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추억하다 #7-4. [일본] 구로카와에서의 료칸 체험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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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계획을 세우던 중, 구로카와에 료칸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도 료칸에서 하루 정도 머물러보고 싶었지만,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일본 료칸이 호텔 예약 사이트에 등록되어있지 않았고, 한국에 있는 여행사에 전화해보니 인당 30만 원인 료칸만 남아있다는 대답이 돌아와서 포기해야 하나 싶던 때였다.

남편이랑 여행 계획을 세울 겸 서울 시내의 어느 카페로 가던 봄날, 문득 료칸에 직접 전화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버스 안에서 여행 가이드북을 펴고 그곳에 나온 료칸에 일일이 전화해서 "Is there somebody who can speak English?"라고 물어봤는데, 대부분 영어를 말하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No"라는 대답만 겨우 돌아왔다. 그렇게 포기하게 될 즈음 유창한 영어 대답이 돌아오는 료칸을 만났다. 그렇게 그곳에 예약을 하자 남편이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야마비코 료칸

아소산 니시 역에서 탄 '아소 유후 고원 버스'안에서 곯아떨어진 우리는 구로카와에 도착했다며 우리를 깨워주신 승무원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구로카와 버스 정류장에 내린 후 료칸에 전화를 걸었는데, 아뿔싸! 영어로 말을 걸었더니 뚝 하고 끊어버렸다. 깜짝 놀라서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다른 분이 받으셔서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서 내가 누구며 어디 있는지를 밝혔다.

"와타시와...이름 ", "요야쿠(예약)", "이마(지금) 쿠로카와", "아소 유후 코겐 버스".

굉장히 이상하지만 필요한 단어는 다 말했기에 버스 정류장에 차를 끌고 마중 나오신 료칸 주인아저씨와 만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도착한 료칸에서 우리를 반겨준 이는 미국에서 유학 중 잠시 일본에 들린 료칸 주인의 아들과, 커다랗지만 순했던 까만 개였다. 그러고 보면 운 좋게 시기가 맞아 영어로 예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참 어지르는데 일가견이 있는 듯

아들의 소개로 들어선 우리 방엔 따뜻한 녹차와 찹쌀떡이 준비되어 있었다. 게다가 전기 코타츠까지! 노다메에서 모두가 코타츠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장면을 보며 어떤 것일지 궁금했는데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방에 비치된 유카타로 옷을 갈아입은 우리는 일단 료칸을 돌아본 후 동네를 구경하기로 했다.


본관과 별관을 연결하는 다리



개인적인 공간인 가족탕



야마비코 료칸의 선인탕

그러고 보면 오기 전만 해도 일본은 남녀 혼욕이 일반적이라고 들어 노천탕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부담스러웠는데 이곳에 와보니 여탕과 혼탕만이 존재했다. 남자에게는 거부할 권리가 없는 것인가?


야마비코 료칸에서 나온 후 처음 들른 곳은 미인탕으로 유명한 이코이 료칸으로, 여행사에서 인당 30만 원의 숙박비를 요구하던 그곳이었다. 이곳에서 숙박을 할 수는 없었지만, 구로카와에는 '뉴토테카타'라는 유효기간 6개월의 세 군데 료칸 온천 이용권이 있어 내가 머물던 료칸 이외에서도 온천을 이용할 수 있었다.



탕으로 향하는 입구



하늘이 뻥 뚫려 있어 쑥스러웠던 노천온천


온천욕 이후에 동네를 거닐다 보니 소원을 적은 뉴토테카타가 주렁주렁 달린 신사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여행 기념으로 집에 가지고 왔지만, 심지어 이삿짐에 섞여 아부다비까지 딸려 왔음에도 딱히 꺼내볼 일이 없는 걸로 봐선 우리도 소원이나 빌 걸 그랬나 싶다.


구로카와에 늦게 도착하기도 했고, 온천을 하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되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한 식당에는 예쁜 그릇 위에 올려진 예쁜 음식이 가득했다.


가이세키 요리의 시작!



따로 주문한 밀 소주와 감자 소주

료칸에서 직접 담근 소주를 주문하니 얼음이 함께 나왔다. 소주에 웬 얼음인가 싶었지만, 일본식 소주는 25도 이상으로 도수가 높은 편이었다.


간단한 회. 신기하게도 도미와 참치보다 살짝 데친 새우가 더 맛있었다.



각자 구워 먹는 소고기와 채소



조개탕



구마모토의 특산물 말고기 회



연두부 위에 올린 장어구이


생선구이와 짭조름한 소라, 은행 구이도 맛있었지만, 가장 반가웠던 것은 구마모토의 명물이라는 겨자 연근이었다. 이곳에서 맛보게 될 줄이야!


이미 배는 부른 상태였지만, 밥과 미소시루가 나오자 기대했던 가이세키 요리가 끝나간다는 생각에 아쉬워졌다.


디저트로 추청되는 음식. 벚꽃같이 생긴 저건 먹으면서도 떡인지 어묵인지 헷갈렸지만 여하튼 맛있었다.


맛있는 푸딩! 이곳에서 먹은 푸딩에 반해서 이후 일본 여행 때마다 푸딩을 시도해봤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이토록 맛있는 푸딩은 먹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 근처에 젖소 목장이 있어 그 신선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나 보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더니 포근한 요이불이 준비되어 있었다. 피곤하기도 했고, 온천욕도 즐겼고, 음식에 소주까지 곁들여서인지, 원래 새로운 장소에서 잘 못 자는 나인데 자리에 눕자마자 잠든 후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아침부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하고 오니 어느덧 아침 먹을 시간이 되어 있었다. 먹고 자고 일어나서 또 먹는 듯. 삶은 계란을 담은 저 그릇은 무척 탐났다.


식사 후에는 이곳을 떠나기 전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야외 족탕으로 향했다. 따로 하는 노천탕도 좋았지만,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도란도란 수다를 떨 수 있는 족욕도 좋았다.


그리고 이제는 온천욕이 부담스러워졌으나 뉴토테카타 사용권이 남아있어서 유후인으로 출발하기 전에 또 다른 료칸을 방문해보았다.

120년, 아니 지금은 130년 전통인 신 메이칸. 주인이 3년 동안 손수 만든 동굴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물빛이 아름다웠던 구로카와 소

결국 신메이칸과 구로카와 소에서는 발만 담가 보았다. 발만 깨끗해지는 하루랄까.


료칸 숙박이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적어도 2박은 예약하는 건데, 빠듯하게 일정을 잡은 게 아쉬웠던 여정이었다. 2016년, 쉴 수 있는 여행을 가고 싶으시다던 부모님께 야마비코 료칸을 2박 예약해 드린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호텔스컴바인에 등록된 야마비코 료칸의 가격이 전부 비슷해서 그중 아무 곳을 골라 예약했는데, 부모님께서 료칸에 도착하고 보니 그렇게 예약해서는 저녁 식사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료칸의 묘미는 가이세키 요리인데, 다른 호텔과 마찬가지로 조식만 포함될 뿐이었고, 이미 손님 수에 맞춰 장을 보았기에 저녁을 요청할 수도 없게 되어있었다.


예전에 갔을 땐, 이렇게 음식점과 상점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어디선가 저녁을 사드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곳에 머무는 손님 모두가 료칸 숙박객이어서인지 저녁에 열려있는 식당을 찾기 정말 힘드셨다고 한다. 결국 어디선가 고기를 사드신 후, 료칸에 돌아와 겨우 쌀밥만 구해드셨지만, 당뇨를 앓고 계신 아버지께 많은 부담이 되었고, 계속 몸이 덜덜 떨린다며 공포감을 느끼신 아버지는 어머니를 설득해 여행 일정을 하루 앞당겨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결국 후쿠오카에 예약해둔 호텔과 시간이 맞지 않는 배표는 그냥 버리고, 새로 비행기 티켓까지 끊으셔서 말이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하신 지 몇 시간 후, 진도 6.5의 구마모토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저녁이 예약되어 있지 않았고, 당뇨 때문에 고생하신 아버지 덕분에 효도가 효도로 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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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추억하다 #7-4. [일본] 구로카와에서의 료칸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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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칸의 즐거움에 음식이 너무 깔끔해서 한층 더 좋은 여행 되셨을거 같네요 ^^

네!! 여정의 중간쯤이었는데 맛있게 딱 먹고 꿀잠 자서 정말 좋았어요.

남편분이 왜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셨을꺼같은지 이해가 되는데요??ㅋㅋㅋ 경치랑 음식이 정말 최고네요 :) 이때는 소고기 드셨었나봐요 ㅠ.ㅠ

ㅠ. ㅠ 고기 못 먹은지 몇 년 안됐어요. 다 아는 그 맛이라 더 화나지만, 그래도 생선회는 먹을 수 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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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탕에서 푸욱 지지고 스시 한접시 딱 하고 싶으네요^^

크.... ㅡ. ㅜ 상상만 해도 좋은데요?!! 하지만 한 접시로는 안됩니다!

한접시 아니구
하하아아아아안 접시요 ㅎㅎㅎ

크으 역시 일본 여행의 꽃은 료칸인 거 같아요!! ㅎㅎㅎㅎ
사진들 보니까 또 료칸여행 가보고 싶은...ㅠㅠㅠ ㅎㅎㅎㅎ

저도 제대로 된 료칸은 다시 가고 싶어요. 늦가을에 온천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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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카와 온천마을 정말 가보고 싶더라구요~
저도 엄마 모시고 료칸에 한 번 가보고 싶어집니다 ^^
마지막 반전은 정말 대반전이네요 ㅜㅜ;; 정말 다행입니다.

구로카와가 옛 일본 모습이 남아 있어서 저도 꼭 가보고 싶더라고요. ㅠ_ ㅠ 혹시 가게 되시면 꼭 저녁까지 함께 예약하세요~! 어느 동네나 료칸이 많은 동네는 아침, 저녁으로 여는 음식점이 잘 없더라고요.
마지막 사건은 진짜 다행이었죠.

그러고 보면 오기 전만 해도 일본은 남녀 혼욕이 일반적이라고 들어 노천탕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부담스러웠는데 이곳에 와보니 여탕과 혼탕만이 존재했다. 남자에게는 거부할 권리가 없는 것인가?

거부할 필요가 없는 상남자의 감성인지 아니면 여성 우위의 감성인지 헷갈리지만... 아무래도 전자의 확률이 높겠죠..? 죄송합니다. 저 부분이 워낙 강렬하게 꽂혀서요-ㅅ-ㅋㅋㅋㅋㅋㅋ

으음... -. -;;; 전 아무리 생각해도 여탕, 남탕, 혼탕. 이렇게 있어야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정말 예쁜 마을이네요~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정말 마음에 듭니다.
아, 일본에도 빨리 가봐야겠어요~^^

이게 참.. 가보고 싶은 곳은 끝이 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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