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06. 고래전쟁, 모두가 맞고 모두 다 틀렸다

in #stimcity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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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루프에 빠진 고래전쟁


"보통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기 마련인데 스팀잇의 고래전쟁은 고래 대 새우 구도가 매우 분명했어요. 새우들, 그러니까 불합리함을 느낀 뉴비 플랑크톤들과 피라미 작가들이 끊임없이 공격을 감행했고 고래들은 자신들의 투자금이 달려있는 문제이니 아랑곳하지 않았죠."



공격의 맥락은 반복적이었습니다. 스팀잇의 플랑크톤과 피라미들은 고래들에게, 생태계를 위해 셀봇을 금지해라. 고래들끼리 또는 고래와 고래 측근 세력 간의 보팅풀을 만들지 말아라. 고래들은 직접 포스팅을 하기보다 뉴비와 작가들을 위한 큐레이션에 매진해라. 편향된 큐레이션으로 분위기를 조장하지 말아라. 좋은 글에 보팅이 안 찍히고, 점 하나, 사진 하나 올려놓고 셀봇으로 보상을 받아 가면 누가 글을 쓰겠느냐 등등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이에 대응한 고래들 역시 누구 돈으로 보상을 받아 가는 데 감 놔라 배 놔라냐. 손해 보면 니들이 보전해 줄 거냐? 내가 내 돈 넣고 이자수익 얻어가는데 왜 간섭이냐. 수익이 나야 사람들이 들어오고 투자도 할 거 아니냐. 내가 내 주변 사람들 설득해서 투자하게 만들었는데 셀봇이다 보팅풀이다 공격해 대면 누가 투자를 하겠느냐. 보팅만 홀랑홀랑 따먹고 현금으로 바꿔버리는 작가 나부랭이들이 투자자들한테 무슨 도움이 되냐? 그리고 좋은 글은 누가 정하냐? 포스팅의 우열이 어디 있냐? 사진 한 장도 예술이다. 블라블라~ 고래 대 플랑크톤의 전쟁이 무한루프를 돌고 있었습니다.


"당시 스팀잇에서는 집단의식의 흐름이 워낙 빨라서 하루가 일주일 같고 일주일이 한 달 같았는데, 그 짧은 시간에도 고래전쟁이 수도 없이 반복되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글이 계속 쌓이고 어디 공지나 메인 게시판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니, 똑같은 얘기를 이 사람이 하고, 같은 문제를 저 사람 요 사람이 제기하게 되는 거죠. 본인들은 처음 느낀 문제의식이지만 새로 진입하는 사람마다 문제를 제기하니 같은 논쟁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었던 거지. 스팀잇에 진작부터 들어와 있던 올드비들은 '또 시작이네~'하며 한탄하기도 했죠."



구조적인 문제였습니다. 고래의 보상 독점에 관한 문제는 스팀잇의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자 본질입니다. 경제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 자본과 투자를 끌어들여야 하니 투자자의 이익을 보장해야 하고, 동시에 생각의 가치를 보상하겠다는 스팀잇의 마케팅 플랜으로는 작가들, 글 쓰는 유저들을 늘려가야 했죠.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일인데 분배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갈등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성장이냐 분배냐


"성장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작가들이 유입되어 독자와 작가가 많아지면 자연히 투자자도 많아지고, 스팀의 경제적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대전제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러면 이 시스템이 궤도에 제대로 오르기까지 분배, 그러니까 채굴 보상을 어떻게 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서로 합의된 바가 없었던 것이죠.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아니 이 사람 저 사람 무수한 제안이 쏟아졌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래와 플랑크톤 창작 간의 입장을 명확하게 조율할 수는 없었어요. 누군가는 양보하거나 서로 양해를 해야 대화가 진전될 텐데 그게 쉽지가 않았죠. 일단 커뮤니티라고 하면 경계를 한정 짓거나 회원 기준을 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kr 커뮤니티라고 한글을 사용하는 이들을 전체로 할 수만도 없는 거예요. 외국인들 중에 한국어로 포스팅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들은 제외시키자고 하자 누가 그런 기준을 정하냐며 항의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뭐 모든 방식이 다 그런 문제들에 봉착했죠. 특히 독특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는 kr 커뮤니티는 오히려 해외 유저들에게 거대한 집단 보팅풀로 인식되기도 했어요. #가즈아 같은 반말 태그는 해외 유저들로부터 집단 다운보팅을 당하기도 했죠."

스팀잇 운영진은 이에 대해 명쾌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았어요. 아니 할 수가 없죠. 이 문제는 스팀잇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경제시스템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이니까요. 성장이냐 분배냐, 경제적 불평등과 균형의 문제 말이죠. 탈중앙화의 이념은 도깨비방망이 같아서 모든 불평의 근거가 되기도 모든 입장의 명분이 되기도 했어요. 스팀잇은 이에 다운보팅 버튼 하나를 던져주고 방관하고 있는 듯 보였어요. 아니 누가 좀 해결해 줘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누구의 말도 틀리지 않았고 누구의 말도 정답은 아니었습니다. 고래들은 자신의 피 같은 돈을 투자했으니 그것의 수익률을 지켜야 하겠고, 창작자들은 시간을 내고 노력을 들여서 포스팅을 하고 활동을 하고 있으니 그것의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겠다 주장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고래가 자신의 수익률을 지키려고 보팅을 한정적으로 몰아서 하거나 자기 포스팅에만 집중한다면 커뮤니티의 확장성이 당연히 떨어지겠죠. 또한 창작자들이 투자자인 고래들을 이기적인 투기꾼으로 매도하며 몰아붙이기만 하면 어떤 투자자가 지속적인 투자를 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이 시스템의 태생적인 문제 그리고 현대 인류가 당면한 성장과 분배의 난제를 스팀잇에 어떤 현자가 똭! 등장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갈등은 더욱 심해졌어요. 고래전쟁의 빈도수가 잦아지면서 양상은 더욱 격화되었고, 상처를 받고 떠나가거나 활동을 그만두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정말 심하게 실망하고 상처를 입은 듯 보였어요. 그만큼 이 시스템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이겠죠. 탄핵의 국면을 지나오면서 우리 사회에 들끓었던 변화와 혁신에 대한 기대감을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스템이 일정 부분 받아 안은 측면이 있어요. 탈중앙화의 플랫폼이라잖아요. 중앙화의 독재에 얼마나 당했어요. 그동안 모두들.. 2017년 말~2018년 초의 암호화폐 열풍은 그러한 정치적 감정이 많이 반영되어 있었단 말이죠. 게다가 유시민 선생류들이 사기라고 비웃는 바람에 그 바램은 더더욱 증폭되었죠. 어떤 세대, 어떤 층위의 사람들에게 말이죠. 그들이 열광하며 모여들었고 그중에 스팀잇은 그 양상을 글로써 포스팅으로써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시판 역할을 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반복되는 고래전쟁은 사람들을 지치게 했죠. '아, 역시 별다를 게 없구나. 여기도 돈 많은 놈들, 힘 있는 놈들 판이구나.' 기대가 컸던 만큼 열정적이었고 그 열정만큼 실망도 컸죠. 격렬하게 싸우다 떠나가는 이들의 모습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던 것도 그런 이유겠죠."



짧은 시간, 갑자기 몰려든 다양한 사람들이 한목소리를 만들어 가는 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 인류의 난제를 풀기 위한 아주 작은 발걸음을 내디뎠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간의 상처와 불신이 그만큼 깊고 컸기 때문일 겁니다. 권력과 황금에 대한 상처와 불신, 오랜 시간 일방적으로 착취당했다고 느껴온 대중의 성급한 기대, 빠른 해결책에 대한 열망. 그러나 물질은 매우 정직합니다. 황금은 인격이 없고 그들은 그저 먼저 선택하는 자들의 손을 들어 줄 뿐인 것입니다.



그것 봐라 하지만



컨센서스는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것은 열망과 기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양보와 이해를 통해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멱살 잡고 싸우더라도 물러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도 대화해 보고 저렇게라도 설득해 보아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밑바닥을 다 드러내 보이더라도 물러설 수 없을 데까지 놓치 않겠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블록체인/암호화폐의 시스템은 가상이고 폰지사기이며 튤립버블일 뿐이라고 놀려 대는 사람들에게, 끝까지 상호작용하여 마침내 인류의 새로운 경제시스템으로 자리를 잡게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기회이자 사명일 것입니다. 아니 떠나지 않은 자들의 운명일 것입니다.


"결국, 이 시점에 와서 보면 떠나간 이들의 예상이 맞았는지도 모릅니다. 작가와 창작자들은 거의 사라지고 일부 고래, 투자자들만 남은 듯한 지금 이 시점, 스팀잇의 바로 이 상황 말이죠. 거 꼴좋다. 내가 뭐랬니. 다 쫓아내고 자기들끼리 보팅만 주고받으며 코인 짤짤이나 하고 있는 고인물이 되었다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고래들의 말 역시 맞았습니다. 누가 이 커뮤니티를 끝까지 지키고 있는가? 투자 없이 남들이 투자한 돈만 쏙쏙 빼먹고 달아나버린 자칭 작가들과 무슨 커뮤니티를 이루겠는가? 코인 시세가 떨어지자마자 다 내빼버리지 않았느냐.. 그러나 결국 모두가 실패한 것입니다. 커뮤니티를 혼자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모두가 압니다. 블록체인/암호화폐의 핵심은 커뮤니티인 것을. 커뮤니티 없는 화폐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뜨고 그걸 떠올릴 양동이가 널렸어도, 정작 그걸 마실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니까요. 코인을 백억, 천억 발행해도 아무도 사용하지 않으면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국가와 종교, 민족으로 화폐공동체를 이룩한 인류가 이제 드디어 취향과 세계관에 따라 통화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려고 합니다. 골드러시를 따라 서부로 서부로 달려들었던 개척자들처럼, 이제 가장 먼저 커뮤니티를, 아니 가장 단단하게 커뮤니티를 만들어 내는 시스템이 미래의 통화 시스템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스팀잇은 창작자들의 공동체, 콘텐츠의 커뮤니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인공지능, 4차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각광받을 분야, BTS,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 시대에 그 미래를 이어나갈 창작자들의 커뮤니티가 막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숙한 우리들은 검을 외부로 들지 않고 내부로 돌려 잡았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난자했습니다. 상처 때문에, 성급함 때문에.. 이제 글 쓰는 사람이 사라지고 창작자들이 사라진 스팀잇에는 돈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조차 점점 쭈그러들고 마침내 뿔뿔이 흩어지기 직전인 것입니다. 마법사가 [小說 스팀시티 영웅전]을 기록하기 시작한 바로 이 시점, 고래전쟁의 말로는 이미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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