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오스터가 좋아... 라고 말하는 내가 좋아.

in #kr-overseas6 years ago (edited)

책을 읽는다는 자체가 ‘멋있는 행동’이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대학시절, 기대하던 딸이 좋은대학을 못가서 엄청나게 실망하셨던 부모님께서는, 등록금만 대 줄테니 나머지는 니가 알아서 해라... 라는, 야속한 말씀을 하시고, 진심 그 다음 학비는 대주지 않으셨다. 쌍둥이 오빠와 동시에 대학을 들어가 학비 부담이 컸던 것도 있었겠지만, 공부 잘하던 딸이라 자랑하고 내심 기대하던 두분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괘씸죄까지 더해져, 나는 진심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고 알바를 뛰어야 겨우 학비를 메꾸고 생활비를 벌어 쓸 수 있었다.

교수님이 소개시켜주셔서, 계속 과외 알바를 할 수 있었는데 그때 수능시험에 제2 외국어로 불어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을 내가 속성으로 가르친 적이 있었다. 보통은 저녁에 그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 쯤 집에 먼저 가서 어머님이 준비하신 다과를 먹으며 한 삼십분 이상을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 아이 집에 있는 엄청난 양의 책들에 압도 당해 그 책들을 하나 둘 집어들고 책을 읽기 시작 한 것이, 이렇게 내가 책과 그 시간을 즐기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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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집에서 살고싶다.

이미 그때 나는 하루키에 빠져 하루키 말고는 글을 읽을 수가 없다는 말을 지껄이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내가 겉멋이 들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학교가 마음에 안들었으니 당연히 같이 공부하는 애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써클에 가입해서 한동안은 정말 술만 쳐마실 때도 있었다. 마치 난 너네들과는 달라 라고 말하는 것이 책을 읽는 행위였다. 그러던 나에게 그 아이의 집은 나의 그런 허영심을 채워주는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몇십분 머무르다가 나중에는 한 두시간을 먼저 가서 그집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고, 다행히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이신 어머님은 그런 나를 예뻐하시고, 책이 읽고싶으면 언제든지 와서 읽으라고 하셨다.

아직도 기억하는 그 집 서재의 한 칼럼을 차지하고 꽂혀있던 ‘폴 오스터’ 의 작품들, 그리고 그것들을 들고 읽어나가며 느끼던 그 모든 감정들이 오늘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들으며 되살아났다.

그때 읽었던 책들은 이동진 작가가 말하듯, 내가 폴오스터를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녔던 것은 사실은, 폴오스터가 좋다고 말하는 나 자신을 좋아했던 시절에 대한 내 추억이었다. 지적 허영심의 발로에서 나온 그런 말들. 그래서 나는 작년 한국에서 책을 주문할 때 나름대로의 프로젝트를 계획했었다. 리뷰를 뒤늦게 쓰고 공유하는 지금, 어린 마음에 읽어냈던, ‘폴 오스터’, ‘오르한 파묵’, ‘하퍼 리’, ‘보르헤스’ 등등의 글을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읽어보고 글을 써보자...

그렇게 주문해서 가져온 책들... 은 사실 아직 내 집 어딘가에 먼지를 맞으며 쌓여있다ㅋ. 얼마전에 폴오스터의 [뉴욕 3부작]을 읽긴 했지만, 리뷰를 쓰기도 했지만 내놓기 손부끄러워 그냥 쓰는걸로 만족했고, ‘하퍼리의’ [파수꾼]도 읽고 메모만 해 둔 상태다. 나는 어떻게 그때 이 어려운 책들을 쉽게 쉽게 읽어냈을까...

팟캣 빨간책방에서 소개한 책은 이제 안읽을거라 생각했는데, 소개하는 책이나 내가 고르는 책이나 항상 비슷하거나 심지어는 같은 책이다. 이번 방송에서 다루는 책이 바로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이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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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부 방송이 있고 다음주에 2부 방송을 하는데 그 전에 다 읽어볼 생각이다. 진심 폴 오스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내 자신이 좋았는지, 아니면 진심으로 그의 글을 좋아했는지. 그리고 같이 주문한 [작가란 무엇인가]를 읽어봐야지. 주문만 해놓고 손도 안댄 책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오늘의 글을 끝낸다. 젠장, 또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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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있는 사진 너무 이상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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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작품을 읽은 건 『달의 궁전』 하나가 고작인데요. 제 인생 소설 중 하나예요! 사진으로 보니 반갑네요. 전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저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이동진의 빨간책방> 들은 지 오래됐는데요. 아직도 김중혁 작가와 함께 하나요? 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

아 기대되네요. 네 김중혁 작가랑 이다혜 작가님이 번갈아가며 패널로 나오세요^^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라고” “혹은” 이동진 씨가 자주 쓰는 표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저도 다시 듣고 싶어지네요. 답변 고맙습니다. ^^

ㅋㅋㅋ 맞아요. 딱 그 세가지... ㅋ 그 세분의 인간미 때문에 그 방송을 더 좋아하는거 같아요^^

북키퍼님!!
뉴욕3부작 리뷰 왜요~~
저 보여주세요ㅠ 저도 폴오스터 대학다닐 때...
항상 끼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 책꽂이에서 조차 사라졌어요ㅎㅎ
하루키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다시 읽고 싶지 않은 걸 보니 그게 다 허세였나봐요ㅎㅎㅎㅎㅎ

뉴욕 삼부작은 아예 포인트를 못잡았어요. 보통은 리뷰를 시작하면 지연스럽게 나오는게 있는데 뉴욕3부작은 다 쓰고나서 아무리 읽어봐도 알맹이가 하나도 없더라구요. ㅜㅜ 허세... 맞아요. 그렇게 본다는 저는 지금도 허세ㅜ 가방에 책이 없으면 안되는 강박증으로 제 가방은 항상 너무 무겁다는ㅜ

에이 북키퍼님은 아니예요~~^-^
저만요...ㅎㅎ

ㅎㅎ 저도 그런적이 있어서 요즘은 게임이든 책이든 독파하고ㅜ나서 둘러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좋은 책과 게임은 꾸준히 가치를 인정받거든요

맞아요 아무리 오래된 작품들도 아직까지도 좋은걸 보면 그러해요. 음악도 마찬가지 같아요. 우리가 사랑하는 머라이너캐리의 캐롤은 아직도 촌스럽지 않고, 이문세의 휘파람은 여전히 아름답고, 라디오헤드의 creep은 여전히 들을 때마다 찌릿찌릿하지요..

주문만 해놓고 손도 안댄 책들 멘트에서..휴우~ 했어요. 저두요거든요.
오늘 말씀해주신 작가 작품은 아직이라서 조만간 구경하러 서점가야겠네요.

네 다들 어린 취기에 멋부리던 책들요... 다시 읽을려고 하는데 영 손이 잘 가지 않더라구요...

폴오스터의 책은 아직 사놓고 못 읽어봤는데 키퍼님때문에 생각났네요.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

네 혹시 달의 궁전 있으시면 같이 읽고 리뷰 해보면 좋을 거 같아요. 자신은 없지만

진솔한 글이네요. 그러게요 가끔 그럴때 있죠. 어떠어떠한 행동을 하는 내가 좋은건지 그 행동 행위 자체가 좋은건지 헷갈릴 때. 참 우리 우리 자신을 반만 알고 사는 것 같아요.
저도 폴 오스터 읽고싶어졌어요 :)

우리자신의 반만 알고 있다라니... 갑자기 서글퍼진다 그죠? 폴오스터는 마음 잘 가다듬으시고 읽으셔야 할 듯요 ㅎㅎ 다 읽고나서 다시는 제 블로그에 얼씬도 안하실라
걱정됩니다
ㅎㅎ

저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네요~ 책을 읽던 안읽던 책장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맞아요~ 책이 가득 꽂힌 책장이 있는 집이면 어디든 좋을거 같아요

책을 읽는 있는 지식인듯한 모습에 대한 동경심과, 그것을 추구하려는 욕망이군요. 남들보더 더 고상하고 수준있어 보이고 싶은 욕망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직접 발견할 수 있는 내면의 층족감이 우선이지요.
어떤 인연을 통해서이든,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자 행운입니다.

지식인은 아니구요 ㅎㅎ 소싯적 저의 모습이 갑자기 생각나서요. 책읽는게 너무 좋은데 그때 읽었던 그런 책들이 갑자기 소환되는 계기가 있었어요. 원래는 그때 그 시절의 책들을 다시 읽고 리뷰를 써보자 였는데, 다시 읽어보니 왜이리 어려운지요... 그래서 몇권 읽고 포기하고 놔뒀다가 제가 좋아하는 팟캣에서 다루길래 다시 저의 프로젝트를 떠올리고 급 돌아와서 읽을려구요^^ 답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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