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계속되는 스팀잇 일기.

in #kr-diary6 years ago (edited)

1
방 치운다는 글을 올리고 아차 싶었다. 일단 내 방이 지저분하다는 것이 들통이 났고, 그간 고민과 시간을 열심히 눌러 써온 글 사이에 그 글만큼은 참을 수 없이 가벼워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같은 애가 보상거절을 사용하면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싶었다. 보상거절을 하니 ‘글’ 스위치 대신 ‘말’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2
나의 ‘말’ 과 ‘글’ 은 간극이 크다. 그래서 ‘말’ 로 만난 사람과 ‘글’ 로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나의 방식도 다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나만 이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나의 글을 지인들에게 보이는 것이 어렵고, 글로 만난 이들을 실제로 만나는 것도 어렵다.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질까봐서도 그렇고, 내 스스로도 어느 스위치를 켜야할 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3
그런데 마침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엄마의 사고를 겪으며 이미 한 번 꺾인 성격은 최근 더욱 침착해졌다. 도를 닦으러 간 것은 아니었는데, 아르헨티나에 있는 동안 마음의 평화를 얻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곳에서 섬을 만들어 살았으니까. 아무 것도 필요없었다. 조용한 기다림, 그리고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되었다.

4
나는 그 곳에서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매번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던 남미의 느려터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의 이야기, 나의 움직임, 나의 모든 것을 기꺼이 기다려 주었던 사람이 거기 있었다. 결국 나는, 타인은 물론이고 내 자신도 기다려줄 수 있게 되었다.

5
그러고 한국에 왔더니 아무도 그 누구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고 상대방의 속마음을 지레짐작했으며 서두르고 재촉하고 그 새 벌써 불만을 터뜨렸다. 차분하고 느긋해진 성격은 이 정글 속에서 한달도 채 가지 못했다. 그만 좀 채근하라고 짜증을 내버린 것이다.

6
친구가 아르헨티나는 어땠냐고 하는 것을 마음만은 만수무강 이었 다고 대답했다. ‘지상낙원’ 이나 ‘무릉도원’ 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한국어 서툰 척은 언제까지 해야하는 걸까. 다행히 글을 쓸 땐 늘 사전을 켜두고 몇 번이나 검토를 한다. 아, 이래서 더 오래 걸리는 거구나. 그 밖에도 나를 보면 꼭 물어오는 것들은 한국에 언제까지 있느냐, 앞으로 뭐할거냐 등이다. 모른다는 대답을 한참이나 하고 있자니 무력함을 느껴 다수결로 정하기 했다.

7
앞으로 뭐하지. 스팀잇으로 생활비는 벌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여지껏 스달을 꺼내 써본 적이 없다. 스달 한개에 US $15 를 웃도는 중에도 내가 모은 스달을 그림의 떡처럼 보고만 있었다. 돈이 급하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때는 아르헨티나에 있었으니까. 그러다 스달 가격은 하염없이 내려갔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8
그럼에도 계속 스팀잇을 한다. 가상화폐에 대한 무지와 욕심은 접어 두더라도, 글을 쓰는 것과 사람과 세상을 알아가는 것은 여전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9
게다가 나는 속도가 느려진 지금의 스팀잇이 좋기도 하다. 눈 깜빡하면 글이 쏟아지고 글 보상에 눈이 휘둥그래지던 때엔 스팀잇의 빠른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힘에 부쳤다. 그때는 질질 끌려 다니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스팀잇은 나를 기다려주는 것 같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천천히 쓰고,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천천히 읽어도 조바심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활기 넘치는 편이 훨씬 낫겠지. 나 역시 이제는 이 곳에 쓰던 시간을 취업준비에 적극 써야함을 깨닫는다. 아무래도 잔고가 비어있는 상태에선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니까.

10
월요일부터 순례길을 걷기는 다들 힘드실 것 같아서 일기를 썼다. 쓰고나니 일기가 아니라 그냥 이런 저런 단상이다. 고백같기도 하고. 요즘 번호 붙여 글 쓰는 게 유행이라던데, 나도 유행을 따르는 것처럼 보일까봐 번호 쓰기를 관두려다 어휴, 가지가지 한다. 라는 육성이 터져나와 깜짝 놀랐다. 하던대로 하자.

Sort:  

마음만은 만수무강... 너무 좋은데요? 문득 외국에 오래 살았던 친한 친구가 빠과가 살갛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 스프링님 만무수강하세요!

악ㅋㅋㅋㅋ 빠과가 살갛 ㅋㅋㅋ 라운디님 이렇게 나비처럼 와서 벌처럼 쏘고 가시면 저 어떡해요 ㅋㅋㅋㅋ 우리 함께 만수무강하다 길 위에서 만납시다! :-)

빠과가 살갛에 왜 웃는지 순간 몇초간 무표정했던..

A very nice post springfield, this is very useful for the crowd and especially for myself.
I get a new knowledge from your article.
Thanks for sharing and hopefully you will be more successful for your work ... :)
Check my article about Chocolate Spelt Greek Yogurt Waffles Maple Nut Butter Syrup - FOOD PHOTO SHOOT and if u want give me your feedback!
My article here Chocolate Spelt Greek Yogurt Waffles Maple Nut Butter Syrup - FOOD PHOTO SHOOT

스필님.....기분 너무나 이해된다는..............조용하고 느린삶에서 오는 마음의 평화..ㅠㅠ
글에서도 스필님의 머리 복잡함이 느껴지네요..그리고 번호쓰기는 스필님이 시작하신건데 왜 스필님이 망설이시나요ㅋㅋㅋㅋㅋㅋㅋㅋ(스달이 올라야 취업 없이 먹고 살텐데...스필님도..그리고 나도 ㅠㅠ)

쪼야님 지금 깨어 있어도 되는 시간이예요? (말이냐 방구냐..) 아마 저도 쪼야님도 나름 치열하게 살았어서 더 그런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조용하고 느린 삶 ㅠㅠ 속에서 그간 뿔뿔히 흩어진 나를 천천히, 하나하나 찾아오는 느낌이 들었는데. 한국(집)에 와서 다시 산산조각날까봐 ㅋㅋㅋ 부여잡고 있어요. 그리고 번호쓰기 망설이는 거 ㅋㅋㅋ 이젠 제가 남들 따라하는 거 같아서 ㅋㅋㅋ 정말 가지가지 ㅋㅋ (스달가격과 함께 점점 멀어지는 전업 스티미언의 꿈....ㅠ)

지금 프랑스도 아침인걸요!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죠.....스필님 마음을 완전 이해할만한...ㅠㅠ) 정말 그런가봐요 저도 스필님도 치열하게 살다가 겨우 평화를 찾았는데...스필님 꼭 붙들고 있어요...ㅠㅠ

스필님도 생각 많은 스타일ㅋㅋㅋㅋㅋㅋㅋ저도 참 안해도 되는 먼지같은 고민까지 많이한다는...(그래도 전 김리님 댓글에도 썼지만 고민하고도 그냥 함...변태 기질도 있어서ㅋㅋㅋㅋ) 우리 언제 전업스티미언 되는 거예요 ㅠㅠ 엉엉 하지만 하반기에 좋아질거란 소문은 있으니 희망을 버리진 말자구요 우리 ㅠㅠㅠㅠ

저의 마음을 이해할 만한 다른 이유!!! 밤을 새셨나요 ;ㅁ; 폭풍이 몰아쳐도 내게 강 같은 평화, 놓치지 않을거예요!! 사람들이랑 있으면 정신줄 놓고 있는데 혼자 있으면 세상 생각 자기 혼자 다하는 듯.....하아. 변태기질은 없는걸로 할게요. 전변협 자리 모자란다는 소문 있어서 ㅋㅋㅋㅋ 우리 어떻게든 남아서 스달 멱살잡고 끌어올려요 쪼야님! ㅠㅠ ㅋㅋㅋㅋ

'마음만은 만수무강' 그다지 틀린 표현 같진 않아요 ㅎㅎ
운율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글이고 말이고 참 어렵습니다.

좋은 글 쓰시는 분들 가리지 않게(여기에는 당연히 @springfield 님이 포함됩니다)
포스팅을 줄여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하다가,
어짜피 나는 포스팅 많이도 못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예전에 피드가 넘쳐날때에는 언팔로우를 열심히 해도 따라잡는게 힘들었는데,
이제 겨우겨우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네요.

암호화폐 호황일 때는 소소한 트레이딩으로 생활비를 조달하는게 가능했었고,
스달이 만원 넘어 갈 때는 정말 생활비를 스팀잇으로 조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다시 원화 채굴에 힘쓰는 생활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네요.
마음만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댓글 마무리를 어떻게 하지 ................

마음만은 만수무강 ㅎㅎ 정말 운율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것 참, 그러니 또 이뻐보이는군요. 그런데 좋은 글 쓰는 사람을 위해 @eversloth 님의 포스팅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은 편들 수가 없습니닷! 좋은 글은 누가 정한답니까? 사실 가치있는 글을 써야한다는 압박을 저도 종종 느끼지만, 그 가치를 평가하는 건 쓴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몫이라는 말을 듣고는 되려 부담을 버렸답니다.

원화 채굴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소명인가 봅니다 ;ㅁ; 게다가 저는 암호화폐에 무지해서 트레이딩은 어찌 하는 건 지.. 숫자와 그래프를 보면 눈이 핑글핑글 돌고요 @_@ 언젠가 스달스팀형제가 날아줄 것은 의심치 않으나 그때까지 먹고 살 식량이 필요하기에...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보고 뿜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여러가지로 고민이 느껴지는 댓글에 감사드려요 ㅋㅋ :D

큐레이션에 비해 포스팅 보상이 높아 포스팅 보상을 바라고 억지로 글을 쓰게 된다는 내용 보고 조심스럽게 되더라구요.
크게 컨텐츠 있는 글은 아니다 보니..

스팀스달이 날아오르길 바라며 방치중입니다 ㅎㅎ

저도 속도가 느려진 지금의 스팀잇이 아직은 좀 더 마음에 듭니다. 번잡하게 모두다 달려나가는 느낌에서, 지금 주위에는 누가 있지? 어디에 있지? 무얼 하고 있는거지? 라고 한번쯤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kr 태그가 붙은 (아직 제가 팔로우하지 않은/그리고 팔로우한) 여러 글들을 보는 것에도 찬찬히 천천히 살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말과 글의 간극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에는 사실 퇴고라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글에 비해 말은 상대방의 반응과 거리를 재가면서 조절한다는 특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글이 정적이라면, 말은 조금 더 동적인 움직임을 지닐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저는 번호 쓰기를 이용한 글 (개조식이라고도 하지요)을 읽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 번호들은 순차적으로 매겨져 있기는 하지만, 사실 10->4->5->7 -> ...등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사고의 흐름을 엿볼 수 있어서 즐겁기도 합니다. 왜 이러한 번호를 붙였을까 고민하다보면 의외의 흐름이 보이기도 합니다. :)

@qrwerq 님도 그러시군요 :-) 말씀대로 느려진만큼 여유가 생겨, 전쟁터가 휴식처가 된 느낌이 듭니다. 침체기가 되면 안되겠지만, 아직까진 괜찮은 걸로! :D

그러고보니 글과 말에는, 쓰는 동시에 상대방의 반응에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차이가 존재하는군요. 제가 때로 말보다 글을 선호하는 것도 그 정적인 기다림이 좋고 필요해서인 듯 하네요. 차분히 가라앉은 저를 살펴보는 의미도 있고요. 그래서인지 글로 먼저 만난 사람에겐 차분한 면모를, 말로 먼저 만난 사람에겐 활기찬 면모를 더 보여주게 되는가 봅니다.

@qrwerq 님의 댓글 읽고 저도 제 글의 번호 순서를 바꿔가며 읽어 보았는데 의외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도 있고 재미있네요. 실은 제가 번호를 붙여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의식의 흐름대로 쓴 것을 있어 보이게 하려고 딴에 꼼수를 부린 게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ㅎㅎㅎ

저는 항상 말 스위치를 스팀잇에 켜놓고 산답니다. 봄님 ㅋㅋㅋ

그렇게 많은 분들께 에빵님의 에너지를 전해주고 계시니 저희야 좋지요 :D 저도 댓글에서는 소심히 말 스위치를 키곤 합니다 ㅎㅎㅎ

확실히 스팀잇에 글 올라오는 속도가 줄었어요. 일주일전만 해도 평일에 퇴근하고 새벽에 스팀잇 로긴하면 피드에 어마어마한 양의 글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느정도 감당가능한 양이 있네요 ㅎㅎ 이러니깐 확실히 한템포 쉬어가면서 찬찬히 여러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
그런데 스달 15불 찍을때라니....! 어마어마하네요 ㅠㅠ

맞아요! 이젠 글들이 저를 기다려주고 있는 것 같아 고맙기까지 하답니다 ㅎㅎㅎ 그런데 스달 15불이 전설이 되는건가요. 그러면 안되는데 ;ㅁ;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때까진 꼭 현금화하는 법을 알아놔야 할텐데요......

스달 15불까지 쭉쭉쭉 잘 달려야할텐데 ... 또르르

좋아요. 천천히 가죠 뭐. 휴 밖에서도 정신없는데 여기선 좀 덜 치열해도 좋겠죠.

앞으로도 가지요리 잘 부탁드립니다.

어휴 가지가지한다 에서 입꼬리가 실룩거렸어요ㅋ 저도 자주 그러거든요ㅋㅋ 의도한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글 형식이 다른사람과 맞물리게되면 그런답니당 :-) 지금처럼 신경 덜 쓰셔도 된다 생각합니다ㅎㅎ

그런데, 스프링님 글에선 제가 좋아하는 분들의 댓글이 자주 보여요ㅎ 아마도 하고싶은 말은 있지만 쉽게 내뱉지 못하는것에 공감하는거 아닐까요?ㅎㅎ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6
JST 0.033
BTC 64167.02
ETH 2769.14
USDT 1.00
SBD 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