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빳사나명상수행일지] 11일 차 -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본 글은 진안에 위치한 '담마코리아 명상 센터'에서 위빳사나 10일 명상코스를 체험한 후 적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수행일지입니다. 담마 혹은 위빳사나 명상과는 다른 필자 개인의 의견이 첨부되어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위빳사나 명상을 앞두신 분께는 이 글을 통해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명상이 끝날 때까지 이 글을 읽지 않으시길 권고 드립니다. 위빳사나 명상가분의 피드백과 체험 공유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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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분, 분주하게 벌떡 일어났다. 침대보와 시트를 4시까지 넣어 달란 요청도 있었고 지난밤 씻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 방에 청소기도 돌리고 싶었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진짜 마지막 명상이다. 어쩔 수 없이 내 생각은 이후의 스케줄을 생각했다. 이거 하고 저거 하고 저거 해야지, 룰루랄라 콧노래 흥얼거리는 그 생각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 너 맘대로 해라 기다릴게.


앉아있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고통이 사라지진 않는다. 아마도 대략 30-40분쯤 흐르니 신체적 고통이 시작되고 그 생각들은 다 사라져 갔다. 그게 웃겼다. 마지막이니 배운 걸 총 정리했다. 그런데 몸통 부분에서 자꾸만 어제의 의문이 생각나 정신이 흐트러졌다.




아침에는 고엔카 선생님의 마지막 법문이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인지한 미소와 자비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은 이성의 존재이죠. 만약 담마의 어떤 이론적 부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일부만 받아들여도 좋습니다. 언제 어느 날 받아들일 마음이 생겨날 때 받아들여도 좋습니다.


당신은 10일 동안 성실히 수행했고 담마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긴 채 실험했죠. 한 번 두 번 세 번 해보고 결정을 내리시면 됩니다.


싯다르타는 조직화된 종교엔 어떤 관심도 없었죠. 당신이 힌두교를 믿든 기독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종교가 뭐든 전통이 무엇이든 전 그것을 바꿀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담마를 수행해보세요. 이것은 자연법칙입니다.


그러나 10일간 담마의 이로움을 알게 되었다면, 이것이 싯다르타의 수행법이라서 제가 말한 법이라서가 아니라 경전에 쓰여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실험해보고 당신에게 이로움을 주었다면 매일 실행하세요. 이론은 제쳐두고 올바르게 담마를 수행하세요. 그렇다면 당신은 담마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설사 다른 용어를 쓰더라도 당신은 위빳사나 명상을 수행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로움을 주었다면 담마를 걷어차버리지 마세요. ‘




그 자비롭고 관대한 말에 엄청난 위로를 받았고 감사를 느꼈다. 더 복잡한 생각하지 않고 살면서 실험해보기로 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밥 먹기 전 방청소부터 시작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과 가구를 닦고 창틀 청소를 하고 바닥을 걸레질했다. 소독제로 한 번 더 닦았다.






아침은 시간이 많지 않아 평소보다 적게 얼른 먹었다.


나의 청소구역은 화장실이었고 양치하러 갔을 때 이미 다른 분이 청소를 하던 중이었다. 12일간 편안하게 수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신 봉사자님들의 배려에 감사해하고 다음에 오실 수련자 분들을 위해 깨끗이 청소를 했다. 실내화를 닦고 말리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배수구를 청소했다.


환기구도 청소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열 방법을 찾지 못해 괜히 망가뜨릴까 봐 고민하다가 포기했다. 다음에 오면 미리 드라이버를 빌려놓아야겠다.






그렇게 마침내 진짜로 모든 명상 일정이 끝났다. 정든 산책로를 따라 주차장 인근 벤치에 앉아 내가 없는 동안 남편에게 부탁했던 일기(스팀잇)를 보고는 너무 빵 터졌다. 이렇게 성실하게 써주다니! 드디어 오늘은 만나겠네.




생각대로 그다지 나를 찾는 급한 연락은 없었다. 내 절친이 내가 큰 위중한 병으로 수술이라도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되는 톡을 받았다고 했다. 그것도 너무 웃긴데 걱정시킨 게 미안해서 톡을 보냈다. 나는 잘 지냈다고.






어제 운 좋게 전주역까지 카풀해주실 분을 찾았다. 언제나 이 거대한 캐리어가 문제였는데 다행히 다른 분들 짐이 크지 않았고 그분의 차가 SUV라서 짐이 딱 맞게 들어갔다. 마치 캠핑을 떠나는 기분으로 들떴다.




그동안 얘기를 나눠본 적 없던 다른 여자 두 분과 전주역까지 가는 내내 도망가고 싶었고 명상 어땠고 명상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 웃으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통적인 건 다들 한 번쯤은 어떤 이유로도 도망치고 싶었고 속세가 그리웠다고, 그리고 다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다들 편안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지 다들 놀라워했다는 걸 확인했다. 사실 자세가 안정적인 사람조차도 엄청난 고통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




시내로 나왔고 오랜만에 사람 구경을 했다. 게다가 선거철이라 엠프가 빵빵 울렸다. 전주역 주차장이 만차라서 그 입구에서 짐을 내리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데 곧이어 뒤에 차들이 크랙션을 빵빵 울렸다. 어차피 만차라서 못 들어갈 텐데 모르니까 답답하고 화가 나서 그렇겠지. 차를 돌리려고 후진을 하니 뒤에 있던 차가 조금도 뒤로 가지 않고 더 격렬하게 크랙션을 울렸다.




다행히 운전해주신 수련생 분이 운전을 아주 잘하셔서 무사히 차를 돌렸다. 나는 그 분과 뒤차에게 평온을 빌었다. 역시 삶 속으로 들어오자 자극이 가득 차 있는데 아직은 마음이 아주 평온했다.



기차 시간이 여유가 있어 다른 한 분과 풍년제과에 들렸다 옆 카페에서 라떼 한 잔을 마셨다. 감사하게도 동승했던 분이 커피를 사주셨다.


그 옆자리 차를 타고 온 그녀는 경쾌하고 솔직하고 명랑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어 사실 마음이 갔던 참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혼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 조금이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기를. 그녀 역시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지만 오길 잘했다고 아니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걸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는 맞다고 그런데 너무 고통스러워서 함부로 권하긴 조심스럽다고 말했고 그녀 역시 격하게 동의했다.




혼자 남아 커피를 마저 마시고 이제 기차를 탈 시간이 되었다. 화장실 갈 땐 좌석 안에 거대한 캐리어를 두고 갔다. 설사 없어진다고 해도 이제 별 문제가 되지 않기에 (이렇게 말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해했다)






올 땐 허둥지둥 영혼이 탈출해서 부랴부랴 왔는데 갈 땐 커피를 마시고 아주 여유롭게 천천히 기차 맨 뒷자리를 예매하고 차분하게 기차 플랫폼에서 여유롭게 기다렸다.


아직은 어떤 것도 날 불안하거나 불쾌하게 만들지 않았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 신나고 기뻐 보였고 처음 타 본 새마을호는 쾌적하고 창밖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풍경은 아름답다.


새언니와 잠시 통화를 했다. 급한 일은 아닌데 엄마에겐 급한 일이었다. 만날 약속을 잡았다. 잡고 나서 남편의 시험기간이란 걸 깨달았다. 전화해서 확인하려다가 그렇게 급할 건 없고 정 안 되면 혼자 만나면 되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세상과 멀어진 사이 루나가 사라졌다는 놀라운 소식을 남편에게 들었다. 11일 동안 빠짐없이 달을 봤고 별을 보았다. 달은 너무 밝게 빛나 가장 먼저 눈이 갔고 한 때는 루나를 투자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업비트엔 역대급 파란불이 떴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조금 놀랐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남편에게 이것이 휴지조각이 돼도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다시 돈을 벌 거라고 그러니 너도 속상해하지 말라고 말했다. 위빳사나 명상, 평정심과 미세한 감각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운 나는 진화된 버전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남편에게 해줄 말에 무척 많았다. 그러나 하지 못해도 괜찮다. 글을 써 내려가며 내내 행복했다.


이 기운이 삶으로 돌아가면 영원하지 않을 걸 안다. 아닛짜, 모든 건 일어났다 사라지니까. 그러나 나는 낙담하지 않는다. 다시 숨을 고르고 감각을 알아채고 평정심에 머무는 법을 수행할 것이다.








고엔카 선생님의 말씀대로 이제 첫발을 내밀었다. 여전히 너무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기쁨에 도취되어있고 자극에 중독되어 있다.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버려야겠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의 담마를 쌓을 거다. 그것이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펼쳐지든 기쁜 마음으로 혐오 없이 좌절 없이 인내심을 지니고 여유롭게 한 발 한 발 걸어 나갈 거다. 이제 내게 모든 고통은 기쁨이다.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새로 수행할 과제를 알게 해주는 마중물이 되어줄 테니.




소울 넘버가 22라 믿는 나는 22번 방에서 첫 위빳사나 명상 10일 코스를 만료했다. 삶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기쁘고 설렌다.


만나고 스쳐온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여기까지 이끌어준 모든 내 삶의 내용에 감사한다. 감사한다. 감사한다. 감사한다.


당신이 고통스럽다면 위빳사나를 공정하게 실험해보기를, 이 글이 필요한 모든 분에게 닿기를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평화롭기를, 조화롭기를, 자유롭기를, 해탈하기를. 바와뚜 삿바 망갈랑.





2022년 5월 22일 일요일, by Stella




지금까지 명상 수행일지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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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막을 내리셨군요..
글은 끝났지만 담마는 계속 되리 _

명상 마지막이 다가오면 항상 반갑게 들려오는 망~갈!

담마는 계속 되리~
그당시 제일 좋아했던 단어죠. 바와뚜 삿빠 망갈랑!!ㅋ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저도 그런 경지에 도달하고 싶으네요

감사드립니다.
경지라니요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방법을 알았으니 차차 걸어나가겠습니다 : )!

 2 years ago 

이번 수련으로 몇 단계 더 성장하셨네요~!
원하는 대로 행복하고 자유로워졌길 바랍니다. ^^

제 인생에 돌아보며 강한 인상과 성장의 계기가 된 결정적 순간임은 확실해요.
물론 돌아와서는 그때 그 마음 가짐과 상태를 이룩하기란 정말 어렵지만.
점점 그 길로 가고 있다고 믿어요! 파치님과 교류하고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무척 기쁘구요.
감사드려요 : )

 2 years ago 

스텔라님 덕분 저도 좋은 에너지 얻고 깨달으며 성장합니다.
이렇게 글로 나눠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일상생활 중에 하시는 명상 이야기도 틈틈히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우엉 재밌게 읽어주시다니 기뻐요. 히힣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꿈이나 명상 관련해서 좋은 정보를 얻거나 재밌는 이야기가 있으면 틈틈이 써볼게요.
감사드려요 : )!!

앗, 꺼꾸로 읽었군요ㅋㅋ
덕분에 좋은 수행기 잘 읽었습니다.

ㅋㅋㅋㅋ 저야말로 빠짐없이 전부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려요 🙏

생물은 행복하게 태어나 평생 동안 자신의 행복을 깨닫습니다. 당신은 요가를 연습, 좋은 방법!

우와. 엄청난 트레이닝을 하셨군요. 깨달음으로 가는 길, 함께 잘 걸어가요~

요새 명상을 게을리해서 이때의 저랑 꽤 멀어졌어요. : ) ㅋㅋㅋㅋ
톰님 덕에 다시 조금씩 시작해봐야겠어요.

어제. 오쇼 책을 좀 들었는데, 현존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찾을 필요가 없다. 이런 말씀이 마음에 남더라고요. 그것을 찾으려고 집착하고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멀어지게 만든다고요. 놀이처럼, 즐겁게 해야한다. 라는 부분에서 울림이 있었어요. 게을러지면 좀 어때요. ㅎㅎ 생각나면 다시 하면 되죠~ 그래도 좋은 넛지 드린거 같아서,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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