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리포트 춘자 _ 14 꿈 지도

in #stimcity2 years ago



꿈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꿈 일기를 쓴 적은 있지만, 꿈 지도는 처음이다. 이 작업의 목적 같은 건 없고, 자꾸 갔던 곳에 또 가니까 늘 궁금하긴 했다. 꿈속 인물이나 경험이 매우 특별해서 기억에 남은 경우를 제외하고, 나의 꿈 기억은 대부분 공간에 대한 것이다. 꿈속에서는 주로 이곳저곳을 다닌다. 돌아다니다 보니 버스, 지하철, 기차, 비행기 등 탈 것도 많이 타는데, 가끔은 운전도 한다. 운전하면 그 꿈은 언제나 악몽이다. 자주 날아다닌다. 돌고래처럼 헤엄치거나 공중을 걷는다. 길의 모양과 구조, 길을 지나며 마주친 풍경이 생생히 기억난다. 반복해서 방문하는 도시와 동네, 늘 지나는 도로, 역, 정거장, 공항 등이 있고, 꿈속의 나는 가끔 그걸 알아차린다. 비교적 선명한 장소부터 그려나가다 보니 뿌옇게 희미해진 혹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영역도 조명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정찰 중인 오버로드가 된 기분이다. 예상보다 넓은, 예상보다 많은,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그려야 할 곳이 아직 많이 남았다.

며칠 전에는 몰타에 갔다. 마주하는 모든 풍경이 너무 익숙하게 느껴졌다. 해안가에 세워진 높은 성벽을 따라 난 오르막길을 걷다가 선박 회사의 광고판 같은 걸 봤다. 그걸 보고 이 길이 꿈속에서 이미 여러 차례 걸었던 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꿈속의 몰타는 현실의 몰타와 비슷하고 또 완전히 달랐다.

요즘에는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음악을 들어도, 모든 메시지가 나에게서 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낳은 말과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다시 내게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메시지가 사방팔방에서 날아와 꽂힐 때는 읽는 것도, 듣는 것도 어쩐지 대충 고를 수 없다. 타로카드를 뽑는 마음으로 집중하여 선택한다. 선택했다면 구멍이 뻥뻥 뚫린 돌멩이가 된 상상을 하며 보고 듣는다. 나는 돌이야. 끓던 것이 터져 나가고 남은 자리에 크고 작은 구멍이 생겼지. 그리고 동시에, 나는 바람이야. 구멍을 들고나며 먼지를 씻어내는. 그리고 또, 나는 물이야. 구멍으로 흘러 들어와 다시 나를 채우는. 돌멩이와 바람과 물을 떠올리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위를 살핀다. 가로등 불빛도, 흔들리는 나뭇가지도, 발목부터 종아리를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바람도, 말을 걸어온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을 듣는다. 신이 나에게 전하는 사랑. 미래에서 걸려 온 전화. 나의 삶과 나의 이야기.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 유일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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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100퍼센트 의미가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꾸는 꿈을 연거푸 꾸거나 계속 꾼다면 아주 아주 분명.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요. ^^
라라님은 어떠세요. 아시거나 모르시거나 궁금하거나 안궁금하거나 알아도 몰라도 상관없거나 알아도 모른척 하고 싶거나 어떤 의미가 있거나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거나.

찹촙님 오래간만이에요! 저는 꿈에서도 살아요. 별거 없기도 하고, 되게 중요하기도 한 여러 장면이 눈을 뜨기 직전까지 펼쳐져요. 어떤 꿈은 현실과 완전히 이어져 있고, 또 어떤 꿈에서는 꿈 바깥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을 하거나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기도 해요. 어떤 꿈은 분명한 메시지처럼 느껴지고, 어떤 꿈은 무의미의 총집합 같기도 해요. 누구는 꿈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고, 누구는 꿈을 해석하라고 하고, 다들 생각이 다르지만,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렇게나 많은 걸 보면 꿈에는 분명 의미가 있는 것이 맞아요. 찹촙님 말대로요. 다시 꿈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이유도 꿈에서도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하루의 내용이 낱낱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날그날 몇 개의 결정적 장면은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슬렁슬렁 꿈을 보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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