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종교의 표교를 기억하며

in #kr-philosophy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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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종교의 정의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각 종교들은 다른 종교들을 사이비 취급하는 일이 잦으며, 한 종교 안에서도 각 종파는 다른 종파를 이단이라며 비난하곤 한다. 그래서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내가 생각하는 사이비 종교의 정의를 설명하겠다.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신의 부존에 대한 믿음과는 별개로, 믿을게 부족한 세상에서 굳건한 신뢰를 보낼 수 있는 상징에 대한 신자들의 믿음을 모욕하고 싶지 않다. 내 주변을 보아도, 무신론자임에도 마음의 안정을 위해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비록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신의 실존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 하여도 그 사람과 충돌하고 싶지는 않다. 상대가 내 믿음을 공격하지 않는 한, 나도 상대의 믿음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나는 사상가(나 자신을 사상가라 부르는게 허락되었다면)지, 투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가 생각하는 사이비 종교는 타인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해치려는 종교를 말한다. 자유를 적극적으로 해친다는 말은, 신념을 자유롭게 형성하는게 아니라 신자들과 신자들의 주변인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치려는 종교들을 말한다. 검소한 삶조차도 영위하기 힘들어 이루어지던 최소한의 영리적인 활동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영리적 활동을 이어가는 종교들이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보면 현존하는 모든 종교가 해당할 수 있다. 모든 종교는 일정 수준의 구속이 있으며 세를 불리기 위한 활동을 이어간다. 하지만 미치려 하는 영향력의 정도와 사상 전반의 분위기를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영향력의 정도란 단순히 사상적 영향력을 넘는 물리적 구속력을 행사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고, 사상 전반의 분위기란 타락한 목사가 존재한다 하여 기독교 사상 자체가 문제인건 아니며 타락한 주지승이 존재한다 하여 불교 사상자체가 문제인건 아니라는 점을 통해 설명된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란 물리적인 구속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종교 전체가 불온한 목적을 띄고 있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열심히 늘어놓았지만, 결론은 단순한 것 같다. 결국은 내 주관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글은 철저히 주관적인 글이다.

이른바 "도를 아십니까."에 속하는 이들을 경험했던 이야기를 늘어놓으려고 했는데 글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나는 대학생활동안 그들을 참 여러번 마주쳤다. 묘하게도 내 동선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거르고 나를 붙잡는 일도 많았다. 나중에 듣기로는 포교를 하러 돌아다니는 이들끼리 표적을 공유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나는 그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사냥감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카페에 동기들과 앉아있는데 나를 불러내서 전화번호를 달라고 한 적도 있으니. 아마 무언가 생각하느라 고개를 떨구고 혼자 돌아다니는 일이 잦은 사람이 주요 표적이 아니었나 싶다. 거기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 사람들을 무작정 뿌리치지도 않았으니.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들이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은 참 많이도 놀렸다. 그리고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 2개가 있다.

첫번째는, 정말 일반적인 경우다. 짤막한 오프닝 이후에 공부를 하고 있다며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사람에게는 주어진 운명이 있어 행운과 악운이 있는데 공부를 하면 행운을 강하게 움켜쥘 수 있고 불운을 피할 수도 있다고 한다. 결론은, 자신을 따라 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공부를 하셨으니 운명이 조금은 보이시겠네요?"라 물었다. 상대는 조금은 보인다고 했다. 다음에는 "그럼 제가 그쪽을 따라갈 운명인가요. 따라가지 않을 운명인가요?"라 물었다. 상대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두번째는,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기숙사로 돌아갈 때였다. 기숙사로 가는 길은 내내 지루한 오르막이었는데 그들은 자주 내 길동무가 되주었다. 그 시간에 기숙사로 올라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나를 붙잡은걸 보면, 정말로 무언가 있긴 했던 모양이다. 평소처럼 그들의 이상한 이야기를 들으며 오르막의 지루함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던 나에게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멀리서 따라오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딱 봐도 어린거 같은데, 연장자가 이야기하는데 그냥 갈 길 가는게 예의입니까?" 면서 소리를 질러서 "내가 갈 길 가는데 붙잡고 서서 들으라는건 예의입니까?"라고 답했다. 상대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내가 답변하기 전에 내 옆에 있던 사람이 그 사람에게 가더니 씩씩 거리는 그 사람을 끌고 갔다.

나는 두가지 사례를 기억하다 의문이 생겼다. 흔히 사이비종교의 신자들은 광신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교단 자체가 신자들에게 광신적인 믿음을 끌어내려 노력하며, 다양한 심리적인 프로세스를 거쳐 그들은 광신도가 된다. 그렇다면 첫번째 사례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 내가 그들의 사상을 조롱했음에도 그냥 자리를 떠나기만 했다. 과연 광신도라면 그럴 수 있을까? 두번째 사례도 마찬가지다. 아마 나에게 포교하던 사람이 소리 지르던 사람을 말린 이유는, 소란을 만들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과연 광신도가 그런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들에게 광신적인 믿음이 없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목적으로 포교를 하는 것일까. 흔히 끌어들인 사람의 수가 계급을 결정한다고 한다. 확고한 종교적 신념이 없다면, 더 높은 자리에 가려는 목적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에게 포교를 시키는 이들의 목적은 무엇이겠는가. 신도들의 돈을 갈취하기 위함이 아닌가? 사이비 종교와 순수한 종교의 차이가 여기서 나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세상에 어떤 종교가 사이비이며, 어떤 종교가 순수한 종교인가.


아슬아슬하게 1주일이 지나기 전에 글을 다시 썼습니다. 쉬고 왔더니 머리가 텅 비어서, 예전에 쓰려다가 말았던 주제로 글을 쓰고 말았습니다. 글에 기분이 상하신 신자가 계시다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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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재 사례는 포교활동을 오래 한 사람이 아닐까 추측이 됩니다. 그들이 세뇌 받은 목적은 더 많은 신자를 끌어오는 것이고 논리적인 배틀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믿음을 조롱하는 사람을 무시하고 다음 타깃을 노리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겠네요. 저는 오히려 믿음이 깊은 광신도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가능하지 않았나 추측해 보게 됩니다.

두 번째 사례에서 화내는 신도를 말리던 다른 신도 역시 저 첫 번째 사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믿음의 뿌리가 깊을수록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대상에게 포교를 하는 것이 제1의 과제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일일이 화 내고 논리적인 싸움을 하는 것보다 합리적이라 여겨지고요. 전도의 과정에서 논리 싸움이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그들도 아마 경험을 통해 배우지 않았을까 싶네요.

광신적인 믿음과 합리적인 판단이 공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셨던 것 같아요. 합리성의 정의를 자신의 목적(더 많은 사람에게 포교)을 성취하기 위해 목적 성취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를 억제하려는 태도라고 좁게 본다면 광신도들도 충분히 합리적인 면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합리성의 정의를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과 배치되는 팩트를 접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지적 유연성이라고 정의내린다면, 광신적인 믿음과 합리성은 양립할 수가 없을 것 같고요.

끝으로 사이비 종교와 순수한 종교를 판가름하는 리트머스는 그 종교로 인해 종교원의 삶뿐만 아니라 종교와는 무관한 사회 전체의 안녕이 향상되는가 여부인 것 같아요. 사회의 안녕에는 1도 관심이 없고 교단 확장에만 치중하는 일부 개신교 교회는 이런 면에서 사이비라고 봅니다 저는.

생각할 여지를 주는 글이네요.

말씀처럼 그들은 믿음의 뿌리가 깊기에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종교적 신념이, 교리에 대한 믿음보다 교세 확장에 대한 사명감으로 표출되는 것 자체가 순수한 종교적 신념이라기엔 크게 왜곡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미있는 경험담입니다. 저도 몇개 '도를 아십니까'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재미있던 것은, 한 사람과 두번 마주쳤던 일입니다.

제가 20대 초반일 때, 강남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는데 어떤 여성이 "혹시 교보문고가 어디에 있어요?"하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대답해주니, 그녀가 "인상이 좋은데, 좋은 말씀 듣지 않겠냐"라고 태세전환하지 않겠습니까. 말거는 방법도 가지가지 구나 싶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때 대충 빠져나왔는데, 그 후에 5년뒤 다시 강남역에서 우연히 초췌해진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혹시 교보문고가 어디에 있어요?"라는 똑같은 질문때문에 더욱 같은 사람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5년 전에도 한 번 여기서 물으셨었는데요"라고 답하니, 그녀는 당황해하며 급히 자리를 떴습니다. 5년간 많이 상한 얼굴이 안쓰럽기도 하고, 5년이나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ㅎㅎㅎ 종교는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나 봅니다.

그러기도 하는군요. 지금 캠퍼스를 가면 그분들을 다시 만나게 될까요.

저는 유신론자이자 유일신론자입니다. 교회를 다니기 때문이죠... 제 자신을 진정한 예수의 제자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지만 최근 교회의 모습은 @kmlee 님의 글에 근거해 사이비 종교라고 부르는 게 합당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결국 한끝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눈앞에 있는 이익에 눈이 멀어 순수한 종교적 신념을 뒤전으로 미룰 때 순수한 종교도 사이비 종교로 변질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의 신앙을 돌아보며 과연 내가 가진 신앙은 사이비적이지 않은 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신자가 읽기에 전혀 기분 상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독교 신앙 전체가 폄하되는게 안타깝습니다. 일부 신자들의 타락을 비판하는게 아니라 예수를 조롱하는 것처럼요.

기분 나쁘지 않으셨다니 참 다행입니다.

영이 맑으시네요...하면서 도닦으시는 분들 만나면...겉으론 아무렇지 않게 쿨한 척 무시하고 갈길 가는데...양쪽 팔 붙들면서 2인 1조로 다가오시는 분들...무섭습니다...ㅠㅠ...

전 딱히 종교를 가지고 있진 않아요. 무신론자라 할수 있을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 길을 거닐때마다 도를 아냐며 접근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들이 보기엔 제가 왠지 순진하게 생겼나봐요. 같은 사람이 다른 시간차로 저에게 두번 접근했을때가 생각나네요. 한번은 좋은 얘기해주는데 차한잔 사라 그래서 저도 모르게 사줬더랬죠;;;;;(하 ...) 두번째 만남 래파토리도 같아서 서로 더치페이 하자 하고 그분이 하는 얘기마다 토를 달아서 결국 그분들 씩씩대셨던 기억이 납니다 ;;

저는 항상 대화가 짧았어요. 금방 가더라구요...

이런 논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이란 참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위의 포교이야기를 들으면서 보통 일반적으로 전도에 대해 외형을 키우고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행동이라 하는데 한국의 경우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생긴 일종의 오해가 아닐까싶어요. 자본주의 논리에 해당사항을 끼워맞추다보니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방식으로 해석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Kmlee님의 이야기에 대한 얘기랑은 조금 다른 이야기였지만요:)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던저주셨네요.

내가 갈운명입니까 아닙니까? ㅎㅎ 재치있는 물음이셨네요
도를 아십니까 그들도 어찌보면 믿음에 사로잡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공포감에 사로잡힌 불쌍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몇번 접해봤지면 느낌이 지쳐있고 갖힌? 느낌 이였거든요

맞습니다. 안타까운 분들이죠.

주말에 시골집에서 농사짓다보면 우르르 몰려다니는 젊은 남여들^^
시골까지 파고들더군요

저도 비슷한 케이스인거 같습니다.
일이 있어 삼성역에 있는데 역안에서만 세번이나 저를 도를 아냐고 묻더라구요.
광신적인 믿음에 걸맞는 사람으로 저를 판단했던 것인지 의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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