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라다크] 창, 그 쌉싸래한 맛에 대하여steemCreated with Sketch.

in #stimcity6 years ago (edited)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라다크가 더 가까워질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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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enzen25

라다크에도 전통 술이 있다. 보리로 빚은 술 창Chang은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더 맑고 시큼하다. 창에 대한 이야기를 티베트에서부터 들어온 터라 라다크에 도착하자마자 창을 찾았다. 가장 먼저 게스트하우스 주인인 귤멧에게 물었다.

“창은 어디서 구할 수 있어요?”

“모스크 앞에 가서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봐.”

“어딘지 모르시는 거예요?”

“아는데 그게 빨라.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어. 그리고 이거 가져가.”

귤멧은 우리에게 페트병을 쥐여줬다. 우리는 각자 하나씩 페트병을 들고 모스크 앞에 가 술을 좋아하게 생긴 남자를 붙잡고 물었다.

“창은 어디서 구할 수 있어요?”

“날 따라와요.”

남자는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늘어선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꺾어 들어갔다.

“여기.”

그는 환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자연스럽게 술을 시켰다. 그가 데려간 곳은 지극히 평범한 라다크의 가정집이었다. 안에는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또래로 보이는 그들의 딸이 있었다. 혼자 위스키를 홀짝이며 고독을 즐기는 옆모습이 쓸쓸한 아저씨도 있었다. 할머니는 우리의 페트병을 받아 하얗고 불투명한 창을 가득 담아왔다. 그리고 페트병의 입구에 짬빠Tsampa(보릿가루)를 뿌리고 버터를 둘렀다.

“이건 왜 하는 거예요?”

“신의 축복을 비는 거지.”

할머니의 발그레한 볼이 다른 라다크 사람들처럼 햇볕에 그을린 건지, 술기운에 달아오른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시큼한 술 냄새를 풍기며 우리에게 창을 권했다. 우린 그 비밀스러운 장소가 좋아 자주 드나들었고, 창을 마시고 싶어 하는 다른 여행자들에게 소개해 주기도 했다. 할머니는 그런 우리를 예뻐했다. 덕분에 라다크 전통의상인 곤차Goncha를 입어볼 수도 있었다. 두툼한 감색 옷감에, 별다른 디자인도 없는 곤차는 추위를 막아주는 데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미적 감각은 찾아볼 수 없는 투박한 옷이었다.

사실 할머니가 빚은 창이 맛있지는 않았다. 너무 시큼해서 설탕을 타야지만 그럭저럭 맛이 났다. 라다크 친구들은 레에서는 진짜 창을 구할 수 없다며 ‘진짜배기’ 창을 마시려면 레를 벗어나 시골 마을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초모가 사스폴에 사는 사촌오빠네 집에 놀러 갔다가 구해다 준 창은 레에서 마셨던 창과 완전히 달랐다. 그 창은 발효시킨 보리로부터 나온 첫 번째 창, 마추라 했다. 마추를 다 먹으면 다시 물을 채우는데 마추 이후의 창은 알코올 농도가 낮아지고 맛이 연해지기 때문에 ‘마추’가 진국이라는 것이 초모의 설명이었다. 달달하고도 새콤한 그 맛은 화이트 와인을 연상시켰다. 몇 잔을 마시니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사스폴의 창을 먹어본 뒤로 레의 창은 성에 차지 않았다. 하지만 좀처럼 레를 벗어나는 일이 없는 우리는 시골 마을의 창을 쉽게 구할 수 없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몇 년 전부터 할머니는 창 만드는 일을 관두고 시장에 나와 과일을 팔기 시작해서 우리는 소중한 아지트를 잃고 말았다. 비밀스럽고 친근했던 술집을 대신할 새로운 장소가 필요했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여자들이 열린 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일이 흔하지 않은 라다크에서는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바’에서 술을 마신다는 것 자체가 큰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다. 하루는 한국에서 놀러 온 친구들과 함께 바에 간 적이 있었다. 카페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 버스나 타고 목적지 없이 훌쩍 떠났다 돌아온 날이었다. 우리는 맥주로 목을 축이며 그날의 모험에 대해 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갑자기 정전이 찾아왔다. 어둠에 용기를 낸 것인지, 어둠이 기회라고 생각한 것인지 처음 보는 동네 청년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시하면 될 것을 카페에 와본 적이 있다는 말에 냉정하게 굴기가 영 불편해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뻔한 질문들에 기계적인 대답을 하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 언성이 높아졌다. 친구가 취한 라다크 사람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이를 무시했는데, 화가 난 남자가 그녀에게 막말을 한 것이다. 한마디 쏘아줄까 하다가 술 취한 사람을 상대로 무슨 말을 하겠냐 싶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이후로 다시는 바에 가지 않았다.

라다크는 군사 지역일 뿐만 아니라 특유의 문화적 폐쇄성 때문에 주류 판매 허가를 받기가 어렵다고 한다. 현지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 레스토랑에서도 술을 팔긴 했으나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전자에 맥주를 넣어서 팔거나, 종이로 맥주병을 감싸서 팔거나, 병을 숨겨가며 몰래몰래 팔았다. 비싸기도 했고, 뭔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레스토랑에서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자연스레 와인숍에서 술을 사다가 마셨다. 레에는 단 두 개의 와인숍이 있었는데 오직 그곳에서만 술을 살 수 있었다. 게다가 매일 문을 여는 것도 아니어서 와인숍은 항상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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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에는 한 달에 두세 번 드라이 데이라는 것이 있다. 불교 달력에서 신성한 날로 여겨지는 그믐과 보름을 포함한 몇몇 기념일에는 술과 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갑자기 파티를 계획한 날은 늘 드라이 데이였고,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더 마시고 싶어졌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드라이 데이가 되면 시내의 바와 와인숍들은 문을 닫지만, 셔터를 반쯤 열고 몰래 술을 팔기도 했다. 카페의 옆 건물은 바였는데 이런 순간에 우릴 돕곤 했다. 드라이 데이가 아니더라도 와인숍이 파업을 할 때도 있고, 시내의 모든 가게가 다 같이 문을 닫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라다크에 눌러앉은 지 한두 해가 아닌지라 늘 다른 수가 생기기는 했다. 라다크 친구들은 드라이 데이에도 어디선가 반드시 술을 구했다. 플랜 B가 실패로 끝나면, 플랜 C, 플랜 D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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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친구들은 대부분 야외에서 술을 마셨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눈앞에 두고 왜 답답한 실내에서 술을 마시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특별한 음주(?) 장소를 가지고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 인더스 강가, 룽따가 휘날리는 다리 위, 모든 곳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장소였다. 그들에게는 라다크 땅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이자 펍인 셈이다. 탁 트인 공간에서 술을 마시면 금세 호기로워졌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기운이 내 몸 구석구석 스며들어 술에 취하는 것보다 자연의 정기에 먼저 취했다. 촘촘히 박힌 별, 지구 그림자에 가려진 달, 시원한 강 내음과 바람은 일종의 안주였다. 세상에 이런 호사스러운 술자리가 또 있을까?

하지만 누가 뭐래도 우리의 단골 술집은 카페 두레였다. 밤이 되면 카페 두레는 종종 ‘바 두레’로 변신했다. 정든 단골손님들의 송별회를 하고, 생일을 맞은 누군가를 위한 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흥에 겨워 연주와 노래가 시작되면 그만큼 즐거운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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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손님들과 열었던 코스튬 파티도 그랬다. 한 사람당 백 루피의 참가비를 내고 ‘최대한 이상하게’ 차려입고 와서 일등과 꼴등을 가리자는 제안으로 시작된 파티였다. 누구는 머리에 물감까지 칠하며 할아버지 분장을 했고, 누구는 예쁘게 여장을 했고, 누구는 티베트 어린이 학교 교복을 빌려 입었고, 누구는 티베트 전통 의상을 입고 왔다. 흥미로운 파티의 소문을 들은 라다크 친구들도 우르르 몰려왔다. 갑자기 몰려온 라다크 사람들로 파티 참가자들은 좀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어색했던 분위기는 오가는 이야기와 술잔 속에 누그러졌다. 투표 발표를 앞두고 파티의 분위기는 최고조로 달아올랐고, 누군가는 일어나 춤을 추기도 했다. 라다크 친구들과 한국 손님들이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여러 차례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건배와 같은 뜻의 라다크 말인 ‘촛’을 외쳤다.

그 자리에 여행자와 현지인이라는 구분은 어느덧 사라졌다. 경계가 허물어진 그곳에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공유하는 ‘우리’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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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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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서 술마시면 특히 잘 취하지는 않지요? 그리고 술도 금새 깨는 것 같구요. 그런데 고산지대이기때문에 상황이 다를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고지대로 올라갈수록 기압이 떨어지니까? 몸안에 발생되는 열도 빨리 달아오르지 않을까? 잠깐 생각해봅니다. 제가 대학다닐때는 옥수수과자/ 김말이 깁밥/순대/ 떡볶기 등 하나와 함께 막걸리를 학교 교정앞 잔디에서 마시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수업은 자체 폐강/재껴불고~

그렇지만 그 다음날은 개죽음


ps. 대문 음악이 살랑살랑하고 듣기 좋네요. 어깨춤이 총총거립니다. 제가 첨부한 이 사운드는 어딘지 모르게 술먹은다음 골때리는 느낌입니다. 제목도 Going out of my head! 그 놈의 숙취~

저도 학교 잔디밭에서 술을 자주 먹었는데, 요즘은 대학교 자체에서 잔디에서 술먹는 걸 금지한다 하더라구요...라다크의 사막 한가운데서 술이 먹고 싶어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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