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강아지를 위한 부적

in #kr-art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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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강아지 짱돌이가 죽었다. 2015년 겨울이었다. 강아지로 태어나 살 만큼 살았고, 몸이 심하게 안좋았으므로 짱돌이의 죽음은 어느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그 당시 가족이 각자의 사정으로 흩어져 있어서 집에는 짱돌이와 나, 단 둘만 있는 시간이 많았다. 외출하여 집에 돌아올 때면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내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혹시라도 홀로 죽어있을지 모를 짱돌이의 죽음에 대한 대비와 상상을 매일 해야했다.

급하게 현관문을 열어 짱돌이가 살아있음을 발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장면은 결국 오래가지 않았다. 상상속에서 매일 연습했던 짱돌이의 죽음이었지만 막상 가족같은 동생을 보내고 나니 슬픔보다는 세상이 멈춘 듯 정신나간 사람처럼 한동안 멍 하니 앉아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짱돌이를 쇼핑백에 넣어 미리 봐두었던 뒷산으로 삽을 들고 올라가 나무 밑에 고이 묻어주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껌껌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윽고 울음은 터졌다. 눈물은 삼주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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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마를 무렵, 이미 죽은 짱돌이었지만 난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그를 위한 부적을 디자인했다. 부적에는 짱돌이가 평소에 쓰던 밥그릇 모양, 뼈다귀 장난감, 무덤의 형상, 영혼을 달래주는 세 명의 정령들, 봄에 자연으로 다시 환생할 새싹 등을 형상화하여 그려넣었다. 그리고 짱돌이가 묻힌 땅 바로 앞에 있는 나무기둥에다가 부적을 먹으로 새겨주었다.

나는 불교신자는 아니었지만 부적을 그려주면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으며 짱돌이의 환생을 강력히 믿었다. 그리고 매일 무덤으로 찾아가 인사를 나눴다. 계절은 바뀌어, 봄이 되었다. 짱돌이가 묻힌 나무는 목련나무였다. 나는 목련꽃으로 활짝 핀 짱돌이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따뜻한 어느 봄날, 무덤을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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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에 바쁜일이 있어 일주일동안 무덤을 못갔었는데 그 사이에 목련꽃은 이미 다 바람에 날리고 떨어져버렸다. 실망을 감추지 못하며 무덤 주위를 배회했다. 그런데! 무덤과 가까운 나무기둥 아래쪽에 딱 한 송이의 목련꽃이 아직 지지않고 날 기다리며 기적적으로 피어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짱돌이었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언제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현실 속에 자신을 몸 담을 필요는 없다. 이성의 역할이라는 것이 어떤 때에는, 인생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기도 한다. 가령 내가 짱돌이의 부적을 그리는 행위도, 목련꽃을 보며 기뻐한 나의 행위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적 세계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 한 송이 목련 꽃은 짱돌이가 죽기 한참 이전부터 그 곳에 항상 피어왔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그런 쓰잘데기 없는 진실 따위는 믿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꽃피는 4월이 되면 나는 다시 짱돌이를 만나러 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짱돌이의 목련 꽃처럼 탄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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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설엔 짱돌이 부적을 차례상 한 켠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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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돌이를 생각하며 쓴 시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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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시도, 생각도요.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언제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현실 속에 자신을 몸 담을 필요는 없다. 이성의 역할이라는 것이 어떤 때에는, 인생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기도 한다. 가령 내가 짱돌이의 부적을 그리는 행위도, 목련꽃을 보며 기뻐한 나의 행위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적 세계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짱돌이의 목련 꽃처럼 탄생했을 것이다.

이 두 부분이 공감갑니다. 저도 이성적이려고 하지만 때론, 그런 게 무쓸모 해질 때 공허를 느끼고 다 내려놓습니다. 많은 걸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짱돌이의 명복을 빕니다.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는 마음껏 감정을 발산하고 무논리로 가득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명복을 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에 한 녀석 보낸 기억이 나서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방 한구석 채워주고 있던 존재가 아무런 인과 없이 사라져버리던 것에 매우 슬퍼했고 상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종종 사진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강아지들은, 자신이 먼저 건넌 무지개다리에서 주인들이 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잘 지내고 있다고 목련을 먼저 틔워주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시간이 지나니 무뎌지더라구요. 제 명에 죽은 강아지이니 격한 슬픔도 한때구요. 저 그 말 참 좋아합니다. 무지개 다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요. 죽음의 순간에도 뭔가를 기대할수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동생을 정말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애도해주셨군요. 저도 세상의 온갖 진리보다 목련꽃 하나같은 기적을 더 믿으며 살아갑니다. 고맙습니다.

뭔가를 하고 의미부여 하고 그러니까 좀 낫더라구요. 스스로의 위안일 뿐이지만 그렇게 해야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와 닿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기억은 글자가 되길 거부한다. 단 몇 마디의 단어로 굳어질까봐.

@thelump 님이 짱돌이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어요. 저도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기억이 있어서 그때 생각도 나고.. 시간이 약이여서 상처는 아물지만 상처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그 상처를 보면서 그리워할 수 있어서 전 그것도 좋아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추억이 있고 가끔 그것을 그리워할 수 있는 것도.. 참 소중한 것이죠..!

끝까지 못 읽고 보팅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지도 옛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쓴글이 있어 올려봅니다.
https://steemkr.com/kr/@golfda/5uszbo

골프다님 잘 읽었습니다.. 에효. 사람이 죽으면 자기가 생전에 키우던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정말 진짜였으면 좋겠네요.

3월의 시작을 아름답게 보내세요^^
그리고 진정한 스팀KR 에어드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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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참 간사하지요. 오늘 댓글 다신 것 보고 기억을 떠올립니다. 며칠 전 봇팅 하려다 까먹은거 이제 합니다.

감사합니다 :)

가슴이 먹먹해 지네요
저도 비슷한 추억이 있었네요
화장 해서 나무밑에 묻었구요~~^^

봄이 되면 항상 새 잎으로 피어날 우리 강아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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