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12년 전 오늘 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마음속으로 외쳐보지만...갈 곳은 연무대 뿐이라네

in #kr-pe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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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뜬눈으로 밤을 지세우고 정신을 차려보니 논산으로 가는 고속도로였다. 입영 날짜를 받아놓고 열심히 알바를 뛰었다. 날짜가 점점 다가오자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먹었다. 친구들은 모두 이미 모두 군인이었고, 마지막을 함께 해준 여사친들과 노래방에 갔다.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며 나는 안울 줄 알았는데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비웃는 친구들을 향해 편지 꼭 써달라 했다...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쳤을까, 차 뒷자리에 누워 눈부신 햇빛을 마주하니 머리가 핑 돌며 흰색 티셔츠 위로 코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엄마는 소포를 받아보며 얼마나 놀래셨을까.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던 논산훈련소 입소대대는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이곳인가, 조교가 변기에 머리를 박게 하고 누리끼리한 찌꺼기를 긁어 먹이게한 곳이. 길고 긴 현충일 휴일이 지나가고 훈련연대로 줄줄이 좌로 갓! 최대 규모를 실감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7개 연대 중 위치가 가장 중간이라며 운이 좋다는 말을 남긴 채 입소대대 조교는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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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곳에서 5주를 보내야 한다니. 머리를 빡빡 깍은 모습들을 마주 하니 왜 이리 불쌍해보일까. 침상 사선에 마주 앉은 동기의 낯빛과 목소리가 불안하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화생방 훈련 때 철모를 놓쳐 우리는 예정된 시간보다 1분 이상을 더 그곳에 갇혀 있게되었다. 조교는 신나게 철모로 축구를 했다. 눈물 콧물 쏟던 동기를 보는 우리는...화도 나고 불쌍도 했지만, 착해서 봐줬다.

매일 같이 행군이었다. 훈련장 가는 길은 왕복 2시간. 중간이라 정말 다행이다. 종교행사 가기도 수월했다. 절, 성당, 교회를 나눠서 갔다. 넓디 넓은 훈련소는 하지 말라는 짓도 하게했다. 담배를 누군가 꿈춰두었다. 한 개피로 세명이 나눠폈다. 하지 말라는 짓 하면 꼭 걸리는 내가 걸리지 않았다. 첫주 차 모내기를 막 끝마친 논의 벼는 5주가 지나니 그새 자라있었다. 이제 논산에서 홍천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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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 같던 더위에서 훈련을 마치고 후반기 교육을 위해 온, 제1야전수송교육단. 2813, 대형운전 주특기를 선택해서 입대했었다. 더위가 가니 장마가 몰려왔다. 운전대 대신 삽이 손에 쥐어졌다. 산 중턱에 위치한 부대, 배수로는 산 중턱에서 계속해서 밀려드는 흙으로 바닥을 보여주지 않았다. 3주차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교육 다운 교육을 받았다. 사제 덤프트럭으로 시험을 보았다. 대형 버스를 몰고 싶었다. 마지막주차, 자대배치시간이다. 추첨을 맡은 장교는 트라이앵글을 그리며 이곳만 피하면 된다고 일러준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양구라도 피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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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서 군 생활을 하신 아버지, 아들은 인제를 거쳐 원통으로 향하다 민통선까지 왔다. 사방이 산이다. 처음 마주한 인사과는 시멘트 벽돌 건물. 나름 신막사에서 10주를 교육받고 오니 허름해 보이는 막사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수송부 연병장이 보인다. 버스는 없다. 인사과장이 말했다. 주특기 TO 넘치는데 왜 또 들어왔냐. 포대장과 우렁찬 인사를 마치고, 막사로 들어선다. 끝이 어디일까, 맞은 편 문은 저 멀찍이 떨어져 있다. 포대 정원 100여명 내무실은 단 두개였다.

수송부 선임들이 없다. 모두 물놀이 하러 갔단다. 병아리는 눈만 껌뻑껌뻑. 누군가 아들~!하며 달려 온다. 짝대기가 세개다. 담배를 피냐 묻는다. 넵! 너도 나도 반갑게(?) 마주해 주어 자기전까지 한 갑은 핀 것 같았다. 해가 지니 수송부 고참들이 몰려온다. 얼굴이 모두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분대장은 이미 뻗어있다. '운전병의 날 행사'라고 민통선 안에 계곡으로 고기 구워먹고 술 한잔씩들 걸치고 왔단다. 좋은 곳이구나.

다음 날, 첫 일과를 위해 수송부 연병장으로 향한다. 모두 위장막 보수 작업이 한창이다. 수송관과 또 다시 우렁찬 인사를 나눈다. 모두가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며 한마디씩 건낸다. 다음주가 유격이다. 하하...첫날부터 외울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30명이 넘는 고참들 이름부터 몇 월 입대인지도 외워야 한단다. 숫자도 외워야 한다. 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공.(포병들이 외치는 숫자, 발음이 겹치는 것이 없어 수신호 때 쓴다.)

식사를 위해 연병장을 지나 식당으로 향한다. 경주 대릉원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그 아래에 무덤 대신 105mm포가 북쪽을 향해있었다. 부분대장이 부대마크를 가리킨다. "이게 뭔 줄 아나? 그랑죠 아이가 그랑죠. 전쟁나믄 저기서 그랑죠 나온데이" 진짠 줄 알았다. 이제 막 전입 온 신병들은 모두 취학 전 아동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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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말로만 듣던 유격 체조 PT 8번인가. 온몸비틀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몸을 성하게 나두질 않았다. 이제 막 전입 온 신병도 외치지 않는 마지막 구호는 누가 그리 외치는 것일까. 조교는 연신 비틀어댄다. 산 비탈에 설치된 텐트는 12명의 분대원들이 몸을 부대끼며 자야 했다. 기울어진 경사의 끝, 물이 새는 자리가 바로 내자리. 전투화는 마를 새가 없었다. 지옥같던 일주일이 끝이 났다. 그때는 몰랐다. 이 지옥으로 두번 더 올줄은. 그렇다 군생활, 유격만 세번! 캬, 신난다 재미난다 the game of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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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막 보수의 정체가 드러났다. 2주일 뒤 또 훈련이란다. 신난ㄷ...위장막 보수하랴, 아직 못 외운 고참들 이름 외우랴, 포병숫자 외우랴, 간부들 차량번호 외우랴 정신이 없다. 우리부대는 민통선 경계부대였다. 고로 위병근무도 두군데였다. 부대와 민통선을 지나는 인원과 차량 모두를 관할했다. 그래서 부대 내 차량 번호들은 외워두는 것이 편했다. 근데 운전병이 경계 근무가 웬말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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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트 페이스!(Past face) 2주가 지나 전술훈련이 시작되었다. 전쟁이나 난 것 마냥 행정반 근무자가 기상나팔 소리보다 먼저 부대 전 인원을 깨운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고참들 눈 밖에 난다. 정신 없이 물자들을 옮기고 차량에 실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두돈반 트럭위에 서 있었고 k3 기관총이 내손에 쥐어져 있었다. 고정핀이 나갔는지 연신 넘어지려 한다. 유격훈련은 끝이 났는데 내 팔은 PT 8번 시작이다. 온몸비틀기에서 내팔비틀기. 두돈반(군용트럭)에 서서 보니 차량 행렬이 눈앞에 펼쳐진다. 언제쯤 운전석에 앉아 보려나.

고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니 신병 하나가 들어왔단다. 아직 동기도 만나지 못했는데, 내심 동기였으면 하며 전입한지 몇 주 되었나 세어본다. 한손으로 세어지는데, 왜 이리 억울할까. 나는 굵직한 훈련을 두개나 다 받고 왔는데! 너는 지금 오냐!!! 한주가 더 지나니 계속해서 신병이 들어온다. 동기는 나와 4주 차이, 한명뿐인 동기와 바로 아래 후임은 1주 차이. 군생활은 줄도 잘 서야 하지만 타이밍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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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 말호봉, 다음달이면 작대기 하나를 더 단다. 내 밑에는 이미 후임이 열명. 이등별이 되었고, 어느새 겨울이 되었다. 주말마다 눈이 내렸다. 하루쟁일 내렸다. 치워도 뒤를 돌아보면 또 쌓여있었다. 어느날은 무릎까지 쌓였다. 바로 위 고참이 말한다. 저 위에 추진포대라고 있는데 거기는 문도 못 열만큼 온다고. 국도에서 부대까지 이어지는 길은 우리부대 관할이었다. 쌓이면 우리가 치워야했다. 꽁꽁 얼었다. 1-2키로는 되는 길이었다. 후반기 교육을 받던 여름에 삽질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자대에 온 겨울에 제설작업을 하면서도 느꼈다. 군인이 안되는 건 없구나.

새해가 밝았다. 일병을 달았다. 혹한기 훈련이 다가왔다. 이놈의 지긋지긋한 훈련. 숨을 쉴 때마다 콧털이 쭈뼛쭈뼛 선다. 서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콧털이 얼어서 선다. 그 정도의 추위다, 그곳이. 군생활 훈련 일정은 꼬였지만, 군번이 풀렸다. 훈련 두번째만에 차량을 배정받았다. 크...세달 전 보던 그 차량 행렬의 대열에 합류하다니. 주둔지에 들어섰다. 경사지가 나타났다. 연신 시동을 꺼트린다. 땀이 송골송골 맺혀 언다. 통신반 차량이었다. 불같이 화를 내던 유선반장과 잘 타일러 주던 무선반장님, 40대는 되어보이던 그는 지금의 나보다 어렸다. 침상 맞은편엔 통신소대가 앉았다. 내무실 침상의 내 앞에는 학창시절 인사도 잘 안하던 고등학교 동창이 앉아있었다. 세상 좁다. 그놈에게 무선반장이 부르는 애칭이 있었다. 빡구. 밤샘 근무때 마다 무선반장은 빡구와 나를 놀려댔다. 그립네, 제대하셨으려나, 상사다셨을라나.


아, 역시 이렇게 길어질 줄은 알았지만......ㅋㅋㅋㅋㅋ오랜만에 기억속에서 꺼내어 본 군 시절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의 전역자들이 그러하듯 역시 마르지 않는 샘물 같아요. 이제 일병 달았는데 여기서 그만 줄이고 내일 현충일에 이어서 마저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없게 읽으셔도 적을겁니다.....이제까지 쓴 게 너무 억울함.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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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때는 저랑 가까웠던 사람들이 죄다 군대에 갔었죠. 울면서 배웅해주기도 하고, 편지도 쓰고, 면회도 가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지인의 편지나 전화를 받으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이제 혹한기야... 이런 내용들이었어요. ㅎㅎ 오랜만에 지인의 편지를 받은 듯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써주신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해봤어요. 마저 적어주세요!

입대영장보다 무섭다는 무플에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저는 늦게 입대를 하다보니 배웅해줄 친구들이 없었어요. 최대한 풀어서 쓴다고 했는데 잘 이해가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다음 내용을 마저 이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완전 x고생하셨네요..ㅎㅎ
방위 한명 신고합니다...ㅎㅎㅎ

각자의 자리가 다 힘든 법이죠. ㅎㅎㅎ

모르는 용어가 많아서 100% 내용을 이해하기는 힘들지만ㅋㅋ
그치만, 부대안에서의 만난 청춘들의 이야기가 풋풋해요ㅎㅎ

다녀오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불친절하게 읽혔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ㅎㅎㅎ
오랜만에 기억에서 꺼내보니 정말 풋풋했어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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