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없습니다. 당신을 믿으세요.

in #stimcity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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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을 찾아서



언제 봤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날개도 없이 추락하던 때였던지라 감정이입이 심하게 돼서 주르륵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봤던 기억만 있다.



이 참으로 신파스러운 이야기가 실화이고 또 누구나 한 번쯤 겪음직한 이야기라(경중을 떠나서) 많은 공감을 사기는 했다. 공중화장실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야 할 만큼 바닥이었던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뻔한 전개라 다음 장면이 어떻게 될지 대충 알아맞출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충격적인 장면이 있었다. 그건 말이지, 고난 끝에 바닥을 치고 드디어 뭔가 기회가 오는구나 싶었던 그 순간에 제대로 뒤통수를 치는 말이었다.



"월급은 없습니다."



그랬다. 천금과 같은 기회였지만 월급은 없었다. 6개월간의 인턴이었고, 그나마도 스무 명 중 한 명만 정규직이 될 수 있다.



'월급이 없다니.'



그 말의 무게를 마법사는 잘 알고 있다. 끝없이 바닥을 치는 이에게 한 달의 생활비가 얼마나 절실하고 소중한지. 억만금이 다 무슨 소용일까? 그저 이번 한 달의 식비와 월세, 공과금을 낼 수 있는 수입이면 그것으로 천국이고 행복이다. 그리고 그것은 연속적이고 항구적이어야 한다.



그 길에 많은 이들이 줄을 선다. 연속적이고 항구적일 거라 믿는 그 월급의 길에 들어서지 못해 모두들 안달이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무엇도 영원한 건 없다는 걸 말이다. 그렇게 철밥통을 자랑하던 직업들이 하나둘 박살이 나고, 이제는 금수저가 아니면 안정을 보장받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니 행복을 찾아 나서야 하는 일은 꼭 화장실 바닥에서 아이와 밤을 지새우는 이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랬다. 마법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청춘의 때에 마법사 역시 그것과 사투를 벌였다. (물론 여전히 그렇지만) 처음에는 호기롭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법사의 대학 시절에는 이제 막 스펙이란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는데, 그게 참 멋이 없어 보였다. '대학까지 와서 다시 학원에 다닌다구?' 덕분에 아직도 마법사는 그 흔한 토플, 토익 시험 한 번 본 적이 없다. 그것을 요구하는 삶에는 발도 들이지 않겠다는 강력한 콧방귀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니 막상 갈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호기롭게 콧방귀를 껴댔지만, 밖은 시베리아가 아닌가? 폭풍한설을 잠시라도 피해 보겠다고 월급을 찾아 나서 보았으나, 스펙 없이 갈만한 곳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도 그 시절은 아직 비정규직이란 개념이 없던 때라, 어케어케 마구 이력서를 들이밀면 정규직으로 취직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마법사가 관운이 좀 좋은 편이거든. 덕분에 2년 동안 7번이나 직장을 옮겨 다녔다. 망할,



정말 그랬다. 내가 들어가면 멀쩡하던 회사들이 망해 나갔다. 합쳐지거나 없어지거나.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새로운 명함을 내미는 마법사를 보며 "야아~ 넌 재주도 좋다. 회사가 없어지는 것보다 너가 또 취직하는 게 더 신기하다."며 희한해 했다. 그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었는지 모르겠다. 입사하는 회사마다 들어가자마자 망하거나 없어지는 것도 희한한데, 지하철 갈아타듯 또 매번 취직이 되니 말이다. 물론 스펙 없이도 들어갈 만한 회사가 삐까번쩍한 회사는 아니었을 테지만, 그래도 그렇게 갑자기 망하거나 사라지거나 할 회사들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그 정도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7번의 취직과 퇴사. 이건 내 길이 아닌 거지. 그 회사들도 길을 잘못 들어선 마법사 탓에 고생 좀 했다. 그럼 어떻게 먹고 살까? 덜커덕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버린 마법사의 상황은 영화 주인공의 그것보다 아주 조금 나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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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독립!을 해야 한다. 스펙으로부터, 얽매임으로부터, 월요일의 비극으로부터, 월급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 비장해진 마법사는 돈이 되는 거라면 닥치는 대로 해댔다. 길거리에서 멸치도 팔고, 뻥튀기도 팔고, 풍선인형도 팔았다. (그래, 삐에로가 만들어주는 그 풍선인형 말이다.) 돌도 안 지난 아이를 들쳐업고서 졸업식장에서 커피도 팔았다. 우연히 아는 친구, 후배들을 만날까 잔뜩 고개를 숙이고 말이다. 암튼 뭐, 고생담이야 여기서 이러고 있는 이들 대부분 남부럽지 않을 만큼 했을 테니 자랑할 건 아니고.



그런데 그게 안 되려면 뭘해도 안 되는 거라, 참 그렇다. 지독했다. 노를 아무리 저어도 역류하는 강줄기에서 얼마나 앞으로 나아가겠는가? 힘이 빠져 잠시만 쉬어도 쑤욱 떠밀려 내려가는 삶에는 장사가 따로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휑한 길거리에 가 닿는 법. 아, 그러고 보니 노숙도 했었지.



간절해지지 않겠는가? 월급이 말이다. 로또도, 스팀만배도 다 필요 없다. 딱 이번 한 달을 살 수 있는 그것. 항구적이면 좋을 그것. 많지도 작지도 않은 그것. 그것이 절실했다. 아니 지금도 절실하다.



그것을 바라고 있었을 텐데. 주인공도 말이다. 화장실에서 아이를 재우지 않아도 될 딱 그만큼. 그런데 신사는, 자신을 알아본 그 신사는 딱 잘라 말했다.



"월급은 없습니다. 당신을 믿으세요."



뒷이야기는 뭐 뻔하다. 스포니까 더 말하진 않겠다. 괜히 영화로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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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서



작년 거래기록들을 뒤지다 미치고 환장하겠는 기록을 발견하고 말았다. 100원어치 남은 루나를 이미 오래전에 꽤나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차마 수량은 말하지 못하겠다. 그걸 그대로 가지고 있었으면 도대체! 물론 고래들한테야 세뱃돈 정도겠지만, 여전히 행복을 찾아다니는 마법사에게 그건 정말 엄청난 돈이다. 그걸 그때 왜 샀을까? 어떻게 샀을까? 그걸 왜 팔았을까? 제값도 못 받았을 텐데. 그리고 왜 난 그걸 잊고 있었을까? 이제 마법사 인생에 돈 벌 기회도 없었다는 핑계는 더이상 댈 수가 없게 되었다. 아~ 루나는 달나라로.



그러나 그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마법사는 루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기는커녕 장난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에도 없는 걸 샀다 팔았다 했으니 억울할 것도 없는 거다.



너도 그렇지 않은가? 마음에도 없는 직장에 월급이나 받겠다고 출근했다 퇴근했다, 입사했다 퇴사했다 하고 있지 않은가? 다 안다. 나도 그랬다. 그러니 될 리가 없지. 그런 일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쩌다 일확천금을 꿈꾸지만. 어디 일확천금이 그렇게 쉽게 와주던가?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냐고? 뭘 어케 살아. 날 믿어야지.



"월급은 없습니다. 당신을 믿으세요."



일한 대로, 자신의 성과대로 결과를 얻는 삶이야말로 지극히 안정적이고 단순하다. 그것에는 입력과 출력이 일치하고 내일이 예상 가능하다. 키를 내가 쥐고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이지 운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키를 쥐고 있지 않으니 운만 바라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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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보는 강용석의 방송에 수감시절 감방동기 이야기가 나왔다. 비트코인 다단계를 하다 사기로 감옥에 온 그 동기가 강용석에게, 나가면 꼭 비트코인을 사놓으라고 했단다. 그때가 바닥이었던 시점이니 그걸 샀겠는가? 사기라는데. 그런데 이렇게 올라버렸다며, 지금쯤 출소할 때가 되었는데 자신을 꼭 찾아달라고 웃으며 말했다. 별로 아쉽지 않은가 보다. 그건 그의 복이 아니니까.



그 감방동기, 살자면 비트코인 다 넘겨주고 대충 합의 보고 집행유예쯤으로 나왔을지도 모른다. 감방을 살지 않겠거든 말이다. 그러나 강용석의 말에 의하면 그의 비트코인에 대한 신뢰는 정말 대단했단다. 그러니 그걸 팔 리가 없다. 감방에 갇혀도 나올 때가 되면 천정까지 뛰어오를 그것을 돌려주거나 팔 생각이 전혀 없는 게 당연하다. 몸으로 때운다고 그게 생겨나지는 않는 거니까.



참으로 이상하고 괴상한 사례이긴 하나,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감방동기 무시하지 마라. 너는 자신의 선택에 그렇게 믿음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감방을 살게 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 문제는 그것이다. 자신을 모두 걸 만큼 믿고 신뢰하는 그것을 지금 하고 있는가? 사고 있는가? 말이다.



우리는 나 자신보다 월급을 더 신뢰한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러나 이름만 그럴듯한 대기업, 조직, 그것이 주는 월급은 철저하게 믿으면서, 그것들의 주식은 사지 못한다. '망하면 어떡해?' 아니 너가 다니고 있잖아? 국가의 존립을 흔들 수도 있는 암호화폐를 사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뭐 하자는 거야? 무엇도 안전한 건 없다. 인류가 내일 당장 핵전쟁으로, 환경파괴로 몰살당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시대에 살면서, 내년에도, 후년에도, 이 직장은 나에게 월급을 줄 것이라고 강력하게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을 실현시키기 위해 회사에 목숨을 바친다. 매일 아침마다 스스로를 감옥에 수감시키며 말이다. 뭐가 다를까? 지옥철과 만원버스, 교통지옥과 지옥보다 갑갑한 사무실이 감옥보다 얼마나 나을까? 거긴 삼시세끼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는데 말이다. (애국청년의 말에 의하면 딱 6개월만 지나면 나름 살 만하단다.)



무엇을 믿고 무엇에 인생을 걸고 있는가? 나 말이다. 자신도 믿지 않는데 누가 날 믿어줄까? 월급이 행복을 보장해 줄 리 없지 않은가? 정년도 보장해 주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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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믿는다면 자신을 위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빚을 내서라도 자신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굶더라도 자신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마법사는 딱 한 번, 그렇게 필사적으로 지켜내던 삶에서 물러나 타협을 한 적이 있다. 맞다. 물러서지도 타협하지도 말았어야 할 나의 삶이다. 그리고는 암에 걸려버렸다. 월급의 대가는 참으로 지독했다. 장기 하나를 월급과 바꿔 먹다니. 월급과도 바꿔 먹은 장기를, 루나를 지키는 데는 왜 바꿔 먹을 생각을 못 했을까? 그건 루나보다 월급을 더 믿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한 배신은 둘 다 너무 잔인하다. 그러나 배신이라 말하기에는 그 모든 것이 오롯한 나의 선택이었으니, 참으로 할 말이 없다.



"월급은 없습니다. 당신을 믿으세요."



투린이 마법사가 투자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하나같이 모든 투자의 고수들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처음에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샀으면 팔지 마세요."

"언제 팝니까? 그럼?"

"팔 걸 왜 삽니까?"

"아니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차도 사고 집도 사야 하는데. 노후준비도 말이죠."

"그래서 투자에 실패하는 거예요.
암튼 팔 거면 사지 마세요."

"허~참. 무슨 말인지."



그랬다. 마법사도 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팔 거면 사지도 말라. 죽을 거면 태어나지도 말라. 같은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가? 우리는 살려고 태어난 거지. 팔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살려고 태어난 거지. 자신을 팔아먹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그러니 월급은 필요 없다. 나는 나를 믿으니까. 나는 나를 살아야 하니까.



팔기 위해 사는 것은 지켜낼 수가 없다. 그러나 사기 위해 사는 것은 영원하다. 안 팔면 되니까. 이 매커니즘을 깨닫기는 참으로 어렵다. 우리는 늘 팔아왔으니까. 학교에, 회사에, 가족에게, 각종 시선들에게 우리는 자신을 팔지 못해 안달이 나 외쳐댔다. "쌉니다. 싸요. 암 걸려도 싸요." 그리고 남은 것은 무엇인가? 팔다 남은 100원어치 루나 찌꺼기. 길거리에서 멸치를 팔고, 뻥튀기를 팔고, 풍선을 팔면서까지 지켜낸 나의 소중한 삶을 고작 월급 몇 푼에 팔아먹은 마법사는 암 걸려도 싸다.



달나라로 가버린 루나는 이제 비싸서 못 산다. 장기 하나 던져주고 탈출한 마법사 역시 비싸졌다. 월급 따위, 보팅 따위에 나를 팔아먹을 만큼 행복을 모르지 않는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얻어낸 삶이니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한다. 멸치를 팔고 뻥튀기를 팔아서라도, 풍선은 팔더라도 나를 팔아서는 안 된다.



아무도 너를 사주지 않는다. 너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니까. 그러므로 너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다. 얄량한 월급 몇 푼에 팔아 먹을 만큼 너의 삶이 가치 없지 않다. 그러자고 태어난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는 그러자고 사기니 도박이니 소리를 들어가며 이곳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사지 않은 자들이 남의 인생을 대신 살다가 사기를 당하고,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자신의 삶을 가지고 도박을 하다가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자신을 산 사람은, 빚을 내서라도, 굶더라도, 감방에 갇히더라도 자신을 산 사람은 행복을 찾아내고야 만다. 행복은 그런 것이다. 너는 모른다. 너를 산 적이 없으니.



나를 사라. 빚을 내서라도 사라. 빚을 갚지 못해서 거리에 나앉더라도 나를 팔지 마라. 그리고 나를 믿어라. 그러면 살 수 있다. 그러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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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간다.
스팀 사러
나를 사러



휘리릭~





"오늘 밤까지야
결정 못 하면
그 자리는 다른 사람이 차지해."

_ 영화 <행복을 찾아서>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10. 행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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