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23. 메신저 by 로이스 로리 - 세상 어디에나 있는 그 마을

in #kr-book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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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억 전달자> 4부작 중 3편이다. 이 책만 따로 읽어도 되지만, 그 시대 배경이나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면 앞선 1, 2편을 먼저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1, 2편에 대한 독후감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21. 기억 전달자 by 로이스 로리 - 내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두려움

22. 파랑 채집가 by 로이스 로리 -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아니, 우리가 바꿀 수 있어


1, 2편을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이 시리즈의 시대적 배경을 먼저 설명하는 게 좋겠다. 전쟁으로 모든 게 폐허가 된 후 다시 재건된 미래 사회. 살아남은 사람들은 각각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자신들만의 사회를 만들고 발전시켜 나간다. 각 사회들은 생활수준, 법, 과학기술, 의술 등 많은 분야에 있어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데, 이들 간에 교류는 거의 없는 편이다.


출처: 교보문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사는 이상향


이 책에는 과거 1, 2편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이 겹쳐서 나오는데, 2편으로부터 대략 1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후의 이야기이다. 십 대가 된 소년 매티(2편에서의 맷)는 큰 걱정거리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신이 나고 자랐던 고향과는 달리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은 평화롭고 화목하며, 서로가 서로를 돕고 사는 이상향이었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다른 사회들은 좀 더 엄격하고, 과격한 곳들도 많았다.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신체를 훼손하는 벌을 내리는 곳도 있었고, 매티의 고향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은 야수가 사는 마을 밖으로 쫒아버리는 곳도 있었다.

지리적, 사회적, 법적인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각 사회들 간에 소통은 거의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흘러 흘러 풍문은 떠도는 법. 매티가 현재 살고 있는 마을에서는 장애가 있는 사람도, 외지인도 다 반겨주고 잘 살 수 있게 도와준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긴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이 마을을 찾아온다. 이렇다 할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몇 달씩 걸어야 하고, 중간에 강도를 만나기 일쑤인 데다, 이 마을로 오려는 사람들의 특성이 그러하듯 장애인도 많아서 미처 마을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이들은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 속에서 이 마을에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매티도, 매티를 돌봐주며 함께 사는 아저씨도, 심지어는 이 마을의 지도자조차도 모두 그렇게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서서히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가 아니다


자꾸만 외지인이 많이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돌봐주기가 힘에 부쳤다. 머물 곳도 마련해줘야 하고, 먹을 것도 나눠줘야 하고. 그들이 자립할 때까지 신경 써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리가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언제까지 외지인을 받아들여야 할까? 마을 사람들은 이제 ‘그들’은 ‘우리’가 아니라며 선을 긋기 시작한다. 외지인을 그만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그동안 여러 번 나왔지만 번번이 마을 회의에서 소수의견으로 묻혀버렸었는데, 이번에는 기어코 그 제안이 의결을 통과해버렸다. 이제는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마을 입구에 문을 만들고 봉쇄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언제까지 그들을 도울 것인가? 이제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점점 이기적으로 바뀌어 가는 동안 마을을 둘러싼 숲은 사악하게 변해갔다. 이 마을 사람들이 나가지도 못하게,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어오지도 못하게, 점점 더 울창해지고, 거칠어지고, 독을 내뿜게 됐다. 숲에 잘못 들어갔다가 죽는 사람도 생겼다. 매티에게도 신기한 변화가 생긴다. 자신도 모르던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매티는 자신의 변화, 마을 사람들의 변화, 숲의 변화가 모두 낯설기만 하다.

날쌘 몸으로 마을 곳곳을, 때로는 다른 마을까지 다니면서 편지를 전해주는 ‘메신저(messenger)’ 역할을 해왔던 매티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이제 곧 마을 입구를 봉쇄하고 문을 닫을 거라는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이 헛걸음 하지 않도록 마을 입구 훨씬 밖에도 안내문을 붙여야 했다. 게다가 같이 사는 아저씨는 그에게 마을 문이 봉쇄되기 전에 이웃 마을에서 소중한 사람을 데리고 와 달라고 부탁한다. 매티는 과연 이 일들을 잘 끝마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새로이 생긴 신비한 능력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미처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숲은 점점 더 사악해져서 목숨을 위협하는데, 이 모든 임무를 마치고 아저씨의 소중한 사람을 데리고 마을 입구가 봉쇄되기 전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매티가 사는 마을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을수록 매티가 사는 이 마을이 미국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물론 미국이 이 책에 나오는 마을처럼 완벽한 이상향은 아니지만) 생각이 들었다. 이민자들이 힘을 합해 세운 나라, 이민자들의 천국. 어떻게 해서든 미국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불법 체류도 마다하지 않고, 배 밑에 숨어서, 트럭 짐칸에 갇혀서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을 더 이상 반기지 않는 미국인들. 멕시코 국경에 벽을 세우겠다고 공약을 내건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현재의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는 내게 이 책의 내용은 더욱 깊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 책은 미국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만 혹은, 우리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지역 이기주의, 소중한 가치를 점점 잃어버리고 헛된 것에 집착하고 있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세태도 꼬집고 있다. 1, 2편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3편도 권해주고 싶다.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마디

1.

Where Matty had come from, flaws like that were not allowed. People were put to death for less.
But here in Village, marks and failings were not considered flaws at all. They were valued.

매티가 살았던 곳에서는 장애가 용인되지 않았다. 아주 작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죽음을 면치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서는 반점이나 약점 같은 것이 전혀 장애로 인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인정해주고 있었다.

2.
학교 선생님이기도 한 자신의 아빠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딸 진(Jean). 아빠는 항상 시, 언어, 문학을 소중히 여기셨었다.

It was so important to him and he made it important to me: poetry, and language, and how we use it to remind ourselves of how our lives should be lived…

그건 아빠한테 굉장히 중요한 거였어. 아빠 덕분에 그것들은 나한테도 중요하게 됐고. 시나 언어 같은 것들 말이야. 그런 것들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준다고 하셨어.

3.
태어나면서부터 다리가 불구인 키라. 그녀를 돕고 싶었던 매티는 키라의 다리를 고쳐주려 한다. 다리를 고친 후에는 온전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는데, 키라는 매티의 호의를 거절한다. 자기는 지금도 온전하기 때문에.

“You can use that time to become accustomed to being whole…”
“I am whole,” she said defiantly.

...

A lifetime of walking in that way had made it, as she had pointed out, part of her. It was who she was. To become a fast-striding Kira with two straight legs would have been to become a different person.

“그 시간을 이용해서 온전한 몸상태에 익숙해지면 돼요…”
“내 몸상태는 지금도 온전해.” 그녀가 반항적으로 대꾸했다.

...

그녀 자신도 말했지만, 평생을 그런 식으로 걸어왔던 게 이제는 그녀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 모습이 바로 그녀 자신이었던 것이다. ‘곧은 두 다리로 빠르게 걷는 키라’가 되는 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한국어판 제목: 메신저
원서 제목: Messenger
저자: Lois Lowry (로이스 로리)
특이사항: '기억 전달자(The Giver)'의 후속작. 총 4부작 중 3편.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책을 소개하기 위해 전반부의 줄거리만 일부 제공될 뿐 본 독후감에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독후감] 지난 독후감들 최근 5개 링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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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모모 by 미하엘 엔데 - 느긋하게, 숨 한번 내쉬고
19. 이름 뒤에 숨은 사랑 by 줌파 라히리 - 이름을 바꾸면 행복해질까?
20. 잃어버린 세계 by 마이클 크라이튼 -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21. 기억 전달자 by 로이스 로리 - 내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두려움
22. 파랑 채집가 by 로이스 로리 -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아니, 우리가 바꿀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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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국가들의 자국민우선보호주의가 새로운 우파들의 이념으로 떠오르는것과 겹쳐보이네요. 흐음.....

그렇죠? 이 책이 나온지 꽤 됐는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소름돋을 정도에요. 사람의 본성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걸까요? -_-;;

과거 사람의 목숨이 굉장히 가벼웠던 시절의 철학과 사상가들의 말들을 살펴보면 지금에도 적용되는게 꽤 많더라구요. 특히 저는 멜서스의 인구론이 지금의 세계경제상황과 딱 들어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읽으면서 탈북자들 생각을 했어요. 예전과 다르게 한국사회는 탈북자들을 썩 반가워하지 않는 거 같아요.
그들에게 나오는 지원비가 달갑지 않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기도 하고요. :)

색을 수집한다는 지난 책도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은 읽고나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책인 거 같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브리님. :)

탈북자 문제도 있고, 다문화 가정도 있겠네요. 삶이 각박해질 수록 우리와 그들을 자꾸 구분짓는 거 같아요.
읽어주셔수 고맙습니다. :)

이제 그들은 우리가 아니다...

현 시대를 보는듯 하네요! 난민을 향한 각국의 태도들...
좋은 책 소개 잘 봤습니다~ 좋은하루 보내세요^^

그렇죠. 난민들도.. 작가가 미래를 내다보고 쓴 건 아니겠지만.. 그래서 작가가 위대한가 봐요. :)
독거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트럼프 생각이 ㅠㅠ 시리아 난민들 생각도 나고 ㅠㅠ
뒤 내용이 너무 궁금해지네요. 마을은 어떻게 되고 매티는 어떻게 되는지....

그게 어떻게 되냐면요. 마을이 이제... 그래서 매티가... 음, 읽으셔야합니다. ^^;

매티가 느꼈을 그 느낌이
제게도 매치되네요

결국..
우리가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별 볼 일 없는 존재임을 부인하지 못하지 싶습니다.

사실.. 댓글을 더 쓰긴 했는데 지워버렸어요 브리님
오늘은 글이 계속 꼬이네요 ㅜㅜ
아무래도 제가 판단한 어제의 거래가 꼬여서리 생가까지 꼬인 모양입니다 ㅜㅜ

이렇게 생각하면
투자에 있어서도 제 맘속에서도 우리와 그들이 싸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ㅜㅜ

멋진 독후감에 댓글이 이게 머야 ㅠㅠ

ㅎㅎㅎㅎ 소철님! 독해는 안 되지만 이해는 되는 댓글입니다! 꼬여있는 실타래가 잘 풀리길 바랄게요.
올 한해도 힘내서 같이 나가요! ^0^

브리님의 책 소개글 출판사에 사야가 하는 거 아닌가요?
영화 예고편 글로 본 느낌이네요 ㅎㅎ

외지인, 이방인, 이민자에 대한 시선은 큰 사회든 작은 사회든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매티가 살아가는 마을에서 나타나게 된 변화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문득 저 또한 사회에서 이방인을 향해 따뜻한 모습을 보였는지 의구심이 드네요.

빼앗길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내것에 대한 욕심이 너무 앞서가서 그런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게 참 쉬운일이 아닌가 봅니다.

맞습니다. 가진 게 조금이라도 생기면 그걸 지키기 위해 서슴없이 발톱을 드러내죠. 저는 과연 거기에서 자유로운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자꾸 자신을 돌아봐야 하나 봐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

저번에 서점 같을때 사려다가 못사고 왔는데 조만간 가서 읽어야겠어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호기심 자극이 되는것 같아요

그쵸? 내용도 재미있고, 읽으면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어요.

나도 이렇게 글 잘 써보고 싶다.....

어.. 뭐라고 댓글을 남겨야하죠? ^^;
고맙습니다! :)

이 책의 스토리가.. 미국 같기도 하고,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여러 이슈가 있었던 유럽나라들도 떠오르게 하고.. 정말 소설속 만의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ㅠㅠ 우리나라에서도 큰 문제가 될 부분이라서... 얼마전에 뉴스를 읽었는데 우리 나라 국민들이 낸 의료보험료로 외국인들이 혜택을 보고 있다 뭐 그런 내용이였는데 건강보험을 받을 수 있는 외국인들이 늘어남에 따라서 나라의 재정적인 부담도 늘어가고있다 뭐 그런 내용이였거든욤..주변을 보면 병원비가 없어서 치료를 못받는 자국민도 있는데...외국인까지 혜택을 보게 해야하나 라는 생각도 들고... 브리님 독후감을 읽으면서 저 혼자 아침부터 심각하네요! ㅎㅎ 아무튼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헤헷

맞아요. 그런 문제도 있지요. 미국에서도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정책이 있는데 시민권자가 아니어도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세금은 내가 내는데 혜택은 왜 저들에게 주냐.. 고 역정을 내는 사람들이 많죠. 하다못해 대학 등록금을 면제하자는 운동에도 왜 내가 낸 세금으로 다른 인종 아이들 학비까지 내줘야 하냐고.. (백인은 주로 아이들이 적고, 흑인이나 히스패닉은 아이들이 많으니 그들이 더 혜택을 본다는 주장을 하더라고요.)
여기나 저기나 문제가 많긴 해요..
그래도 히바님은 유쾌하게 하루 시작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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