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을 시점

in #kr-pen6 years ago



날씨 좋은 봄날의 주말은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마음을 붕 뜨게 한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하는 데, 한순간 떨어져 버리면 평소보다 더 아프게 아래로 추락하여 마음을 와장창 다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왜 그랬어?? 아쉽다. 쓸 수 있는 게 별로 없네."

이렇게 상대의 능력을 짓밟아버리면, 상대는 자신을 반성하고 뒤돌아보며 끝없는 열정으로 시간을 헌납하기 때문에 이 방법은 꽤 쏠쏠하다. 그의 경력과 나이란 것은 또 무시할 것은 못 되기에 많은 이들이 그의 앞에 이 무한할 것 같은 헌납을 지속해왔으며, 그는 언제나 사람이 자주 들고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을 갖는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둘렀던 건지 인지하지 못하고 꽤 효과가 좋은 이 방식을 명약인 듯 고수해왔을 것이다.

정말 무섭고 소름 끼치는 것은 그가 자신에게만큼은 진정성 있는 시선의 필터를 쓴다는 점이다. 어릴 때는 알고도 하는 거짓말이 더 나쁜 거라고 배웠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많은 사람을 접하고 세상이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모르고 하는 거짓말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식의 특권에 익숙한 하게 되면, 평등은 억압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던 어느 영화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그들은 정말 진심이었고, 당연한 말과 행동을 예전과 다름없이 지속했을 뿐이다.

사회에 첫발을 들였던 나는 한없이 수그러들었었다. 나도 내가 못난 탓이라고 생각했고 나를 탓하고 또 탓해왔지만, 어느 날 고개를 들어보니 그들은 나에게 약을 준 게 아닌 다크로스팅한 원두처럼 너무 타고 써서 내 몸을 상하게 하는 커피를 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상황을 마주하며 직감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반박했다. 여태껏 그가 일이 진행될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굳이 마지막에 그 이야기를 하며 일을 추가하는 것의 의도를 알기 때문이다. 이미 그가 원했던 방향을 그도 알고 나도 알았다. 나는 매우 영혼 없게 그가 원하는 모든 것에 맞추어 일을 진행해왔고, 사실 한 번쯤은 더 부탁한다고 해도 나는 어쩔 수 없이 해줄 수밖에 없다. 굳이 그렇게 나를 깎아내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것 좀 추가해주고 이것 좀 몇 개만 더 해주면 좋을 거 같아."

핸드폰에 그의 이름이 뜨는 순간 왠지 모르게 직감했던 말을 듣고야 말았다. 결국,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답정너'였다. 그러나 내가 부정적인 태도로 반박하자 전에 해줬던 것들은 좋았다면서 한 발을 빼기까지하는 완벽한 밀당곡선을 그려나가는데, 그 수가 눈에 보이니 더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 일은 프로페셔널하게 합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프로인 사람을 보지 못했다. 다분히 감정적이고 절차를 무시하며, 겉으로는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눈앞에 자신의 상황만 모면하면 그만이다. 과거의 시대는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나의 편향적 선입견은 모두 그들이 한몫씩 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일을 시킬 때는 프로지만, 돈 줄 때는 아마추어인 그들이 이제는 딱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내가 그리는 미래에 그들이 보이는 현재 삶의 태도가 어느 한 구석도 자리 잡지 못한다면, 나는 더는 그들에게 물들 이유가 없다.

"상사가 아니라 언니로서 말이야..."

왜 상사가 언니가 될까? 조직 안에서 언니, 누나, 형이라는 호칭을 심심치 않게 들었었다. '오빠'란 어감은 다행히 그 상징성이 너무나도 커서 오히려 상대적으로 적게 듣는 편이다. 마치 배려하는 듯한 그 단어 속에는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정으로 다가가려는 추악한 의도가 담겨있다. 편의점에 가서 음료수를 사는 것보다 제때 제값을 지급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서 자신에 대한 그 무수한 자존감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을이 아니고, 갑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다른 이해관계로 누군가에게 우위를 선점하고 싶지도 선점당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온전히 내가 되고 싶은 오늘이다.






[제1회 PEN클럽 공모전] 응모

공모전에 참가하려고 열심히 쓴다고 쓴 오늘의 일기였는데, 쓰고나서 읽어보니 너무 감정을 토해내듯 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뭐, 담담해 보이도록 고친다면 또 그것은 오늘의 일기가 아닐테니..그냥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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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분노가 느껴지는 일기입니다.
굵게 표시한 상사의 말들은.. 하나같이 주옥 같네요 ...

그들의 말은 하나같이..자기 나름의 뼈를 담아 이야기하니까요..

"우리 일은 프로페셔널하게 합시다." 이 말을 실제로 들어보진 않았지만, 어딘가 묘하게 섬뜩하네요. 온전히 내가 되기란 쉽지 않죠. 오늘은 그냥 짧은 위로를 전합니다. 토닥토닥

맞아요. 저도 그 말을 그렇게 웃프게 느끼게 될 줄은 몰랐어요. 위로 감사해요 :)

프로 운운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못봤고, 가족 운운하는 회사치고 진짜 분위기 좋은 회사 못봤어요.
P님, 토닥토닥.

맞아요. 가족얘기도 정말 좋아하지 않아요. 가족이 아닌데 왜 가족인척하면서 충성을 요구할까요. ㅎㅎ

하나 더 추가하자면.. 회사이름에 "착한, 성실, 책임, 바른" 이런거 들어간 분들도 만만치 않던데요.
얼마 전에 설비공사 하면서 이 중 한가지 이름이 들어간 업체분이 오셨는데 상담할때 까진 좋았어요.
근데 일 시작하기 전에 계약금을 줘야하고(이건 뭐 당연한 거니까..) 일을 마치기 전에 잔금을 모두 주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시는거에요. 저희가 일정이 급해서 그렇게라도 진행을 하려고 했는데 넣어달라던 계약금을 넣으려고 일이 늦게 끝나 저녁에서야 입금한다고 연락드렸더니 일 안한다고 다른데 선금 들어온데 일을 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낮에 입금 안했다고요 ㅋㅋ
아 세상엔 이런분들도 있으시구나.. 그리고 책임성실착한 이런거 이름에 붙이면 다시 생각해봐야겠구나 그랬었어요 ㅋㅋㅋㅋㅋ

그정도면 완전 다 선금받기를 원한건데 그렇게도 일을 하는군요. 한쪽에만 유리한 거래는 좋은 거래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자기들한테만 좋은 거래가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에효

그러게 말이에요. 뭐 그럴수도 있고 다 좋은데 회사 이름에 그 수식어는 좀 떼고 하셨으면 하고 생각해 봤어요. 차라리 "선금완납설비" 이렇게 하셨다면 좀 이해도 가고 연락드릴때도 각오(?)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ㅋㅋ

일에 있어서는 다른 능력을 둘째 치고 제발... 일을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나에게 일을 주는 사람, 나와 일을 함께하는 사람, 내가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나 말이죠. 제발 일에 있어서 다른 것을 결부시켜서 진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ㅠㅠ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일을 하다보면 불필요한 일들에 소모되는 에너지나 절차, 관습/관례, 관계 등에서 매우 지칩니다. ㅠㅠ

맞아요 일은 일로만 접근하면 안될까요 정말? 사람때문에 일 관둔다는 사람들 이해가 안가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백프로 공감해요 ㅎㅎ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적은 오늘의 일기...
내용을 보니 담담하게 적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휴...;;

네 폭주하듯 써내린 후에 조금 다듬었어요 ㅎㅎ담담하게 적는 건 왠지 사실이 아닌 것 같아서 ㅎㅎ

저도 일할때 언니 오빠 운운하면서 접근하는 분들은 우선 경계를 먼저 하게되요. 다 그런건 아니지만 이상한 방식으로 일을 몰고가시는데 학을 떼서요.. ㅠㅠ
이런 일에 감정이 안들어갈수가 없지요!! 으윽 ㅎㅎ
P님이 온전한 P님이 되시는데 응원 보내드립니다!! :D

(글의 길이는 잘 줄이셨는데요?! ㅋㅋ)

응원감사해요!! 아마도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들과는. 처음엔 조금 넘어서 마지막 문단은 지우고 다시 썼습니다 ㅋㅋ

그런 인연은 정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것 같아요. 저도 요즘들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인연이 끊어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ㅠㅠ

네 오히려 안보고 사는 것이 편한 사람들이 있죠. 저도 아마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아아. 구구절절 제 최근 상황과 너어무 비슷해서 미간 잔뜩 찡그리고 읽었어요... 주먹구구식 일 처리, 일 시킬 때는 프로, 돈 줄 때는 아마추어. 이거 진짜 어떻게 안 될까요? 확 그냥.

확 그냥!!! ..... 사람은 쉽게 안변하더라구요ㅠㅠ

관계가 젤 힘든듯해여...겪어봐서 공감해요ㅎ

그나저나
thewriting 님은 여잔줄 알았는데 남자였고ㅋㅋ
emotionalp 님은 남잔줄 알았는데 여자였다닠!!
자꾸 빗나가는 촉ㅋㅋ

thewriting님은 남자처럼 보이긴했는데, 아 전 이미 다 아시는 줄 알고 그냥 쓴건데, 더 모른척할껄..아쉽다....ㅋ

헉.. 저도 P님이 남자분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ㅎㅎ
사실 저는 아론님은 여자분이신줄 알았었어요;; ㅎㅎㅎ

저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응?) p입니다 ㅋㅋㅋㅋ

저도 중성으로 지내다가 닉네임 챌린지에서 별뜻없이 밝혔는데 후폭풍(?)이 생각보다 심각하더라고요~ ^^

프사 이미지와 아이디의 영향일까요? 중성이 되고 싶어요!ㅋㅋㅋ

저는 현실에선 이미..ㅋㅋㅋ 그래서 첨에 저를 남자로 보셨단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_<

직장생활을 거의 해 본 적이 없어서.....
하지만 받아야 할 느낌은 전부 다 알고 가요 ㅎㅎ

ㅎㅎ제가 너무 감정폭발했죠...

일기 이벤트로 좋은 글들을 많이 만나네요.^^
역시 이해관계 속 조직은 녹록치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반가워요. (전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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