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건 이상한 거지

나는 보기보다(?) 욕을 잘한다. 체구도 작고 꼬꼬마 같은 생김새로 인해 내 첫인상은 좋게 말하면 편안하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만만하다. 어린 시절, 일탈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겉모습을 만회하기 위한 방안으로 거칠게 욕하기를 택했다. 순해 보이지만, 네 생각대로 난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내 입에서 내뱉는 걸쭉한 욕에 놀라 움찔하며 내 눈치를 살피는 사람을 마주할 때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강함은 욕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욕하는 자신의 모습은 없어도 너무 없어 보인다. 너무 절박해 보이거나 저급해 보였다. 어느 순간 이유를 막론하고 욕을 자제하게 되었다.

그래도 예외는 있었다. TV에서 피의자의 뻔뻔한 행색을 보거나 참회는커녕 자기변명 하기 바쁜 이기적인 사람들을 볼 때 내 입에서는 거침없이 쌍욕이 튀어나왔다. 또 내가 아끼는 사람이 힘들어하거나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는 감정 몰입하여 무조건 그 사람 편을 들고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감히 우리 OO를 괴롭히다니!

오늘 다급하게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 일처럼 속상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수모를 겪고 억울함을 쏟아내는 친구에게 예전처럼 편히 쌍욕을 날려줄 수 없었다. 아니 그들이 '이상하다'는 말조차 조심스러웠다. 나는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유난스러운 게 아니야.'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들이 배려가 없고 염치도 없으며 일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건 명백했다. 그들은 따뜻하지도 친절하지도 어른스럽지도 않다. 그런데도 '이상해'라고 힘주어 말하지 못한 건 내가 믿는 상식이 때로는 세상의 상식과 다르다는 충격적인 경험을 여러 번 한 데 있다. 억울한 어조로 '이런 사람 본 적 있니?'라는 친구의 질문에 기억 회로를 뒤지며 분명 내 인생에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은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너무 힘들겠다. 어쩌지. 너무 어렵다.'라는 도움 안 되는 결론을 내리고 전화를 끊었다. 우리의 현자 L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하고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물으니, 그는 평소답지 않게 명확하고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네. 이해가 안 가는데?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어."

그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뱉고 마음 편히 '그건 진짜 이상해.'라고 친구에게 말을 전했다.


그러고 보니 요새 마음속으로 '그럴 수 있어.', '다를 수 있어.'라는 주문을 새기고 다닌다. 물론 배려 없이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두겠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싫겠지만, 단지 난 그들과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취향의 문제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그들은 이상하고 잘못되었어라고 섣불리 결론 내릴 수 없어졌다. 그들도 그들 세상에서 나름의 논리와 규율이 있을지도 모르니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말이 날 불편하게 하거나 누군가가 미울 때 혹시 내 문제 아닐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한다. 그들의 모습 중 나의 콤플렉스나 취약성이 투과되어 내가 불편한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들의 모습에 부모님과 나의 관계에서 내 모습이 보여 부끄러워서 단번에 그들이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왠지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모습으로 비치고 있을 것만 같아서.

누군가의 잘못을 짚을 때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뭐 얼마나 잘났다고. 내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나. 정말로 걸리는 게 하나 없다면 현자의 마음이겠지만, 사실 불편하고 싫은 구석이 얼마든지 찾는 데도 찾을 때마다 찔려 억지로 말을 삼키게 된다. 판단하지 말자고.

편협한 사고방식을 유연하게 바꿔보려 한 노력이 어쩐지 영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그저 맹탕의 회색분자가 된 기분이다. 웬만하면 그럴 수 있다고 둥글둥글 넘어가고 싶다는 마음 반, 그래도 이상한 건 이상한 거야. 세상에 이상한 건 분명 있다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반이다.

아니 나 역시 완벽한 건 아니지만, 그건 진짜 이상해. 라고는 말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아닌 이상 정말로 어떤 것도 이상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거라고? 세상 이상하단 소리를 한 적 없는 L이 이상하다고 했을 때 어찌나 짜릿하던지!


P.S. 자아분열도 아니고 ...

2021년 5월 9일, by 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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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onths ago 

@tipu curate 1

며칠전에 직원이 저의 단점을 지나가는 식으로 말했을 때, 그 말이 하루종일 마음에 걸렸어요. 비판하려고 한 말이 아닌데도 혼자 화를 내고 있더라고요. ㅎㅎ

저라도 누가 악의없이 저의 단점을 말하고 그것이 사실이라해도 내내 신경이 쓰일 거에요 ㅠ 힝 사람인 이상 기분까지 괜찮긴 어렵더라고요

저는 생각보다 소심해요. ㅎㅎㅎ

 2 months ago 

으뜬 느미 도잠님께 그런 믁믈을!!!

무조건 내편 팥쥐님.ㅎㅎㅎ

 2 months ago 

다름은 인정하지만 그 사람들을 이해할 필요는 없을 듯 해요
그냥 차단!!!
고물님 위로 스킬이 만렙이시네요^^

어후 저라면 진즉 차단 근데 친구는 차단할 수 없는 관계라서 눈물이 ㅠ
위로 스킬은 아직도 멀었죠. 위로만큼 어려운 게 없드라구요

내가 아끼는 사람이 힘들어하거나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는 감정 몰입하여 무조건 그 사람 편을 들고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rpg로 치자면 바드 셨군요

앜ㅋㅋㅋㅋ 바드가 뭔가 했더니 여기서 나온 거군요

그날 고물님이 계셨더라면 달랐을 수도 있었겠어요

읭? 그날이 어떤날일까요?

 last month 

L은 죽었는데요..

헉..ㅋㅋ 데스노트 말하는건가요? 제 남편 죽이지 말아주세요

 last month 

아..L이 배우자분이셧군요..

죄송합니다 유유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