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각오한 여행, 코로나 시대의 끔찍한 상상

in #stimcity4 years ago

얼마 전 꿈을 꿨다.

코로나의 무서운 번식력처럼 코로나 블루를 겪던 사람들 사이에는 자살 바이러스가 역병처럼 퍼졌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 갇혀 살던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앞다투어 했다. 보통 스스로 제 목숨을 끊는 홀로 사는 사람들은 자기의 문 밖 문고리에 종이를 걸어놨다.

“내 시체 처리를 부탁합니다.”

경찰들은 그 종이를 보면 놀라지도 않고 으레 있는 일이라는 듯 사체를 처리했다. 자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더 이상 살 수가 없지만 스스로 목숨을 끓는 것이 무서운 사람들은 최근 신종 유망 직업으로 떠오른 ‘자살청부업자’들에게 자살을 의뢰했다.

‘한 번에 끝내주세요.’ ‘갑작스러웠으면 좋겠어요.’ ‘덜 고통스럽게 해주세요.’ ‘온 가족을 함께 처리해주세요’

등등의 자신들의 요구와 집주소를 남기고 그들이 자신을 방문해 이 삶을 끝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우리 집도 그 불행한 바이러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살 바이러스에 감염된 나의 부모는 아직 감염 되지 않은 나를 지키기 위해 제 손으로 운명을 달리했고 나는 죽음과 맞닿았을 때 마지막으로 파괴적인 폭발력을 발휘하며 공기 중에 떠도는 자살 바이러스를 피해 도망쳤다. 울고 불고 제정신이 아닌 나는 그 와중에도 집에 있는 돈을 모두 들고 나왔다. 택시를 잡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거의 존재하지 않다 싶은 비행기 하나를 가까스로 예약했다. 공항에 도착한 나는 내 손에 주렁주렁 매달린 짐을 정리하기 위해 화장실에 갔고 옷을 갈아입고 가방 한 가득 자리를 차지한 사과를 발견했다. 아마, 먹을 것이 없을 때 죽지 않기 위해 살기 위해 먹으려고 챙긴 것일 거다. 사과는 지구 종말의 희망, 같은 거니까. 가방과 옷 정리를 마치고 체크인을 하려는데 비행 시간 30분 전이라며 탑승을 거부당했다. 망연자실하게 활주로를 바라보는 내게 내가 놓친 비행기를 타러 가는 할머니 단체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죽음을 불사하고 돌아오지 못할걸 알면서 비행기타는 그들의 모습은 즐거운 와중에 사뭇 비장함이 묻어났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도 비극적이고 현 시대를 반영한 꿈이 내게 남긴 한 문장은 ‘죽음을 각오한 여행’ 이었다. ‘죽음을 각오한 여행’이란 문장이 자꾸만 덜그럭 덜그럭 머릿 속에서 움직였다. 나는 곰곰이 ‘죽음을 각오한 여행’이란 뭘까 생각을 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죽음을 각오하고 떠나는 사람들의 비장한 모습은 여행보다는 탐험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탐험은 죽음을 각오하고 떠나는 여행일 것이다. 중세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은 알려지지 않은 지구의 미지의 영역을 찾아내기 위해 탐험을 떠났다. 16세기에 불가능해 보였던 세계일주에 나선 마젤란은 사람들의 반대와 견제를 무릅쓰고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고 미지의 동방의 세계로 갈 수 있었다. 세계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한 피어리, 세계 최초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한 아문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탐험가들은 불굴의 의지로 수많은 항로를 개척하고 미지의 세계를 파헤쳤다. 그들로 인해 수많은 항로가 개척되었고, 나라를 잇는 육로가 생겼지만, 그 탐험은 결국 누구를 위한 탐험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결국 중세의 탐험이란 지배와 피지배를 공고히 하는 허울 좋은 변명이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에.

그 다음으로 ‘죽음을 각오한 여행’이라는 문장에서 떠오른 사람은 한비야였다. 40kg되는 배낭을 짊어지고 오지를 돌아다니고 테러리스트 두목과 사귀고 온갖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여행자를 현혹시킨 한비야의 글로 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갔고 오지를 여행했다. 인도와 오지를 여행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 역시 인도를 10번도 넘게 여행했으며,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뜯어말리는 온갖 오지도 많이 다녔다. 문제는 여행이란 스스로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영역의 것이라는 거다. 누군가가 선동해서도 선동 당해서는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환상과 꽃밭을 미친년처럼 뛰노는 얘기를 사람들에게 들이대며 ‘행군하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내 결정과 책임 하에 남들이 위험하다고 하는 나라들을 여행했다. 그 모든 여행지는 아무리 위험 한다 한들 사람 사는 곳이었고, 사람 사는 곳에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니 늘 주의와 경계는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라고 강간의 천국처럼 묘사하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열 번 넘는 인도 여행에서 죽음의 위협도 강간도 당하지 않았으니. 하지만 오지와 여행 위험 국가국을 여행을 하는 것에는 누군가의 사탕발림 같은 말에 속아 얕은 마음으로 떠나는 것이 아닌 ‘죽음을 각오한 마음가짐’은 필요하다. 나는 첫 인도 여행 때 눈 알이 뽑히는 꿈을 꾸고도 기꺼이 그 여행에 발을 내딛었다.

이 꿈을 1년 전에만 꿨어도 웃어 넘겼을 거다. ‘죽음을 각오한 여행’이란 게 과연 있을까? 의심도 가졌을 거다. 아무리 위험지역을 여행해도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내 책임이기에 그 누구도 원망할 마음도 없었다. 지금 이 시국에 여행을 떠난다는 건, 정말 오바가 아니라 죽음을 각오한 여행이라는 말이 너무도 적합하다. 그나마 안전한 한국을 버리고 하루에도 몇 만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이야기하며 마스크를 쓰지 않는 나라가 비일비재하다. 나야 그나마 어리다고 쳐서 코로나에 걸려도 죽지 않는다 해도 내 부모는 그 역병과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상적으로 영위하던 여행에서 손을 떼고 살아간 지 1년 반이 되었다. 조만간, 빠른 시일에, 여행을 가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아무도 자신할 수 없고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다. 꿈을 다시금 되새기며 코로나가 일상으로 자리 잡고, 백신의 효능도 불투명하고 더 이상 아무런 해결 방법도 없을 때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여행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때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여행에 떠날까? 아마, 나는 떠날 것 같다.

그 꿈은 참으로 이상한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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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지금 현실이라는 점에서 더 공포스럽네요. 만약 죽는다면 저는 편안한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행은 집에 돌아와야 완성되는 것이니...

맞아요. 현실이 공포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지도요. 저는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지면 길에서 여행을 하다 객사를 하는 걸 택하게요...:)

꿈 이야기 자살 바이러스라는 관점에서 버드박스가 떠올랐어요. 풀어가는 방식과 결론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만 말이죠.
죽음을 각오한 여행, 탐험, 그 누구의 선동도 아닌 자신의 책임 무겁고 진중한 말들이 와닿아요.

꿈을 꾸고 나서 산발적으로 든 생각들을 나열한 거라 이야기가 만족스럽게 써지진 않았지만,,,,그래도 맨날 써야지하고 미루다 정리를 해서 후련해요! 엉성한 이야기지만 말들이 와닿았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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