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과 일상

in #kr-pen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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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시간이라기에도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카페로 간다. 아주 이를 때는 자정이 되기도 전에 일어나기도 한다. 카페로 가는 길에 밤새 쌓인 글들을 읽는다. 보통은 카페에 도착할 때까지도 아무런 생각도 없다. 카페에 들어가면 점원과 인사를 나누고 주문을 한다. 메뉴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항상 앉는 그 자리에 앉는다. 오는 글에 덜 읽은 글들을 읽는다. 밀린 글을 읽고 나면 생각을 시작한다. 때로는 빨리 떠오르기도, 때로는 늦게 떠오르기도 한다. 때로는 글을 쓰다가 멈추기도 하고, 때로는 글을 다 쓰고 폐기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나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오면 항상 지쳐있다. 생각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필사적으로 소재를 찾고, 소재와 관련 있으면서 내가 잘 이해하고 있고 잘 표현할 수 있는걸 끌어내는 과정은 지친다. 내가 완벽하게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하기에, 내 최대한을 짜내야 해서 지친다. 그렇게 탈진한 상태로 돌아오면 오후에는 무언가를 할 기운이 없다. 그래서 남은 시간을 모두 휴식으로 보내다 잠을 잔다.

그래서 나에게 글쓰기는 일상이며, 내 글의 소재는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일상이 습관이 되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준비운동이 필요한 활동이 된 것이다. 새벽에 익숙해짐에 따라 나는 더더욱 이른 시간에 일어나게 되었고, 그것도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글쓰기는 이른 시간에만, 충분한 준비운동 후에 할 수 있는 활동이 된 것이다.

당혹스러운 일이다. 기록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기록이 되니, 나는 일상을 벗어난 일탈을 기록할 능력을 잃은 것이다.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이며 기록이 일상이라고 한다면 일상 아무 때에나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도저히 글을 완성하기 어렵거나 글로 풀어내고 싶은 무언가가 없는 날은 모르겠지만, 특별히 바쁜게 아니라면 글을 쓸 수 있어야 '일상적으로 기록하며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록도 하나의 습관이 되고 나니, 그 습관을 벗어나서 기록하기란 쉽지 않다. 나에게 해를 끼치는 습관이 아니며, 굳이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나는 오전에 커피 한잔과 보내는 시간을 즐기기에 더욱 그렇다.

꼭 습관이 문제는 아니기도 하다. 내 생각을 최소한 내가 만족할 정도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을 해야한다. 주제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다른 것들과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지, 그리고 부연설명은 얼마나 해야 독자들의 자발적인 상상은 해치지 않으면서도 꼭 필요한 정보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 그래서 여유가 있는 오전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엄두를 못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글을 대하는 내 태도도 기록을 어렵게 한다. 항상 그 날의 고유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내 집착은 내 글을 더욱 진솔한 글로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나에게 깊은 고뇌를 남기기도 한다.

글쓰기가 쉬운 사람은 세상에 어디있겠는가? 특히나 자신의 고유한 무언가를 정확하게 기록하려는 활동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이는 꼭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령 영화 감독에게도 메세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과 독자의 자유로운 상상을 해치기 않기 위해 절제해야 한다는 마음이 충돌할 것이다. 거기다 자신의 창작물이 진정 자신의 일부가 맞는가에 대해서도 끊임 없이 고민할 것이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을, 계속 어렵다고 되뇌이는 것도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내 일상인 것을.

일상이지만, 벗어나야 할 일상이다. 계속해서 이럴 수는 없다. 계속해서 새벽이 아닌 시간에 글을 쓰는걸 어려워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습관을 벗어나는건 어렵다. 그래서 습관을 벗어나는 대신 새로운 습관을 들여보려고 한다. 가끔은 낮에도 글을 쓰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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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카페는 24시간 영업하나 보군요. 새벽이 아닌 다른 시간대에 가도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겠지만 아예 다른 공간을 알아보시는 것도 일상을 벗어나는 일 같습니다.

습관.. 까지는 아니겠으나 저도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네요.. 여러가지로.

기존에 고수하던 질서와 습관을 뒤틀어봄으로써
또는 발버둥피움으로써 글쓰기를 지속해 나가는 님의
행보...
응원합니다.

저는 일정한 시각에 글쓰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중인데
킴리님께서는 그것이 조금 고민이시군요.
전 아무 곳 어느 시간에도 쓸 수 있긴 한데 킴리님만큼의 완성도는 없어요. 그건 집중의 문제겠죠. 습관이 집중력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저는 습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 일상의 양면성. 그 양면성의 경계. 그 위상은 좌표가 없기에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더군요.
  • 새벽은 공기자체가 마약인 듯.
  • 낮 글쓰기 습관 성공기원!!

새벽은 공기 자체가 마약... 그러게요.

1000번정도의 반복적인 행동이습관이 된다고하던데, 킴리님은 그 일상이 습관이 되어버리셨다니 얼마만큼 읽고 쓰기에 매진하셨는지 짐작이 가네요... 새벽이 아닌 시간에 글쓰는것도 반복하시면 또 하나의 습관이 되겠네요... ㅎㅎ 그래도 새벽에 글쓰는건 굉장히 좋고 부러운 습관중에 하나인것 같습니다.

너무 진이 빠져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기도 해요...

lee님에게는 단골 카페가 있으니 부럽기도 합니다.
창작물이 자신의 일부인거 같아
타인에게 내놓기 힘든 심정도 있을거 같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낮이네요. 새로운 습관을 만들려면 새로운 도전을 해야지요.
새로운 도전 시작을 축하합니다.

덕분에 놓치고 지나간 킴리님 글을 읽을 기회가 생기는군요.

생각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필사적으로 소재를 찾고, 소재와 관련 있으면서 내가 잘 이해하고 있고 잘 표현할 수 있는걸 끌어내는 과정은 지친다.

이해를 하면서도 공감이 부족한 것은
제가 글쓰는 데 있어 아직은 노력이 많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뭐 밤이야 낮이야 쓸 수 있으면 어느 쪽이든 좋겠지요. 그러나, 밤에 활동하고 낮에 휴식을 취하는 것은 인간의 생리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말이죠. 제아무리 적응된 몸이라고 하더라도 자연의 섭리를 따를 수 있도록 노력 해보시죠. ;)

기왕에 그래야할 필요를 느끼신다니 말이에요. 우리 함께 건강하시죠. ;)

퐁당님 말씀에 깊게 공감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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