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켜진 침실

in #kr-diary3 years ago

 중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동생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잤는데, 아직 어둠이 무서웠던 동생은 스탠드를 켜고 자고 싶어했지만 나는 어두운 방에서 자고 싶어 그런 동생이 안심할 수 있게 도와가며 스탠드를 끄고 지냈다.
 그 중 하나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시작된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어낸 이야기들로 동생을 달랬다. 아직도 그 등장인물과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동네 아이들을 아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서 시간이 지나며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 생길 정도였다. 동생은 그 이야기들을 아주 좋아해서 나중에 각자의 방을 가지게 되고도 몇 번 내 방에 이불을 깔고 누워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지만, 10대 중반이 된 나는 그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다. 성인이 되고도 동생은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던데, 그 사실이 조금 부끄러울 때도 있다.
 다양한 신호들을 만들기도 했다. 신호들이 죄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침대를 한 번 치면 부르는 것이고, 벽을 2번 치면 이제 잠을 잘 것이니 부르지 말라는 신호였다. 아마 부르면 내가 있다는 걸 알려서 안심하게 하고, 벽을 2번 친 후에는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고 해도 겁을 먹지 말라는 의도였던 것 같다.

 각자의 방을 쓰게 되고는 원하면 불을 끄고 잠을 잘 수 있겠지만 10대 중반부터 나는 불을 켜고 자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새벽을 즐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벽을 즐기기 때문에 극도로 피곤한 상태로 불을 끄지도 않고 쓰러져 자는 날이 늘어난 것이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나의 시간은 새벽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별 다른 걸 하지도 않았다. '나의 시간'이라고 했지만 우습게도 나는 많은 새벽을 사람과 대화하며 보냈다. 내 기억으로 중3부터 고3까지 나는 날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어도 한 사람과 정기적으로 대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나눈 이야기도 많이 기억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였는지, 겪은 충격적인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갖고 있던 문제가 무엇인지 정도만 기억난다. 그렇게 새벽에는 불은 껐지만 자지 않았고, 다른 시간대에는 불은 켜고 잠을 자고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다른 공간과 구분되는 명확한 '침실'을 갖게 된 후로는 조금 변화가 있었다. 침실에 갈 때는 준비를 하기 때문에 불을 켜고 자는 일이 확연하게 줄었다. 그 역할은 거실로 옮겨갔다. 지금도 지친 상태에서 잠깐 쉬겠다며 소파에 누워서는 그대로 잠드는 일이 종종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예전의 느낌 그대로의 밤이었다. 고양이의 화장실을 치우기 위해 불을 켜고 정리를 하고, 바로 옆에 있는 전등 스위치를 누르면 될 것을 바로 침대에 엎어졌고 그대로 쓰러져서 잤다. 곧 잠에서 깨어났지만 불을 끄러 갈 기운은 없어서 그대로 다시 또 잤다. 아마 안경만 조금 안전한 곳으로 옮겼는데, 나는 이렇게 마구 잠들어서 항상 안경을 망가뜨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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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겐 그 시간들이 즐거웠나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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