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23. 총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in #stimcity11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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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익! 깃발은 못 들겠지만 현실 세계의 노하우 몇 개 정도는 풀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라총수의 첫 일성이었습니다. <스팀방송국의 총수님을 찾습니다.>포스팅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리 찜꽁 해놓겠다며 댓글을 달고는, 마법사가 '와우~ 총수 지원이신 거죠?!' 묻자, 당당하게 현실 세계의 노하우를 풀어 놓겠다며 호기롭게 손을 든 것이죠.


"그때 라총수는 인도에 있었대요. 무심코 댓글을 달았는지 모르지만 그게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댓글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요? 지원 기간은 일주일이었고, 그 기간 동안 댓글을 달지 않았다면 라총수는 총수가 아니었겠죠. 게다가 총수미팅을 하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은 고난의 행군이었더군요."



라총수는 총수지원 미팅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것은 아닙니다. 예정된 귀국 스케줄이었고 그 기간이 기가 막히게 총수지원 기간과 일치했던 겁니다. 한 번 나가면 몇 개월씩 외국 생활을 이어가는 노마드 여행자로 산지가 꽤나 오랜 세월, 심지어 한국에 있는 시간보다 해외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다는 그녀가 한국에, 마침, 그때에 들어오게 된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을 찾아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장애물과 방해 동작이 우리의 관심을 흐트러뜨리고 무너뜨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에 이끌리는 사람은 결국은 그곳에 도달하게 됩니다. 운명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그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도달했는가? 연결되었는가? 장애물의 크기와 방해 동작의 엄청남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도착한 자가 운명의 그 사람일 테니까요. 라총수의 귀국길은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멀미

이번 멀미는 좀 심했지 싶다. 그것은 지옥이었다. 멀미 지옥. 꿀렁이는 버스 안에서 온몸으로 뉴턴의 운동 법칙을 증명해내며 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식은땀이 나면서 손발이 차가워졌다. 손에 피가 돌지 않는지 손톱이 하얬다. 두 번이나 토했다. 앞 좌석 등받이에 고개를 파묻고 연신 가쁘게 숨을 내뱉고 있는 내게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비닐봉지를 건넸다.

오착륙

버스는 내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얼마쯤 더 달려서야 마침내 멈춰 섰다. 사실 5분 정도 걸으면 되는 거리였지만 나는 그 상황을 절망으로 받아들였다. 새벽 다섯 시, 쓰레기로 뒤덮인 거리에 여전히 자고 있는 개들이 얼핏 보아도 열 마리는 보였다. 엉망진창 보도블록 위를 휘청거리며 걷느라 내 오른쪽 허벅지가 자꾸만 캐리어에 가 부딪혔다. 그 자리에 피멍이 드는 줄도 모르고 연신 캐리어를 들었다 내렸다 했다.

굶주림

겨우 침대에 몸을 뉘었다. 침대마저 꿀렁거렸다.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가 몇 시간 자지 못하고 일어났다. 델리에서 들러야 할 곳들이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 대충 씻고 나가 식당에 가서 국수를 시켰다. 세 젓가락 먹었나. 간밤의 멀미 기운이 다시 몰려오는 것 같아 결국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물을 마셔도 토할 것 같아서 입술만 좀 적셨다. 계산하고 나가려는데 식당 주인이 왜 음식을 하나도 먹지 않았냐고 물었다. 밤새 멀미를 했어요. 저 어제 다람살라에서 왔거든요.

불타는 미로

델리의 낮 기온은 42도였다. 역시나 보란 듯이 길을 잃었다. 나름 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검색해 찾아두었던 가게가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 가게를 기준으로 다음 가게를 찾아갈 셈이었는데, 기준이 흔들리자 내 머릿속 지도와 동선도 함께 엉망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핸드폰 배터리가 별로 없어서 지도를 검색할 수도 없었다. 제기랄. 급히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알려주면 친구가 가는 길을 검색해서 보내주는 방식으로 다시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겨우겨우 모든 미션을 수행했다. 서브웨이에 가서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물 한 병 사 먹지 않고 두어 시간을 불볕더위 속에 쏘다닌 후, 나는 탈수 상태였으나 깨닫지 못했다. 무슨 정신인지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다. 어서 호텔에 가서 짐을 들고 공항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친구가 부탁한 술을 샀다. 그것이 문제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인도에 열 번도 넘게 와놓고선 그걸 몰랐다.

_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밖에서 맞고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일러바치는 마음으로 쓰는 글



멀미와 오착륙, 굶주림 속을 헤매다, 불타는 미로를 겨우겨우 빠져나온 라총수에게는 두 명의 사나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관용의 사나이. 델리 메트로의 군인은 술병을 가지고 지하철을 탈 수 없다며 택시를 타고 가라고 그녀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만 봐달라고 애원하는 그녀에게, 군인은 다음엔 절대 안 된다며 관용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공항철도의 군인은 불관용의 사나이였습니다. 눈물까지 흘리며 애원하는 그녀를 단호하게 거부하였습니다. 관용의 사나이와 불관용의 사나이가 위치를 바꾸었다면 조금 덜 힘든 하루였을까요? 아뿔싸 근대 이게 웬일입니까? 비행기 출발 시각을 착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오늘은 비자 만료일, 비행기는 밤 11시, 놓치면 까딱없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놓치면 불법체류 1일 차가 되고 마는 것이다. 벌금 내면 별일 없이 출국할 수 있지만, 다음에 다시 인도 비자를 받을 때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두 개씩 뛰어 날아올랐다. 나는 내가 그렇게 힘이 센 줄 모르고 살았다. 사실 체력이 아닌 정신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늘 하던 생각인데 인간들은 자신이 가진 정신력의 크기를 가늠조차 하지 못한 채 화석으로 만들어버리며 사는 중인 것은 아닐까. 체크인 카운터에 줄이 너무 길어서 제가 이러다 비행기를 못 탑니다. 굽신굽신. 해서 겨우 체크인. 제가 이러다 비행기를 놓쳐요. 굽신굽신. 해서 엑스레이도, 출국 심사도, 통과. 그 와중에 공항에서 친구에게 부탁받은 물건들을 3분 만에 사고, 15분 전에 탑승. 엉덩이 붙이자마자 기절했다.

_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밖에서 맞고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일러바치는 마음으로 쓰는 글


"그녀의 운명의 시간도 체크인 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던 거죠. 그날 비행기를 놓쳤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불행은 연속하고, 선택을 망설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요. 벌금 내고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망가진 마음은 어디로 향하게 되었을까요? 지나가다 우연처럼 시작한 스팀잇이었는지 모릅니다. 수많은 포스팅 중에 우연히 본 마법사의 포스팅이었을지도 몰라요. 댓글 하나를 안 달았더라면, 비자 만료일이 넉넉했더라면, 어쩜 라총수는 총수가 아닐 수도 있었겠죠. 그리고 [스팀시티]의 새로운 가족들은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멀미와 굶주림, 미로 속을 통과하여 만난 관용과 불관용의 사나이, 그리고 만료 기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체류 허가 시한, 그녀는 모든 장애물을 뚫고 만신창이가 되어서라도 한국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녀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악몽

비행기는 홍콩에 한 시간 반 동안 섰다. 뒤에 앉아있던 인도 여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을 만나러 아이와 함께 가는 길이다, 여기 그의 연락처와 주소가 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그의 번호로 전화 한 통화만 할 수 있을까 등등. 대충 대답하고는 다시 기절했다. 꿈속에서도 나는 비행기 안에 있었는데, 비행기 날개가 부러져 추락을 앞두고 있었다. 그 꿈은 너무도 생생해서 그 짧은 순간 '아, 나는 죽는구나!' 하며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잠에서 깨어났다. 착륙의 순간 단 몇 초 꾸어낸 꿈이다. 착륙하는 소리에 비행기 날개가 부러지는 꿈을 만들어냈나 보다.

웰컴 투 코리아

먼저 그녀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둘을 통화시켰다. 빠르게 걸어서 자동입국심사대를 통과하고 짐 찾고 나가고 싶었지만, 그녀가 기나긴 줄을 기다려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때까지 20분가량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새를 못 참고 그녀의 남편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제 아내가 한국에 처음입니다. B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가족 상봉을 잠시 지켜보고, 부부와 번갈아 악수한 뒤 비바람이 몰아치는 공항 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간 민소매와 쓰레빠 차림의 나.

인도에서의 마지막 1박 2일은 내게 지옥이었지만 인도 가족이 함께 보낼 한국에서의 두 달은 내내 행복하고 따뜻하기를.

_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밖에서 맞고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일러바치는 마음으로 쓰는 글



[스팀시티]가 떠오르려 하고 있습니다. 총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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