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zan 문학상] 시에나의 오이

in zzan3 years ago

시에나의 오이

손님이 흘려 놓고 간 라면 국물과 쓰레기를 치우는 오정은의 시선이 자꾸 계산대 위쪽의 벽시계에 머물렀다. 알바 녀석은 오늘도 늦는 모양이다. 전에 일했던 아이가 뚝뚝하긴 해도 시간 하나는 잘 지켰는데 이 아이는 거의 매일 지각이다. 시급에서 깎겠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싱글거리며 늦은 만큼 보충하겠다고 눙치는 녀석을 그냥 둔 것은 야간 근무를 원하는 사람이 드물거니와 자주 바뀌는 것도 신경 쓰여서였다.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아이나 시간 개념이 흐려 터진 아이나 요즘 애들은 대책이 없다고 정은은 혀를 찼다. 역시나 녀석은 교대 시간 10분이 지나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정은은 계산대에 잔소리를 얹어 넘기고 부지런히 차를 몰아 다세대 주택이 모여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담한 4층 건물의 1층 주차장 겸 공동 현관을 비추는 은은한 불빛이 시에나라는 표지를 읽어준다. 몇 년 전 준기와 로마를 지나 들렀던 그 중세도시 시에나에서 따왔다. 눈 돌리는 곳마다 교과서에 나오는 유물의 화려함에 지칠 무렵 시에나의 고즈넉함은 휴식 같았다. 부채꼴의 캄포 광장은 궁전을 향해 집중하도록 살짝 기울었는데 전날 밤에 내린 빗물이 13세기의 하수구로 지체없이 빨려 들어갔다. 온갖 오물이 흘러들었을 하수구보다 짧은 인생이구나. 에쎄룽가에서 사온 짧고 뭉뚝한 이탈리아 오이를 깨물어 먹고 그 꼭지와 함께 정규직, 꿈 등을 하수구에 버린 것 같다. 저 착한 남자와 살아볼까, 그때부터 진지하게 생각했으니까.
꼭대기 층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 4층의 살림집이 요즘 그녀와 준기의 최대 골칫거리였다. 층간 소음, 공과금 체납 등 잡다한 민원에 시달린다는 다른 다세대 주택에 비해 시에나의 1층 상가와 2, 3층의 세입자들은 몇 년을 조용히 살아왔다. 그런데 지난 겨울부터 4층 때문에 못살겠다고 야단들이다.
“쿵쾅대지, 개 짖지, 하루 걸러 집어 던지며 싸우지..... 내 오죽하면 경찰에 신고할라 했다니까.”
세입자 대표격인 3층 정여사의 격앙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울린다. 아닌게 아니라 부부싸움 끝에 불이라도 내면.... 끔찍한 일이다.
정은이 4층 벨을 눌러 현관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목 늘어난 티셔츠에 꺼칠한 얼굴의 엄마, 그리고 그 다리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라고 보증금 까먹고 싶겠어요? 애들 아빠 수입이 일정치 않으니.... 혜서야 아롱이 좀 내보내!”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흥분한 개가 펄쩍펄쩍 뛰었다. 아롱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덩치 큰 골든레트리버를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잡으려 하니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여자는 다리에 매달린 아이를 한 손에 들어 안고는 다른 손으로 개 목사리를 잡아 발코니 문밖으로 밀어내고 문을 닫았다. 개는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며 낑낑댔다. 희안하게도 개가 쫒겨나자 개 오줌 냄새와 청소하지 않은 집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후두부를 자극했다.
“저렇게 큰 개를 키우면 당연히 다른 세대에서 시끄럽다고 하죠. 어머, 벽지 다 나갔네.”
벽마다 큼지막하게 긁히고 뜯긴 벽지는 특히 안방 문 옆이 더 컸다. 그 위에 빨간색 크레용 몇 줄이 덧칠해져 있다.
“애들 아빠 오면 얘기 할게요. 그렇다고 여태 키우던 애를 버릴 수도 없고, 생명인데.....”
이만 가 달라는 듯 여자는 부엌 쪽으로 돌아섰다. 정은은 발바닥에 개 오줌이라도 묻은 듯한 불쾌감에 느끼며 현관을 나왔다. 속이 상했다. 새집 다 버렸잖아. 남자 직장도 변변찮은 눈치던데 이 와중에 개새끼가 왠 말이야? 애들이나 잘 키우지. 이런 일은 준기씨가 나서면 좋은데 악역은 꼭 내게 시킨단 말이지. 그나저나 여태 체납된 월세가 몇 달 치 더라.

우는 아이에게 과자를 쥐어주고 쇼파에 앉은 이은지의 망막에 집주인 여자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젊은, 아무리 봐도 자기보다 어린 여자가 건물주라는 것은 뭐, 부모 잘 만난 덕이라 쳐도, 컬을 넣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머릿결과 오똑한 콧날은 부럽다 못해 심술이 났다.
‘여자 콧구녕이 넓으면 돈이 다 새 나간다는데 쟨 누굴 닮아 저 모양인지, 쯔즛....’
딸의 코가 늘 걱정이던 엄마가 얼마 보태고 자신이 모은 것을 합쳐서 퍼진 콧대를 세웠으나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돈을 더 들여서라도 강남 유명한 데 가서 했어야 했다. 한번 만 더 손 대면 훨씬 나아 보일 텐데. 엄마의 그 빌어먹을 관상론대로 다 새어 나가도 좋으니 카드 긁을 때 제발 한도초과는 말만 안 들어도 살겠다. 도대체 남들보다 비싼 걸 먹길 하나, 명품 타령을 하나, 그저 애들 키우는 최소한을 쓸 뿐인데 늘 뭐가 초과란다. 정환이 그나마 벌어 오는 돈이 마이너스의 수렁에 녹아 사라지지 않도록 애들 고모의 통장 하나를 얻어서 쓰는 중이다. 처음엔 구멍 난 속옷을 보이는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무감각했다. 의욕도 없고 만사가 귀찮아 아이들과 함께 생을 포기할까도 했었다. 그때 맑은 눈으로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아롱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겠지만 그 시선에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힘이 있었다.
사실 은지는 상상속에서라도 정환을 결혼 상대자의 자리에 세워본 적이 없다. 국밥집 딸과 옷가게 집 아들이라니, 어색하잖은가. 옷가게 정환엄마는 어쩌다 한번 은지 엄마에게 국밥을 배달시켜 먹으면서도 설거지는 제대로 했나, 쟁반 위의 뚝배기를 요리조리 살펴보곤 했다. 은지엄마 입장에서는 잘난 체 고상 떨어봐야 피차 시장통 장삿꾼이다.
“한량 남편 모시고 살자니 힘 들겄어. 그래도 나보담은 낫지. 야밤에는 더러 써먹을 거 아냐. 하하하.”
분식집 여자에게 했던 말이 돌고 돌아 대판 싸운 적도 있었다. 요는 한 골목에서 밥 벌어 먹고 살았어도 소위 코드가 통하는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동갑인 두 아이가 같은 유치원 가방을 메고 다녔고, 비슷하게 생긴 교복을 입고 골목을 지나가는 모습을 본 것도 같은데 어느날 은지가 결혼해야겠다고, 아이가 생겼다고 말했다. 상대가 정환이라는 말에 은지엄마는 이게 무슨 소린가 한동안 눈만 껌벅였다. 엄마의 반응을 예상한 은지는 술 마시고 한번 잤는데 그렇게 됐다고 애써 덤덤하게 말했다.
이런 일일수록 냉정하게 대처해야 된다는 데 생각이 미친 은지엄마는 끓어 넘치는 욕을 꿀꺽 삼키고 한번 실수는 있는 거다, 걔가 직장이 있냐 가진 게 있기를 하냐, 그 애비는 평생 백수요 에미는 앉은 자리에 풀도 안날 깍쟁인데 뭘 믿고 살려 하느냐, 당장 수술하러 가자고 딸을 설득했다. 은지는 한사코 도리질을 하며 낳겠다고 버텼다. 남자 보는 눈이 지지리도 없더니 고집은 또 쇠심줄이네, 박복한 팔자도 내림인가, 은지 엄마는 긴 푸념을 토해냈다.
배는 점점 불러오고, 체면은 있기에 서둘러 예식장을 잡았다. 정환엄마 역시 붙임성이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는 은지가 며느리라니 이게 왠일이냐는 반응이었다. 그런 엄마들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환은 결혼식 내내 생전 처음 받아보는 스포트라이트 아래 헤벌쭉 웃고 있었다. 양가에서 얼마씩 보태어 변두리일망정 전세를 얻어 주었건만 곶감의 줄은 너무도 짧았다. 옮길 때마다 줄던 평수가 그나마 전셋값 폭등이라는, 이 부부와는 평생 상관없을 줄만 알았던 티브이 뉴스가 그들의 이야기가 되었고 결국 월세 생활자 대열에 합류했다. 그나마 시에나 빌딩의 4층은 널찍한 편이고 발코니 밖으로 개가 뛰어놀 공간이 있어서 운이 좋다고 하며 이사를 왔었다.
그들은 ‘방 빼’라는 말의 시림을 알까? 존재 자체를 사그라들게 하는 그 말의 서늘함 말이다. 방 또는 집은 그 사람이다.
은지엄마가 한 번씩 들여다 볼 때마다 젊디나 젊은 사위 놈은 자고 있거나 게임을 하고 있었다. 둘째가 태어나면 좀 달라지겠지 했는데 어디서 개새끼를 데려다 놓고 짐승과 사람이 한 데 뒹굴었다. 더 이상 보태 줄 여력도 없거니와 남들은 손주라면 물고 빨고 한다던데 새초롬한 안사돈을 보면 심사가 뒤틀린다. 바깥사돈 또한 살롱이고 술집이고 문을 닫은 코로나 시국이 아주 잘코사니나 어차피 있으나 마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손목에 파스를 붙이는데 손님 없긴 마찬가지인 분식집 여자가 앞치마 주머니에 양손을 찌르고 들어온다. 작년부터 시장 골목은 명절 다음날 같다.
“즈이 애비가 살았으면 좀 낫을라나.”
“언니, 요즘은 아프면 나만 서럽다고 손자도 안 봐주는 시대야. 아닌 말로 내가 치매나 죽을병 걸리면 지들이 돌봐주겠어? 요양원비는 챙겨놔야 한다구. 즈덜 인생은 즈덜이 알아서 하겠지. 차라리 기초수급자 판정을 받으면 그편이 애덜 키우는데도 훨씬 날 껄?”
앞뒤 다 잘라 먹은 말도 척 알아듣고 훈수를 두는 분식집 여자의 말 중에서도 기초수급자라는 단어가 국밥집 사장의 귀에 콕 박혔다.

알바생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차 안에서 기웃, 확인한 정은은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안전진단 대상 아파트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린 아파트의 현관을 밀고 들어서자 양파 볶는 달큰한 냄새와 버터 향이 그녀의 허기를 마구 흔들었다. 좁은 부엌에서 부산스레 요리를 하던 남자가 상체만 젖히고 자기 왔어? 한다. 정은이 배고프다며 가방을 내던지고 남편의 볼에 뽀뽀를 하고 입을 딱 벌렸다. 냄비 안에서 굴려지던 스파게티 한 젓가락이 그녀의 입으로 들어간다. 별 꾸밈이 없는 아파트에는 거실의 터줏대감인 텔레비전조차 없다. 대신 밥상 겸 탁자 위에 노트북이 올려놓아져 있고, 관중없는 프로 야구 경기가 방송되고 있다. 파란색 유니폼이 방망이를 휘둘렀고 관중석의 환호 대신 아나운서 혼자 길게 뽑는 안타에 3루에 있던 주자가 미끄러지며 손으로 홈베이스를 찍었다. 전광판이 2 대 3에서 2 대 4로 바뀌었다.
“아, 오빠 이 사람들 정말 안되겠어. 집을 엉망으로 해놓았지 모야. 개가 벽지랑 장판이랑 다 찢어놨어. 개 오줌 냄새 뱄을 텐데 어쩌지?”
“그냥 우리가 살 걸 그랬지?”
“놉. 그래도 재개발 호재를 포기할 순 없지.”
“깜찍한 욕심쟁이.”
두 사람의 가벼운 웃음소리 사이로 유리잔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정은이 준기를 가족에게 소개했을 때 엄마와 오빠는 네가 뭐가 아쉬워 다 늙은 남자랑 살려고 그러냐고 핀잔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평생 충성을 바친 회사에서 반강제로 명퇴를 당한 후 전국의 산과 바다를 헤매는 중인 아빠만이 ‘좋으면 하는 거지, 인생 뭐 있다고....’라고 중얼거렸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준기엄마가 둘째 아들 몫이라며 진작에 사놓은 다세대 주택의 명의를 보여주었고 둘은 입을 다물었다. 아휴, 둘 다 속물이야, 정은은 웃었다. 준기의 형 내외가 ‘엄마가 치매라도 걸려 전재산을 일죽사에 기부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을 때도 본인 재산 행사할 권리 아닌가 했었다. 그랬던 그녀가 한겨울에도 어지간해서는 보일러를 켜지 않는다.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야 해. 편의점이랑 카페에서 어느 정도 수익 나면 보태서 아파트 입주하려고. 강남은 어렵더라도 마용성에는 하나 잡아야지. 시에나는 노후 자금이고. 아이는 우리 계획에 없어, 엄마.”
그 정도면 살만한데도 더 벌겠다고 종종거리는 딸을 보며 걱정하자 정은이 한 말이다. 어려서 에미 사랑을 덜 받아서 그런 건 아닌지, 직장 다니는 엄마의 해묵은 자책이 일었었다.
한편 준기엄마의 입장에선 무엇보다 손자가 급했다. 분명 ‘짝이 있고 자식도 하나 있다’고 일죽사 주지가 준기의 사주팔자를 되작거리다 결론을 냈었다. 열 살이나 차이 나는 여리여리한 여자를 집에 데려왔을 땐 반신반의했는데 의외로 부지런하고 강단이 있어 ‘영험한 우리 주지스님, 관세음보살’을 연발했다. 어차피 사주에 들어 있는 거 얼른 아이 하나 점지해 달라고, 장남이 딸 하나 낳고 끝냈으니 기왕이면 아들로 점지해 달라고 일요일마다 두툼한 시주와 함께 백팔 배를 올리는 중이다. 준기 부부는 출산 계획에 대해 굳이 알리지 않았다.
설거지까지 마친 준기가 차 열쇠와 휴대폰을 챙겨 들고 일어섰다. 야구는 어느새 끝났다. 모니터에 2 대 5 삼성 라이온스 승리, 부동의 1위라는 자막을 눈여겨 보며 준기는 자기야, 나 갔다 온다, 화장실 문을 향해 외쳤다. 곧 안에서 알았다는 답이 들려왔다.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카페를 마감하러 그가 나가자 집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어디가 안 좋은지, 열은 없는 거 같은데 자꾸 보채는 둘째를 겨우 재우고 거실을 치우려던 은지는 들고 있던 걸레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제 엄마의 심상찮은 분위기를 눈치 챈 아이는 진작 제 방으로 들어갔고 소파를 차지하고 누워 있던 개가 머리를 들어 걸레를 주워오라는 신호인지 어쩐지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현관의 인기척을 먼저 알아채고 달려 나갔고 문이 열리며 정환이 들어왔다. 반가워 죽겠다고 펄쩍 뛰어오르는 개를 쓰다듬으며 손에 든 비닐봉지를 식탁 위에 놓고는 슬쩍 아내의 눈치를 본다.
“왜 또 그래? 애들이 말 안 들었어? 아휴, 이놈아, 집안을 난장판을 만들면 쓰냐, 얌전히 있어야지, 응?”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환은 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주인 여자 왔었어. 방 빼래. 넌 어디 처자빠져 있다가 이제 기어들어 오냐?”
“처자빠지다니, 남편한테 말하는 거 봐라. 아니,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 왜 나가라 마라야? 집주인이면 다야? 나이도 어린 게 어따 대고....”
이 상황에 나이 어린 게 무슨 상관인가 싶으면서도 정환은 언성을 높였다.
사실 정환은 집주인 남자를 생각하면 아니꼬움과 질투가 뭉쳐 목구멍을 막는 느낌이었다. 잘 관리된 외모뿐만 아니라 사근사근하게 설득하는 기술이 보통이 아닌 주인 여자는 일하는 틈틈이 건물을 관리하고 세입자들 상대한다. 키가 크길 한가, 눈에 띌 만큼 잘 생기길 했나, 저나 나나 불알 두 쪽 차고 나왔는데 어째서 이리 다를까. 사회 불평등 같은 개념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밤바람 가르며 새벽까지 배달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을 그러잖아도 부자인 그들에게 왜 얹어줘야 하는지, 생각하면 화가 났다. 거기에 매일 돈 내놓으라고 앙앙대는 마누라며 비실대는 애들.....
“그래서 이사 비용은 준대? 어디로 알아봐야 하나? 개가 있다면 다들 질색을 하니....”
정환은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캔 맥주와 개의 간식을 꺼냈다. 이때까지 검정 비닐봉지만 뚫어지게 쳐다보던 개가 격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니가 지금 맥주나 마실 때니? 니네 엄마한테 가서 쫄라 보던가, 룸싸롱 다니는 니네 아부지한테 가보던지, 좀 어떻게 해얄 거 아냐!”
“그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지금은 룸싸롱 안 다녀! 에이 씨팔, 여태 배달하고 와서 좀 쉴라 했더니 긁구 지랄이야.”
방에서 자지러지는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느 결엔가 큰아이도 빼꼼이 열린 문 안에서 겁먹은 표정으로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집어 던지려던 캔을 식탁 위에 거칠게 내려놓으며 정환은 휴대폰만 챙겨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골칫거리 세입자들이 방을 빼겠다고 연락이 왔을 때 정은은 뿌옇던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전날 밤에도 3층 정여사에게 시달렸다. 도대체 시끄럽고 지저분해서 쫒아 올라가려 해도 조폭같은 남자에, 송아지 만한 개가 무서워서 그러지도 못하니 어떻게 좀 해 보라는 통화였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않은 시간, 주로 밤에 활동하는 것으로 보이는 남자에게서 일반 직장인 출근 시간에 전화가 왔다. 다른 집을 계약했으니 잔금을 달라고 했다. 남은 돈이라야 보증금 1000만원에서 6개월의 월세 300만원과 각종 공과금을 해결하면 그들이 받아 갈 액수는 반토막이 날 것이다.
짐 뺐다는 날 정은은 계산기를 두드린 후에 시에나 빌딩으로 향했다. 말한 대로 큰 짐들은 다 나갔고 무엇보다 펄쩍펄쩍 뛰던 개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헌데 실내는 이사를 갔다기보다 쓰레기를 버리고 떠난 꼴이었다. 더러운 이불 패드와 추레한 옷가지들, 플라스틱 용기 등 어디에 이 많은 걸 숨기고 살았을까 싶은 생활 쓰레기가 방과 거실에 그득하게 쌓여 있었다. 욕실을 열어 보니 반 이상 남은 바닥 청소용 세제와 세탁기 가루세제가 바닥에 뒹굴었다.
‘이러니 가난하지.’
정은은 웃옷을 벗어 놓고 창이란 창은 모두 열어젖혔다. 비닐봉투에 쓰레기를 그러모아 눌러 담고 버려진 옷 중에 걸레로 쓸만한 것을 골라 빨아서 바닥을 문질렀다. 한참을 그렇게 쓰레기와 씨름하던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찢어진 벽지와 방바닥, 경첩이 떨어져 기우뚱한 싱크대 문짝 등을 촬영하여 세입자 정환에게 전송했다.
‘그거빼고 빨리송금바람니다. 이집에 보증금 입금해야함.’
맞춤법을 무시한 답 문자가 바로 날아왔다. 정은은 변상해야 할 부분 중에서 장판은 눈 감아 주기로 하고 휴대폰으로 잔액을 보냈다. 득달같이 문자가 도착했다.
‘싱크대문짝은첨부터져있었음. 있는것들이더지랄 잘처먹고잘사라라ㅅㅂ’
해독에 잠깐 시간이 걸렸으나 끝이 욕이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정은은 빠르게 뛰는 심박수를 애써 진정시키며 누르려던 통화 버튼을 닫았다. 그러면서 이 사랑스런 건물이 아니었으면 열 받아 울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재력은 견디지 않게도, 견디게도 해준다.
발코니 오른쪽 옥상까지 세제를 풀어 플라스틱 빗자루로 박박 문지른 다음 호스로 물을 뿌리자 시커먼 거품물이 하수구로 흘러 들어갔다. 옥상 한쪽 조그만 화단에 말라 비틀어지고 있는 식물을 뽑아 그것도 망설임 없이 쓰레기 봉지에 넣었다. 그것은 이사 간 가족의 아이가 유치원에서 키우다 자랑스레 집으로 가져온 오이였다.
집이 말끔해지자 그녀의 속도 진정되었다. 남은 세제를 선반에 올려놓고 바지에 손을 대강 문지르며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거리를 내다 보았다. 나뭇잎을 간질인 오월의 바람이 거실을 휘돌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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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도잠님께 한 수 배웁니다.

에구...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티아모님 글도 좋습니다.

역시 도잠님입니다~!
이런 대작을 꽁꽁 숨겨놓고 계셨네요!!^^

에이.... 부끄럽게 왜 그러시나요. ㅎㅎ

대상 ~! 찜~! 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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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요. 감사합니다. ㅎㅎ

你好鸭,dozam!

@bluengel给您叫了一份外卖!

奶黄包

吃饱了吗?跟我猜拳吧! 石头,剪刀,布~

如果您对我的服务满意,请不要吝啬您的点赞~

우왕... 도잠형 이거 지어낸 소설맞징??
환경이나 상황 묘사들이 엄청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넹 'ㅁ' ㅎㅎ
화자(話者)가 왔다갔다 변하는 것도 재밌고ㅋㅋㅋ
잘 읽었엉 도잠형!! 'ㅡ' ㅎㅎㅎ

추신 : 나도 골든리트리버 키우고싶당 크큭ㅎㅎ
추신2 : 멋진 글로 대상을 욕심내는 도잠혀어어엉!! 깜찍한 욕심쟁잉!! 'ㅡ' ㅋㅋㅋㅋ

형이 재밌다 해주니 좋긴한데 좀 까야 발전이 있지. 레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왕웃기당ㅋㅋㅋㅋㅋ
근데 난 진심 읽으면서 저 사실적인 묘사들에 감탄하면서 읽었는뎅ㅎㅎ
왜냐면 난 저런 묘사들 생각지도 못하고, 저렇게 못 쓰거든!! 😂😂😂ㅋㅋㅋㅋ

형은 영어를 잘 하자나... 잘 생겼고. 그거면 최고야. ㅋㅋ

둘이 너무 다정다감한 거 아닌가요?
서로 물고 뜯어야 잼있는데!!!ㅋㅋ

넘어지면 밟아줘야 잼나긴 한데, 알고 보니 꽃미남이더라구요, 뉴발형이. ㅋㅋㅋ

와 도잠님 대박이네요.!!! 와 저같은 공대생은 정말 상상도 못할 표현들과 생생함이네요.. ㅎㅎㅎ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래봅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해요.
공대형은 나름의 장점이 무궁하잖아요.ㅎㅎ

아 팍팍하다 ㅠㅠ 근데 왜 마무리가 오이인거지!!!!!!!!!!!!!

소재가 궁색해서 그래, 형.
형도 얼른 작품 올려야지?

아참, 형도 오이.... 이제야 생각났음. 잘생긴 오이형과는 아무 상관없음. ㅋㅋㅋㅋㅋ

히야~!
숨어 계셨군요~^^

부끄러워요. ㅎㅎ

따놓은 당상이신거죰? ~^^

따논 당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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