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사 연구) 6.25 기습남침론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 2(기습의 전략측 측면), post 6

군사적으로 기습이라고 할때는 이를 정의하는 몇가기 기준이 있습니다. 먼저 예상하지 못했던 시간, 장소, 방법으로 공격해서 상대방이 대응할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을 주지 않는 것을 기습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기습은 전략적, 작전적, 전술적 수준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쟁사에서 기습이라고 하는 것을 상기한 조건에 부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상대방이 기기묘묘한 방법을 써서 우리를 기습하려고 하더라도 우리가 예상되는 상황을 충분하게 준비하여 대비한다면 기습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면 우리는 기습에 매우 취약한 상황이 됩니다. 따라서 기습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준비되어 있는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습을 당하지 않도록 적의 동향을 잘 관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6.25 전쟁당시 우리는 어떠한 기습을 당했을까요 ?

먼저 전략적인 수준에서 우리는 기습을 당했나요 ? 적어도 전략적 수준에서 우리는 기습을 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6.25 전쟁이전 한해 동안에 약 1만명 정도의 전사자가 발생할 정도로 이미 전선에서는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미 김구 선생도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충분하게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남한 단독 정부수립을 반대했던 김구 선생은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김구 선생의 북한방문은 그 의도와는 달리 북한 김일성에게 이용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북한을 방문했던 김구선생은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고 그것을 주한 중국(대만)대사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6.25 전쟁이전에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전쟁이 일어나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모두 전쟁은 시기문제이고 언젠가 곧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기정사실화 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볼때 전략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전혀 기습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략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이제까지의 전사연구에서 별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승만 정부의 공세적인 태도가 남한 군의 군사대비태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승만 정부는 매우 공세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공세적인 레토릭에 부합하는 능력은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군통수권자가 공세적인 태도를 취했을 때, 군은 방어와 관련한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승만 정부가 공세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정말로 능력과 의지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북한의 공격가능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허풍을 쳤던 것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부 진보적 연구자들은 이승만 정부의 공세적인 태도를 6.25 전쟁을 남한군의 북침 근거로 제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이미 그런 주장은 최근 확인된 사료를 통해서 근거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문제는 국가 통수권자가 허풍이라도 공세적인 입장을 분명하게 하면 방어준비태세가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우리군은 38선 인근에서 파상적인 공세작전을 수행하면서 국지적인 우세를 달성하고는 있었습니다만 다가오는 전면전에 대비한 준비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할 것입니다.

국가통수권자의 태도가 군사작전에 영향미친 경우는 전사상 많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독일과 소련의 제2차 세계대전입니다. 소련의 스탈린은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공격사상을 견지했습니다. 당연히 방어준비는 소홀했습니다. 게다가 독일군이 소련을 공격하기 바로 직전까지 소련군이 방어준비를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독일군에게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결국 독소전역에서 소련군이 초반부에 어마어마한 패배를 당한 것은 스탈린의 전략적 판단 미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치 그런 소련치하의 스탈린과 비슷한 상황을 이승만 정부가 저질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군 장교들은 전쟁을 승리고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지니고 있었지만 우리군은 그럴 정도의 능력을 가진 장교집단이 거의 전무했다고 하겠습니다.

만일 당시 우리군 수뇌부가 어느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아무리 정치지도자가 공세적인 태도를 취한다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방어준비를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남한군이 북한군의 공격에 대비한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는 증거는 많지 않은 듯 하다. 물론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주제에 대한 연구과제를 염두에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1. 이승만 정부의 북한에 대한 공세적인 군사적 발언과 당시 군사대비태세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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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xtraordinary work,an article about the history of the past that contains s high historical story,@wisdomandjustice

기습이라는 정의로 살펴보니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또다른 내용이네요.

기습도 복잡하지요

이승만이 그렇게 떠들고 다닌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동안 왜 기습을 당했다고 생각햇는지 모르겟네요

세뇌에 길들여진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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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깡통이 요란한 거네요

늘 그렇듯이요

always such great work...(and thank you for your support.)

Thank you for your visit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정부와 미국정부를 구분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북한이 전쟁을 위해 소련에게 무기를 받았던것처럼 당시 한반도의 정부들의 전쟁대비능력은 소련/미국에게 달렸으니....

문제는 그 당시 남북한 모두 전쟁을 못해 안달 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참.... 안타깝고 돌이킬수없는 역사네요..

한국전쟁 발발 전에 소규모의 국지전이 꽤나 있었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보수를 외치는 분들은 기습이 아니었다고 하면 빨갱이로 몰아가는 특이한 성격을 지니셔서...-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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