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빳사나명상수행일지] 3일 차 숨긴 적 없지만 숨어있던 마음

그때는 미쳐 다 헤아리지 못했던 마음



본 글은 진안에 위치한 '담마코리아 명상 센터'에서 위빳사나 10일 명상코스를 체험한 후 적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수행일지입니다. 담마 혹은 위빳사나 명상과는 다른 필자 개인의 의견이 첨부되어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위빳사나 명상을 앞두신 분께는 이 글을 통해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명상이 끝날 때까지 이 글을 읽지 않으시길 권고 드립니다. 위빳사나 명상가분의 피드백과 체험 공유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Copyright 2022. @kamoverse





아침에는 강한 안개가 깔려 강가를 걷는 것만 같았다. 오늘도 흐린 날씨구나. 아침 명상을 끝나고 나오는 길 언제 그랬냐는 듯 180도 바뀐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푸른 하늘과 태양을 쐬자마자 단순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도망칠 마음은 완전히 사라지고 마음은 한층 평온해졌지만, 앉아있을 때 신체적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고통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내 관심을 끌고 나를 방해했다. ‘그래, 그래, 네가 아프고 고통스럽다는 걸 알아. 그렇지만 난 명상을 할게. 앞으로 몸의 고통이 모든 향방을 결정하는 건 아니야.’




그렇게 마음을 이완하면서 관여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몸에 완전히 힘을 뺐다. 저려서 죽을 것만 같던 다리가 놀랍게도 조금 나아지고 혈액순환이 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이 고통과 통증조차 사실 내가 만든 거다. 이 고통을 만든 원인은 나였다. 바른 자세로 앉지 않았고, 몸을 꾸준히 돌보고 챙기지 않아서 나의 몸이 비틀리고 굳어져서 보내는 구조 신호일뿐이었다. 몸을 경시하면 아프니까 몸 좀 잘 돌봐달라고 그저 알려줬을 뿐이다.


내내 긴장하며 살았다. 펜을 잡을 때도 꾹, 누군가와 만날 때도 어깨와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힘을 빼고 몸이 이완되는 건 잘 때나 가능했다. 아니 가끔은 잘 때조차 다리에 힘을 주고 자서 쥐가 나서 비명을 지르며 새벽에 깨곤 했다. 30년이 넘도록 몸은 혹사당하거나 무시를 당했다. 몸이 굳지 않는 게 이상했다. 장시간을 앉아있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명상을 해서 아픈 게 아니었다. 내가 몸을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고 착취해서 아픈 거였다.


신기하게도 몸에 힘을 빼고 모든 걸 몸에 맡기니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것보다 통증이 훨씬 덜했다. 그러나 조금씩 오른쪽 혹은 뒤쪽으로 몸이 점점 기울어졌다. 평소라면 바로 자세를 고쳐 잡았겠지만, 계속 놓아두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몸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넘어질 듯 넘어질 듯 그러면서도 꽤 오래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상체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했다. 앞뒤로 사람들이 조용히 명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뒤로 넘어가겠다 싶은 순간이 되자 눈을 뜨고 일어나 몸을 바라보았다.



인정해야 했다. 내가 살아온 나날이었다. 지금의 몸의 모습은 내가 만들었다. 그러니 누굴 원망할거나 탓할 거 없었고, 누군가와 비교하며 자책하거나 책망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었다. 내가 몸에게 해온 나날은 내가 제일 잘 이해하고 있다.


몸, 네가 나의 주인은 아니다. 네가 단지 편안하거나 좋은 감각을 느낀다는 근거로 모든 걸 결정할 수 없다. 때로 나는 너의 불편한 감각을 무시하고 네게 참으라 견뎌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를 잘 돌보고 사랑해야 했다. 좋은 음식을 먹이고 무리가 되지 않도록 쉬고 너의 건강을 돌보고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내며 살 수 있도록 관리해야 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 미안해. 앞으로는 네게 관심을 지니고 너의 고마움을 느끼며 너와 함께 잘 살도록 노력할게. 그러니 너도 지금처럼 나를 도와줘. 당장 지금 너는 삐뚤어지고 비틀려서 오래 앉아있기도 고통스럽지만, 조금씩 바로잡아 나가고 더 건강해지면 통증 없이도 균형 잡힌 자세를 만들 수 있겠지.


누군가를 위해서도 누군가가 날 불안하게 해서도 이론이나 지식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나의 경험으로 몸을 사랑하기로 했다.







아직 3일 차, 이날은 명상을 하면서 3일이 아니라 평생을 수행하기로 결심한 친구들이 떠올랐다. 평범한 삶 대신 종교나 가르침에 귀의하고 속세를 떠난 삶을 선택한 친구가 셋이 있었다. 모두 고등학교 때 만났다. 그들의 평범하고 순수하고 빛나고 생생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했다. 괴롭거나 속상하면 울거나 화를 내기도 했고 가끔은 질투도 하고 좋은 일에는 기뻐했다. 맛있는 걸 좋아하고 이성에 관심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길을 택했다.



한 달 넘게 학교를 쉰 후로 돌아올 땐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체육관에 앉아있는데 A가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너라면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걱정 많이 했어.’ 모르겠다. 그 말이 왜 이렇게 감동적이었는지. 자주 A의 커다란 손을 잡았다. 이제 A는 천주교 성당의 신부가 되었다. 많은 이들의 고해성사를 듣고 내게 그러했듯이 위로해주고 손을 잡아주겠지. 우리 중 누구보다도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녀석이 재미나게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오래 공부를 하고 있다. 아마 여전히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하고 있을 것이다.


미운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고민을 그에게 털어놓자 자기라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어쩔 수 없이 계속 미워한다고. 그 말이 따뜻하지만 너무 웃겨서 눈물이 핑 돌았다. A가 보고 싶었다. 나는 이제까지 머리로만 알고 있었다. 네가 가는 길에 무엇이 있는지. 내가 다 알지 못하겠지만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우면서도 기쁜 일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당장 A에게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사계절을 사랑하는 Y도 생각이 났다. Y는 무언가를 미워하는 법이 없었고 내가 알던 사람 중에 가장 고요하고 긍정적인 마음의 파동을 지닌 예술가였다. 회사 일에 잡혀 살게 되면서 내가 너무도 많이 변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마지막으로 Y를 만났던 장소는 우리가 다닌 고등학교였고 장기여행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Y가 내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OO아,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이유로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마.’


6년 후 내내 연락이 안 되다가 Y가 출가한 걸 알게 되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마다 Y를 생각했다. 그리고 Y를 생각하면 마지막 말이 귀에 맴돌았다. 너무 중요한 말인데 너무 어려운 말 같았다. 명상을 하며 Y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꼈는지 깨달았다. 가장 쉬운 말로 내가 꼭 들어야 할 말을 내게 마지막으로 선물로 준 것이다. 내가 주변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면서 스스로를 상처 내고 방황하지 않도록. 언제나 Y가 보고 싶었지만 명상을 하면서 Y가 너무도 간절히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자연히 I 생각이 났다. I는 내 생명의 은인이자 첫사랑이다. I가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 진학하면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때 그는 말했다.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신이 있는지 자신의 믿음이 의심스러웠을 텐데 그런 시기 나를 만나 신을 믿게 되었다고 그래서 신부가 되고자 한다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면서도, 그 말에 기쁘고 행복했다. 그래서 기꺼이 울지도 않고 그의 길로 보내주었다.


1년이 조금 넘어서 I는 돌연 신학교를 떠났다. 우린 다시 만났고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대화는 한 적 없다. I가 그때 어떤 생활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가 떠나온 이유도 그때의 마음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I는 내게 말하고 싶지 않았거나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나는 그런 그가 미웠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내 앞에서 괜찮은 척하던 I, 돌이켜보면 다시 만난 나는 그를 많이 괴롭히다가 제풀에 지쳐 그를 떠났다.


‘어떻게 우리가 헤어져?’ 그와 연인 사이가 아니더라도 평생 알고 지내는 게 당연할 것만 같은 관계였다. 어쩌면 그래서 그와 헤어질 때도 울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우린 계속 볼 거고 계속 알 거고 서로의 우주와 세계의 일부로 존재하며 지낼 게 자명했으니까. 그러나 살아보니 아니었다. 그와 헤어져서 소식도 모른 채로 남남으로 지내는 것도 가능한 거였다.




그로부터 거의 12년이 지났다. 절친한 M의 결혼식장에서 별안간 I를 마주쳤다. 멍청하게 인사를 나눴다. 아무 말도 제대로 못 했다. 그때 내 안의 마음들이 요동쳤다. ‘우리가 안부도 묻지 못할 사이야? 당장 그에게 가서 네가 보지 못했던 그의 세계와 우주를 알려 달라고 해! 우린 알 자격이 있어.’ 고민하다가 연락을 했다. 만나자는 말도 아니고 그저 통화 한 번 하자는 말에도 내키지 않은 건지, 바쁜 건지 그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뭐, 네가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한가하거나 너에게 목매는 사람은 아니야.’


사실은 그가 곤란한 이유를 헤아리기보다도 너에게 미련이 없고 한가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실수한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고 연락처를 지웠다.


그를 만나야겠다. 이번엔 그때의 마음과 다르다. 난 이 사랑과 감사함을 그에게 전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에게 그 시절 위로나 위안이 되지 못한 미안함도 전하고 싶었다. 내 마음 편하고자 그러고 싶은 게 아니었다. 네 덕분에 가진 이 따뜻하고 완전하고 충만한 마음을 그에게 주고 싶었다.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날 어떻게 대할 건지 상관없었다. 싸늘한 표정으로 경멸하듯 쳐다보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안함도 죄책감도 아니었다. 마땅히 이 사랑으로 가득 찬 에너지를 그에게 직접 주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살아있잖아. 우린 아직 살아있잖아. 그러니 만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잖아.’


A와 Y, I를 그날 내내 생각했고 그들이 가는 길을 생각했다. 그들이 내게 기꺼이 나누어 준 마음도 생각했다. 그들에게 고마웠고 과거엔 그것을 지금만큼 알 수 없던 게 안타까웠다. 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사랑을 직접 전하고 싶었다.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2022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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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ears ago 

불과 3일인데 위빠사나 명상을 통해 더 성숙한 사람이 된 거 같아요!
정말 멋져요!!!

어제 밤에 30분간 명상했는데 이상하리 만큼 다리가 저리지 않았어요.
스텔라님 기운을 전해 받았나 봐요 ㅎㅎ

위빳사나 하면서 더 알게 된 건데 제가 되게 급한 대신에 되게 빨라요.
전환도 사과도 반성도 ^_^;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는 거니까요. 헤헤

오우! 이 에너지가 전해진거라 확신합니당! 담에 멧따(사랑과 자비) 명상하게 되면 파치님 생각할게요!

 2 years ago 

좋은 에너지 공유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생각들입니다...

그 아름다움을 봐주시는 아름다운 raah님 >_<!

저에겐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뒤돌아보게 되네요..
전 약간 악연이 많은 느낌이라 그런가 ㅋㅋ
이미 용서하고, 뉘우치고 딱히 만날일 없긴 하지만 ㅋㅋ
그저 살아있음의 이 마음을 전하는 상태로 충분히 전해질 것 같아요..

전 정말 운이 좋았거든요. 사람에 있어서 말이죠.
카모님께 제가 있잖아요. 후후 앞으로 카모님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인연들을 만나게 될거에요.
고마워요. 저도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졌으리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물론 보게 되면 너무 기쁠테지만!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고라님 :)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마라~~ 그래야 내게 오는 상처가 적을것 같단 생각이 들면서..오늘 문뜩 저도 내 날숨과 들숨에만 집중해보는 시간을 갖어볼까 싶네요. ㅎㅎ

사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때는 제가 상처를 받았거나 받을 것 같아서 일 때가 많더라고요. 물론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피치 못할 상처도 있긴 하지만 말이죠. 해피드리님 호흡과 함께 평온한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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