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07. 거위의 배를 갈랐다 아무것도 없었다

in #stimcity11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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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용 SNS



스팀잇을 창작 플랫폼으로 쓰기에는.. 쩝, 뭐랄까? 한참 부족합니다. 일단 UI부터가 그렇고, 카테고리 기능도 없고, sorting은커녕 검색도 잘 안 되고. 글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장기간 연재하기에는 아주 허접하기 짝이 없습니다. 물론 운영진들은 개발 중이라고, 나아질 거라고 하면서, 급하면 니들이 써드파티 앱을 만들든, 댑을 만들든, 알아서 하라고 냅둔 채로 기타만 치며 놀고 있었습니다.



창작자들은 그 환호만큼 마음이 급했던 터라 불만이 쌓여가고, 그 불만을 받아안을 마땅한 대표자가 없으니 엄한 고래 등을 터뜨려 댔지요. 새우 아니 플랑크톤의 고래 등 털기가 가능했던 곳이 이 스팀잇이기도 했습니다.


"한 100일 해 보니 알겠더라구요. 여긴 글 쓸 곳이 못 되는 구나. 그냥 딱 투자자들의 채굴용 SNS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구나. 그냥 스팀 좀 사고, 채굴도 해야 하니 짧은 글이나 농담, 아니면 코인 투자정보나 올리면서 친목질용 포스팅 좀 하다 보면 코인도 쌓이고 시세도 오르고.. 뭐 그런 기대로 가볍게 들락날락하면 되는 거였어요. 생각의 가치를 존중한다며 혁신적 창작 플랫폼으로 성장시킬듯 했지만 실상은 채굴용 SNS였을 뿐이죠.

그렇다고 스팀잇의 창작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이 착각이었던 것은 아니에요. 창작자가 기존 중앙화 플랫폼의 큐레이션 독점 없이 직접 독자와 팬을 모으고, 완성된 작품이 아니어도 경제적 가치를 발생시킬 수 있는 최초의 시스템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게다가 모두가 글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읽기만 해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구현한 보상 시스템은, 콘텐츠 산업의 혁명과 같은 일이었어요. 그러니 얼마나 흥분되고 기대가 넘쳤겠습니까? 엄청나게 빠른 피드백과 열정이 넘치는 반응들, 그리고 돈! 돈이라니요. 글 써서 출판을 한 것도 아닌데 돈이 벌린다니요. 심지어 읽기만 해도 돈이 벌린다니!! 창작자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 되어 줄 수 있었어요. 스팀잇의 시스템이라면 말이죠.

하지만 모두가 처음이고 모두가 미숙했던 거죠. 다 함께 황금알을 낳아 줄 거위의 배를 갈라버렸어요. 창작자는 성급했고 투자자는 멀리 내다 보지 못했죠. 그러나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결국 커뮤니티가 핵심이었는데 창작자와 투자자 간의 커뮤니티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거에요. 안.타.깝.게.도. 대화 자체가 안되고 있었으니까. 이건 시간과 노력이 엄청 드는 일인데 시스템이 그걸 해결해 줄 거라 기대했던 거죠. 그런데 이 시스템의 설계자들조차 그런 준비가 안되어 있었어요. 아, 그 뭐냐 댄이랑 네드랑 싸우고 헤어진 얘기를 들어보니, 이거 수장들, 설계자들부터 커뮤니티가 뭔지도 모르고 있구나 싶었죠."



처음부터 스팀잇은 채굴용 SNS 정도로만 개발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상의 창작 플랫폼으로의 발전은 가능성과 막연한 계획만 있었지, 빠르게 쏟아져 들어오는 창작자들의 니즈를 맞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미비한 시스템과 과장된 마케팅, 성급한 기대가 맞물려, 유저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고, 갈등을 풀어내 줄 리더십이나 중재자가 없는 상황에서, 고래 대 플랑크톤, 투자자 대 창작자의 구도로 양분된 갈등은 좀처럼 해결점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탈중앙화의 굴레와 한계


"현실정치의 잇점이라면 욕할 대상이 되어준다는 건대, 왕도 원래 그런 거잖아요. 기근과 가뭄, 홍수가 무슨 왕의 탓이라고 대신 죄를 뒤집어 쓰고 욕을 먹고 목숨을 내놓기도 하잖아요. 그것은 중앙화의 순기능이죠. 분노의 방향을 한 곳으로 모으고 희생제물로 자신을 내어주는, 그대신 권력을 몰아주는 게 중앙화의 합의이고 전제인 거죠. 탈중앙화를 내세운 블록체인/암호화폐의 생태계는 이 분노와 갈등을 시스템이 원천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러려면 도대체 얼마나 발전해야 할까요? 구성원의 감정의 방향과 불만의 농도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매커니즘을 기술로 구현할 수 있을까요?

커뮤니티,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당연히 온갖 말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것을 중재할 수 있는 기능이 스팀잇에는 보이지 않았어요. 중앙화된 소통의 장이 없으니 저마다 제각각 떠들고, 합의구조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누가 나서서 총대를 멜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물론 스팀잇에는 20명의 증인이 있고 증인이 그런 논의의 중재자 역할을 하거나 대표성을 띨 수도 있겠지만, 스팀잇 전체의 문제가 아닌 kr이라는 하위 커뮤니티의 리더십은 누가 나선다고, 누구를 지지한다고 공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공론의 장에도 사회자가 필요합니다. 심판할 수는 없어도 양쪽의 의견, 갈라진 의견들을 모으고 서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주재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초기의 스팀잇과 스티미언들은 그것조차 중앙화의 잔재로 취급하는 모양새였습니다. 아니 '탈중앙화'라는 이념에 갖혀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자기검열을 해대는 통에 누가 쉽게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어디까지가 '중앙'이고 어디서부터가 '탈중앙'인지 모두가 고민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일단 kr 커뮤니티의 범위부터가 애매모호한 거예요. 의견을 모으려면 대상이 먼저 정해져야 하잖아요. 커뮤니티의 경계와 회원의 자격이 정해져야 하는데, 한글을 쓰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어떤 회의, 또는 국적이 한국인 사람들의 커뮤니티 뭐 이런 걸 확정지을 수가 없는 거죠. 포털의 카페나 밴드처럼 처음부터 커뮤니티의 구조를 확정 짓고 시작할 수 있으면 모르지만, 스팀잇은 오히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처럼 확장된 하나의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모양새였으니, 스팀잇의 20명의 증인들 외에 누가 대표성을 가질 수도 없는 일이었죠.

탈중앙화? 그게 뭘까요? 그게 꼭 필요할까요? 문제는 중앙화와 탈중앙화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게 아닐까요? 군주제는 독재고 대의제는 민주적일까요? 아버지 태종의 독재로 군주가 될 수 있었던 세종대왕과 민주 선거를 통해 당선된 히틀러는요? 하지만 인류는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제도를 발전시키고 정착 시켜 왔죠. 지금은 중앙화의 한계에 봉착하여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는 시점이구요. 어렵지만 가야 할 길이에요. 아무리 역사를 뒤로 돌리려 한다 해도 유색인종이 다시 노예가 될 수 없고, 여자와 아이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시대로 돌아가게 되지는 않아요. 우주는 앞으로 나아갈 뿐이죠. 이제는 중앙화의 한계를 넘어서야 할 때이구요.

그러므로 중앙화의 문화에 젖은 사람들이 탈중앙화로 급속하게 쏟아져 들어올 때, 거버넌스와 컨센서스를 어떻게 구성하고 도출해 내야 하는지는 그때에도, 앞으로도, 블록체인/암호화폐의 미래사회를 열려고 하는 모두에게 중요한 숙제로 남아있어요."



누가 어떤 제안을 하고, 어떤 무리가 이에 동의한다 해도, 그것에 속해 있지 않거나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런 움직임이 중앙화된 모습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폐쇄적 보팅풀이 아니면서 그룹화할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안만 난무하고 누가 나서서 실행할 수도 없는,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투자한 돈, 손해 볼 수 없는 고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셀봇과 보팅봇을 돌리고, 이를 봐줄 수 없는 플랑크톤들은 홀로, 소수로, 고래전쟁에 나섰다 처절하게 상처받고 사라져 버리곤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거위의 배를 갈랐더니


"본질적으로 스팀잇이 투자자들에게 유리한 플랫폼으로 세팅되어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 했어야 해요. 지금의 결과를 보면 결국 모두가 실패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투자자거든요. 그들은 지금도 그때랑 별 다를게 없어 보여요. 시세만 하락했을 뿐. 단지 투자의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거죠. 물론 손해는 엄청 봤겠지만 말이죠.

생각의 가치를 존중하는 창작 플랫폼? 글쎄요. 투자자들에게는 그저 채굴의 방법이었을 뿐이에요. 글쓰기, 포스팅은 말이죠. 좋은 글, 가치가 있는 글 논쟁은 어차피 무의미한 것이었어요. 투자란 대박이 나기도 하고 쪽박을 차기도 하는 것이니, '너희들이 좋은 글에 보팅을 하지 않으면 망하고 말 거야.' 하는 협박은 통하지 않는 거예요. 투자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책임이니까요. 자기가 판단해서 미래가치가 보이면 투자를 하는 거고, 미래가치가 보이지 않으면 발을 빼든지 이자놀이나 하는 거죠. 그걸 누가 강제할 수 있겠어요. '야 이거 앞으로 잘 될 거니까. 자기 글에 셀봇 하지 말고 내 글에, 우리 글에 투자해. 그러다 보면 엄청난 실력자들이 막 몰려올 거야.' 라고 말해봐야 '그럼 그때 가서 투자할게.' 하면 그만이죠. 미래가치를 보여 주어야 할 책임은 작가들에게 있었던 거에요. 고래들을 설득할 책임 말이죠. 물론 요즘 위험을 무릅쓰고 미래가치에 투자한다는 벤처투자자들처럼 리스크를 안고 투자하는 이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아니 고래들은 이미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투자하고 있는 이들이에요. 암호화폐 자체가 리스크 덩어리이니까요. 그러니 셀봇은 일종의 리스크 헷지 수단인거죠. 그들이 콘텐츠 산업의 부흥과 혁신, 창작자들의 정당한 보상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의무는 없는 거죠. 뭐 그래 주면 좋지만..

창작자들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투자자들과 소통해 가면서 커뮤니티를 확정지어 갈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너무들 빨리 포기하고 아니꼽고 더럽다며 빠져나가 버렸어요. 마법사는 그게 결국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고, 시스템 자체가 성립하려면 먼저 투자가 전제되어야 하니, 지나치게 투자자를 몰아붙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누가 고래를 욕한다냐?] 하기도 했죠.

현실을 인정하자면 어떤 산업이든 투자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인천 앞바다에 뜬 사이다, 떠 마실 양동이는 돈 주고 사야 하니까요. 좋은 글, 창작자의 정당한 보상의 원천은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죠. 이미 시장에서 검증받은 콘텐츠라면 굳이 스팀잇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좋은 글, 가치 있는 글의 가치는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하고 이미 유통되고 있죠. 다만, 중앙화된 플랫폼의 위세에 빛을 보지 못하던 콘텐츠들, 그리고 아직은 아니지만, 곧 멋진 콘텐츠를 만들어 낼 신인 창작자들을 먼저 선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소비가 아닌 투자인 것이죠. 그렇게 발생한 부가가치는 창작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거구요.

투자자들 역시 자선사업 하는 게 아니니 시스템이 성장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좋은 글, 실력을 갖춘 창작자들이 플랫폼으로 유입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연스레 독자들도 늘어날 테니까요. 그러려면 투자자들의 과감한 투자와 분배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러니 스팀잇은 투자 플랫폼으로서 역할 할 때 그 기능이 극대화될 수 있는 것인데, 스팀잇의 창작자들은 보팅을 소비로, 콘텐츠에 대한 평가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내 글을 봤으니 돈을 내라!' '아니 내 글이 저 달랑 사진 한 장 올려 논 포스팅보다 못하다고?!' 반대로 투자들은 미래가치에 투자할 마음이 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코인 사서 시세가 올라 팔면 그만이지, 얼마나 걸릴 줄 알고 창작자에게 투자해.'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었던 거죠.

플랑크톤 창작자들에게는 고래 투자자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고 있는 것 같았겠지만 고래들은 이 거위가 황금알을 낳을지, 미운 오리알을 낳을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이 거위가 낳은 알이 오리가 될지, 백조가 될지 기다릴 수만은 없는 거에요. 차라리 고기라도 팔아서 본전을 건지는 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요. 시간을 가지고 증명해야 해요. 미운 오리는 자신이 백조임을 알았어도 남들이 그것을 알아주려면, 충실히 성장하여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해요. 플랑크톤 작가들에게도 고래 투자자들에게도 모두 시간이 필요했어요.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상호작용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논의는 겉돌았고 플랑크톤 창작자들의 주장은 고래들에게 완장질로 비쳤습니다. 내 돈 내고 시스템이 허락하는 대로 하는 데 어디서 간섭이냐고 말이죠. 그런 시선이 불편한 고래들은 투자를 접고 떠났고, 남은 고래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자기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고래들 간에도 이견이 갈리며 서로 세를 형성하여 부딪히는 일도 잦았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이런 논의가 컨센서스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각자의 입장에서만 무한루프를 돌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모두의 손해였습니다. 거위의 배를 갈랐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그 과정에서 배를 갈린 창작자들은 상처를 입고 자존심이 상해서 커뮤니티를 떠나갔고, 코인의 시세가 하락하자 그런 논쟁과 갈등조차 사라지고 모두들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남은 이들은 남은 고기라도 팔아 손해를 만회하려는 안타까운 코린이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탈중앙화의 추종자들 그리고 아직 미션을 완수하지 못한 마법사..


"시작해서 한 100일쯤 지켜보니 알겠더군요. 아.. 안 되겠구나 스팀잇은 채굴용 SNS를 넘어설 수 없겠구나. 한계를 느끼게 되었죠. 더이상 기대는 금물, 그냥 글이나 쓰고 동전이나 줍자. 그러다 닭 한 마리 사먹을 수 있으면 땡큐고. 뭐 그랬어요. 마법사는 실행도 빠르고 포기도 빠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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