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추억하다 #8-1. [엄마와 단 둘이 프라하|빈|부다페스트] 2018년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에 가다.

in #kr-travel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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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썼던 글에서와같이, 5월의 동유럽 여행의 발단은 체코 음악 기행 다큐멘터리였다. '프라하의 봄'이라고 불리는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는 매년 체코 출신 작곡가 스메타나 서거일인 5/12일에 시작되어 6/3일까지 진행되며, 5/12일, 5/13일의 오프닝 콘서트와 6/3일의 클로징 콘서트 이외에도 각국에서 온 여러 연주자의 콘서트 및 콩쿠르가 개최된다.

5/12일의 공식적인 행사는 아래와 같다.

  • 10:00 : 스메타나가 잠든 Vyšehrad 공원묘지에서의 추모 공연
  • 16:00~21.30 : Kampa 공원에서의 무료 공연 (학생들의 음악 공연, 오후 8시 '나의 조국' 공연 실황 중계)
  • 20:00~21.30pm : Municipal House의 스메타나 홀에서 '나의 조국(Má Vlast)' 오프닝 공연

원래 계획은 5/11일에 프라하성을 둘러보고 5/12일의 모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었으나, 5/11일 늦은 아침에 프라하성에 도착한 우리는 길게 늘어진 성 비투스 대성당의 끝 없는 대기 행렬에 겁먹어 5/12일 아침 공연 대신 프라하성을 재방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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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프라하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Rudolfinum(체코 필하모닉의 주 무대이며, 드보르작 홀이 이곳에 있다.)은 Municipal House와 함께 축제 기간에 사용되는 공연장으로,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를 상징하는 하늘색 바탕의 f 문양이 걸려있었다. 몇 달간 기대했던 축제가 정말 시작했다는 마음에 아침부터 내 마음도 들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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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비투스 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난데없이 악기 소리가 들려서 그곳으로 가 보았더니 성당 앞 광장에서 클래식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5월 12일에는 공식 행사 이외에도 여러 유명한 장소에서 공연이 있을 것이라는 문구를 봤었는데 프라하성도 그중 하나였나보다. 첫 공연은 대학생, 두 번째 공연은 직장인 오케스트라였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마주친 공연치고는 꽤 괜찮았다.


점심을 먹고 음악 박물관을 둘러본 후 일찍부터 Kampa 공원으로 들어왔다. 날씨가 너무도 좋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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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오후 4시부터였기에 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앞쪽에는 임시 좌석도 만들어져 있었지만, 특별 손님을 위한 것이라 짐작했다. 벤치에 자리를 잡고 축제 부스에 갔는데, 지나가는 관광객이라고 생각했는지 "시간 괜찮으시면 오후 4시부터 하는 공연 보고 가세요."라는 얘기를 들었다. 빙긋이 웃으며 "저 축제 보러 여행 온 거예요."라고 대답했더니 오히려 상대방이 놀라는 눈치였다. 의자는 예상과 달리 아무나 앉아도 되며, 앉았을 때의 자세가 반쯤은 눕도록 설계되어 있어 신기했다. 재즈 페스티벌에서야 누워서 또는 술 마시면서 음악을 듣는 게 당연했지만 나도 모르게 클래식 음악은 경직된 자세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Municipal House에서의 저녁 공연은 당연히 정장을 입고 간다지만, 캄파 공원에도 정장을 입고 가야 하는거냐는 고민을 잠깐 했었는데, 정말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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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준비하는 시간에 무대 위에 걸터앉아 놀던 꼬마. 부모님 손에 이끌려 놀러 온 아이 중 한 명일 거로 생각했는데 초등학생 공연에서 클라리넷 솔로를 하는 아이였다. 한국에서였다면 나비넥타이를 맨 꼬마 신사로 만들어서 무대에 내보낼 것 같은데, 이날 공연에서도 이 아이는 이 복장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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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멋모르고 축제 부스에서 파는 음료수를 마셨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손에 맥주잔을 든 사람이 많아졌다.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공원 뒤편으로 걸어가니 사람들이 맥주잔을 들고나오는 음식점이 보였다. Mlýnská kavárna라는 곳인데, 활기찬 웃음으로 맥주를 건네주던 직원들이 인상적이었다. 전에 지인으로부터 프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불친절하다는 불평을 들어 지레 겁먹었는데 운이 좋았던 걸까? 여행 내내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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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봄 축제는 체코인의 자유로움과 일상에 스며든 클래식 음악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열린 공간에 누워서 술과 함께 즐기는 클래식. 게다가 연주자들 모두 팀 색을 나타내기 위해 통일된 복장을 했지만, 우리처럼 획일화된 모습은 절대 아니었다. 청바지를 입고 나온 지휘자 선생님. 연두색 스카프를 이용했지만, 누구는 목에, 누구는 머리에, 누구는 허리에 둘렀다. 이들뿐 아니라 전원이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온 팀도 있었는데, 그들의 스타킹 색은 빨간색, 노란색, 보라색 등 그 누구도 살구색, 커피색, 검은색 스타킹 따윈 신지 않았다. 그들에게 클래식 음악이란 우리가 국악을 듣는 느낌일까? 하지만 우리는 국악도 이런 방식으로 접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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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앞에 올라간 여자분은 공연 전부터 바쁘게 다니는 모습을 보건대 주최 측 인사인 듯했다. 공연과 공연 사이에 사회자가 축사를 부탁했는데, 아이를 한 손에 안고 올라와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우리 사회는 직장에서만큼은 가정을 잊고 회사 일에만 전념하기를 원한다. 직장에 아이를 데려와서 일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무도 이 상황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 그 문화 자체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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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을 즐기는 것은 비단 사람뿐이 아니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얼마나 경직된 사회에서 살고 있었던가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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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큰 공연장은 아니었다. 공연자 수, 관람객 수로만 봐서는 서울에서 열리는 락, 재즈 페스티벌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공연자도 유명한 가수, 오케스트라가 아닌 학생이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자유로웠을망정 그 누구도 주위에 방해가 될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사실 이 부분은 공연 당시에는 너무 당연해서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후 빈 모차르트 음악회에 가서 기존의 공연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던 것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서너 살의 꼬마 아가씨들을 보며 든 생각은,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들이기에 커서도 거리낌 없이 클래식 공연장을 찾는 것일까였다. 클래식 음악이라고 무조건 어렵고 지루한 것은 아닌데, 우리는 마냥 어렵다고 배척하는 문화에 길들어 아예 들어보지도 않고 멀리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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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메타나 홀의 저녁 8시 오프닝 콘서트를 위해 6시 정도에 이곳에서 나왔다. 캄파 공원에서의 공연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잘하고 싶다는 학생들의 열정만큼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즐거운 분위기, 좋은 음악, 그리고 아카시아 꽃의 달큰한 향이 함께 했던 기억 때문일까? 기회가 된다면 프라하에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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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부럽습니다. 좋은 시간 되셨겠군요.^^

네~! 이번 여행 중 가장 좋았던 날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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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개방되어진 곳이라서인지
반려동물들의 출입이라든지
안에 있지 않고 밖을 향해서 인지
자유스러움마저 느껴지네요...

잘 보고 갑니다.

@홍보해

이런식으로도 클래식을 접할 수 있구나 싶은 좋은 경험이었어요. 홍보해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realsunny님 안녕하세요. 여름이 입니다. @sindoja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Kampa 공원 관련내용 잘봤네요. 좋은 많이 많이 글 써주세요

감사합니다!

어릴 때부터 가족들이랑 소풍가듯이 간 클래식 콘서트를 성인이 되고나서도 편한 마음으로 놀러가듯이 즐겁게 가는 건 어떻게보면 당연하네요 :) 뭐든지 "교육적인" 목적으로 접근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님들이 보고 배워야 할 대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손에 맥주잔을 든 사람이 많아졌다.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잠자코 보고만 있을수 없었을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난번 '칼'님에 뒤이은 공격을.

평소에 자주 틀어둬서 아이가 클래식 음악에 익숙해지고, 아이들에게는 공연장에서의 예의를 교육하는 정도가 좋을 것 같아요.

뭐든지 부모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즐겨하는 걸 아이들도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제가 몇년 전에 이 "교육적인" 문화예술 관람에 대해 깊이 생각한적이 있었는데요. 시립미술관에서 진행했던 팀버튼 전을 보러 부모님과 함께 손잡고 혹은 유치원에서 단체관람을 온 어린이 관객들을 보면서였어요.
사실 팀버튼 작품들은 정말 어린이들 관점에선 공감할수도 있을만한 이야기지만, 유치원생들이 스스로 그 전시를 보러 오겠다고 선택했을리는 만무하고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선택을 하셨을텐데.. 뭔가 팀버튼 작품들이 유명해지지 않아서 그가 그냥 괴짜예술가이자 영화감독이었다면 이 전시를 굳이 선택해서 보여줬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부모님은 전시 내내 드로잉이나 영화 콘티 등을 보면서 어머 이건 뭐야.. 정말 말도 안되.. 무서워.. 를 반복하시는데 그 옆의 어린이가 과연 그 전시를 통해 "교육적인" 목적을 달성했을리는 만무하고.. 보여주지 않으니만도 못한 결과가 나오지않았을까 싶었다는... ㅠㅠ 아이들은 전시내내 시끌벅적 뛰어다니기 바빴고 저는 전시를 보러간 걸 후회하는 일까지.. ㅎㅎ
써니님 말씀대로 제발 교육은 전시나 공연 관람예절을 좀 철저히 시켜주시고 정작 관람과 감상은 아이들에게 맡겨 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 엄청 했었습니다.

전시회 자체가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미리 전시 내용을 몰랐다 하더라도.. 이왕 가신거 열린 마음으로 보시고 아이에게 설명해주셨어도 좋았을텐데 안타깝네요. 한국에선 그래도 공연장에서 시끄러운 아이는 못 봤는데 저 이번에 빈 클래식 공연장에서 시끄러운 중국 사람들한테 완전 데였어요 ㅠㅠ 아이도 떠들고 부모도 떠들고.. 행사 요원이 공연 찍는 것만 막지말고 떠드는 사람도 밖으로 좀 내보냈으면 싶더라구요.

점점 시간이 갈수록 부모의 모습을 아이들이 따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모가 열린 마음으로 본다면 아이들도 굳이 "교육"하지 않아도 그 모습을 따라 배울텐데 말이죠...
중국 사람들도 아주 상류층 이외에는 아직 시민교육이 덜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ㅠㅠㅠ

싱가폴에서 만난 중국 친구들, 그리고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며 중국에 대한 좋은 감정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극히 일부분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워낙 인구가 많으니...

클래식을 중학교와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잠깐 접하니 우리 세대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성장하고 나서는 CD도 구매하고 공연도 가니 그나마 낫지만... 사실 잘 몰라요. 그냥 듣는 것이 좋아서 듣지요. 알면서 들으면 더 좋겠지만... 보통은 그냥 듣기만 해요. ㅋㅋㅋ

뭐 저라고 얼마나 알고 듣겠어요?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제가 알고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잘 하는 팀 연주를 들으면 전혀 모르고 가도 공연 속으로 빠져들게 되더라구요. 그게 종종 공연장을 찾게 되는 이유인 것 같아요.

맞아요. 잘 모르는 연주들 들으면... 그냥 그 자체로도 좋은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여행 다니면서 버스킹 있으면 그 또한 한참을 즐겨 보고 듣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요즘 공연장 못찾은지 한참 되서... 공연장 나중에 갈 것 생각하니 좀 어색하네요. ㅎㅎㅎ

멋진 공연이었을 것 같네요 ^^ 글 잘 봤습니다. 팔로우해서 좋은 글 받아볼게요!

감사합니다!!

얼마전 클래식 콘서트에 경지된자세로 계속 있다 졸았던 기억이 ㅠㅠ
이런 공연이라면 맥주 한잔 하면서 편안한 자세로 얼마든지 클래식을 즐길수 있을것 같아요. 게다가 우리 아이들까지도 함께 즐길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저도 난방이 과도한 공연장에선 졸게 되더라구요. 야외 공연이라 약간의 소음은 음악을 듣는데 문제가 되지 않아서 나이 제한도 없고 오히려 소풍나온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여름엔 한여름밤의 음악회 이런 타이틀로 야외 공연이 있어요. 그런 곳에 아이들과 다녀오셔도 좋을 것 같아요.

우린 너무 문화와 예술을 대할때 격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네. 물론 격식을 갖춰야하는 공연도 있지만 항상 그래야 할 필요는 없을텐데, 격이 있고 어렵다고 생각해서 더 멀어지고, 쉽게 즐길 공간도 적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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