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순간] 천국으로 가는 계단
나는 계속된 흐린 날씨에 좀 지쳐 있었어. 3월의 유럽이 그렇게 추울 줄 몰랐거든. 바로 직전의 기항지였던 몰타에서는 있는 옷, 없는 옷 다 꿰어입고 다녔지만 쉬지않고 비가 온 탓에 정말 온종일 오돌오돌 떨면서 다녔지 뭐야. 그러니 이탈리아 칼리아리에 도착했을 때 새파란 하늘이 얼마나 반가웠는지는 뭐 말 안해도 알겠지?
이 사진은 맹세코 조금의 보정도 하지 않은 원본 사진이야. 익살스러운 트위티와 친구들이 그려진 크루즈와 새파란 하늘과도 참 잘 어울리더라고. 나는 크루즈 세계일주를 하면서 내가 탄 배 외에도 온갖 다양한 크루즈와 그 크루즈가 담긴 풍경을 늘상 봤는데 볼 때마다 낯설고 생경하고 볼 때마다 감탄이 나왔어.
이렇게 좋은 날에는 밖에 나가는 것도 좋지만 크루즈에 남아 졸부 놀이를 해도 좋았을 것 같아.
"나를 위해 크루즈를 통째로 빌렸어, 물론 수영장도."
라고 스스로에게 생색을 잔뜩 내며 한가한 배를 전세 내서 쓰는 기분도 짜릿할 것 같거든.
이 날의 기분은 맑음, 메인 색은 파랑.
크루즈에서 하선하고 나가서 바로 마주한 모습. 하양과 파랑이 교차된 과속방지턱 닮은 길은 하늘로 이어져 있는 것만 같았어. 그 끝에는 천국이 닿아 있을까? 문득 트루먼쇼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어. 길고 높은 하늘색 계단을 올라가
" Good morning! Good afternoon! Good evening!"
쇼를 끝마치는 정중한 인사를 하고 유유히 사라졌던 그 장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