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 스팀시티 영웅전] 08. 마법사도 닭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in #stimcitylast year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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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밋을 시작한 지 3개월여가 흘렀는데, 동전을 500개쯤 모은 것 같습니다. 1/3은 스팀파워에 고여있고, 1/3은 스달로 남아있고, 남은 1/3을.. 중년 남자에게 잔인한 달, 5월을 위해 의미 있게 쓰려고,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가져와 보았습니다. 숫자만 이동했을 뿐이긴 하지만요.

어제 매도 시점 시세로 3800원, 160개를 바꾸었으니 60여만원이 되더군요. 요상한 생각이 밀려옵니다.

아.. 저게 1500원인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3800원.. 그 때 천만원을 투자했으면 지금 얼마야? 1억이면.. 10억이면..

이렇게 시작하는 거 아니겠어요? 개미의 삶 말이죠. 그럴 거였으면 마법사 아니구 연금술사 됐겠죠. 이리저리 숫자를 옮기면 뒤에 0이 막 따라붙기도 하고, 막 지워지기도 하고.. 그런 세계가 연금술사들의 세계이겠죠.

그래도 마법사는, 연금술사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거 하면 사막에 처박혀서, 숲속 골짜기에 틀어박혀서, 돈 쓸 새도 없습니다. 피골이 상접하도록 숫자만 붙들고 늘어져야 합니다. 신나는 건 운 좋게 태어난 연금술사들의 자식들, 마누라, 장모님이라지 않습니까? 전 그냥 그대들의 마법사 할랍니다. ㅋㅋ

_ 2018년 4월 26일, [마법사도 닭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 @mmerlin



저 닭을 먹지 말아야 했습니다. 아니 저 닭이나 처먹고 앉아, 가만히 굿이나 보고 즐겼어야 했습니다. 연금술사 할 건 아니었으니까, 고래 투자자의 대열에 낄 생각은 없고 아니 낄 여유도 없고, 지식도 없고, 생각도 없고, 그래 결정적으로 돈, 돈, 투자할 돈이 없으니, 글이나 써서 호황장에 주운 동전 팔아 닭이나 열심히 사 먹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닭 한 마리가 웬 말입니까? 60만원이면 닭이 50마리 아닙니까? 꾸준히 쓰고 돌아다니면 대박은 못 칠지언정 용돈벌이는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언제 글 써서 돈 벌었다고, 내 글의 가치가 어쩌네저쩌네 불평할 계제는 아니었던 거죠.


바꾼 동전으로, 스티미언들의 정언명령에 따라, 1닭을 시켜보았습니다.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을 시키는 바람에 1글 2닭이 되어버렸습니다. 캬~ 맛이 죽입니다. 호시기 자시기 갑질에, 성추행은 용서할 수 없지만.. 두 마리 치킨이라 눈 감아 줍니다. 오늘은 일단 치킨에 집중합니다.

_ 2018년 4월 26일, [마법사도 닭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 @mmerlin



호시기 자식이 문젭니다. 저 닭에다 뭘 넣은 게지. 분명 뭔가 이상한 흥분제를 넣은 겁니다. 그러지 않고야. 뭔 판인지 다 알아챈 마법사가 굳이 [스팀시티] 같은 일을 벌였을 리가 없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어렵습니까? 돈 없이, 빽 없이 뭔가를 시작하는 일 말이죠. 게다가 생판 얼굴도 모르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얼마나 돈키호테 같은 일입니까? 풍차한테 선전포고를 하고 돌격하는 일이죠. 탈중앙화 어쩌고 하며 동전을 사 모으는 일 자체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냥 잼나는 무브먼트 하나 열렸나 보다, 어렵겠지만 이게 잘 되면 모두 좀 더 나은 세상에 살게 될 테니, 나는 옆에서 글이나 쓰고 동전이나 줍자. 딱! 요 모드였는데 말이죠. 저놈의 호시기 치킨을 먹고 나서 눈이 뒤집혔던 겁니다.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그러니까 이렇게 된 겁니다.

F의 팟캐스트 오디오 편집 프로그램에 관한 포스팅을 보고, 제가 아래와 같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마법사 : 오~ 아주 잘 정리해 주셨네요. 언젠가 팟캐 하시는 분들이 많아지시면 스팀방송국을 차려도 좋을 듯합니다.

F : '스팀 방송국' 좋은 아이디어네요? ㅎㅎㅎ 스팀 방송국이 개국할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합니다. 어떤 포지션으로든지요. ㅎㅎㅎ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

마법사 : 말 나온 김에 한 번 해볼까요? 홈피 메인 하나에 모아놓기만 해도..

F : 저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하신다면...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 드립니다. ^^;

마법사 : F님이 총수 하시죠. ㅎㅎ 포스팅도 쭉 해 오셨는데..

F : 겸손도 아니고, 농담도 아니고, 진심으로 저는 깜냥이 안됩니다. 인적성 검사 결과도 그렇고, 제 스스로 생각도 그렇고 저는 "지원" 업무에 적합합니다. 마법사님이 총수 하시죠.

마법사 : ㅎㅎ 잘 알겠습니다. 저도 아시다시피 가이드형 마법사라.. F님과 제가 함께하면 또 뭔가를 일으켜 볼 수 있을 거란 직관이 드네요. 그럼 이렇게 하심 어떨까요? 내일 각자 [스팀방송국의 총수님을 찾습니다]라는 포스팅을 올리고 페이 아웃되는 기간 동안 추천을 받거나 자원을 기달려 보는 거예요. 무엇이든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하는 게 좋으니까요. 그래서 지원자가 나오면, F님이랑 제가 같이 얘기해 봐서 좋다 싶으면 그분을 총수로 모시고 시작해 보는 거죠. 지원자가 없으면.. 또 고민해 보는 거구요.. 어떠세요?

F : 멀린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멀린님의 아이디어에 동의하며 따르겠습니다. [스팀방송국의 총수님을 찾습니다]라는 포스팅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뜻이 있는 분들이 함께한다면 좋겠지요.

마법사 : 암튼 그럼 일단 각자의 생각을 담은 포스팅을 내일 올리도록 하시죠. 혹 이게 유튜브 같은 것의 시작일 지도 모르겠네요. ^^ 휘리릭~

아시겠죠? 그러니까 조금은 즉흥적으로 스팀방송국을 한 번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의견이 모아진 겁니다.

_ 2018년 4월 27일, [스팀방송국] 스팀방송국의 총수님을 찾습니다 / @mmerlin


"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건 선택의 순간이었을 텐데, 선택은 이미 확정되어 있었던 것 같군요. 그즈음에 쓴 포스팅들을 보면 더욱 그래요. 탈중앙화와 혁신, 특히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스팀방송국은 그러한 의식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두드러져 나온 것 같아요. 어느 날 급작스럽게 흥미로만 저지른 일은 아니었단 말이죠."



그즈음에 마법사는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었습니다.


주커버그는 트럼프만도 못하다_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1)

바츠해방전쟁과 스팀전쟁(전반전前反戰)_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2)

바츠해방전쟁과 스팀전쟁(후반전後反戰)_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3)

스머프 마을을 꿈꾸는가?_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4)

윤리적 인간은 잠시 대기!_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5)

모바일의 시대, 5호 담당제는 필요없다_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는 가능한가?(끝)

혁신이란 무엇인가? 혁명이란 무엇인가?



특히 2004년 리니지 게임 속에서 일어났던 <바츠해방전쟁> 사건을 들여다보며,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가능성과 한계를 생각해 보고 있었습니다. 탈중앙화를 외치며 등장한 블록체인 시스템에서 과연 탈중앙화는 가능한가? 정치권력이 빠져나간 자리에 고래들 중심의 금권정치가 이루어지는 현상을 보며 과연 진정한 탈중앙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유토피아일까? 인류에게 바람직한 일일까? 정답이 없는 질문을 해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혁명은 이벤트가 아니야


"생각이 많았지만 그건 그냥 마법사만의 내적 질문으로 두고, 이 탈중앙화의 실험을 찬찬히 지켜보며 검증해 보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필드 플레이어로 직접 나서기보다, 한발 물러서서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에 있는 게 낫겠다 생각한 거죠. 물론 고래가 아니면 뭘 시도해 볼 수도 없는 곳이니, 원한다고 뭔 일을 벌여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런데 그게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운명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 덜커덕 뭔 일을 벌이게 된 겁니다. 그게 그 호시기 치킨 때문이었을까요? 글 써서 돈 벌어보니 눈이 훽가닥 뒤집혔던 걸까요?"



마법사는 일견 실망한 마음이 컸다고 합니다. 100여일 간의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스템 체험은, 이 도전이 답이 없는 이상에 돌진하는 무모한 돈키호테 같다 느끼게 했습니다. 정치권력이 배제된 자리에 금권정치가 대체되었을 뿐, 오히려 무질서와 혼돈이 계속되었고, 커뮤니티가 핵심인 시스템임에도 커뮤니티를 확정지을 수 조차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장돌뱅이, 보따리상과 뜨내기 관광객들이 벌이는 5일장 같은 시스템이 거대 시스템의 물량 공세와 파괴적 힘을 이겨낼 수는 없는 법입니다. 단속을 피해가며 장소를 옮겨 다니는 떴다방이 아니고서야 생존해 내기도 어려운 시스템으로는, 자신들이 말하는 탈중앙화는 요원해 보였습니다.


"혁명은 이벤트가 아닙니다. 그것은 에너지가 오래 쌓이고, 그것을 분출하기 위한 수많은 시도와 시행착오 끝에 완성되는 시스템 그 자체죠. 지금의 자본주의조차 왕권, 절대권력과의 처절한 투쟁과 제국주의 식민지에 대한 무자비한 약탈의 역사를 통해 자신들의 혁명을 완수해 낸 것이니까요. 그런 중앙화 시스템과 싸워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려면 단지 이념과 이상만으로는 아무것도 성취해 낼 수 없어요. 피 흘림이 있어야 하고 희생이 있어야죠. 실체와 실력은 물론이구요.

비트코인의 역사를 보면 역시 그런 과정이 있었죠. 그렇게 10년 만에 두 번째 부흥의 시기를 맞았고, 또 철퇴를 맞은 채 버티기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 시스템이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보통은 망치질 한 방에 사그러들고 말거든요. 10년을 버텨냈다면 20년도 가능하고, 20년을 버텨내면 자리를 잡아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100년이면 대세가 될 수도 있죠. 그리고 그것은 장돌뱅이, 뜨내기가 아닌 혁명적 영웅들의 헌신과 용기로 생명력을 이어가게 되는 거예요. 그들이 파멸의 지점에서 버티고 서서, 다음 영웅에게로 또 다음 영웅에게로, 혁명의 정신을 전수하게 되거든요. 그 사이사이에 혁명의 전사들이 태어나고 자라나죠. 시세 따라 보따리 싸는 인간들은 그저 재미있게 살면 됩니다. 푼돈 벌려고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면 됩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돌아다니고 전사들은 전사들대로 한발짝 한발짝 나아가는 거죠. 그러는 사이 세상은 조금씩 변해가는 거예요. 그런데 스팀잇, 적어도 kr에는 넘쳐나는 장돌뱅이들 말고, 그런 전사들이 있는지, 누가 자발적으로 모습을 현현해 줄지 궁금했어요."



그렇다고 궁금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마법사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으나 스팀잇에서 어떠한 시도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시도와 도전에 인생을 거덜 내 버려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지쳐있었습니다.


"맞아요. 좀 쉬고 싶었어요. 글이나 쓰면서, 사람들 댓글 보며 울고 웃으며 가볍게 지내려구요. 가끔 닭이나 사 먹을 수 있음 다행이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답니다. 나름 재미있었어요. 사람들 댓글 달리는 것도 신기하고, 관심도 반갑고, 마법사의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있고, 대박까지는 아니지만 이따금 마법사의 글이 홈런을 쳐서 대세글에 올라가기도 했죠. '아,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주목인가' 으쓱해지기도 했어요. 그냥 그렇게 지내도 됐어요. 물론 그랬다면 벌써 스팀잇을 그만두었겠지만.."



반응도 좋고 코인으로 닭 사 먹는 재미도 있었지만, 관계든 글이든 쌓이지 못하고 매일매일 휘발되는 시스템을 마법사는 오래 즐기지 못했을 겁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벌어지는 역동은 그만큼 흥미롭고 신기하지만, 관계의 힘줄이 약해서 금방 끊어져 버립니다. 로그아웃하고 나타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면 그간의 노력과 시간은 갑자기 허공으로 사라집니다. 온라인의 관계는 너무나도 쉽게 0과 1로 환원돼 버립니다. 신기루처럼 사라지죠. 그런 연유로 마법사는 여타의 SNS에도 흥미를 붙이지 못했었습니다. 기록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사라진 스티미언들, 쪼그라든 커뮤니티를 보면 그 예상은 역시 맞았습니다. 지난 시간 그렇게 관계를 이어왔더라면 마법사는 많이 허탈했을 겁니다. 물론 그 전에 마법사부터 로그아웃했을 테지만요.


"당시의 스팀잇은 재미만큼 피곤하고 눈살 찌푸려지는 일도 많았으니까요. 적당히 하는 일은 빠르게 소진되고 지치기 마련입니다. 마음을 가볍게 하고 있었지만 좀 회의감도 들기 시작하던 타이밍이었어요. 아, 그런데 누가 '너의 정체는 뭐냐?'고 물은 거에요. 그것도 3명의 스티미언이 동시에! '스팀잇네임챌린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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