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 나는 오늘도 3등

in #zzan4 years ago

오늘이 벌써 9월 마지막 주일이다.
이른 아침부터 어머니 방에서 기척이 들린다. 곧이어서 불이 켜지고 문소리가 들린다. 고혈압과 당뇨가 있으신 어머니께서 일찍 혈압약을 드시려고 움직이신다. 그러면 나는 권말부록처럼 자동으로 따라 움직이게 된다.

젊은 사람들은 미사시간 임박해서 가는데 어르신들은 한 시간 전부터 가신다. 그 전에 약 드시고 세수하고 한 듯 만 듯 화장도 하시고 옷도 이것 저것 입어보시면서 거울 앞에서 한 시간은 기본이시다. 어떤 때는 거의 도착하셨다 싶으면 다시 돌아오신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 해서 쫓아 들어오면 옷이 마땅치 않아서 신경이 거스린다고 하신다. 기어이 갈아입고 다시 출발하신다.

무엇이든 준비가 되지 않으면 불안해 하셔서 봉헌금도 내가 은행에 가서 신권으로 바꿔다 드리면 평소에 사용하는 지갑이 아닌 다른 지갑에 별도로 보관해두시고 쓰신다. 구두도 하루 전날 점검을 하시고 전날 밤에 가방에 필요한 소지품이 다 있는지 확인을 하시고야 마음이 놓이시는 것 같다.

오늘도 한 참이나 거울을 보시며 패션쇼를 하신다. 그렇게 부푼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겼다. 사또가 밖에서 어린애처럼 엄마를 부르며 들어오더니 어제 밤에 기침하시고 감기 기운 있으니 오늘은 오후에 성당을 가시라고 한다. 노인들은 위험하니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으시는게 좋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 기분 상하실까봐 눈치를 보는데 아들 말이 그럴싸하게 들리시는지 두 말도 없이 그때까지 하시던 패션쇼를 중단하신다.

그대신 아침에 그거 먹자고 하신다. 그거라니 또 뭘까 했더니 아들에게 빵 속에 고기도 들고 상추도 들고 그런거 먹자고 하시자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은 편의점으로 간다.

결국 모자의 합의에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순두부찌개도 덮어두고 콩닥거리며 준비한 반찬들은 고스란히 냉장고로 들어가고 나도 조용히 삼순위로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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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혼자 지내시는 추석
가족들과 영상통화로 아쉬운 마음 대신 하셨겠지요?

힘찬 10월 출발하셔유~!

감사합니다.
블루앤젤님도
특별히 의미 있는 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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