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으로 움직이다.

in #kr-pen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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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정신을 온전히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정신을 분석하기에 앞서, 정신의 전체를 바라보는 것부터 할 수 없다. 완벽하게 관찰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아직까지 정신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지식이 없으니, 현재 인간의 수준에서 행하는 정신에 대한 분석은 정신의 파편에 대한 어설픈 분석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하려 해도 아직까지 인간은 완전하게 정신을 분석할 수 없는데, 주관이 섞이기까지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자신의 정신에 대한 분석은 더욱 큰 왜곡이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 할 스스로에 대한 진단도 완전히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한번 해보려고 한다. 최소한 재미는 있을테니.

모든 사람들은 변한다. 삶의 형태가 변하고, 변화가 찾아온 삶에서 취해야 하는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 그에 맞추어 인지도 변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변하지 않기도 한다. 삶, 행동, 인지가 달라져도 뇌기능에 이상이 생기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나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삶의 형태가 변하지 않았고, 삶에서 취하는 행동이 변하지 않았고, 따라서 인지도 변하지 않았다. 짧지 않은 시간을 나는 정말로 아무런 변화 없이 보내고 있었다. 변함 없는 삶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다. 뇌는 예측을 위한 도구고, 효과적인 예측을 위해서는 기존에 가진 것과 아무 차이 없는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기보다 새로운 경험만을 저장하는게 유리하다. 그래서 매 순간 뇌는 경험을 기존에 가진 기억과 대조한다. 나이가 들며 사고 등으로 뇌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닌데 기억력이 나빠지는 이유는 뇌기능이 저하된게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은 경험을 했기에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최근 몇년 간의 기억이 흐릿하고 순서마저도 모호하다.

변화의 기회는 몇번 있었다. 하지만 매번 나는 변하지 않았다. 당연히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감정의 파편들을 긁어 모아본다. 삶이 변하면, 행동이 달라져야 하고, 달라진 행동에 맞추어 인지도 변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행동이 달라지지 않으면 새로운 삶에 맞지 않고, 달라진 행동에 맞추어 인지가 바뀌지 않으면 인지부조화로 인해 괴로울 것이다. 따라서 내가 새로운 삶을 살기로 했다면 행동과 인지는 그 삶에 맞추어 연쇄적으로 변화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선택한 것은 새로운 삶일 뿐인데 행동과 인지도 바꾸어야 한다. 모든게 새로운 상태는 이전과 다르다. 변하기 위해서는 가진 것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다. 자기애와 낙천적인 성향은 나에게 굳이 새로운 경험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며, 지금 가진 행복을 놓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한다. 비관적인 시각 또한 그 입장에 힘을 실어준다. 변화 후는 전혀 행복하지 않을 수 있고, 뒤늦게 옛 행복을 다시 찾으려 해도 이미 놓친 이후일 것이라며 경고한다. 낙천과 비관의 독특한 결합이다.

사실 이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그럼에도 내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화가 힘들지도 괴롭지도 않다. 힘들거나 괴로울만큼 극적인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미동도 없이 머물러 있던 기간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지금 나는 어떤 목적으로 어떤 계기로 움직이고 있을까? 나는 지금 관성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삶이 바뀌어서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어서 인지가 바뀌고, 행동과 인지가 바뀌어 다시 삶이 바뀐다. 다시 삶이 바뀌어 다시 행동은 바뀌고... 그렇다면 최초의 움직임은 어떤 계기였을까?

우선 새 삶에 대한 기대감이 비관을 이겨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미 가지고 있는 행복을 내려놓을 위험을 감수하고도 기꺼이 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새로워진 삶의 형태에 맞추어 행동과 인지가 변할 것도 감수해야 했다. 문제는 나에게는 새 삶을 그려낸 청사진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삶에 대한 기대감이 비관을 이겨냈는가? 그래서 나는 최초의 움직임의 계기를 설명할 수 없고, 지금도 계속해서 움직이는 이유는 관성 때문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관성에 의해 움직인다면 습관에 의해 움직이는 것과 같은걸까? 그리고 습관에 의해 움직인다면 긍정적인게 아닐걸까? 잘 모르겠다. 아무렴 어쩌겠는가. 움직일 수 없던 사람이 멈출 줄은 알겠는가? 멈출 줄도 모르기에 그냥 흘러가고 있다.


변화를 이야기 하면서 쇼팽을 들었습니다. 이상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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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저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를 믿는 주의라서 말이죠. 말씀하신 대로 행동과 인지는 변할수 있으나 인간성만큼은 변하지 어려운것 같습니다. 그냥 경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요. 인간군상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변화라는 것이 참 그런 것 같습니다. 익숙함을 따르고 있는것 같아 보아다가도, 언제부터인가는 또 아무렇지않게 은근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변화가 @kmlee님이나 저를 어디로 데려다 줄까요.

어제는 술을 마셨는데도 담배 생각이 안 나더라구요. 금단에 몸부림 치던 날들이 아직 생생한데 참 신기한 일입니다.

엇 그건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사람 몸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ㅎㅎ

니코틴 중독에서는 크게 벗어난 모양입니다. 그리고 카페를 한번 옮겨봐야 할 모양입니다. 1년 반 전에 처음으로 새벽에 카페를 갔을 때는 손님이 워낙 없어서 새벽 장사를 접는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근처 호수가 인기를 얻으면서 손님이 너무 많아져서 자리를 찾기가 힘들더라구요.

새벽에 그렇게 장사가 잘 되는 곳이 있다니 대단하네요ㅎㅎ 장소에 따라 집중력이 달라지니, 마음에 드는 새 카페를 찾기 쉽지 않으시겠습니다. 야간 장사하는곳도 별로 없는데 테이블이나 의자도 맘에 들어야하고...저도 보통 카페에서 글을 써서, 적당한 곳을 찾아 많이 전전했습니다.

사실 별로 가리는건 없어요. 그냥 새벽에 장사만 하면 되거든요...

전 매년 달라지고 변화하는게 인생목표인데, 불현 늘 제자리에 있는 제 부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 너무 변화에만 집중해서 오롯한 나의 모습을 놓치고 있는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저도 항상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저는 환경이나 제 주위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변화되어 왔다고 믿는데, 그 중 제가 믿는 종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서 변화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끔 생각해보면 180도 변해서 전의 안좋았던, 악한 습관들이나 행동들을 고쳐야 하는데... 요즘 생각해보면 너무 돌아서 360도로 변했더니 다시 제자리, 제 모습으로 돌아와있는건 아닌지 생각드네요... ㅎ

좋은 주말 보내십시요!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해도, 변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사라지는건 아니니까요. 언젠가는 그 귀중한 시간들이 모여서 눈에 보이는 변화를 가져오겠죠.

감사합니다. 문탱님도 평안한 주말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쇼팽이야말로 연주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니까요. 저도 키신 연주를 가장 좋아해요. 내한했을때 한걸음에 달려간 기억이 나네요 커튼콜 연주를 무려 1시간동안이나 했던.. 잊을 수 없는 ㄹ연주자였숩니다

그랬었군요. 아! 행사때 건반은 안 치시나요.

제가 행사때 1인 3역을 맡고 있어서.. 연주는 다음으로 기약해야할것 같습니다 :)

1인3역... 수고하십니다.

이미 너무 많은 경험을 했기에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이들면 신체적인 시능 저하의 영향도 있겠지만 말씀하신대로 새로운 경험의 부족도 클 수 있겠네요. 이 말을 잘 기억해두려해도 나이들면 또 그땐 마음대로 안되겠죠 ㅜㅋㅋ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

전 같은 목적지를 두고 매일 조금씩 다르게 가보고 싶어요. 변하지 않는 것을 안전하게 두고 아주 작은 모험을 해보는 거요.

네. 저도 소중한건 안전하게 두고 모험을 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아무리 안전한 곳에 두어도 안심이 안 되었지만요.

관성에 의해서 변화한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대부분은 변화라는 느낌이 다른 상태로 움직임 이라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자동으로 움직여 간다라기 보다 의지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느낌이 제게는 강하긴 합니다.
지금 스팀잇을 하고 있는 것만해도 제게는 변화가 많은 상황인데, 심지어 조금 더 변화가 있을 상황이라서.
그걸 자연스레 받아들일지 의지치를 주어 바꿀지 판단이 서지를 않네요.
저도 쇼팽을 좀 들어야 할까 봅니다^^

클래식을 듣는게 전 신기해요
오랜만에 쇼팽 들어봅니다

잡식이라서... 아무거나 다 듣습니다.

마지못해 사는 사람들이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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