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하던 날

in #kr-pen6 years ago (edited)

어떤 면에서 모든 인간은 부지런하다. 이 근면함의 실체는 안타깝게도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난다. 가령 인간의 신체에 돋는 모발을 보라. 죽음과 대면하기 전까지 나는 거울을 응시한 채 면도기를 휘두르는 혈투를 거듭하리라. 혈이란 상징적 표현만은 아니다. 그 작업은 이따금 피를 동반한다. 머리털은 어떤가. 중도 제 머리를 깎는 시대라지만 나는 비용을 치르고 타인이 공급하는 미용 서비스를 산다. 마치 영원회귀를 보듯 모발은 꼭 닮은 생을 되풀이한다.

내가 안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동네는 주변, 주변 공사가 한창이다. 새 건물로 군집을 이룬 영역과 그를 시샘한 듯 열을 올리는 예비 건물들 사이를 보통 너비의 도로가 파고든다. 덤프트럭이 오가는 어수선한 길을 헤쳐 미용실로 향했다. 따질 것 없이, 먼젓번 거래를 튼 곳을 찾았으나 완강한 손잡이만이 나를 맞았다. 다른 곳을 물색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넉넉한 체구의 그 미용사를 재신임하려던 나는 모종의 낭패감을 맛보았다. 유리창 너머 동정을 재차 살폈다.

발걸음을 떼 주위를 둘러보고 서성였다. 두 곳을 후보에 올리고 저울질했다. 선택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영업장 외부에 회전간판을 배치한 미용실을 탈락시켰다. 내가 점찍은 곳은 어림잡아 5층 건물의 1층에 위치했고 나머지 공간은 가정집으로 보였다. 나름 주상복합인 셈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점원들은 기계적으로 인사말을 건넸다. 미용사들은 제 몫의 손님을 받아 분주했고 나는 기다려야 했다. 스마트폰은 그럴 때를 위해 존재하는가 보다. 창과 마주한 자리에 앉았으나 창밖을 내다보기는커녕 애꿎은 전화기만 못살게 굴었다.

한 미용사가 날 불렀다. 올 것이 왔다는 듯 의자로 가 앉았고 미용사는 내게 커트보를 둘렀다. 난처한 시간이 도래했다. 남에게 몸을 맡겨야 하는 상황을 나는 생래적으로 꺼린다. 의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이보단 눅어진 것이지만 미용사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그다음 난관은 헤어스타일에 대한 주문이다. 미용실에 갈 적마다 나는 소통의 지난함을 절감한다. 내가 그린 그림과 미용사의 작품은 노상 엇나간다. 물론 구체적 언어를 상실한 내 탓이 크다. “머리가 많이 길어서 좀 짧게 자를 건데요. 그렇다고 옆머리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 짧게는 말고요.”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나 같은 놈을 수없이 겪었을 미용사는 개의치 않고 미용에 들어갔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서 이 서먹한 시간이 끝나기를 고대했다. 미용사는, 앞서 언급한 넉넉한 미용사에 견줘 한참 연하年下였고 그이처럼 일을 해치우지도 않았다. 제 나름 공을 들여 머리칼을 자르고 매만졌다. 이 역시 예술적 행위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떠 예술가의 작업을 훔쳐보고 이내 다시 감았다. 피차 할 말은 없었다. 앞머리를 내리는 것보다 올리는 게 낫겠다는 미용사의 권유에 소극적으로 동조한 일 정도만 기억에 남아 있다.

꾸밈과 청결의 교집합인 이 작업은 종반에 이르렀다. 미용사는 커트보를 거두고 나를 샴푸실로 안내했다. 어정쩡한 모양으로 샴푸대에 앉았다가 자세를 고쳐 편히 기댔다. 곧장 온수가 나오지 않는지 미용사는 얼마큼 물을 흘려보냈다. 머리에 물을 충분히 적시고 샴푸를 골고루 펴 바른 다음 두피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성심껏 머리를 감기는지 커트 비용을 올려 받아도 따지지 못할 정도였다. 머리에 후각을 입힌 듯 두피 전체로 박하 내음을 맡았다. 미용사는 헤어드라이어를 들고서 한바탕 건조 작업을 벌였다. 제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려는 듯 제품을 발라, 내 앞머리를 추켜올렸다. 빈말은 아니었던 듯싶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생경하여 미용값을 셈하고 바삐 돌아서는 날 그가 불러 세웠다. “이거 받아가세요.” 나는 분홍색으로 채색된 종이를 받아 쥐고 미용실을 나섰다. 얼마 걷지 않아, 거리의 차창에 상체를 들이밀고 미용사의 노고를 확인했다. 손에 든 종이를 들어올렸다. 명함엔 본명인지 닉네임인지 모를, 자인이라는 글씨가 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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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님이 글쓰는데 도움이 된다며 항상 들고 다니시는 메모장에, 커트보 란 단어을 보여주시며, 그걸 커트보라고 말하는지 그때 알았다 하시던게 생각이 나고, 생경한 공기 안에서 어색하고 주춤거리며 머리를 하고 나오신 perspector 님이 떠올라 미소가 떠오릅니다^^

안녕하세요, bookkeeper님. 찌찌뽕!이라고 말한 뻔 했네요. 이미 말했나요. ;; 저도 티비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그 단어를 언급하는 걸 보고 냉큼 수집했어요(전 김영하 작가 좋아해요). 어색하고 주춤거리는 장면을 미소 띠며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찌찌뽕~~! 국민ㅆㄴ 뒷담을 무지하게 하고싶은 공감입니다만 참습니다ㅜ

그 사람은 국민ㅆㄴ 되지 말고 일반 국민으로 돌아갔으면 하네요. 그를 포함한 모두를 위해서. ㅠ

항상 글 잘 읽고 있습니다. Perspector님의 담담한 문체가 좋습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중도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그냥 속담에 불과한가요? 실제로 스님들은 셀프이발하시는지.. 태클은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요.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
자기가 자신에 관한 일을 좋게 해결하기는 어려운 일이어서 남의 손을 빌려야만 이루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비슷한 속담] 의사가 제 병 못 고친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안녕하세요, lilylee님 제 글을 잘 읽고 있다고 말해 주시니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 속담으로 굳어진 비유적 표현 같습니다. 저 속담을 두고는 이젠 스님도 제 머리는 스스로 깎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컨대 이제 스님도 스스로 이발하는데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하는 게 없다는 식의 발언이죠. 제 글의 표현은 속담을 활용한 것이지 스님들을 비하할 생각은 없었습니다(lilylee님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실제 셀프 이발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저는 압니다. 댓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하 그랬군요. 당연히 비하의 의미로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다행히 커트 머리가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담담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일기 투어 중에 들렸습니다.

네, 마음에 들었어요. ㅎㅎ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banguri님. :-)

머리깍는 과정에대한 생각의 동선이 저와 비슷합니다. 남자맞죠?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이렇게 각잡듯이 표현을 해주시니 읽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perspector님의 닉네임과 같은 동선의 글인것 같습니다.

머리할 때의 생각이 비슷하다니 괜히 반갑네요. 네, 남자입니다. 제 닉넴임과 이 글을 결부시켜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peterchung님 블로그 잠시 들렀다 왔는데요. 바가바드기타에 관한 글도 쓰시나 봐요. 당장은 못 해도 한번 꼼꼼히 읽어 보고 싶네요.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은 빡빡이에요. 그마저도 구차나서 제가 면도기로 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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