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추억하다 #2-13. [뉴질랜드] 폭스 빙하 헬기투어

in #kr6 years ago (edited)

여행하기 한 달 전에 폭스 빙하에서 헬기 추락 사망 사고가 있었다. 기상이 좋지 않은 날이었는데 무리해서라도 헬기를 띄웠다가 발생한 사고라고 한다. 처음에는 대체 왜 그런 강행군을 했을까 이해되지 않았는데, 어쩌면 그 여행객은 자신의 인생에서 빙하를 직접 볼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도 같다.

빙하를 보는 것도 좋지만, 사고는 무서웠기에 우리는 폭스 빙하 마을에 도착하던 날까지도 헬기 투어를 할지에 대해서 결정하지 않았다.
다음 날 눈을 떠 보니 날씨가 화창했다. 아침을 먹으며 논의를 했는데, 우리 부부는 빙하 구경을 원했고 친구 부부는 공원에서 소풍을 즐기고 싶다고 해서 4시간 동안 자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숙소 근처의 여행사에 가서 프로그램을 확인 후, 우리가 선택한 것은 폭스 빙하와 마운트 쿡의 태즈먼 빙하를 관람하고 잠시 만년설을 직접 밟아보는 40분짜리 헬기 투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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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빙하엔 40분짜리 헬기 투어 이외도, 4시간, 8시간 정도 걸리는 투어가 있다. 이 중에 산 입구부터 빙하까지 걷는 투어가 제일 저렴하지만, 아무래도 산 아래쪽만 접할 수 있는 만큼 이 투어로는 깨끗한 빙하를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4시간, 8시간 짜리는 헬기를 타고 올라가서 아이젠을 장착하고 빙하를 걷는 투어인데, 시간만 많았다면 그 투어를 택했을 것 같다.


투어 예약 후에는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만년설 뒤덮인 산이 예쁘게 반영된다는 Matheson 호수에 차를 타고 갔다. 폭스 빙하 마을에서 호수의 주차장까지는 차로 10분 거리였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주차장에서 내리면 바로 호수를 볼 수 있을 줄 알았기에 여유를 부리며 그곳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는데 무려 커피가 25분 후에 나왔고, 그렇게 커피를 받고 호수를 향해 걷다가 반갑지 않은 표지판을 발견했다. 매서슨 호수에 비친 산을 보려면 적어도 왕복 40분은 걸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여행사로 향했다.

IMG_8869-1.jpg

그래도 따뜻한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것 또한 좋았다. 눈으로 볼 때는 산 위 빙하의 위용이 대단해 보였는데, 이렇게 멀리서 사진으로 찍으니 별로 감흥이 없다. 카메라의 문제일까? 찍는 사람의 문제일까? 아니면 아직 카메라는 사람의 눈을 따라가기 먼 걸까?


여행사에 도착 후 몸무게를 재고 우리와 함께 탈 사람들과 헬기로 향했다. 5인용 헬기라 태국에서 온 부부랑 같이 탔는데, 그 부부는 지난 3일간 기상 악화로 헬기 투어가 전면 중지되어 폭스 빙하에 4일째 머무는 중이라고 했다. 이 여행 동안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우리는 날씨 운이 참 좋았었나 보다.


폭스 빙하

빙하(氷河) - 눈이 오랫동안 쌓여 단단하게 굳어진 후 중력에 의해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두꺼운 얼음덩어리를 빙하라고 한다.

학교에서 빙하기를 배울 땐 그냥 추운 시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강 하(河)가 들어간 단어였다. 그러고 보니 정말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흐르는 모습이다.


헬기는 낮게 날며 발아래의 빙하를 자세히 보여 주기도 했고, 가끔은 산봉우리 가까이 붙어 날기도 했다. 다시 사진을 보니 바람이 많이 불면 위험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던 기억밖에 없다. 눈과 얼음 사이사이로 보이는 색이 투명하거나 흰색이 아닌 푸른 빛이라 이유가 궁금했는데, 푸른 빛의 파장이 짧아서 얼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 주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평평한 만년설 위에 착륙했다. 무섭도록 파란 하늘과 그 누구도 밟지 않은 깨끗한 만년설을 보며 마음이 들뜨기도 했고, 이런 곳에서 12월 31일, 그 해 마지막 날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Mount Cook

다시 헬기를 탔을 때는 함께 탔던 부부와 자리를 바꿔 우리가 앞좌석에 앉았다. 이후 태즈먼 빙하로 향했는데, 차로는 절대 가로지를 수 없는 산맥을 너무 쉽게 넘어버려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만년설이 뒤덮인 산과, 만년설과 분간이 되지 않는 구름을 보니 신선놀음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막상 구름을 통과할 때는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무섭기도 했다.


마을로 돌아가는 중. 빙하가 흘러 바다로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유독 기압 조절을 못하는 편이다. 가끔은 비행기를 타고 고생할 때도 있고, 수심 5m 씨워킹 후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도중에 세상이 핑핑 도는 것 처럼 느낀 적도 있었다. 비행기보다 하강 속도가 훨씬 빠른 헬기는 코를 잡고 '흥'을 해도, 침을 삼켜도, 하품을 해도 전혀 기압 조절이 되지 않아 내릴 때는 물론 내리고 나서도 한참동안 나에게 고통을 선사했다. 덕분에 앞으로의 여행에선 헬기는 절대 타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지만, 그래도 이날의 선택은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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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그 자체입니다....

감사합니다!!

자.. 이제 몸무게를 알려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 왜이러십니까

거대한 빙하 위에 서서 "인간사 뭐 있어?" 하고 싶네요..
가고싶다 호빗의 땅 뉴질랜드...

ㅎㅎ 안그래도 저 빙하에 사람이 없으니 사진을 찍어도 크기 가늠이 안되어서 아쉬웠어요.
"인간사 뭐 있어?"는 대자연을 봐도, 밤하늘을 봐도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너무나 작고 짧은 시간인 듯요.

빙하(氷河) - 눈이 오랫동안 쌓여 단단하게 굳어진 후 중력에 의해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두꺼운 얼음덩어리를 빙하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 써니님이 공대여신이란 기억이 새삼 되돌아 오는 것은 무슨이유일까요?! ㅎㅎㅎ

헬기 넘 타 보고 싶었는데 기압에 의한 고통은 상상도 못했네요. 저도 그거 잘 안되서 비행기 타고 나면 몇시간 동안 귀가 먹먹한데.. 아무리 멋진 풍경을 보고 싶어도 헬기 여행은 못할것 같아요.

덕분에 멋진 빙하구경 잘 했어요 ^^

틀린 정보를 적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에 발췌를 ㅎㅎ

저도 헬기나 비행기나 비슷할 줄 알았는데 하강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서 훨씬 힘들었어요. :(

뭔가 과학인(??)의 전문가적인 포스가 느껴집니다 +_+ ㅋㅋㅋㅋㅋ

헬기투어의 진가를 흠뻑 느끼셨겠어요! 사진으로봐도 시원하네요 :D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내가 처음 밟는 느낌 +_+

아앗 그겁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내가 처음 밟는 느낌

예전에 @thinky님께서 그 표현으로 제 블로그에 답글 써 주신 적이 있으셔서 (https://steemit.com/kr/@realsunny/in-abu-dhabi-3-14) 딱 이 곳이 생각 났었거든요. 그래서 2달간 버려뒀던 여행기를 다시 시작 했는데, 막상 이 글 쓸 땐 잊어버렸네요.

적절한 브금이군요.~ (저 길이 빙하길이라니.... 우리나라에선 구경할수 없는 자연풍경이로군요)

사는지역을 멀리 떠나지 못하는 저는 페퍼톤즈의 공원여행이나 들으면서 마실을 다녀와야겠어요.

공원여행도 좋죠. Bike도!!
저는 어디 놀러가느라 차 탔을 땐 주로 페퍼톤즈 음악 들어요. 그래서인지 집에서 그냥 듣기만 해도 신나요. ㅋㅋㅋ

즐거운 마실 되셨길. 행복한 주말 되세요!

와 ~~헬기 타고 멋진빙하 넘 멋지네요^^
사진하나하나가 그림같이 멋지니
못가본 저는 눙물이 ㅜㅜ

스달 오르면 같이 가요 리안님. ㅋㅋㅋㅋㅋ 여기도 가고 밀포드 트랙도 가고.. (다만 겁나 걸어야 함.)
같이 가보시면 아니 왜 사진을 이렇게 밖에 못 찍었냐!! 이러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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