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시티 프리퀄] 러브헨지 Lovehenge

in stimcity •  19 days ago




러브헨지 Lovehenge

+ Stonehenge, UK



스톤헨지에 가야 합니다. 멀린은 어서 지긋지긋한 이 생을 끝내고 싶습니다. 몽세귀르에서 찾지 못한 스타게이트를 스톤헨지에서는 찾을 수 있을까요? 비록 별 성과 없는 인생이었을지언정, 이생에서의 시간을 여기서 멈출 수 있을까요? 스톤헨지에는 그를 맞아줄 우주선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깨어진 마음을 암스테르담에 남겨놓고 멀린은 영국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도버해협을 넘으면 되는 그곳에는, 멀린을 다른 차원으로 옮겨 줄 스타게이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톤헨지에 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 미션 하나를 남겨 두고 어서 이 숙제를 마치고 싶었지. 그곳에 가면 정말 이 지치고 고단한 생이 마무리가 될까? 스톤헨지에 가면 이 삶의 마지막 미션은 완수가 될까? 머릿속에 그런 생각만 가득한 채로,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스톤헨지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았지. 지난 영국 방문 때도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포기했던 기억에, 바로 여행정보를 알아보았어.

 
스톤헨지는 런던에서 두 시간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멀린은 출발 전부터 영국에서는 한스, 잭과 떨어져서 혼자 여행할 계획이었습니다. 작년 영국 방문 때, 런던에서 시간을 충분히 보냈던 터라, 이번 영국 일정은 런던 인근 도시들을 중심으로 방문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영국 방문이 처음인 한스와 잭은 런던을 중심으로 여행을 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스톤헨지, 글래스톤베리 등 남은 일정들은 멀린의 개인적 일정입니다. 게다가 스톤헨지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데, 앞 날이 창창한 두 젊은이들이 벌써 지구를 떠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뮤지션의 본고장인 런던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남은 생에 도움이 될 터입니다.

 


스톤헨지 여행상품을 몇 곳 알아보았어. 마침 세일하는 곳이 있어서 예약을 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 출발 장소를 찾아갔지. 스톤헨지에는 혼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직접 찾아가는 방법이 매우 복잡해 보이더라구.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아서 그냥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기로 한 거지. 그런데 웃긴 일이 생긴 거야. 여행사 버스가 오고, 버스에 올라타서 기다리고 있는데, 가이드가 내 이름이 예약자 명단에 없다는 거야. 그래서 물었지. 이거 스톤헨지 가는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아니라는 거야. 스톤헨지가 아닌 다른 곳을 방문하는 버스였어. 게다가 내가 예약한 상품은 심지어 다음 달 상품이었던 거야. 뭐에 홀렸는지, 요일만 확인하고 예약을 잘못했던 거지. 무척 황당한 상황이었는데 당황스럽기 보다 명쾌해졌어. ‘아! 스톤헨지에 정말 뭐가 있구나!’ 그리고 ‘혼자 가야 하는구나!’ 하고 말이야.

 
멀린은 명확해진 직관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합니다. 스톤헨지는 멀린이 혼자 오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멀린은 복잡한 과정을 감수하고 직접 교통편을 알아보기로 합니다.

차근차근 검색을 해보니 의외로 쉬운 방법이 있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솔즈베리에 내려서, 스톤헨지 투어버스를 타면 되는 거였습니다. 기차도 자주 있는 편이고, 시외버스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아도 투어버스를 탈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솔즈베리까지 가보기로 합니다. 다행히 솔즈베리 역에 내려 보니 스톤헨지 투어버스를 현장에서 예매할 수 있었습니다. 별 거 아니었네요. 괜히 쫄았습니다. 역시 인생은 뭐든 부딪혀 보면 어떻게든 되는 것입니다.

 


투어버스에 올라타서 스톤헨지를 향해 가는 동안, 창밖에는 비가 오락가락하고 하늘은 비구름이 낮게 덮여있었어. 당장 UFO가 나타나도 하나도 어색할 게 없는 날씨였지. 가는 동안 스톤헨지를 검색해 보았어. 생각해 보니 스톤헨지에 대해서 정보가 너무 없었던 거야. 그냥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다른 차원으로 가는 스타게이트가 열린다는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거야. 이게 유례가 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무 정보도 없이 가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버스에 올라타, 스톤헨지를 찾아 검색해 보는데, 이런.. 이게 뭐야?? 스톤헨지를 세운 사람이 마법사 멀린이었던 거야!

 

예부터 숱한 사람들이 스톤헨지에 관심을 가져 그것의 기원, 용도, 목적을 궁금해하였다. 옛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았으므로 스톤헨지를 소재로 한 여러 가지 전설이 생겼다. 그런 전설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유명한 마법사 멀린이 스톤헨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멀린이 사자(死者)를 기리는 기념비를 만들기 위해 스톤헨지를 아일랜드로부터 가져왔다고 전한다. 이 전설은 스톤헨지의 재료가 되는 돌들이 바다 건너 다른 곳에서 수입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시사한다. 리스(Rhys) 박사는 스톤헨지가 종교적 의식을 위한 자리였으며, 그곳에서는 뮈르딘(Myrddin. 멀린의 웨일즈식 이름)을 숭배하는 의식이 치러졌다고 주장한다.
 
_ 나무위키 (스톤헨지)

 
그랬군요! 멀린, 스톤헨지는 멀린이 세운 거였네요! 기억이 전혀 나지 않나요? 본인이 세워 놓구선, 이렇게 까맣게 잊고 계시면 어쩌라는 건지..

영국인들의 전설 속 스톤헨지는 마법사 멀린이 세운 유적이라고 기억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외계인이 세웠다는 이야기, 고대인들의 천문대였다는 전설, 이집트인들이 영국에 와서 세운 피라미드라는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있습니다만, 아직 기원이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이므로 어떤 전설이 진실일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멀린을 이곳까지 이끈 직관은 멀린에게 ‘스톤헨지를 세운 자는 마법사 멀린’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 깨달았지. 마법사 멀린이 세운 유적지라면 그것은 원탁을 상징하는 것일 거라고 말이야. 마법사 멀린과 아더 왕, 그리고 원탁의 기사들.. 그것의 상징이 아니었겠어? 둥그렇게 둘러선 원형 거석들 말이야.

 
전설에 의하면 원탁은 마법사 멀린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마법사 멀린은 원탁을 만들고 전국의 영주들과 기사들을 불러 모아서, 왕에 대한 충성과 서로 간의 협력을 맹세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원탁은 성배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멀린은 원탁을 만들면서 예수의 13제자를 기념해 13개의 좌석을 만들었는데, 그중 가룟 유다의 자리는 항상 비워두도록 하였습니다. 전설에는 어떤 기사가 경고를 무시하고 그 자리에 앉았다가, 대지가 입을 벌려 그를 삼켜버렸다고 합니다. 원탁에는 마법의 힘이 있어서 그 자리의 주인이 나타나면 향기가 나고, 그의 이름이 원탁에 새겨졌다고 합니다. 원탁은 상하의 차별이 없는 평등성을 상징하며, 여기에 앉을 수 있는 기사는 그리스도교적 사명에 불타는 뛰어난 기사로서, 잃어버린 성배를 찾는 것을 지상의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스톤헨지와 마법사 멀린의 연관성은 전혀 알지 못했어.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여기를 와야 했구나.’ 이유를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지. 그러고 나니 이곳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더군.

 
멀린은 투어버스에서 내려 스톤헨지를 향해 걸어갑니다. 정류장에서 스톤헨지까지는 거리가 좀 있어서 셔틀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고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멀린은 주변 풍경을 보고 싶어 걸어가기로 합니다. 영국 농촌의 풍경이 한참 펼쳐지고 여기저기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멀린의 눈에 소들이 매우 한가로워 보입니다.

 


한참 물끄러미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을 지켜보았어. 몇몇의 소는 나무 아래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고, 몇몇의 소는 관광객들을 빤히 쳐다보며 하품을 해대고 있더군. ‘네 팔자가 참으로 상팔자구나. 세상 부러울 게 뭐 있겠니?’ 하는 생각이 들더라. 여행하면서 유럽의 소들은 정말 행복한 일생을 보내는구나 생각했었지.
 
방목하면서 키워지는 소가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어? 우리에 가둬진 채로 옴짝달싹도 못한 채 사육 당하는 소가 아니라, 넒은 대지에 넘쳐나는 먹거리를 유유자적 훑어가며 살아가는 소 팔자가 정말 상팔자구나 싶더라구. 젖소들은 먹으면 나오는 우유를 주면 될 테고, 식용소라 해도 죽음은 잠깐이잖아? 잘 먹고 잘 살다, 잠깐의 고통이면 어쨌든 이생의 삶은 다하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인지 유럽의 소고기는 유난히 맛이 좋더라구. 스트레스 없이 자란 소의 고기 맛이 깔끔한 건 당연한 거겠지. 많이 먹어도 부담스럽지도 않고.. 정말 먹고 자고 끝이구나. 매우 단순하며 명쾌한 삶이 아니겠어?
 
뭐 그렇게 부러워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갑자기 늙은 소 한 마리가 말을 걸어오는 거야.

 

“이 봐, 자네가 멀린인가?”
 
“(오~ 이것 봐라 소가 말을 하네.) 그래 내가 멀린이야.”
 
“좀 늦었네. 원래 작년에 오기로 되어있었잖아. 왜 그냥 갔지?”
 
“아.. 그건 뭐. 별거 아니야. 교통편이 복잡해서.. 별생각이 없었어. 그런데 아니 소가 어떻게 말을 하지?”
 
“이 봐 멀린. 소가 말을 하는 게 아니야. 당신이 소의 말을 듣는 거지. 보라구, 다른 사람들은 못 알아듣잖아.”
 
“아.. 그런가? 그런데 난 어떻게 소의 말을 알아듣는 거지??”

 
늙은 소가 멀린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멀린은 소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 ‘스톤헨지’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게다가 자신을 마법사라고 하며 다른 차원으로 가는 스타게이트를 찾아왔다는 멀린에게 일어나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그건 됐고. 올해도 또 늦었네그려. 하지(夏至)가 지났잖아.”
 
“엥~ 뭐라고 또 늦었다고? 하지? 하지가 언젠데?”
 
“이틀 전이 하지였지. 매년 이곳에서는 하지 축제가 열려. 하지에는 저 거석의 중심축이 태양과 일직선을 이루거든.”
 
“일직선을 이루면 뭐가 어떻게 되는 데? 하지랑 스톤헨지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야?”
 
“그건 스톤헨지를 한 바퀴 돌아보면 알지. 가서 돌아보고 오게. 난 풀을 좀 뜯고 있을 테니.”

 
늙은 소는 갑자기 ‘음메~’하며 크게 하품을 하더니 무리들 사이로 사라졌습니다. 멀린은 다시 불러보았지만 더 이상은 소의 언어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귀신에 홀렸나? 날짜를 착각하지 않나.. 암튼 암스테르담 유리창 사건 이후로 뭔가 좀 이상해. 그런데 정말 하지에 왔어야 했나? 그러고 보니 지금 일정이 작년 영국 방문 때랑 똑같네.

 
날짜를 살펴보니 작년 영국 방문 일정과 이번 일정이 똑같습니다. 작년에도 딱 이 날짜에 영국에 있었는데 말이죠. 하지 말입니다. 그때 왔어야 했던 걸까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멀린은 스톤헨지로 올라갑니다.

평일인데도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모두들 여기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그저 인증샷 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멀린은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이런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스타게이트가 열릴 리 만무하고 우주선이 나타날 것 같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왜 혼자 오라고 한 거야. 시끌벅적 정신없구만. 늙은 소의 말처럼 하지 때 왔어야 했나? 스타게이트는 하지 때 열렸던 걸까? 우주선은 기다리다 떠나가 버린 걸까?

 
멀린은 하지가 지났다는 늙은 소의 말을 떠올리며 틀렸구나 싶습니다. 스톤헨지의 하지 축제에는 매년 몇 만 명의 관광객들이 몰립니다. 각종 종교의 신자들과 신비로운 현상을 찾아다니는 수행자들, 하루하루 즐길 거리를 찾아다니는 관광객들,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듭니다. 그들 모두 신비로운 스톤헨지의 에너지를 경험하고자 매년 하지 때가 되면 구름같이 몰려드는 것입니다.

 


근대 어차피 교통편 때문에 오지도 못했을 거야. 평일에도 좌석이 많이 없던데.. 그리고 우주선이 그런 거 가려가면서 데려갈 거면, 나한테 무슨 싸인을 주었겠지. 몇 시까지 어디로 오라고 말이야. 내가 아쉽나 뭐..

 
스타게이트든, 우주선이든, 멀린은 아쉽지는 않습니다. 다만 변화가 필요할 뿐입니다. 그 변화가 차원을 초월해도 좋고 공간을 이동해도 좋습니다. 새로운 변화가 외계인들과 함께여도 좋고, 다른 차원의 누구, 과거의 누구, 미래의 누구여도 좋습니다. 다만 지긋지긋 고단한 이생의 방식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앞뒤로 꽉 막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매우 재수 없는 이 현대의 방식에 짜증이 날 뿐입니다.

 


스톤헨지.. 뭐 별거 없더만. 한 바퀴 휘둘러 보니 그냥 돌덩이들이 이렇게 저렇게 세워져 있는 거야. 게다가 생각했던 것보다 돌덩이들도 크지 않더라고. 저기 강화도에 있는 고인돌 보다 좀 큰 정도랄까? 뭐가 그렇게 신비하다고 난리인지. 갑자기 심드렁해졌어.

 
이미 틀렸다 싶으니 스톤헨지가 그저 그래 보입니다. 뭔가 특별한 무엇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그냥 흔하게 볼 수 있는 관광지의 유적 같아만 보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돌아가면 너무 허무할 것 같습니다. 좀 기다려 봐야지 않겠습니까? 혹 뭘 놓고 간 우주선이 급하게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러게 미련은 또 남네. 이거 밤에 와야 했나 싶기도 하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타날 것 같지도 않고.. 그냥 그래서 몇 바퀴를 더 돌아 봤어. 어디 스타게이트 비스무리한 게 있나 살피면서 말이야. 그런데 자꾸 돌다 보니까. 좀 이상한 거야. 그 뭐랄까? 음.. 음란한 생각이 든다고나 할까?

 
멀린은 스톤헨지 주위를 한 바퀴, 두 바퀴 돌면서 묘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돌과 돌 사이의 공백, 그리고 공백 사이로 계속 겹쳐지면서 나타나는 돌기둥의 모습이, 마치 남성과 여성의 에너지의 교류처럼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뭐랄까? 성적 결합에서 파생되어지는 신성 에너지 같은..

 


그게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돌덩이가 꼭 사람 같더라고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여성과 그 사이를 들락날락하는 남성의 교합처럼 느껴지는 거야. 묘하더만.. 게다가 그날은 비록 날이 흐리긴 했지만,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다면 그 사이사이로 비치는 태양빛의 조화는 더더욱 강렬하게 느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선사시대에 지어졌다고 추정되기도 하는 스톤헨지가 성적 상징물이 아니라고 절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선사시대의 상징들이라는 게, 동굴의 조각이나, 각종 조형물이나, 토템이나 대부분 성적인 상징을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일리가 있는 추정입니다. 스톤헨지 또한 태양신과 자연, 인류의 결합을 상징하는 형태를 취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것은 단순한 추정은 아닐 거야. 결국 이 여행 내내 쫓아왔던 성배에 관한 전설과 종교개혁의 이야기도, 결국은 신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온전한 결합을 말하는 것이었잖아. 성배의 전설로 귀결되는 마법사 멀린과 아더 왕, 그리고 원탁의 기사들의 이야기 역시 그러한 에너지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고대의 거석들이 상징하는 그것 역시 신성의 온전한 회복, 그리고 인류의 에너지 원천으로서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결합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멀린은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해 깊은 의도를 파악해 가고 있습니다. 여행을 마무리해가는 시점에, 그리고 스타게이트를 통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려던 시점에, 새로운 과제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배의 전설, 신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온전한 회복 말입니다.

 


그 늙은 소에게 물어봐야겠어. 스톤헨지를 돌아보면 알게 될 거라고 했으니까.

 
멀린은 다시 그 늙은 소를 찾아 내려갑니다. 어느새 소의 무리들이 이동을 했는지 아까 그 장소에는 늙은 소가 없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데 이대로 늙은 소는 사라진 걸까요? 마음이 급해집니다. 다시 걸어왔던 오솔길을 되짚어 가 봅니다. 하늘은 갑자기 비라도 쏟을 듯 꾸물 거립니다. 그 때 저 멀리서 늙은 소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어디 한 바퀴 돌아 보았는가?”
 
“한 바퀴, 아니 여러 번 돌아보았지. 그런데 내가 느낀 그게 맞는가? 스톤헨지의 비밀 말이야?”
 
“여보게. 자네가 뭘 느꼈는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나는 그저 소일뿐이라고. 마법사가 아니야.”
 
“아니 그러니까 저 거석들 말이야. 저것들이 남자와 여자, 아니 암컷과 수컷, 아니 뭐라고 설명하지. 음과 양, 플러스와 마이너스, 그런 게 교차하며 발생시키는 에너지를 말하는 거 아니야?”
 
“음.. 교배를 말하는 건가? 스톤헨지를 보고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군. 인간들은 그걸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가 본대. 우리들은 본능을 따라서만 하니 말이야. 개념 자체가 다르지. 그러니까 우리들은 그 에너지라는 걸 매우 제한적으로 경험한 다 이 말이야. 하지와 동지, 뭐 그렇게 딱 정해진 본능의 때에만 경험할 수 있단 말이지. 하지만 인간은 맘대로 언제든지 할 수 있지 않은가? 여기 이 성스러운 땅에서도 수풀 여기저기 자동차를 세워놓고, 시도 때도 없이 해대는 인간들이 노소(老少)를 불문하고 있단 말이지. 그렇다고 그때마다 새끼를 낳는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암튼 스톤헨지가 그렇게 보였다면 말이야. 그건 인간에게나 의미가 있는 것이란 말이지.”
 
“인간에게만 의미가 있다고? 뭐 그렇겠지, 인간이 세운 거니까. 그런데 인간은 그걸 사랑의 행위로 인식하고 있단 말이지. 그럼 소에게 사랑은 뭔가?”
 
“사랑? 우리들에게 사랑은 풀이네. 풀이 우리의 사랑이지. 우리는 풀을 먹기 위해 존재해. 그리고 그것은 자연의 일부인 우리의 역할이지. 우리는 그저 풀을 뜯어 먹을 뿐이야.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과업은 풀을 먹는 일인데, 그것을 사랑하지 않고 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간은 교배를 사랑이라고 생각하나 보지? 그럼 열심히 하게나. 우린 풀을 뜯겠네.”
 
“아니 저기.. 그냥 가려구? 더 물어볼게 있는데..”

 
늙은 소는 하늘에서 비가 쏟아질 것 같자, 가던 길을 가려고 돌아섭니다.

 

‘저 인간들, 그래서 우리가 풀 뜯듯이 그 짓을 해댔구만. 교배가 사랑이라니 쯧쯧..’

 
늙은 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를 떴습니다. 멀린은 더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더 이상 소의 언어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풀이 사랑이라구? 소가 풀을 뜯듯이 사랑을 하라구?? 그건 좀, 너무 어려운 일이 아닐까?

 
멀린은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소가 풀을 뜯듯이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습니다.

마치 이 시대는 사랑을 잃어버린 듯합니다. 소가 풀을 뜯듯이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목숨을 걸고 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소에게 풀을 뜯는 일은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방목 되는 소에게는, 풀을 뜯지 않으면 누가 따로 사료를 주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매우 성실하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서 풀을 찾고 뜯어야 합니다.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고단할 뿐 아니라 매우 귀찮은 일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사랑을 귀찮아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육 당하는 소가 사료를 먹듯이 최소한의 교류를 할 뿐입니다.

소가 생존뿐만 아니라, 자연의 일원로서의 상호작용을 위해 풀을 뜯는 것처럼, 인간도 우주의 일원으로서 사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의 에너지원으로서 매우 중요한 한 축입니다. 인류의 사랑은 빛과 어둠의 에너지를 승화시켜, 우주의 순환이 일어나도록 매개하는 매우 중요한 발전(發電) 작용입니다. 그러나 성배를 잃어버린 인간은 좀처럼 발전 작용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사료만 있으면 되는 것 같습니다. 방식도 매우 소모적이고 형식적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거룩한 성배로부터 자꾸 멀어지고 있습니다.

 


원탁의 기사들이 찾아 나선 성배는 이미 인류의 손에 쥐어져 있어. 우리는 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얻어 낸, 심지어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모순을 스스로 인정하면서까지 교리 속으로 들여올 수밖에 없었던, 신의 여성성과 남성성의 온전한 화해와 결합의 열쇠를 이미 손에 쥐었어. 지금은 누구도 그것을 금하지도, 벌하지도, 막지도 않지. 그럼에도 우리는 더더욱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어.
 
사랑은 마치 식상한 브랜드의 허접한 세일 상품 취급을 당하고 있지. 온전한 사랑은.. 성(聖)스러운 성(性)은.. 고리타분한 전통처럼 잊혀지고 있어. 인류가 잊어가는 사랑의 본질은, 새로운 세대들에 의해 새롭게 되찾아져야 해. 21세기의 방식으로 말이야.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 지금의 제도 속에서 말이야. 이제 구현되어질 과정만 남았다구. 그런데 그게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지. 난 아직 모르겠어..

 
인류에게 사랑은 어떻게 다시 시작될까요? 스톤헨지의 원탁에 숨은 성배의 진실은 현대의 질서 속에 어떻게 구현 될까요? 스타게이트는 열리지 않았고 우주선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고단하고 지친 마법사 멀린은 다시 현대에 남겨져 버렸습니다. 이 사랑의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는 이생을 떠날 수 없나 봅니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마법사는 홀로 남겨졌습니다. 성배를 찾아낸 원탁의 기사들은 꼬박꼬박 지급되는 쥐꼬리만한 사료에 중독되어, 우리 밖을 나설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법의 성에 갇힌 남성들을 구원해 낼 대지의 여신들은, 라푼젤의 탑에서 엄마의 꼭두각시놀음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슴 아픈 세상에 사랑의 메시지를 가져 올 인디고 아이들은 서서히 깨어나며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
 
Love is always part of me..






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 러브헨지 Lovehe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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