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빳사나명상수행일지] 3일 차 에너지 스크루지

난 에너지 스크루지였어...!



본 글은 진안에 위치한 '담마코리아 명상 센터'에서 위빳사나 10일 명상코스를 체험한 후 적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수행일지입니다. 담마 혹은 위빳사나 명상과는 다른 필자 개인의 의견이 첨부되어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위빳사나 명상을 앞두신 분께는 이 글을 통해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명상이 끝날 때까지 이 글을 읽지 않으시길 권고 드립니다. 위빳사나 명상가분의 피드백과 체험 공유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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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생각을 오후까지 하고 나서는 저녁엔 드라이기 때문에 고통받았다. 저녁에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좋은 드라이기가 자리에 없었다. 다른 일을 먼저 하면서 드라이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정리를 하면서도 귀의 신경은 온통 복도의 발자국과 드라이기 소리에 쏠려있었다. 드라이기 소리가 멈추고 발자국 소리가 나면 공용 드라이기 통에 드라이기가 반납되었는지 미어캣처럼 확인했다.


그때마다 그 드라이기는 없었고 실망스러웠다. 명상하기 약 15분 전, 드디어 내가 찾던 드라이기를 누가 통에 도로 반납하는 걸 보았다. 기쁜 마음도 잠시, 그곳 근처에서 다른 드라이기를 쓰던 사람이 재빨리 쓰던 드라이기를 내려놓고 그 드라이기로 바꿔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바람이 약한 드라이기를 방으로 가져왔다. 그 순간 내가 드라이기에 엄청나게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 집착하는 마음이 조금도 옅어지지 않아 너무나 놀라웠다. 처음 여기에 올 때만 해도 아예 드라이기가 없을 수 있다고 각오하고 왔고, 드라이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해도 실제로는 별 문제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날 기대 없이 드라이기가 있는 걸 발견하고, 우연히 사용해본 드라이기의 바람이 너무나 강력하고 시원했기 때문에 그만 그 드라이기와 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빠지다 못해 샤워가 끝나고 되도록이면 내 것도 아닌데 당연히 그 드라이기를 쓰고 싶었다. 다른 약한 바람의 드라이기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다.



3일 만에 내 것도 아닌 공용 드라이기에 집착하게 되다니! 물론 그 드라이기는 좋다. 누구나 그 드라이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강한 집착과 낭패감을 드라이기에 이입하는 건 좀 이상하다.



곰곰이 이 마음과 과거의 기억과 내 몸의 감각을 따라가면서 내가 머리를 말리는 행위 자체를 혐오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머리를 말리는 건 귀찮고 팔이 떨어질 듯 아프고 30분이나 시간을 잡아먹었다. 머리카락이 소중하고 고맙기보다는 귀찮아 죽겠고 지긋지긋했다. 머리를 말리는 데 쓰는 시간은 내게 있어 버리는 시간이었다.


평소 스스로 비효율의 끝 편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에너지 스크루지였다. 내 기준으로 쓸데없고 가치 없는데 내 시간과 노력, 에너지를 쓰는 걸 끔찍이도 아까워했다. 누군가와 깊고 의미 있는 대화를 하루 종일 나누는 건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고 책을 읽거나 콘텐츠를 감상하며 통찰하는 데에는 며칠을 소비해도 괜찮았다. 택시를 타고 가면 빠를 거리를 굳이 천천히 걸으며 산책하는 것도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그렇지만 머리를 말리는 것 같은 신체를 돌보는 일이나 집안일, 쇼핑, 빨래 등 일상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으로 행해야 하는 모든 일은 내게 귀찮고 불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배당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거기에 에너지 스크루지는 조금도 에너지를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단적으로 결혼식 때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도 너무 아까워서 누가 뭘 물어보면 최대한 순식간에 결정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별 중요하지도 않지만 결정해야 할 사항이 어찌나 많던지 퍽이나 귀찮았다)



어떻게 자신이 에너지 스크루지 인지도 몰랐지?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 나 에너지 스크루지였구나. 그래서 일상적으로 영위해야 하는 모든 일이 귀찮고 하찮아서 잘 되지 않을 때면 필요 이상으로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났던 거구나!



호흡을 바라보고 코끝에 감각을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것뿐인데도 그동안 잊고 있던 마음을 알게 되었다. 보지 못했던 나를 보게 되었다. 평범한 삶을 떠나 수행하는 소중한 이들과 다시 이어지고 그동안 몰랐던 나를 지배하던 생활 습관과 양식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는 고작 드라이기에 집착하는 날 보며 굉장히 실망스러웠을 텐데 이 두 생각에 차이가 없다는 걸 알고 드라이기에 집착하는 내가 밉거나 혐오스럽지 않았다.


삶의 예술… 위빳사나 명상은 내게 또 무얼 알려줄까? 위빳사나는 보편적이지만, 각자의 인생에 찾아드는 위빳사나가 가르쳐주고 알려주는 지혜는 상대적이고 개별적이다. 위빳사나는 내게 앞으로 더 무얼 가르쳐주고 무얼 알려주고 무얼 느끼게 해 줄까?


가보기로 했다. 모든 의심은 버리고 전적으로 담마의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기로 했다.


2022년 5월 14일, by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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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함께 공부 잘 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2 years ago 

오늘은 드라이기 덕분에 깨달음 하나 얻었네요
매일 깨닮음의 연속입니다^^

맞아요. 일상 속 깨달음이 있더라고요.
드라이기에 얼마나 꽂혔는지 결국 집에 와서는 하나 구매하고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물욕이 폭발하는 명상체험 ^_^)ㅋㅋㅋ

담마코리아만의 그 사소한것에도 배울점이 퐁퐁 샘솟는 그런 느낌?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도 그래보려 합니다 ㅎㅎ

처음엔 사실 뭔가 삭막하다라고도 느꼈어요. 일상 속에서 중심에 비교적 머물러 있다가 삑사리(?)가 날 때 딱 그런 깨달음이 오는 것 같아요.

제 이야기 같습니다. 저도 일상의 일들을 힘들어 하는 편이라...

오, 일상의 자잘한 루틴들에 지칠 때가 있으시군요. ^_^

잘 읽었습니다~
호흡에 집중만 했을뿐인데 보지 못했던 자신을 보게 되다니 너무 좋군요!!
혹시 전에도 정식으로 수련을 받으신 적이 있으세요? 아니면 혼자서 명상을 오랫동안 해오신 건가요?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있다는 말을 체감하던 순간이었어요.
이전에 정식 수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언제나 진지하게 나름대로의 명상을 이어오고 많은 생각을 해왔습니다. 제 인생의 우선순위는 굳이 표현하자면 언제나 '자아성찰', '자아발견'이었거든요.

자세한 답변 감사드려요
환경만 달라졌을 뿐 일상에서의 명상을 실천하고 계셨던거군요!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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