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순간] 레로 가는 길

in #stimcity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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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늘 날아다니는 꿈을 꿨어요. 하늘을 향해 높이 점프를 하고 마치 자전거를 타듯 발을 동동 구르면 어디든 갈 수 있었어요. 발을 동동 구르는 내가 사람이었는지 동물이었는지 새였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늘 가뿐히 커다란 나무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어요. 높은 곳을 가면 머리가 아찔하고 몸을 못가누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들 하던데, 저는 늘 높은 곳에서 안정감을 느꼈어요. 점 처럼 보이는 건물과 자연을 바라보며 그 점 보다 작은, 아무것도 아닌 나를 깨닫는 게 좋았거든요. 그래서 언젠가는 꼭 우주에 가고 싶기도 해요. 가장 높고 먼 곳에서 내가 평생을 다녀도 전부 닿을 수 없는 지구가 먼지 처럼 보이는 사실은 정말 경이롭지 않나요?

그래서 였을까. 저는 머리가 크고 내가 번 돈으로 여행할 수 있을 때 하늘과 가까운 곳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어요. 티베트, 네팔, 파키스탄 훈자, 인도 라다크. 조금만 손을 내밀면 하늘이 잡힐 곳 같은 곳들이죠. 점선 따라 찢은 종이 같은 산자락과 그 아래서 슬금슬금 올라오는 작은 핏덩이를 품은 대지. 연두색 물이 들은 퍼런 하늘, 나른한 음악과 아른하고 아스라한 연기 속 하얀 기름이 덕지덕지 낀 산들. 히말라야의 척추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며 난 산머리를 발끝으로 통통 튀기며 뛰어다니는 듯 했어요. 숨은 가빠오고 겹쳐입은 옷은 갑갑하고 식은 땀은 나는데 심장은 두근거렸어요.

그리고 마침내 착륙하자 눈물이 왈칵 터져나오대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 다시 못 갈 줄 알았던 레를 다시 갔어요.

-2008년 12월, 레 2번 째 방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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