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크라잉 게임
스포일러 있음
이 영화에 처음 들었던 건 고등학생 때였다. 담임 선생께서는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다가 깜짝 놀랐다고 하셨다. 영화의 내용은 자세히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익살스러운 선생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은 건지, 아니면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내가 깊은 곳에 있는 기억을 꺼낼 수 있었던 건지는 구분할 수 없다.
크라잉 게임은 다양한 주제를 담은 영화지만, 가장 주요한 내용은 딜과 퍼거스의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죄를 뒤집어 쓰고도 그 이유를 단순히 '천성이라서'라고 할 수 있는 사랑. 딜이 크로스 드레서라는 사실은,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게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의 사랑일 뿐이지, 이성애자로 살아왔던 퍼거스와 크로스 드레서 딜의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별에 대해서는 다른 작품들에 대한 감상(블레이드 러너 2049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도 여러 번 다룬 것처럼, 앎과 구분에서 차별이 시작된다.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알더라도 본성에 따라 구분을 하고, 구분이 시작되면 차별도 시작된다. 실질적인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멈추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본성을 거스를 수 없는지 사람들은 계속해서 구분을 원한다. 차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차별에 대항하기 위한 결속이라는 이름 하에 배타성을 띄고 또 하나의 차별을 일삼는 조직이 된다. 예를 들면 평등주의자이지만 자신들 조직 이념에는 반대하는 사람을 호모포비아라, 섹시스트라 매도하는 방식이다. 평등을 부르짖지만, 평등이 아니라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피해자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 가해자가 되고 싶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나는 처벌보다는 교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을 요즘은 인권충이라 부른다. 나는 고양이를 기르고 사랑하지만 무책임한 사료 공급으로 늘어난 고양이들이 생태계를 해치고 도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사료를 공급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동물혐오주의자다. 동성결혼에 찬성하지만 주류 퀴어 문화에 대해 반대하는 부분이 있어서 나는 호모포비아다. 성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개선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만, 주류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부분이 있으니 나는 성차별주의자다. 목록은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나는 호모포비아이며 성차별주의자이며 기타 등등인 내가 아니라, 나는 나다. 딜도 "나는 딜이야."라 자신을 소개할 테다. 그거면 충분한 세상이 오길 바란다.
각종 ‘무엇무엇 주의자’ 태그 목록에 완전히 질려서 언제부턴가 어떤 이슈에 대해서 입장을 갖는 것 자체를 거부하게 돼요. 그런 나를 누군가는 회색분자라고 태깅하겠지만.
입장이 같다고 하더라도 세세한 부분에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고 그 각각 다른 의견 중 하나가 버려지는 게 아니라 두 가지 생각에 다 배울 점이 있는 건데, 요즘은 너무 극단적이죠.
개성이 중요한 사회라면서 왜 이렇게 인식표를 달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