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쓸쓸한 이유

가을이 쓸쓸한 이유/cjsdns

가을 하면 일단 풍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이 언젠가부터는 사라졌다.
벼를 수확하는 콤바인이라는 기계가 나오고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콤바인이 가을 도둑이기 때문이다.

황금물결로 넘실대던 뜰도 어느 날 갑자기 도둑맞은 듯 사라진다.
내 것이 아니라도 그런 생각이 든다.
가을을 즐길만하면 그냥 순삭 한다.

어제아침까지 누런 벼가 가득했던 논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가보니 아주 깔끔하다고 말해야 할 정도로 빈 벼그루만 정렬하듯 있다.

고개 숙여가며 익어가는 벼를 보는 재미가 제법 있었는데 많이 아쉽다.
물론 다른 뜰에 황금물결이 넘실대고 있지만 그 또한 일탈에 거의 다 수확할 거 같다.

예전 같으면 벼가 익으면 벼베기부터 타직 하는 거까지 많은 일의 순서와 볼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수확을 해도 집으로 벼가 오는 게 아니라 건조장으로 바로 간다.
그러니 농사지어서 곡간에 잔뜩 쌓아놓고 바라보는 재미도 없어진 것이다.

뭐 편하기로 말하면 달리 말할 것은 없다.
벼농사에는 숱한 애환과 낭만이 잇었는데 이제 그런 것들이 다 사라졌는 든 것이다.

쌀에는 농심만이 아니라 우리의 민족 혼까지 들어있다고 했는데 이제는 식량이라는 절대적인 지위에서 그냥 농업 생산물이고 먹고사는 음식 중에 하나일 뿐으로 전락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그 옛날 일을 해도 해도 배고프던 시절보다는 낫다.
지금은 이 밥이 부러운 세상이 아니다.
사실 이런 세상이 올 거라고 짐작이나 했었나 말이다.

투정 아닌 배부른 이런 투정을 할 수 있는 지금은 행복한 것이다.
다만 수고스러움 뒤에 있던 낭만마저 도망치는 메토끼처럼 빠르게 사라지니 아쉽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가을이기를 바라면서...

2024/09/02
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