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온다
아이는 사흘돌이로 잔병치레를 했다.
병원엘 가도 막상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해서 마음을 놓기는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였다.
원래 잔병치레 하면서 크는 애들이 나중에는 더 단단하다고 하기에 거기에 기대를 하며 기다리 면서도 마음에 앙금처럼 남은게 있었다.
작은 애를 낳고 친정에서 몸조리를 했다. 첫 애를 낳고 밤낮이 바뀐 아이를 데리고 날밤을 새우며 미여국도 제대로 못 먹으며 고생을 했다. 친정엄마도 수술을 하고 퇴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탈 산구환을 해줄 처지가 안되었다.
그래서 작은 애를 낳고 퇴원을 하면서 바로 친정으로 갔다. 여자가 산후조리를 못 하면 늙어 고생이라고 하며 큰 애 때 못해 준 보상이라도 하듯 온 갖 정성을 쏟았다.
좋다는 것은 다 해주고 갓난 아기도 잠투정하지 말고 자라고 목욕도 아침저녁으로 해주었다. 사위 혼자 지내기 불편다고 두 달 지나면서 집으로 와서 백일까지 차려 주고 집으로 가셨다.
그런데 남편에게 일이 생겨 친정엄마에게 변변하게 해드린 게 없었 언니에게 속상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언니의 대답 은 섬뜩하게 목을 찔렀다. 산바라지 해주면 두둑하게 넣어 보내야 애 한테좋데. 받는 사람기분 보다 그래야 애가 잘 된다는 말이 두고두고 걸렸다.
아무리 어려워도 돈 빌려달라 소리 한 마디 안 하고 살았는데 뻔히 사저이을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는 언니가 너무 미웠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언니보다잘 살고 싶었다
그말이 앙금이 되어 아이가 아플 태마다 떠울랐다. 남편의 회사는 사정이 점점 나빠져 결국 밀린 월급이고 퇴직금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만 가득 담아왔다
그리고 친정 엄마는 먼 나라로 떠나셨다. 엄마한테 산바라지 한 사례를 할 기회도 영영 잃었다. 서러움이 복받쳐 몇 날을 울며 지냈다.
어떻게 해서라도 보란듯이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결심을 했다. 입에 맞는 반찬도 해주고 태권도도 가르치고 열성으로 뒷받침을 했다
다행이 아이들은 잘 자랐고 남편도 다시 사업을 시작 해서 기반을 잡았다.아이가 자전거에 취미를 느끼면서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하게되고 고등학교를 선수로 진학했다.
전국대회 금메달을 따고 외할머니 산소를 찾았다.금메달을 올려놓고 절을 했다. 뜨거운 눈물에 엉겨붙은 앙금이풀었다. 엄마에게 죄스러운 마음보다 몇 배로 컸던 언니를 향한 미움이 사라졌다.
내려오는 길에 과일 트럭이 서 있었다아들 때문에 속앓이 하는 언니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한 상자 골랐다.
할머니 덕분에 금메달까지 딸 정도로 잘 자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ㅠㅠ
할머니 사랑이 정말 따뜻하지요
뭐든 다 되고
할머니 손은 약손 지금도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