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 멋 부리다 얼어 죽을라.

in zzan4 years ago (edited)

벌써 몇 해 전의 일이다.
이른 봄 멀리 버들숲에 연두빛이 어리는 시기였다.

서울에 행사가 있어 몇 사람이 동행을 했다. 청평에서 전철을 탔는데
청파동에 내리니 벌써 밤이다. 행사장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길은 경사가 있어 조금 걷다보니 벌써 숨이 찼다. 오랜만에 외출이라고
하이힐을 신었다. 발은 아프고 숨은 차고 그래도 앞 사람 놓칠까봐 말도
못하고 부지런히 뒤를 쫓아갔다.

행사장에 도착해서 주변 구경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는 사람 만나면
인사도 하고 안부를 물으며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오싹하고
한 번씩 냉기가 스쳐갔다. 힘이 들어서 처음엔 몰랐는데 땀이 식으면서
추위가 품을 파고 들었다.

이른 봄은 낮에는 해가 있어 따뜻했지만 그늘은 춥게 마련이다. 더구나
밤이 되니 기온이 떨어졌다. 난방도 하지 않는 곳에서 음식물 반입도 안
되는 곳이라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추위에 떨어야 했다. 낮에 출발하면서
생각없이 옷을 가볍게 입은 게 화근이었다.

그러데 더 난감한 일이 생겼다. 좌석도 거의 앞자리였는데 추워서 그랬는지
화장실도 자주 가야했다. 주위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참아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자리를 두고 앉지도 못하고 입구에 서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일행이 차 시간도 있고 급한 일로 인사만 드리고 먼저
출발을 했다.

전철 역에서 뜨거운 캔커피를 사서 오는 내내 손에 쥐고 몸을 녹였다.
그날을 생각하면 사진 속의 겨울나무처럼 혼자 떨던 날의 기억이 지금도
추위가 엄습한다.

그 다음부터 어디를 가면 무조건 따뜻한 옷에 편한 신발을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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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죽을 땐 죽더라도 멋쟁이는 멋을 부려야지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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