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사 연구) 6.25 기습남침론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 3(기습의 작전적, 전술적 측면), post 7.

6.25 전쟁은 전략적인 측면에서 볼 때 기습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럼 작전적인 측면과 전술적인 측면에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

기습은 예상치 못하는 장소와 시간과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이다. 우선 장소라는 측면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프랑스의 아르덴느 산림지역으로 전차부대를 운용했다. 산림이 우거진 지역으로 기갑부대를 투입한다는 것은 군사적으로 무모한 일이라고 여겨질 때 였다.

그러나 독일군은 연합군이 예상하지 못하던 장소인 아르덴느 산림지역으로 기갑부대를 집중투입하여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허를 찔렀다. 이렇게 허를 찔린 영국 프랑스 군은 덩케르크 까지 속수무책으로 밀려가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것도 대표적으로 예상치 못한 장소에 대한 기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하는 방법으로 기습을 달성하는 경우는 다음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독일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기갑부대를 집중운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와함께 급강하폭격기를 같이 운용했다. 당시로는 기갑부대를 집중운용하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고 급강하폭격기까지 같이 운용하는 경우는 예측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기습을 달성한 사례의 대표적인 경우를 제2차 독일군의 전격전으로 들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시간의 경우는 통상적으로 6.25전쟁을 들 수 있다. 북한군이 6.25일 일요일 새벽에 기습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6.25일 일요일 새벽이라는 것이 예상치 못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 당시 한반도는 3월위기니 6월위기니 하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6.25일 새벽은 북한군이 기습을 달성했다는 것은 기습이라기 보다는 한국군 지휘부가 스스로 방심하거나 오판한 결과로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것이다.

통상 기습이라는 것은 예상치 못하는 시간과 장소 방법 중 여러가지가 같이 혼합되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 예상치 못하는 시간이라는 요소는 주로 전략적 작전적 수준보다는 전술적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할 것이다.

6.25 전쟁은 예상치 못했던 장소와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기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선 한국군은 북한군이 공격할 방향을 정확하게 예측하여 대비하고 있었다. 일부에서 북한군의 공격에 대비해서 후방의 예비사단을 전방으로 추진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오히려 북한군의 남침 빌미를 줄 수 있다는 미군의 반대로 인해 대비하지 못했다. 그러나 만일 북한의 공격에 대한 대비가 충실했다면 6.25 초반의 괴멸적인 피해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춘천과 홍천지역의 6사단의 예를 보면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또한 예상치 못하는 방법이라는 측면에서도 북한군의 어떤 활동을 기습이라고 할지 명확하지 않다. 북한군의 소련제 탱크를 기습의 요소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당시 한국군들도 북한군이 소련제 탱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미군들은 한국군의 말로만 호전적인 분위기를 우려해서 전차를 배치하지 않았을 뿐이다. 당시 미군은 한국군이 북침하는 것을 우려할 정도였다. 물론 소련제 전차의 전황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만일 북한군의 전차에 대비한 방어 준비를 충분히 갖추었다면 그렇게 무력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군은 6.25 전쟁 초기 전차를 보병무기로 사용했다. 작전적 전술적으로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크게 양보하더라도 북한군은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적어도 작전적 수준에서 예상치 못하는 방법으로서의 기습을 달성하지는 못한 것이다.

한편, 기습에서 예상치 못한 시간이라는 요소는 전략적이거나 작전적인 수준보다는 전술적인 경우가 많다. 6.25일 새벽 4시에 기습을 당한 것은 적이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준비를 안한 결과인 것이다.

전략적 작전적 전술적 차원에서 예상치 못하는 장소와 방법 그리고 시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6.25 전쟁에서 우리가 기습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전술적 수준에서 매우 적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6.25 전쟁 초기 작전에서 우리가 괴멸적인 패배를 당한 것은 북한군의 기습이라기 보다는 당시 한국군이 전쟁에 대비한 준비의 수준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의 기습남침때문에 한국군이 고전을 했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평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시 한국군 지도부와 주요 지휘관들 그리고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전쟁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고 말로만 떠들었던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전쟁사 연구) 6.25 기습남침론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 2(기습의 전략측 측면), post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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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기습이란 아주 흔한 전술일 뿐이지요.

말씀 하신 대로
대비하지 않는 게 문제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전쟁사입니다.

제가 전에 댓글에서도 약간 언급했고 글의 내용에서도 나오지만 남한의 준비가 안됐던건 대체로 미국때문이었습니다. 소련이 결국 김일성의 요구를 들어준데 비해 미국은 남한의 요구를 여러 이유로 거절했죠.

그런데 일본에 의해 별 빌미 없이 기습당한적이 있는 미국이 남침의 빌미 운운한것은 좀 그렇긴합니다. 막나가는놈들은 선전포고 그런거 없이 때린다는걸 이미 겪어봤을텐데....아 그러고보면 선전포고 없이 전면전을 벌였다는 점에서는 기습으로도 볼 수 있겠군요.

전쟁 가능성을 미국이 몰랐을리는 없고 그 당시 우리나라가 괘씸죄를 미국에 저지른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한번 크게 당해보라는... 그리고 전쟁이 나야 미국에 이익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을 겁니다. 일본은 옆에서 주워먹었죠.

일본은 몰라도 미국은 별 이득이 없었습니다. 당장 인천상륙작전이란 도박을 해야할정도로 상황이 몰려버려 미군에도 출혈을 강요했죠. 한국을 포기하려 했었다면 몰라도 단지 괘씸죄로 넘어갈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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