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32. 취향의 공동체를 위하여

in #stimcity10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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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공동체



마법사는 스팀잇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것은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스템, 스팀잇의 기능적 가능성을 바탕으로 펼쳐나갈 수 있는 다양한 모델 중 하나입니다. 그 밖에도 상상할 수 있는 더 많은 가능성이 있고, 그 수많은 가능성들 중에서 [스티시티]가 무엇을 채택하고, 어떤 갈래의 노선을 선택할지는 모두 추대된 총수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조직, 하나의 단체가 그 모든 걸 품어 안고, 모두 시도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네드도 스팀재단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스팀잇은 뼈대만 세워놓았고 모두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이 뼈대를 활용하여 건물을 세우고 꾸미고 완성하는 일은, 스팀잇에 존재하는 각각의 커뮤니티들이 해나가야 할 미션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대된 총수의 색깔은, 앞으로 [스팀시티]가 어떻게 세워져 갈지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에요. 물론 [스팀시티]의 총수는 추대된 2명만이 아닐 겁니다. 계속 새로운 시도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사람들이 세워져 가겠지만, 일단은 [스팀시티]의 뼈대를 세우는 총수들의 색깔이 초기 [스팀시티]의 정체성을 규정하게 되겠지요. 물론 총수들 역시 스팀잇의 그 수많은 가능성들 중, 마법사가 제시한 가능성에 동조해서 총수로 지원을 한 것이니, [스팀시티]의 색깔은 이미 방향을 띄기 시작했다고 봐야 하겠죠. 그러나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갖는 총수가 그리는 그림은, 그것으로 [스팀시티]의 방향성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첫번째 그림으로서 <미니스트릿>은 매우 중요한 행사가 되었어요."



사회가 다원화되고 개인이 강조되면서, 취향은 마치 성씨처럼 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관계를 선택하고 무리를 분별합니다. 세계관과 성격, 이념과 소득수준, 학력과 경력 등등 사람을 규정짓는 많은 잣대들이 있지만, 다원화 사회의 인류는 점점 취향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선택하고 분류해가고 있습니다. 취향은 곧 이 시대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이 안 통해도 같이 살 수는 있는데, 취향이 다르면 점점 같이 살기가 어려워지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어요. 취향은 세계관과 이념, 경력과 성격을 모두 포괄하는 냄새? 체취? 같은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곤충들이 마치 자신들만의 페로몬으로 커뮤니케이션하듯, 인류의 페로몬이 취향의 형태로 분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죠.

콘텐츠 플랫폼으로서의 스팀잇에서, 취향은 더더욱 중요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어요. 생존의 문제와 결부된 것들은 취향이든 아니든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지만, 문화와 정서를 반영하는 콘텐츠 분야에서는 취향이라는 기준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죠. 근대를 거쳐오며 가장 강력했던 기준이 이념과 세계관이었다면, 다원주의 사회로 접어든 현대의 인류에게 취향은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거든요. 그러므로 스팀잇에서 취향을 확인하는 일은 매우 결정적이고 선별적인 과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



현대인의 소비구조는 점점 취향에 따른 소비를 늘려 가고 있습니다.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위한 자기계발에 따른 비용을 제외하면, 남는 잉여는 대부분 취향 산업에 사용되고 있다고 봐도 좋을듯 합니다. 게다가 비혼과 비출산의 경향성이 더욱 강화되면서 취향 자본의 비중은 점점 더 절대적이 되어가고 있고, 심지어 취향을 포기할 수 없어 결혼과 출산 같은 전통적 생애주기를 포기하는 일도 보편적인 사회현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취향, 그것은 단순 여가와 취미 활동의 영역을 넘어 의식주와 인간의 기본 생활양식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는 절대 기준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꿈이란 것도 일종의 취향의 반영인 것이죠. 하고 싶은 일이란 결국 취향의 영역에서 시작되는 것일 테니까요.



그러므로 취향 자본이야말로 현대 자본의 근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은 타겟층의 취향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가가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취향을 선도하는 셀럽, 인플루언서들은 마치 중앙은행의 총재처럼 막강한 권한을 확보해 가고 있고, 취향을 풀어내지 못하는 제품은 기능과 상관없이 도태되고 있습니다. 특히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의 취향은 그것이 전부라고 해도 될 만큼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현대인들은 누군가의 취향을 쫓아 소비하고 자신의 취향을 개발해 갑니다. 싫은 걸 억지로 할 수는 없으니, 누군가를 모방하고 있다 해도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취향이란 것은 얼마나 다양합니까? 70억 인구라면 70억 개의 취향이 존재하고, 그것이 만나고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커뮤니티가 생겨납니다. 우리는 이 신흥 공동체의 신도들을 팔로워라고 부르고, 그것을 선도하는 이들을 셀럽이라 인싸라 부르며 따릅니다. 그러므로 콘텐츠 플랫폼의 성패는 얼마나 다양한 취향을 포함하고 그것들이 무리 짓게 할 수 있는가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콘텐츠 플랫폼 스팀잇의 커뮤니티는 취향 공동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팀잇의 커뮤니티는 여타의 블록체인 커뮤니티보다 스펙트럼이 더 다양해야 합니다. 여타의 블록체인 커뮤니티들이 탈중앙화의 이념적 기준과 새로운 투자수단으로서의 경제적 기준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면, 스팀잇의 커뮤니티에는 콘텐츠, 즉 문화와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취향적 기준이 더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기준 하나가 더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앙화와 탈중앙화, 투자와 투기, PoS와 DPoS 등의 기능적이고 정치적인 양립적 기준들이, 수없이 다양한 취향과 만나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색깔들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지는 거예요. 탈중앙과 중앙, 투자자와 창작자 정도의 몇 가지 입장으로도 첨예할 수 있는데, 여기에 취향까지 더해지면서 수많은 경우의 수가 등장하는 거죠. 정치적 입장이 비슷해도 문화적 취향은 다르고, 문화적 취향에서도 스타일, 소통의 방식 등등 세부적인 사항들로 하위분류가 수도 없이 늘어나는 거예요. 한마디로 편먹기가 쉽지 않은 거죠. 이것은 비슷한 거 같은데 저것은 다르고,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취향이 결부되면서 불편해지고.. 그러니 개인으로서는 끝도 없이 부딪히고, 고립되고, 갈등하게 되는 거예요. 나와 모든 것이 100% 일치하는 집단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교집합을 찾아볼 뿐이죠. 색깔을 정립하는 것은 그래서 매운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나 색깔을 포기하면 스팀잇은 흥미를 잃게 되죠. 그것은 강점이면서 약점이기도 해요."



취향과 공동체는 어울리는 말이 아닐지 모릅니다. 취향은 개인적이고 공동체는 집단을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혼자서만 취향을 즐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필요로하고 그 안에서 상호작용하며 취향을 확장하거나 깊어지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취향은 공동체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을 갈구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취향과 맞는 공동체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취향이 존재하고, 폐쇄적인 사회일수록 타인의 취향은 공격거리,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취향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생각 없이 '그게 뭐야~ 개취 한 번 더럽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릅쓰고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면, 우리는 친구, 동지, 심지어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 어디에도 나의 취향을 공유하는 1%는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들은 어쩌면 평생과 영원을 약속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취향은 좀처럼 변하지를 않으니까요.



총수의 취향



[스팀시티]는 안개에 뒤덮인 스팀잇 대륙에서, 취향 공동체를 찾아가는 그 어딘가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총수에게 모든 권한과 책임을 위임했습니다. (DPoS의 시스템이니까) 총수의 취향을 기준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가자고 선언한 것이죠. 누가 붓도 들기 전에, 각자의 세계관과 취향으로 대립하다보면 갈등의 늪에 빠져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을테니 말이죠. 일단 누구든 자신의 색을 드러내고, 그 색에 동조하는 이들을 조금씩 늘려 가보자는 것이 [스팀시티]의 취향 공동체를 향한 스텝이었습니다.


"특히 초기의 커뮤니티는 책임자의 색이 먼저 충분히 드러나도록 시간과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해요. 이 사람 저 사람 마구 붓질을 해대면 난장판이 되고 말 테니까요. 그래서 <미니스트릿>은 철저하게 라총수의 첫번째 그림이어야 했어요. 그게 무엇이든 말이죠."



어쩌면 매우 긴장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일단 총수가 추대되는 것만으로도 커뮤니티의 색깔은 정해지는 일이지만, 총수가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그림을 펼쳐나가지 못하고 주위에 휘둘리면, 권한을 행사하지도 못하면서 책임만 지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죠. 총수가 자신의 그림을 자신감 있게 그려나가면 나갈수록,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색깔 역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전에는 온갖 구경꾼들이 다 몰려들겠지만, 색깔이 드러나고 나면 그것에 마음이 동한 사람들만이 남을 테니까요.


"그것은 일종의 심판대에 오르는 일과 같아요. 세계관과 이념 같은 것은 계속 토론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도 있지만, 취향이란 것은 호불호 그 자체라,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므로 일단 정해지고 나면 좀처럼 궤도를 수정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어디 맛집이라고 찾아갔다가, 그날 먹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다시 가지 않게 되는 것처럼 말예요. [스팀시티]의 앞으로의 경로가 딱! 정해지는 순간이 되는 거죠."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시도가 될 수 있습니다. 취향의 색깔은 한 번 정해지면 좀처럼 바꾸기가 어려우니까요. 그러나 마법사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취향 공동체의 리더는 이념 공동체의 리더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생각은 바뀔 수 있지만, 취향은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것은 이해와 상호작용의 바깥에 존재합니다. 그것은 오로지 동류의 것, 어우러지는 것 너머의 확장을 거부합니다. 이념적 상호작용이 설득과 침투, 심지어 전복까지도 가능하다면, 취향적 상호작용은 각자의 취향의 경계선에서 매우 방어적으로 이루어지는, 이해와 존중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취향의 공동체에는 설득과 토론이 아닌 이해와 존중만이 가능합니다. 취향을 설득할 수는 없어요. 그건 토론한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에요. 상대의 취향을 이해하고 그 취향을 존중하는 것으로만 상호작용할 수 있죠. 서로의 거리를 지키며 우리는 동류의 취향을 찾아다닐 뿐이에요. 취향의 총체적 집합인 콘텐츠 플랫폼이라면 그래서 그 부분부터 정리하고 시작되었어야 해요. 취향에 따른 분류 말이죠. 그러나 스팀잇은 너무 개방된 채로 분류가 불가능하게 세팅되어 있어요. 골조와 뼈대뿐이니, 그 안에 카테고리와 세부분류를 해나가는 것은 구성원들의 몫이 된 거죠. 커뮤니티스니 SMT니 하는 넥스트 버전이 나오면 좋아질 거라 기다리고는 있었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스팀잇의 개발 속도에 모두들 지쳐가는 타이밍이었어요. 그래서 [스팀시티]는 먼저 선언하고 경계를 지은 거예요. 총수를 추대하고, 총수의 색깔을 기준으로 취향의 공동체를 만들겠다! 그러니 다른 이들도 끼리끼리 취향에 따라 모여봐라. 누군가 먼저 편을 먹으면 다른 이들도 자연스럽게 편을 먹게 될 테니까요. 그 편이란 게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입장이 아니니까, 취향에 따른 편먹기이니까.. 그건 욕먹을 일이 아니잖아요? 아니 점심시간에 검은 짜장 대신 빨간 짬뽕 선택했다고 공산주의자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아.. 근대 이노무 이념사회는 취향 따라 모이자는데 이념의 잣대를 마구 들이대더군요. 그들만의 리그라며.. 짬뽕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짬뽕 시식회 하는 걸 그들만의 리그라고 하는 건 무슨 얘기죠? 모든 식사에는 반드시 짜장과 짬뽕이 절반씩 포함되어야 하는 건가요? 당최 무슨 얘긴지.."



이제 개인주의를 시작한 한국 사회에서 취향 공동체는 매우 낯선 개념입니다. 그게 뭔지 잘 모릅니다. 그간 우리는 얼마나 '짜장으로 통일!' 사회를 살아왔는지, 통일되지 않은 취향이 매우 불편합니다. 누군가 '난 짬뽕!' 소리를 내면, 모두들 째려보며 '메뉴를 통일해야 빨리 나오지' 압박을 줍니다. 취향 따라 주문하고 좀 천천히 먹어도 괜찮은데 아직도 뭔가 급합니다.



콘텐츠 플랫폼 스팀잇에서는 모두가 개성에 따라 무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아니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다채롭고 풍성한 콘텐츠가 모여듭니다. 그러나 카테고리는 kr-art, writing, craft, photo 등등 기능적으로만 분류되어 있습니다. 아니 스팀잇 시스템이 처음부터 그렇게 분류한 것도 아닌데, 우리의 사고방식은 아직 기능에 따라 분류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kr-강남스타일, 센티멘탈릭, 선동적, 열정과 혼돈 사이 어딘가.. 취향에 따라 분류되어야 할 그것이 기능적으로만 접근되어 있으니 정치적 논리에 휘말리게 됩니다. 물론 스팀잇은 피드를 통해 취향을 드러내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취향을 포스팅과 함께 리스팀을 통해 드러내고, 피드를 일정한 톤으로 가꿈으로써, 어떤 문장으로도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각자의 취향과 스타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취향입니다. 개인을 넘어 취향의 공동체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묶음으로, 커뮤니티로 드러내는 일을 시도한 것이 [스팀시티]입니다.


"[스팀시티]는 취향의 공동체예요. 어떤 이념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취향은 매우 분명하죠. 그것의 기준은 총수입니다. 총수의 취향과 그 취향에 따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이들이 모여 [스팀시티]를 구성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배타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선택적이죠. 총수의 취향이 드러나면 그의 호불호에 따라 취향은 선택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 부분 있어 총수의 권한은 절대적입니다. 어떤 쟝르라는 것이 창시자, 창시그룹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쟝르의 색깔과 정체성이 최초로 그것을 드러낸 이로부터 규정되기 때문이에요. 확장되고 변주가 될 수 있지만, 확장과 변주도 기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총수의 취향이 곧 [스팀시티]의 취향이고 그 기준에 따라 커뮤니티가 규정되는 거예요. 그러나 이것은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매우 위험한 시도이기도 해요. 아직 한국 사회는 취향이라는 기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것은 접해보지 못한 무엇, 익숙하지 않은 무엇이라, 세계관, 이념 등의 논리적 기준과 매우 자주 혼동돼요. 빨갱이로 오해를 살까 봐 함부로 짬뽕도 먹지 못하는 사회를 살아왔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스팀시티]의 첫 취향 발표회였던 <미니스트릿>은 이념공격을 받아야 했어요. 덕분에 누가 이념주의자인지 골라낼 수 있게 되었지만.. 이념과 윤리를 들먹이지만 따지고 들면 실은 그들의 취향이 아니었을 뿐이죠."



[스팀시티]는 드레스코드를 지정하지 않은 채로 <미니스트릿>파티를 열었습니다. 첫번째 행사였으니 말이죠. 대신 라총수는 매우 분명하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었습니다. [스팀시티]의 드레스 코드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행사였고, 이에 대해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비난하였습니다. 덕분에 [스팀시티]의 취향과 소통할 수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운동회에서 국제스포츠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던 이념주의자들은, 아이들 손에 들린 풍선이 날아가듯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미니스트릿>의 드레스코드는 라총수였어요. 라총수가 어떤 그림을 그릴지에 모두가 초미의 관심을 두고 있었죠. 며느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 마복림 할머니의 레시피처럼,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스팀시티] 총수의 첫 레시피를 경험하는 순간이었으니까요. 그것은 마법사뿐만 아니라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한이에요. 그런데 일부 이념주의자들은 그럴 리가 없다며, 저건 마법사와 다른 관계자들이 뒤에서 조종하는 거라며 빨갱이 사냥을 해댔죠. 뭐랩니까? 라총수 맘대로 하는 행산데.. 그리고 이념주의자들이 취향의 세계를 알 리가 없죠. 그들은 '함께', '같이'를 외치며 취향을 희석하려 들죠. 취향에 '함께', '같이'가 어디 있나요? 나만의, 고유의 취향이 있는 것이죠. 우리의 취향은 있을지언정, 모두의 취향은 존재할 수 없는 거예요. 마복림 할머니의 레시피가 맛있는 거지, 100인의 레시피를 모두 섞어 만든 잡탕이 맛있을 리 없잖아요. 그런데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자들은 마복림 할머니 레시피에 설탕 한 스푼 넣고, 모두의 레시피, 함께 만든 레시피로 포장하려 들죠. 무임승차의 나쁜 버릇을 못 버리는 거예요. 그런 이들이 자꾸 연대와 연합 어쩌고 하며, 남의 밥그릇에 숟가락 얹는 일을 저질러요. 마법사는 제일 먼저, 이것부터 차단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숟가락 얹으려는 인간들이 누군인가 가려내지 않으면 맛을 내기 어렵거든요. 자꾸 빨갱이 사냥을 해댈 테니 말이죠. 그들을 먼저 배제하려면 누가 숟가락을 얹으려 하는지 알아야 했죠. 덕분에 <미니스트릿>은 매우 성공적인 행사가 되었습니다. 다들 정체를 명확하게 드러내 주더군요."



그래서 라총수의 데뷔작인 <미니스트릿>은 철저하게 라총수의 취향을 따라 치러져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권한 만큼 책임 또한 절대적이어야겠죠. 그것을 마법사는 매우 강력하게 요구하였습니다.


취향 자본을 획득한 공간은,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힘들게 다리 품을 팔아가면서까지..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서면서까지.. 취향을 경험하기 위해 많은 댓가를 지불하는 것은, 그만큼 꼭 맞는 취향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팀시티]는 취향 자본을 획득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문 닫지 않고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는, 마법사가 군대 갈 때 머리 잘랐던 그 이발소일지라도.. 주인장과 동네 사람들, 단골손님의 취향이 그대로 하모니를 이루어 편안해진 그곳의 향취처럼.. 오래된 옛 마을 어귀 느티나무, 구멍가게처럼 살아 숨 쉬고 있다면.. 우리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겁니다. 그 공간의 호흡에 우리의 추억과 기억, 정서와 경험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공간을.. 사람들은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런 정서를.. 사람들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이루고, 또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찾아옵니다. 끝끝내 찾아냅니다. 그것이, 그 오랜 시간과 흔적의 향취가 그대로 담긴 역사가,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남도록.. [스팀시티]는 취향 자본을 획득해야 합니다.

_ [스팀시티] 취향 자본을 획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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