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시티 프리퀄] 어처구니 없는 믿음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in stimcity •  29 days ago




어처구니없는 믿음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 Berlin, Germany



베를린 장벽은 매우 어이없이 무너졌습니다. 동독 중앙위원회 정보 담당 서기였던 샤보프스키는 언제부터 자유여행이 보장되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얼떨결에 “지금, 즉시”라고 답변해 버립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동베를린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에 모여듭니다. 그리고는 머뭇거리는 국경수비대를 밀고 베를린장벽을 넘어서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독일의 통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 불가능해 보이는 어떤 일도, 사실은 이미 우리 곁에 무르익어 가고 있어. 문제는 그것을 ‘믿음으로 인식하고 있는 가’ 이지. 이미 가능한 일이었던 거야. 담당 서기의 무의식적인 대답 한마디에 무너질 수 있을 만큼 상황은 무르익고 있었던 거야. 물론 끝내 그 한마디를 지켜 냈다면 또 다른 상황이 펼쳐졌을지도 몰라. 거의 다 된 듯 보였던 일도 허사가 되기도 하고,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이 사소한 해프닝 하나로 현실이 되기도 하지. 우리는 그래서 ‘믿음’을 가져야 해.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_ 히브리서 11장 1절

 
성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實相).. 그러나 그렇게 실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이 현실이 되려면 어처구니없는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얼떨결일지라도, 어이가 없어 보여도.. 믿음이 실상이 되려면 그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이’가 뭔지 알지? ‘어이’, ‘어처구니’ 말이야. 맷돌을 돌리는 데 필요한 막대기를 말하는 거야. 어처구니가 있어야 맷돌을 돌리지. 그런데 믿음이 현실이 되려면 그 ‘어이가 없어’야 하는 거야. 어이가 있으면 맷돌을 돌리게 되거든. 그것은 일상이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 아니고 보이는 것들의 일상이라고. 현실에 이미 존재하는 그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현실로 가져올 수 없어. ‘어이없는’ 선택과 상황. 그것이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되지.

 
현실의 맥락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보이는 것들을 믿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어야 합니다. 보이는 것을 믿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보이는 것들은 가서 가져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들은 현실의 방법으로는 획득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믿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현실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 어이없는 영역에서 비가시적인 것이 가시적인 것으로 변환되어집니다.

동독의 담당 서기는 어째서 ‘지금, 즉시’라고 말했을까요? 이미 동독인들의 무의식 속에 거부할 수 없는 비현실이 현실화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련과 동구권의 급격한 변화의 물결을 모두가 감지하고 있었고, 동독인들의 무의식에도 그러한 변화의 바람(wind of change)이 불고 있었던 것입니다. 담당 서기 또한 그러한 비가시적인 흐름의 자기장 안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자의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즉시’라고 말이죠. 그 어이없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적 답변 한마디가 동독인들의 믿음을 현실화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자유에 대한 갈망과 믿음이 현실이 되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담당 서기가 체제 수호의 강력한 믿음을 놓지 않고 있었다면 최소한 베를린의 장벽이 그렇게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았을지 몰라. 어쩌면 여전히 우리나라처럼 분단의 현실이 계속되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것은 ‘어이없는’, 매우 결정적인 답변 한마디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그래서 체제와 현실을 유지하려고 하는 지배계층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무의식의 에너지가 쌓여가지 않도록 계속 사람들을 현실 속에 묶어 두어야 합니다. 그들의 불만과 불만족이 체제를 부정할 만큼 한 방향으로 몰려가게 두었다간, 한순간에 몰락하게 될 시한폭탄을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믿음, 그러니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체제와 현실 속에서 성취되고 만족되도록 길을 열어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믿음은 체제와 현실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바라는 것들이 현실에서 계속 이루어지는데 굳이 비현실적인 믿음을 가질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체제와 현실에서 그것이 가능성을 잃고 부정될 때 사람들의 믿음은 체제와 현실을 넘어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믿음이 체제와 현실에 머무를 때는 통제하기가 쉬워. 체제와 현실이 사라지면 사람들의 꿈도 사라질 테니, 사람들은 체제와 현실을 강력하게 수호하려 들지. 그런데 체제와 현실이 사람들의 바라는 것들을 배신하고, 달성이 불가능하게 만들면, 당연히 사람들은 그 체제와 현실을 넘어서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거야. 우리 시대 사람들의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부동산? 학력을 통한 신분상승? 그런 것들이라면, 그동안 사람들은 체제 안에서 그것들을 성취할 수 있었어. 굳이 체제 너머의 꿈을 꿀 필요가 없었던 거야. 그러나 그 방식이 좌절되기 시작하고, 그 절망의 에너지가 쌓여가면,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기 시작하지. 체제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한 믿음을 말이야.

 
그렇게 체제와 현실은 물이 차고 기울어지는 것처럼 계속 혁명되어지고 바뀌어 왔습니다. 반대로 그러한 사람들의 ‘바라는 것들’을 체제 내에서 실현 가능하도록 열어 놓은 사회는 500년, 1,000년씩 자신의 시스템을 유지해 오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들의 바라는 것의 현실화(실상화)가 체제 유지의 관건인 것입니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야. 자신이 바라는 것들을 모두 현실화하고 있다면 사람은 꿈이나 믿음 같은 것들을 가질 필요가 없어. 그러나 그렇게 만족스러운 삶이 얼마나 되겠어? 대부분은 믿음의 저편, 꿈속 깊은 곳 어디에 ‘바라는 것들’이 잠들어 있지. 그것들이 현실화되려면 과정이 필요해. 믿음이 자라나는 과정. 동독인들이 주변 상황의 변화로 인해 점점 믿음을 키워갔듯이 개인의 믿음 또한 에너지를 쌓는 과정이 필요해. 그것은 ‘간절함’을 먹고 자라지. 하지만 아무리 폭발 직전까지 믿음을 키웠어도, 결정적인 선택이 없으면 그것은 현실로 가져올 수가 없어. 바로 그 순간 진짜 믿음이 필요한 거야. 왜냐면 ‘어처구니’가 없이 맷돌을 돌려야 하니까.

 
우리는 그 모든 믿음과 꿈의 현실화를 열망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는 그놈의 ‘현실성’을 끄집어 듭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야 기적이 일어나는 데, 사람들은 그 기적의 순간을 향해 가는 도중에 ‘어처구니 없네. 이게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해? 어처구니가 없는데 맷돌이 돌아가겠냐?’라고 하며 걸음을 멈춰 버립니다. 진짜 어처구니가 없는 건 그대의 꿈과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 온 그대의 염원과 열망들입니다. 가능한 것은 믿음이 아니며, 믿음은 어차피 불가능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인데, 그것을 현실로 가져오겠다는 사람이 현실 가능성의 잣대로 선택을 멈춰버리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래, 그래서 기적은 ‘어이 없는’, ‘어처구니 없는’ 선택의 뒤에 나타나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매커니즘이지. 그러니 우리는 그 기적의 순간을 잘 인식할 수 있어야 해. 물론 그 순간을 잘 포착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실성’과 ‘실현 가능성’의 잣대로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선택을 망설여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러면 이제까지 꿈꿔오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아. 한순간에 그 변화의 바람이 사라진다구.

 
그것은 일종의 믿음의 시험인지도 모릅니다. 믿음은 그 비현실적인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는 것들로 현실화 시키기 전에 묻습니다. ‘네가 정말 믿니? 믿는다면 네 믿음을 보여 봐.’ 그래서 매우 ‘현실성’ 없는, ‘어처구니 없는’ 선택으로 믿음을 증명하도록 요구합니다. 어차피 현실적이지 않은 믿음이었습니다. 어차피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한 소망이었습니다. 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만, 우리는 꼭 그 순간 갑자기 살아난 ‘현실 가능성’과 조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험을 넘어 매커니즘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가시적인 것이 가시적인 것으로 드러나기 위해 비현실적 선택을 조건으로 한다는 것 말이죠. 기체(수증기)가 액체(물)가 되기 위해 고체(돌)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말이죠.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그 순간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게 됩니다. 아닙니다. 믿음이 아니라 ‘간절함’을 증명하게 됩니다. 그 사람의 간절함의 정도는 그 어처구니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_ <연금술사> 中

 


이 유명한 구절의 핵심은 ‘간절히’야. 믿음의 실현 가능성의 척도는 ‘간절함’ 이라구. 간절함이 없이 이루어진 소원을 사람들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 그것이야말로 돼지 모가지에 진주 목걸이인 것이지. 간절함 없이 저절로 이루어진 소망을 사람들은 심지어 무가치하게 여기고, 하찮게 취급하기까지 해. 출애굽을 간절히 원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불평했어. 누가 출애굽 시켜 달랬느냐고 말이야. 심지어 다시 애굽으로 돌려보내 달라고까지 했지. 그때 신은 깨달은 거야. ‘이 새끼들, 간절함이 없구만. 내가 다시는 알아서 구해주나 봐라!’ 그 뒤로 사람들은 자신의 ‘간절함’을 증명하기 위해 삼천 번제를 드려야 했지.

 
곰은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만 먹어야 했습니다. 쑥과 마늘만 먹으면 사람이 된 답니까? 사람이 되고 싶은 간절함을 증명해 보이라는 신의 시험인 것이지요. 사람들은 모두 꿈꾸고 믿음을 갖지만 간절하지는 않습니다. 꼭 그것이 아니어도 대체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이 실현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엄마의 쇼핑일 수 있고, 아버지의 승진일 수 있습니다. 학생의 합격일 수 있고, 삼촌의 취직, 누나의 결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실현 가능한 것들입니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기적이 필요 없습니다. 하고자 하면 성취가 가능한 것입니다. 말 그대로 ‘하면 되’는 것들 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정말 ‘간절히’ 열망하는 것들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오히려 믿음의 영역, 꿈의 영역으로 그것들을 옮겨 놓습니다. ‘간절히’ 열망하는 것들이 아니기에 별로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야 돼서 하는 것들이기에 의욕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것들이기에 열정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싸그리 모아서 꿈과 믿음의 창고에 처넣어 버립니다. 해야 하나,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꿈의 창고에 모아놓고 자물쇠를 채워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너 꿈이 뭐니?’ 물으면 ‘승진이요, 취직이요, 합격이요, 결혼이요.’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없는 것,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을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치환함으로써 자기위안을 삼는 것입니다. ‘봐~ 내 꿈만 이런 게 아니라니까. 승진, 취직, 합격, 결혼.. 이런 건 요즘 시대에 어차피 다 꿈이라구.’ 그 바람에 그것들에 덮인 나의 진짜 꿈은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 말고 진짜 너의 꿈을 말해보라고 하면 ‘글쎄~ 잘 모르겠는데..’하고 머뭇거립니다.

실현 가능 한 건 노력하면 됩니다.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승진하고, 취직하고, 합격하고, 결혼하니까요. 꼰대 같은 소리 한다 하지 말고, 정직하게 자신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게 하기 싫은 겁니다. 우리는 그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겁니다. 우리는 그게 그렇게 ‘간절’하지 않은 겁니다. 진짜 간절한 것은 실현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실현 가능한 것들은 그렇게 ‘간절’하니 이미 다 하지 않았겠습니까? 꿈과 믿음의 영역에 남아 있는 건 다 실현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현실성이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더 ‘간절’한 것들입니다.

 


그런 얘기해 봐야 아무 소용없어. ‘간절함’이란 단어가 우리네 인생에서 빛을 잃은 지 한참 되었거든. 물론 아직 흔적이 남아있긴 하지. 군대의 병장은 ‘간절’히 제대를 원하지. 100번의 오디션에서 떨어지고도 아직도 도전하고 있는 누군가는 정말 ‘간절’할 거야. 아이의 불치병이 낫기 원하는 부모의 마음 또한 ‘간절’할 거야. 그래서 이런 이들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제대의 시간이 오고, 데뷔의 날이 오지. 기적 같은 치료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러나 정작 우리들의 꿈과 믿음에서 그런 간절함을 찾아보기가 너무 어려워졌어. 하기 싫은, 의욕 없는 것들로 꿈과 믿음의 창고가 가득 차 버렸기 때문이야. 얼마나 켜켜이 쌓여 있는지 끄트머리조차 보이지 않아.

 
에디슨은 간절하지 않았다면 1,000번이나 도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라이트 형제는 간절하지 않았다면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하늘을 나는 시도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간절함’이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간절한’ 사생팬은 지금도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쫓고, ‘간절한’ 정치인은 사생활의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것들을 감수하면서까지 선거에 도전합니다. ‘간절한’ 며느리는 이혼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어머니의 영향력을 차단하려 들고, ‘간절한’ 남편은 온갖 위험부담을 안고도 사업을 감행합니다. ‘간절한’ 아들은 부모의 철통 감시에도 PC방 고지를 반드시 탈환하고, ‘간절한’ 누나는 선풍기 아줌마가 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성형을 감행합니다.

‘간절함’은 사라진 게 아닙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믿음을 실현시키며, 꿈을 이루게 하는, 심지어 온 우주가 나서게 하는 그 ‘간절함’은, 오로지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사람이 하늘을 날게 하는 그 엄청난 ‘간절함’을, 우리는 얼굴에 붙은 소시지를 떼는 데만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해 뭐 할까.. 다 자기들 좋아서 그러는데. 누구를 탓할 거야. 그래서 나의 결론은 이거야. 사람들은 모두 마조히스트다. 다 좋아서 하는 짓이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데에만 에너지를 쏟는 거야. 아니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고통 속에 머물면서 고통을 잊으려고만 해. 진통제만 맞아가면서 말이야. 그래서 우주가 들어 주는 소원을 온통 진통제 맞는 데에만 쓰고 있어. 고통 속에 머물면서 진통제만 ‘간절히’ 원하지. 이 정도면 중독이야. ‘고통 중독’이라고..

 
우주는 지금도 우리의 ‘간절함’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선악이 없는 우주는,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니 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가지 소원을 PC방에서, 성형외과에서, 백화점에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 잘~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꿈★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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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일상적으로 일으키던 시절과 지금이 달라진 것은 간절함이군요. 다시 힘을 되찾으면 좋겠습니다. ㅎㅎㅎㅎ 뭔가 엄청난 것을 해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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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가 @urobotics님의 소중한 댓글에 $0.013을 보팅해서 $0.010을 살려드리고 가요. 곰돌이가 지금까지 총 995번 $14.735을 보팅해서 $12.840을 구했습니다. @gomdory 곰도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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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곰돌이 덕분에 살았네요. ㅎ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