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클럽 공모전 참여] 아내가 출산하던 날

in #busy6 years ago (edited)

‘수술 중’

수술실 옆 작은 모니터에 떠 있는 아내의 이름과 그 옆에 붙은 수술 중이라는 말을 3시간을 넘게 째려보고 있었다. 불길한 상상에 지금껏 봐왔던 각종 영화, 드라마, 소설의 내용이 가미되어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었다. 한숨이 폐부 깊은 곳에서 새어 나왔다.

오늘 아침은 여타의 토요일과는 다르게 분주했다. 점심 때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쌍둥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35주차. 아직 5주정도의 시간이 남았기에, 별다른 징조도 없었고 건강한 아내이기에 쌍둥이는 대부분 조산하게 된다는 말은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간 아내가 ‘이슬’이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빨리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아내의 말에 바짝 긴장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식 갈 차림으로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로 향했다.

진료를 하던 담당의사는 아이들이 나오려는 거 같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 산부인과에서는 쌍둥이 출산 수술이 어려우니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어서 가라고 알려주었다. 이때부터 큰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아내를 대학병원 응급실에 접수시키니 각종 검사가 이루어지고 곧 바로 수술이 잡혔다. 순식간이었다. 대학병원을 몇 번 경험했지만 늘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만 기억에 남아있었다. 근데 이곳에서 이런 빠른 진행을 경험하게 되다니! 이것이 나의 불안함을 양껏 증폭시켰다.

그렇게 아내를 본관 2층에 있는 수술실로 들여보냈다. 다 괜찮을거라 말하며. 그렇게 아내가 들어가고 수술실 옆 작은 모니터에 아내의 이름과 수술중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모니터가 나의 눈빛에 뚫어져갈 즈음에 투명 케이스가 씌워진 침대가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작고 쪼글쪼글한 두 생명체가 그 속에 있었다. 특히 그 중 더 작은 것은 다리가 제멋대로 휘어져 있었다. 수술복의 의사가 아내의 남편을 찾고 그 찾음에 응답한 나는 의사와 함께 아까 지나간 두 생명체를 뒤따랐다. 그 두 생명체가 내 쌍둥이 딸이었다.

아내는 출혈이 많다고 했다. 지혈이 안 돼서 시간이 좀 걸릴 거 같다고 했다. 앞이 캄캄해졌다. 애써 정신을 붙들고 아이들 수속 서류를 읽고 사인했다. 한 아이의 비틀린 다리에 대해 묻자 쌍둥이가 위아래로 위치하고 있었는데 아래에 있던 아이가 위에 있던 아이를 받치느라 그렇게 된 것이니 일단은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몇 달을 그 어두운 곳에서 둘째를 받쳐가며 지냈을 첫째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 후 다시 수술실 앞에 자리했다. 수술실 옆 작은 모니터에는 아직도 아내의 이름과 수술중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11년 전에도 이 자리에서 수술실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간암 말기의 판정을 받으셨고 일단 수술을 해보자는 판단에 바로 이 대학병원, 이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았었다. 그리고 2달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지역에서 가장 큰 병원이기에 이 곳 수술실은 위중한 사람들이 많이 거쳐 갔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많은 지인들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번엔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졌다. 나는 나의 상상력과 전쟁을 했다. 상상 속에서 난 이미 아내를 잃고 장애를 가진 쌍둥이를 힘겹게 키우는 홀아비였다. 점차 상상은 기정사실화 되고 결혼식을 위해 차려입은 양복은 장례식 상주의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때 전화가 울렸다. 대학병원 번호였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힘겹게 받은 전화 넘어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보호자가 어딜 가 있는 거에요? 환자가 수술실에서 나온 지가 언젠데요. 어서 XXX호실로 오세요!”

어안이 벙벙하다가 알겠다며 당장 뛰어가겠노라 답했다. 실제로 달려갔다. 눈 앞에 아내가 살아있었다. 아프다며 어디 있었냐며 울음을 터트리는 아내가 그렇게 애틋하고 사랑스러웠다. 그제야 두 쌍둥이 딸의 아빠가 되었다는 실감이 났다. 그렇게 4월 25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거북토끼2.jpg

<캘리그래피를 그려주신 @dorothy.kim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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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잘 이겨내셨습니다. 고생도 많으셨고요. 아무리 잘 다듬어진 상념도, 삶의 극적인 순간들을 이길 수는 없는 법입니다. 가족분들의 나날들이 행복으로 켜켜이 쌓이길 기원드립니다.

불안이 만든 공상은 사람의 이성과 마음을 모두 갉아버리는 거 같단 생각을 해 봅니다. 간단히 물어보면 될 일을 두 시간을 앉아 상념과 씨름했지요. 그럼에도 그 공상이 공상으로 끝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기원 감사합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게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두근거리고, 긴장되는 일이겠죠. 특히 쌍둥이를 낳는 상황에서 저런 일들이 벌어지면 정말 자신의 상상력과 한없이 싸우며 속이 타들어갈 것 같아요. 마지막에 울먹이는 아내분의 모습이 상상되어 괜히 뭉클했습니다.

보통일이 아니지요. 더군다나 직접 아이를 낳는 아내 입장에서는 더더욱요. 사람의 상상력이란 게 긍정적인 방향보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더 잘 발달해 버리는 거 같아요. ㅠㅠ

둘째 다리는 괜찮은 건가요?... 그런데 그때 어디가 계셨어요? ㅎㅎ

밑에서 받치고 있던 애가 첫째였는데 곧 정상으로 돌아왔고요. 이젠 이상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들 때문에 자리를 비웠을 때 아내가 수술실에서 나언 거죠. 수술실 옆 안내 모니터는 주말이라 관리가 안 되서 계속 수술중이라 떠 있던 거고요. 그 때문에 아내가 수술중이라 생각한 거죠. 가긴 어딜 갔겠어요. ^^;;;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참 어렵고도 소중한 일 인 것 같아요~
제 아내도 막내를 낳다가 출혈이 멈추지 않아서 일반산부인과에서 대학병원으로 트랜스퍼했렀는데 참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어요~
쌍둥이 이쁜따님들 많이 컸겠네요^^

맞아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죠. 이제 많이 커서는 조질조잘 말도 하고 그렇습니다. 하하.

엉엉... 너무 슬퍼요.. 우리 쌍둥이 엄마 보고 싶으네요~~ ㅜ.ㅜ

토, 일요일에 대구 여행을 다녀와서 제 옆에 뻗어있어요. 쌍둥이와 함께 한 여행이라 많이 힘드나 봅니다. ㅜㅜ

네~~ 뻗을 땐 뻗게 나둬야지요 ^^ 감사합니다 ^^

마음 졸이며 읽었는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되어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습니다. 두분 너무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 날 지옥과 천당을 오간지라 글에 그 느낌이 묻어 있어서 그게 전달 된 듯 합니다. 지금은 너무 다들 건강히 지내고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걱정, 응원 감사합니다.^^

뭉클해지는 글이네요.
역시 생명의 탄생은 위대한 것...

위대라는 것은 그만큼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거 같아요. 아이를 위한 어머니의 희생이 그럴거 같아요. 물론 그를 지켜보고 함께 하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일테죠. 생명 탄생이 위대하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사모님도 건강하게 회복하고 계시죠?
중간 아버님 이야기에 조금 뭉클했는데.. 두 쌍둥이 딸의 아빠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네 아내도 현재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워낙 저 수술실 앞에서 여러 일들이 있던지라... 축하 감사합니다.^^

나쁜 상상력과 전쟁을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인 것 같아요.ㅠㅠ

어찌나 그런 상상은 노력하지 않아도 쑥쑥 커버리는지요. 그런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힘든 일이지만 그 덕인지 쌍둥이의 무사함과 킴쑤의 건강함이 더더욱 감사하기 여겨지더라고요.^^

마음 정말 많이 쓰셨겠네요. 더욱 사랑하는 사이가 되셨겠어요...
평소 다니시던 산부인과에서 출산은 큰 병원가서 해야한다는 것을 미리 알려줬더라면..
그걸 미리 알고 계셨더라면 그 불안함과 두려움이 조금은 감소되지 않았을까요?!
댓글을 보니 쌍둥이들 모두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군요!! ㅋ

네, 쌍둥이들이 개구쟁이로 건강하게자라고 있어요.^^ 아내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랄까요? 그런 시간 다음의 만남이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댓글에서 말한 거처럼 더 사이가 돈독하진 거 같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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