 가고 싶어요.

꼭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신 기분 잊지못하실것 같네요^^

네. 자연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맞이하는 새해라 참 색달랐어요.

뉴질랜드 구름들은 지구를 침공한 거대 우주선 같은 느낌이네요. 거대해요.ㅎㅎ

앗 그런 표현이! 요샌 뭉게구름 낀 하늘이 그렇게 좋더라구요.

와... 저기서 사진찍으면 다 예술이 되는군요.

네!!! 파란 하늘 또 보고 싶어요.

지인이 그곳 여행을 했는데
자연에 놀라 와와 하다가 나중엔 그러려니 하더래요.
그래도 가보고 싶네요.

그쵸. 계속 보다 보면 그렇게 되더라구요. 그러다가 나중에 사진을 보면 다시 가고싶어지고 그래요.

아 동굴!
사진으로만 봐도 시원해 보이네요.
관광지로 개발되어진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있는 동굴은 한번도 가본적 없네요.
뭔가 흥미진진한 기분일거라 상상만 해봅니다 ㅎ

대체 어디까지 가야되는거야? 싶으면서도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게 재미있더라구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저만의 보물을 찾은 기분도 들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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