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마지막처럼

in zzan4 years ago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우연히 며칠 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서를
접하게 되었다. 유서는 벌써 오래 전인 2002년에 나온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이라는 저서에 실린 유언장이다. 몇 번이나 유서를 써 본
내 마음에 스치는 결이 다르다.

유서의 내용은 세 단락으로 되어있다.
첫 번째가 자녀들에게 아버지로서 부족했던 점을 적고 있다. 바쁜 일로
함께 있어주지 못했던 점과 간절하게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못했던 일을
사과하며 비록 가난했지만 강한 정신을 물려주었음을 위안 삼고 있다.
또 부모님께 물려받은 선한 심성을 본받았음을 일러주며 역경에 좌절하지
말고 극복할 것을 이른다. 큰 유산을 남기지 못하는 것을 유산으로 생각
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두 번째 단락은 평생의 반려였던 아내에게 남겼다.
평생 아내라는 말, 당신 또는 여보라는 말 한마디조차 못했던 마지막에
이르러 아내라고 부르는 반성으로 시작한다.

변호사 부인으로 누렸을 일상의 행복대신 인권 변호사와 시민운동가의
짐을 함께 지게 했던 미안함 좀 더 많은 유산을 남겨주지 못하는 남편의
심정을 술회하고 있다.

소중히 하던 책들에 대해 아이들이 원하면 주고 그렇지 않으면 어느 대학
도서관에 모두 기증해 그 분야에 관심 있는 후학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안구와 장기를 기부했고 화장을 해서 부모님산소 옆에 뿌려 못다 한 효도를
하고 싶은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 세상 인연이 다해 다시 만나고 싶은
정과 조의금을 받지 않기를 당부하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 단락에서는 모든 형제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작별인사를
남겼다. 형제들의 희생에 대한 감사와 도움이 되지 못하는 미안함을 월명사
의 제망매가를 빌어 표현했다. 그리고 스승에 대한 감사와 친구들과 인권
변호사와 시민운동을 함께 하던 분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고 다음 세상에
다시 만나자는 희망으로 맺고 있다.

그 누구의 삶도 존중 받아야 마땅하며 타인에 대한 평가는 신중해야 한다.
그러기에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하려면 관 뚜껑을 덮은 후에 정당한 평가가
가능하다고 한다. 방송에 보도 된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가슴
뭉클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다.

생전에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위치에 있었던가가 아닌 한 여인의 지아비였고
사랑하는 아들딸의 아버지였음에 초점이 맞춰진다.

직장인들 중에 주머니에 사직서를 넣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만큼 최선을 다해서 일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마음에 유언장을 품고
사는 사람은 모든 나날을 생의 첫날처럼 소중하게 마지막처럼 참되게 살고자 했을 것이다.

지금 세간에서는 장례절차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조문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조문을 하지 않겠다고 공표하는 사람도 있고 서울특별시장을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도 이어지고 있다. 각자의 입장과 생각을 존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혼의 안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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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황금 바로 지금 오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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