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34. 위선과의 전쟁

in #stimcity10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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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최초의 플리마켓?


"난동은요 무슨.. 가벼운 해프닝이죠. 떠들썩한 잔치에 말이 무성한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무반응에 찬 바람만 부는 것보다야 행복한 일이죠. 행사는 잘 마무리가 되었어요. 아마도 한국 블록체인 역사상 최초의 플리마켓이 아니었을까요? 잡지에서 취재도 나오고, 기사도 실리고, 지나가던 다른 암호화폐 관계자들이 우연히 보고 깜짝 놀라서,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냐고 문의도 하고 그랬죠. 별거 아닌데, 그냥 하면 되는 건데, 다들 온라인 밖으로 생각이 넘어서지 못하고 있어 그런 게 아닌가 싶었어요. 아, 물론 스팀잇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죠. 콘텐츠 플랫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다양한 자원들, 그리고 당장 거래가 가능한 재화가 있어 시도될 수 있었던 결제 모듈들, 이게 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콘텐츠 플랫폼으로 창작자들을 모아들일 수 있었던 스팀잇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겠어요? 창작자들이 포스팅으로만 보여주던 자신의 창작물들을 직접 들고나와, 유저들과 암호화폐로 그 자리에서 직접 거래를 해보는 일은 신기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그렇다고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아직 <미니스트릿> 비슷한 행사조차 보질 못했으니까요. 그건 어디까지나 라총수의 능력이었죠. 라총수의 경험과 수고가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무리 없이 행사를 마무리할 수 있게 했죠."



라총수는 오프라인 활동 경험이 풍부합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티벳독립운동을 위한 영화제를 직접 개최한 경험도 있고, 인도 라다크 산골에서 카페를 3년 동안 운영한 적도 있습니다. 이미 다양한 플리마켓에 참여하고 개최해 본 경험도 있고, 페스티발 현장에서 직접 제작한 티셔츠 팔아보기도 하는 등 크고 작은 오프라인 경험을 가지고 있었어요. 한 달이란 짧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라총수의 풍부한 경험은 어떤 일을 먼저 하고, 어떤 부분은 빠르게 포기해야 할지, 교통정리가 잘 되어 있었던 것이죠.


"물론 행사에 대한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행사 전체적으로는, 참여하는 셀러와 스탭들이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했고, 행사일 이전에 런칭하기로 했던 조총수의 MOITTO 시스템은 완성이 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었어요. 대신 그와 논쟁을 벌였던 예비증인의 결제 시스템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굴욕적인(?) 해프닝도 있었죠. 라총수의 준비과정에서도, F가 지적했듯이 완벽한 행사 준비였다고는 볼 수 없었어요. 빈 곳과 부족했던 부분들이 있었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마법사도 준비과정에서 여러 차례 건의를 했었죠. 그런데 그걸 라총수가 몰라서 준비를 하지 못했던 게 아니더라구요. 그건 라총수의 기본적인 업무 진행 스타일, 그리고 자신이 나름 그려나가려고 하는 [스팀시티]에 대한 그림, 짧은 준비 기간 동안 최대한의 결과를 내기 위한 최적화된 선택들이 모두 어우러져 있었던 거예요. 게다가 일주일 전까지 예산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니, 그러한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았을 때 행사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자평하지 않을 수 없었죠."



행사의 준비과정에서 이런저런 불만과 지적사항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수면 아래 단톡방에서 더더욱 시끄럽고 요란하게 쏟아졌던 듯합니다. 그러나 이틀간의 행사에는 많은 창작자와 셀러들이 참여했고, 흔하지 않은 오프라인 행사였던 터라, 빗속을 뚫고 참여한 많은 방문객들이 있었습니다. 충분한 홍보 기간을 가지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비교적 성황리에 이루어진 행사였습니다. 물론 수익적인 면에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이윤을 바라고 시작한 행사는 아니었어요. 나름 수익 방안을 강구하고 있기는 했으나, 총수가 추대되고 한 달 만에 치러지는 첫번째 행사이니, 이건 일종의 상견례와 상호 간의 면접의 의미가 더 컸죠. 수익을 바라고 참여했던 셀러들은 실망했을 수도 있지만, 보통의 플리마켓처럼 참가비나 수수료 같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으니, 여건이 되는 상황에서 즐겁게 이틀간의 행사를 참여하면 되는 거였어요. 게다가 플리마켓이 [스팀시티]의 메인 프로젝트는 아니니까요. 단체의 운동회나 야유회같이, 이제 시작한 [스팀시티]를 홍보하고 함께 할 사람들을 서로 알아보는 가벼운 과정이었죠."



적자를 보았다고 아쉬워하는 셀러들이 있었답니다. 적자라면 그날 판매를 위해 준비했던 비용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했다는 얘기겠죠. 그런 것들까지 주최 측에서 보장해 줄 수는 없지만, 잘 팔려서 이윤을 남겼더라면 모두가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플리마켓은 [스팀시티]의 메인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언제가 구축하게 될 [스팀시티 스트릿]의 청사진을 미리 상상해 보려고 시도한 일종의 모델하우스 같은 행사인 거죠.



실패한 행사의 책임자를 스카웃 한다고?


"아무튼 행사가 잘 끝나고, 다음 행사는 좀 더 준비해서 몇 개월뒤 부산에서 열 계획이었어요. 그때에는 숙박과 플리마켓이 결합된 모델을 시도해 보려고 했죠. 일명 '라라의 민박집'. 그렇게 국내 몇 개 도시를 투어하고 내년에는 해외도시로까지 투어를 이어갈 계획이었어요. 일종의 팝업스토어 개념으로, 현지의 스티미언들과 협력하여 지속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할 생각이었죠. 그래서 첫 도시는 일본의 도쿄, 오사카, 교토 등으로 후보지까지 물색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 난동이.."



행사가 무사히 끝나자, 역량을 알아본 이들이 라총수에게 스카웃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들은 가게를 내주겠다. 매거진을 함께 만들어 보자, 자신들과 플리마켓을 진행해 보면 어떻겠냐며 라총수를 집요하게 설득했습니다.


"하하. 그게 행사가 끝나자마자, 연락이 오고 찾아오고 난리가 아니었다더군요. 좋은 일이죠. 기쁜 일입니다. 그만큼 행사가 성공적이었다는 얘기니까요. 그럴 만도 해요. 준비과정부터, 끝나고 후기까지, <미니스트릿> 관련 포스팅으로 한동안 스팀잇이 도배가 되다시피 했으니까요. 견제하고 있던 이들이라면 당혹스러웠을 테고, 인재가 탐이 나는 사람들은 유혹적인 제안을 할 만도 한 일이죠. 그런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F는 그것이 우려스러웠나봐요. 마법사에게 인재를 빼앗기지 않겠냐며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이번 행사는 실패한 행사이고 참가자들에게 큰 실례를 범했다는 거예요. 라총수는 역량이 부족하고 이를 [스팀시티]의 다른 멤버들이 함께 메꿨어야 하는 데 노력이 부족했다며 질타를 하더군요. 격렬한 대화가 오가고, 우리는 만나서 얘기하자며 대화를 일단락지었어요. 그런데..."



F와 같이 행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중에 일부는 스팀잇에서 활동을 하던 사람도 아닌 일반 참가자들이었고, 또 그중에 일부는 행사에 와보지도 않고, 단톡방에서 떠돌아다니는 말만 듣고 일방적인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이없게시리 정작 스카웃하겠다며 라총수를 불러다 놓구선, <미니스트릿>은 적자를 보았으니 실패한 행사라며 비난을 해대는 사람들도 있었다더군요. 라총수 입장이 뭐가 되겠어요? 자신이 모든 권한과 책임을 지고 진행한 행사를 실패했다고 대놓고 비난을 해대면서, 자기랑 일하자고 스카웃 제안을 하는 건 도대체 뭐죠? 아, 알만해요. 그들은 라총수가 이 행사의 전권과 모든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을 테니까요. 거기서 그들의 헛발질이 시작된 거예요. 모든 권한과 모든 책임을 갖는 역중앙화의 개념 말이에요."



그건 말도 안 된다고, 그런 조직은 있을 수도 없다고, 아예 생각의 한편을 닫아놓고 덤벼들었습니다. 이렇게 큰 행사를 라총수 혼자 진행했을 리 없다. 다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다. 그들이 라총수를 바지총수로 앞에 내놓고, 뒤에서 자기들 뜻대로 조종하고 있는 거다. 그러다 당신 큰일 나니까 어서 빠져나와라, 우리랑 '같이' 하자, 가게도 내주고 플리마켓도 열어주겠다. 멍청하게 속고 있지 말고 빨리 악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라.. 심지어 이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던 F조차 '함께'를 들먹이며, 그렇게 총수의 일방적 판단과 결정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실패한 프로젝트라며 비판과 비난의 말들을 쏟아 내었습니다.


"함께라니요. 그럴리가요. 모든 권한과 책임은 총수에게 있고 분권은 총수의 자율적 선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것은 처음부터 천명되어 있었고, [스팀시티]는 그러한 역중앙화의 깃발을 들겠다고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그게 옳건 그르건, 그대들이 인정을 하건 말건, 그것에 동의한 사람이 총수로 추대된 것이고, 그래서 총수는 모든 권한과 모든 책임을 행사했죠. 그건 마법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마법사 역시 행사에 대한 아무런 결정권도 갖고 있지 못했어요. 심지어 F가 주장한 완벽한 행사를 위한 매뉴얼 항목 중 많은 것들은, 이미 마법사가 행사 준비과정에서 건의했던 내용들이었어요. 그러나 라총수는 단호했어요. '왜 제가 그렇게 해야 하죠?'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단호하게 거절했죠. 마법사는 우려되는 마음이 있더라도 거기까지였어요. 그건 총수의 몫이고 총수의 권한이니까요. 마법사는 그저 제안하고 건의할 뿐이에요. 선택은 총수의 몫이고, 그것에 있어서는 누구의 제안과 건의도 마찬가지예요. 그 경계를 파악해 가는 행사였고, 마법사도 총수의 경계를 파악하려다가 뜨끔하고 뒤로 물러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물론 그것은 조총수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그러나 그러자고 시작한 역중앙화의 프로젝트예요. 어쩌면 독재자를 추대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그러나 분명히 말했듯이, 무책임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에서 누군가는 깃발을 들어야 하고, 반복되는 독재의 상처에도 결국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리더의 품성이 핵심인 것을 확인해보고자 시작한 실험인 거예요. 리더의 품성, 구성원의 성숙한 인식, 이 모든 것이 화합을 이룰 때에야 비로소 '함께', '같이'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 총수가 독재를 하건 말건, 독단적이건 말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커뮤니티에 호응을 받지 못하면 혼자 쑈하다 말 게 될 테니까요. 그건 결과로 증명되는 것이고 우리는 결과를 지켜보면 되는 것이죠. 그러나 어렵죠. 우리는 민주화, 민주화하다, 책임은 없고 혼란 속에서 도리어 파시즘을 그리워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거쳐 오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역중앙화라는 것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에요."



마법사도 행사 준비과정에서 이런저런 건의와 제안을 했더랬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라총수의 반응은 매우 단호했습니다. 라총수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이 명확하고, 이제까지 해온 자신만의 업무 스타일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제안을 받고 받지 않고는, 전적으로 총수의 권한입니다. 게다가 일종의 상견례 자리인 <미니스트릿인서울>에서는, 일단 총수의 스타일이 최대한 드러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 것입니다. 그것에 호응하고 반응하는 이들과 이후의 과정을 '함께'해 나가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미니스트릿>은 모두에게 서로서로를 확인하는 면접장이었던 겁니다.



'함께'라는 비겁한 거짓말



사람들은 '함께'라는 단어를 붙이며 교묘한 권력을 행사하려고 듭니다. 나누어진 책임, 분배된 책임, 분할된 책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책임은 전적으로 책임자의 몫이고, 책임의 영역에 대한 구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는 대의제를 선택하며, 대의를 가장한 대표자들이 어떻게 구성원을 기만하고 전체를 우롱하는지 수도 없이 겪어왔습니다. 그들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구축하고는, 절대적인 법과 원칙이 아닌 윤리와 관습의 규범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전체를 좌지우지하고 여론을 들었다 놓았다 합니다. 우매한 대중들은 원칙과 규정이 아닌, 호불호와 취향에 따라 이놈한테 놀아났다 저놈한테 놀아났다 하며, 자신이 가진 권한들을 차례차례 건네주고 위임합니다. 마침내 편 가르기의 진영이 짜여지고 나면, 그들은 반복되는 패싸움을 거듭하면서 우리의 인생을 청백전 운동회로 만들어 버립니다. 흑백 세상의 진영논리는 다양성의 자리를 열어주지 않고, 우리는 '넌 누구 편이야?' 소리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동물농장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노예의 도덕'을 맹종하는 우매한 대중들은 합리와 불합리의 문제를 선악의 문제로 바꾸어, 착한 놈과 나쁜 놈의 세상으로 나누어 버립니다.



노예의 도덕으로 무장한 고래전쟁 역시 어떠한 타협도, 발전적인 소통도 없었습니다. 그저 편으로 갈라서서는 맹목적인 비난과 비판을 주고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책임은 누가 집니까? 대의자들이 집니까? 고래들이 책임을 집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만 그러한 패싸움을 이용해 부를 얻고 명성을 확보할 뿐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불리하면 접속을 끊고 사라지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런 커뮤니티에는 누구도 자신의 삶을 연결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한 발을 빼고는, 여차하면 도망칠 준비를 한 채로, 유리한 국면만을 활용할 뿐입니다. 그래 왔습니다. 그렇게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를 외치던 F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불리해지자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도망치려는 F를 붙들고 라총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들어간다'는 말의 의미를 명확히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만들어간다'는 것이 [스팀시티]의 컨셉을 정하거나, 어떤 프로젝트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면 그것은 저와 조총수님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밑그림을 먼저 그리고(그것이 아주 어설픈 수준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함께 그림을 완성해보자고 제안을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함께 하겠죠. 이 그림이 밉다고 생각하면 같이 색칠할 마음이 들지 않을 거고요.

말씀하신 '만들어간다'는 것이 제가 그린 밑그림에 함께 색칠하고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라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그리는 밑그림이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같이 색칠하고 싶지 않겠죠. 저는 제가 그린 밑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함께 완성해보자고 붓을 든 사람들이 이런 색깔이 이쁘겠다, 여기에 이거 그리면 더 이쁘겠다 말하면 낼름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하지만 애초에 제가 그린 밑그림이 밉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면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 거고요. 저는 <미니 스트릿>에 와주신 모든 분들이 제가 그린 그림이 도대체 뭘 그리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력적'으로 보여서 와주셨다고 생각해요.

워낙 급하게 대충 그린 그림이라 가까이서 보니 생각한 것보다 덜 예쁘네 하신 분들 많겠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제가 그릴 그림이 여전히 궁금하고, 또 뚝딱 대충 그려서 밑그림을 보여줬는데 또 그게 예뻐 보이면 와서 같이 색칠하는 겁니다. 지금 보니 이 그림은 내 스타일 아니네, 하면 같이 못 그리는 거구요

_ [스팀시티 어쩌면 라스트] 라과장이 라총수 되는 날



여차하면 발을 빼려는 무책임한 인간들일수록 사람들에게 '함께 만들어가자'며 꼬십니다. 그러나 그 '함께'에는 등급이 있고 서열이 있으며, 수고하는 일은 감언이설에 속은 노예들의 몫입니다. 그들은 알량한 수고비 몇 푼을 던져 주며 감히 노예들의 만드는 작업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노예는 가진 것이 없고, 있는 것마저 대의자들에게 줘버렸는데요. 왜 줘버렸나요? 가진 자들의 그것에 내 것을 주면, 나도 가진 자 행세를 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함께'라고 말하며 십시일반 모으면, 십이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습니다. 그러나 누구의 백지장입니까? 그대의 백지장입니까? 아닙니다. 위임한 권력이 내려준 백지장은 나의 것이,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라며, '함께'라며 손을 잡고 추켜세우지만, 경계를 짓고 넘어오면 밟습니다. '감히 어디를..' 눈을 부라리며 떠밀어 버립니다. 그때 가서 후회해 봐야 늦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과정을 수도없이 겪어오며 눈치가 생겨났습니다. 누군가 깃발을 들면, 일단 발 하나를 슬쩍 들이밀고, 다음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빠르게 뒤통수를 치고 사라질 틈을 노립니다. 발을 걸친 동안은 어쨌든 나도 백지장 연대의 일원일 테니까요. 이익의 극대화는 빨리 치고 빠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가면을 쓰고, 신분 노출을 꺼린 채로 눈치를 봅니다. 익명성의 방벽 뒤에서 응원한다, 지지한다, 목소리만 높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여기저기 걸치고 돌아다녀 봐야, 다 대의자들의 백지장 1, 2, 3일 뿐입니다. 그런 일에 습관이 들면 자신의 일에 책임지는 방법을 잊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세상 모든 일에 가면을 쓰고 접선만 하다,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되는 겁니다.


"라총수는 매우 단호했어요. 일체의 비겁한 간섭도 용납하지 않았고, 호시탐탐 '함께'를 가장한 위장된 도움은 모두 거절했죠. 덕분에 초대되지 않고 제안되지 않은 거짓 호의는 설 자리가 없었어요. <미니스트릿>의 전 과정에서. 그래서 난동이 일어난 거예요. 라총수가 자기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까요."



위선과의 전쟁



부러우면 지는 겁니다. 실패한 행사라며 실패한 행사의 책임자를 스카웃하려는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찬사로 도배되는 피드에 불같은 질투심이 일었을까요? 핵심 인재를 빼내 [스팀시티]를 무산시킬 생각이었을까요? 뻔뻔한 마법사의 허황된 시도에 일격을 가하고 싶었던 걸까요? 아니면 자신들이 낄 자리를 열어주지 않는 [스팀시티]에, 한자리만 달라고 애원하느라 그랬을까요? 그러나 라총수는 그러한 위장된 '함께'에 속아 넘어갈 어리숙한 초짜가 아닙니다. 그는 마치 이 상황을 예언이라도 한듯, <미니스트릿>의 시작을 알리는 포스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지내는 내내 날 미치게 했던 그 클라이언트와의 기 싸움은 한국에 와서도 진행되었고, 결국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의 실수를 단 하나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이미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합의한 내용조차도 모두 잊고, 일방적으로 모든 과정을 초기화해버린 상태랄까. 대신 내가 기 싸움 중에 드러낸 허점을(사실 의도적으로 쓴 수였지만) 빌미 삼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는 '넌 에이전시에 소속된 것도 아니고 프리랜서이니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로 웃기는 소리를 해댔다. 늘 사람 좋은 말투와 톤으로 일관하며, 내 생활 패턴과 작업 방식을 이해한다고, 멋지네, 부럽네, 굳이 할 필요 없는 말까지 해가며, 세상에서 제일 관대하고 유연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양 굴었던 그는, 지독한 위선자였다.

결사 항전을 외치며 며칠 울며불며 이를 갈았지만, 결국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아주 쿨한 사람처럼 마지막 이메일에 '행운을 빈다'고까지 썼다. 진심으로 행운을 빌었을 리가! 도대체 그 말을 왜 썼을까! 그에게서 무엇을 기대한 것은 아니고, 그냥 자기만족이랄까. 그래, 저주를 퍼붓는 것보다는 행운을 빌어주는 것이 멋져 보일 거야...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처음부터 끝까지 그 위선자가 그렸던 빅픽처라면 너무 속상해지니까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친구들도, 엄마도 다 빅픽처였다고 말하지만... 끝까지 싸우지 않은 것을 시간이 지나면 후회하겠지. 그래서 그가 어떻게 사업을 지속해나가는지 끝까지 지켜보려고 한다. 그때는 그 위선자가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도록 결코 그냥 두지는 않을 거다.

_ 단짠단짠하는 글 / 라총수


"라총수는 총수에 추대되기 이전, 또 다른 위선자들과 싸우느라 경찰서에까지 가야 했어요. 그들은 라총수의 진정성 있는 행동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거짓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런 자들을 상대하는 일은 매우 피곤합니다. 위선을 빨리 드러내 버리도록 하지 않으면 매우 결정적인 순간에 등에 칼을 꽂거든요. 그건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사람들과 연대하려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죠. 잔치에는 파리가 끼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커뮤니티의 시작지점에 중요한 과정 중 하나는 위장된 호의와 제안들을 드러내는 것이에요. 시작되는 커뮤니티에는 순수한 열정이 가득하고, 그 에너지를 노리는 사기꾼들과 위선자들의 표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죠. 그러한 이들을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미니스트릿>의 또 다른 목표이기도 했어요."



그것은 의도되어 있었습니다. [스팀시티]를 흔들고 견제하려는 수면 아래의 움직임들은 이미 마법사에게 포착되어 있었고, 카드를 확보한 마법사에게 <미니스트릿>은 진짜와 가짜, 진심과 위선을 투명하게 까볼 수 있는 절호의 챤스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상대로 움직였고 위선자들은 예상대로 반응했어요.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마법사는 어디까지나 [스팀시티]의 마법사이며, 총수는 [스팀시티]의 총수이지, 경계도 멤버도 불확실한 스팀잇, kr의 지나가는 구경꾼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그들이 무심코 자신을 드러내 버리는 바람에 얻게 된 여러 카드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죠. 카드를 활용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음.. 아무 카드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에요. 카드는 가지고 있을 때 더욱 강력하니까요."



마법사는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총수와 스탭들을 스카웃해가려고 한다는 F의 염려스러운(?) 충고에도, 뭐가 급했는지 행사가 끝난 다음 날 바로 라총수를 찾아간 고래들의 접근에도, 행사는 적자를 보았으니 실패한 거라며 애써 폄하하려드는 평가에도, [스팀시티] 멤버들은 정신병자들이 아니냐며 공격하던 때는 언제고, 행사가 매우 잘 끝났다며 칭찬을 늘어놓는 180도 돌변한 속 보이는 말들에도.. 아무 대응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더 많아지는 것일 테니까요.


"그런데 정작 모두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직관이었어요. 직관은 마법사조차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스팀시티]와 위선자들을 뒤흔들어 놓았어요. 그건 정말 생각지 못한 일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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