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시티 프리퀄] 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in stimcity •  23 days ago




박살 난 유리창은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다

+ Amsterdam, Netherlands



박살이 났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말입니다. 렌터카의 뒷유리창이 박살이 나 있었습니다. 멀린은 박살 난 유리조각이 자기 인생 같아 보였습니다. 선 채로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결국은 일어났구나..

 


이제 하룻밤을 자고 파리로 돌아가 차를 반납하면 그만인데. 그 이틀을 못 기다리고.. 결국은 이렇게 박살을 내고 말아야 했니.. 차라리 여행 중간이었으면 해프닝쯤으로 여겼을지도 몰라. 여행의 막바지에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까. 마음이 너무 허탈하더라.

 
뒷유리창이 박살 났을 뿐입니다. 분실된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버스킹 장비와, 멀린의 짐이 트렁크에 실려 있었는데, 다행히 분실된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유럽여행 중 도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었던 터라, 열심히, 꼼꼼히, 시건장치를 해왔던 덕분에 그들은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내 가방만 마구 헤쳐져 있었어. 중요한 물건은 없었어. 주로 밀린 빨래들이었지. 그런데 그것도 자물쇠로 단단히 잠궈 놓았었는데.. 물론 다이소에서 산 싸구려 자물쇠이긴 했지만.. 그걸 어떻게 끊고, 가방을 열어서 마구 헤집어 놓았더라구. 우악스럽게 헤쳐진 가방을 보고 있자니 퓨~ 하고 휴즈가 나가버리는 듯했어.

 
멀린은 한스 밴드와의 미국 투어 중에도 비행기에서 가방을 분실했었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허허’ 웃으며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이런 시도와 일이 또 일어났다는 게, 멀린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텐트 대신 차에서 지내왔었으니까. 이 자동차는 여행 내내, 내겐 집 같은 존재였지.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젊은 마법사에게, 그래도 한동안 집이 되어준 좋은 보금자리였는데.. 나름 정이 들었었나 봐, 여행 내내 운전을 전담했던 터라 더 그랬던 것 같아. 어떻게 이렇게 지켜내지 못하고.. 뒷유리창이 박살 난 광경이 너무 참혹하게 다가왔어.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는 시련같이.. 운전석도, 앞 유리창도 아니고, 그냥 길거리를 지나가다 뒤에서 날라 온 벽돌에 뒤통수가 깨어진 듯.. 운명의 장난같이 말이야.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여행 중 홀로 쉴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젊은 마법사의 짧은 인생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멀린은 늘 집이 그리웠습니다. 끝나지 않는 여정에 언제든 찾아 들어, 머리를 누일 수 있는 공간이 하나쯤은, 늘 그 자리에 있었으면 했습니다. 여행 중에 자동차는 그런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지친 몸을 끌고 기어들어가면 반갑게 맞아 주었으니까요. 비록 두 다리를 쭉 뻗을 수는 없었지만, 포근하게 안아주는 공간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환대였습니다.

 


이제 작별할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는데, 아쉽게 보내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무참하게 박살이 난 채로 이별을 해야 하다니.. 차라리 가방을 모두 털어갔더라도, 이렇게 유리창이 박살이 나지 않았다면 마음이 좀 덜 힘들었을 것 같아. 사라진 것은 그냥 내 것이 아니었을 뿐이니까. 그런데 아끼고 정을 주었던 존재가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박살이 나있는 걸 보니.. 그냥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차라리 가방을 가져가지.. 가져가지도 못할 거면서 왜 멀쩡한 차를 박살 내냐고..

 
원망스럽습니다. 가져가지도 못할 거면서 상처만 내어 놓은 그들이 원망스럽습니다. 게다가 멀린의 가방만 마구 헤쳐져 있었습니다. 왜 하필.. 한스와 잭도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다들 충격을 받은 듯합니다. 누가 봐도 이 광경은 마음이 무너져 내릴 광경입니다. 잃어버린 것이 없어 괜찮다고 서로 위로하며, 경찰서를 찾아 사고경위서를 작성하고는, 차를 교체하러 인근 공항의 렌터카 지점을 찾아갑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외향형인 한스는 말이 없어집니다. 반면에 내향형인 잭은 말이 많아집니다. 평소 같지 않게 잭이 계속 너스레를 떨며, 이 얘기 저 얘기를 해 봅니다. 애써 유리창까지 깼는데,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 그놈들도 허탈했겠다며.. 하지만 가라앉는 분위기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누가 네덜란드 장사꾼 아니랄까 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군. 업무처리도 능숙한 게 마치 ‘늘상 있는 일이야.’하는 것 같았어. 그렇겠지. 외국인 관광객들의 자동차가 주요 타겟일 테고, 그래서 차를 수리하게 되면 현지의 수리업체에게는 좋은 수익원이 되겠지. 그래서인지 그 흔한 CCTV 한 대 없더라구. 도심의 유료주차장에 말이야.

 
멀린 일행은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들른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눈에 확 들어오는 경고 포스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절도범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경고 포스터 말이죠. 마침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출입구 바로 앞에 주차를 한 터라, 설마 여긴 괜찮겠지 하고 바닥을 둘러보니, 뭔가 반짝거립니다. 자세히 보니 깨진 유리창 조각들이, 바닥 타일들 사이에 박혀 반짝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심상치 않다 느낀 일행은 시건장치를 더 단단히 점검하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조건이 여러모로 좋지는 않았으나, 나름 성공적으로 버스킹을 마친 뒤 주차장에 돌아와 보니,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안심을 하고는 관광을 하려고 중심가로 이동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주차 타워에 주차를 했습니다. 차들이 워낙 많아, 빽빽한 틈에 주차를 하고는, 별생각 없이 시내 관광을 다녀온 뒤였습니다.

 


왜 하필 우리 차였을까? 주변에 고급차들도 많았었는데.. 유리창에서 내부에 소지품이 들여다 보이면 표적이 된다고 해서, 트렁크에 보이지 않게 모두 잘 모아놓고, 시건장치도 단단히 해 놓았었는데 말이야. 아마도 외국 번호판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 아니면 재수가 없었던가..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니 뒷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습니다. 맨 위에 있던 멀린의 가방은 찢어지고 마구 풀어헤쳐져 있었습니다. 다행히 노트북도 있고, 버스킹 장비들도 있었는데, 다른 가방들은 열어 볼 엄두를 못 냈는지 모두 무사했습니다. 아마도 급하게 유리창을 깨고, 맨 위에 있는 가방을 힘들게 열어보고는, 별게 없자 그대로 떠나버렸나 봅니다. 차들이 계속 오고 가는 길목이라, 오래 시간을 들여서 가방을 헤집어 볼 수는 없었을 겁니다. 덕분에 유리창이 박살이 난 것 외에 다른 피해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상했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가져가지도 못할 거면서, 이렇게 상처만 내어 놓구선 말이야. 한스도, 잭도, 마음이 좋지 않았을 거야. 다들 여행의 막바지라 많이 지쳐가고 있었거든.

 
지친 마음에 위로는 안식일 겁니다. ‘쉬라고.. 괜찮다고.. 마음 놓으라고..’ 하는 것이 지친 마음의 위로일 것입니다. 지친 마음에 물건을 분실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하는 건, 큰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지켜내려다 지쳤으니까요. 그것 때문에 이렇게 힘들었으니까요. 멀린도, 한스도 지쳤습니다. 그들이 지켜내려던 것들 때문에 많이 지쳐들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록 이번에는 그것들을 지켰지만, 지켜냈지만, 결국 마음은 박살이 나야 했습니다. 지친 마음을.. 어떻게든 다독여가고 있던 지친 마음을.. 박살을 내고야 말았습니다. 운명은 잔혹하게도 말입니다.

 


깨어진 유리조각들을 털어내는 내내, 조금씩 넋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어. 넋이 나간 채, 맨손으로 털어내다, 결국 손가락을 베어버렸지. 박살 난 마음의 조각들이 온몸 여기저기 박혀서, 움직일 때마다 상처가 찢어지는 듯해. 털어내도 털어내도 조각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더라. 깨어진 유리는 털어내면 그만인데, 깨어진 마음은 무엇으로 붙일까.. 그냥 털어내 버리면 마음이 다시 돋아날까..

 
외면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멀린도, 한스도, 단지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빼앗기지만 않으면 될 줄 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어코 운명은, 여행의 막바지에서, 깨어진 마음을 직면시켰습니다. 빼앗기지 않았더라도,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도, 그러다 지친 마음은.. 위로받지 못하면, 쉼을 얻지 못하면, 박살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박살 난 마음은, 털어내어지지도 새로 돋아나지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깨어진 채로 암스테르담에 버려져 있습니다. 비록 새 차로 교환받아 유럽 대륙을 떠나왔지만, 깨어진 마음은 암스테르담에 그냥 버려져 있습니다. 깨어진 조각들이 털어 내어지고, 새 살이 돋아난 마음이, 멀린과 한스의 가슴을 찾아올 때까지, 그들도 대륙 반대편에서 그렇게 버려져 있을 것입니다.

 

가져가지도 못할 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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